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로시니의 파스티셰 '로버트 브루스' - 129

정준극 2014. 8. 15. 09:57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 - 로베르 브루스

로시니 + 니더마이어의 파스티셰

 

 

1865년의 로시니와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인 루이 니더마이어

 

'로버트 브루스'는 조아키노 로시니와 루이 니더마이어가 공동으로 음악을 만든 3막의 오페라이다. 로시니의 음악은 주로 그의 다른 오페라에서 가져온 것이고 니더마이어는 레시타티브 파트를 중점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완전 로시니의 오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로시니의 음악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로시니의 오페라로 간주하고 있다. 로시니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호수의 여인'(La donna del lago)와 '첼미라'(Zelmira)에서 가져 왔지만 이밖에도 '비안카와 활리에로'(Bianca e Falliero), '아르미다'(Armida), '토르발도와 도를리스카'(Torbaldo e Dorliska), '이집트의 모세'(Moses in Egitto), '마오메토 2세'(Maometto Secondo) 등에서 가져온 흔적이 있다. 파스티셰 또는 파스티치오는 여러 작곡가의 음악을 짜집기해서 만든 작품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저작권문제 때문에 그런 것이 곤란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파스티셰는 남들이 무어라고 말할수 없는 관례였다. 로시니의 음악을 인용해서 만든 오페라로서 또 하나 유명한 작품은 '아이반호'(Ivanhoe)이다.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파치니(Antonio Pacini)가 만들었다.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La Cenerentola), '탄크레디'(Tancredi), '도둑까치'(La gazza ladra), '세미라미데'(Semiramide) 등에서 음악을 가져와서 짜집기 하여 만든 오페라이다.

 

파스티셰 오페라인 '로버트 브루스'는 1846년 12월 30일, 파리 오페라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주인공인 로버트 브루스는 바리톤 폴 바루아에(Paul Barroihet)가 맡았고 더글라스 경의 딸 마리는 메조소프라노 로생 슈톨츠(Rosine Stoltz)가 맡았다. 로시니가 '로버트 브루스'를 만들게 된데에는 파리 오페라의 감독인 레옹 피예(Leon Pillet)의 노고가 컸다. 피예는 이 오페라의 초연이 있은 때로부터 2년 전에 마침 파리에 와 있던 로시니에게 접근하여 오페라 한편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로시니는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치료를 받기 위해 1843년에 파리에 와 있었다. 로시니는 건강이 좋지 않으니 못 하겠다고 거절했다. 대신에 1819년에 파리의 이탈리아 극장에서 초연을 가진 '호수의 여인'이 그때 제대로 공연되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것을 파리 오페라에 올려도 사람들이 새로운 오페라라고 생각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파리 오페라의 합창단을 비롯한 쟁쟁한 성악가들과, 놀랄만큼 멋있는 무대 장치와 또한 아주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활용하면 '호수의 여인'은 그랜드 오페라로서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의견도 덧 붙였다. 게다가 당시 파리 오페라에는 로생 슈톨츠라고 하는 불세출의 프리마 돈나가 활동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호수의 여인'에 기용한다면 정말 대단한 공연이 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렇지만 극장감독인 피예는 '호수의 여인'이 비록 파리의 이탈리아 극장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했더라도 파리의 사람들이 그건 위대한 로시니 선생의 작품인 것을 다 알고 있는데 그것을 재탕하면서 마치 신작을 발표하는 것처럼 하면 곤란하다고 대답했다. 로시니는 그러냐고 하면서 별로 신경쓰지 않고 얼마후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그러는 중에 1846년 6월에 피예가 볼로냐까지 일부러 찾아 와서 아무래도 그해 연말에 로시니 선생의 오페라를 새로 공연해야 할 것 같으니 제발 오페라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간청에 간청을 거듭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피예가 아예 대본가로 잘 알려진 귀스타브 바에즈(Gustave Vaez)와 작곡가이며 오르가니스트로 유명한 루이 니더마이어와 함께 찾아왔다. 그러면서 도와 드릴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도와 드릴 터이니 제발 말씀만 해 달라고 말했다. 로시니로서는 못하겠다고 잘라 말할 처지가 못되었다. 더구나 니더마이어로 말하자면 로시니가 나폴리에 있을 때 문하생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이니 박정하게 대할 처지가 아니었다. 로시니가 대본가인 바에즈와 얘기를 나누어 보니 월터 스콧의 '로버트 브루스'를 오페라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기야 로시니는 월터 스콧의 서사시 또는 소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호수의 여인'도 월터 스콧의 서사시였음) 굳이 반대할 입장이 아니었다. 다만, 12월 공연까지는 시간이 촉박하므로 로시니는 작곡가인 니더마이어와 협의해서 이미 나와 있는 오페라의 음악들을 이곳 저곳에서 가져와서 한 편의 오페라를 만들기로 하되 레시타티브 등 새로 작곡해야할 파트는 니더마이어가 알아서 작곡토록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인 '로버트 브루스'이다. 한편, 대본가인 바에즈도 시간이 촉박한 점을 감안하여 동료 대본가인 알퐁스 로이어(Alphonse Royer)의 도움을 받아 대본을 공동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리하여 1846년 12월 30일에 파리 오페라에서 '로버트 브루스'가 공연되었다. 파리 오페라에서의 공연 때에 오케스트라에는 당시 처음 개발된 악기 하나가 참여하였다. 색스폰이었다.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색스폰이 등장하기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과연 '로버트 브루스'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무려 23년이나 스코틀랜드의 왕으로서 봉직했던 사람이다. 대단한 용사여서 전쟁에 나가면 항상 앞장서서 전투를 하였다. 특히 영국과 벌인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영웅적인 활동을 하였다. 로버트 브루스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의 영화보다도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스코틀랜드에서는 어린이로부터 노인네까지 로버트 브루스를 윌리엄 월레이스와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의 진정한 영웅'이라면서 크게 존경하고 있다. 그런데 로시니의 오페라에서는 로버트 브루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백성들의 독립전쟁에만 초점을 둔 것이 아니다. 오페라이기 때문에 사랑이야기도 들어가고 배신과 복수에 대한 얘기도 포함되었다. 원작은 앞에서도 말한 대로 월터 스콧의 서사시 '아일 경'(Lord of the Isles)이다. 오페라는 비교적 원작에 충실코자 했지만 소설처럼 만들어 낸 스토리도  여러 군데 나온다. 그리고 오페라에서는 원작에 나오는 반녹번(Bannockburn) 전투 장면은 생략되어 있다.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브루스 병사들이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거둔 장면이다. 아마 영국 관중들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아일 경(Lord of Isles)인 롤란드(Roland)가 아토니쉬성으로 돌아온다. 그는 론의 에디스(Edith of Lorn)와 정혼한 사이이다. 그런데 그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 롤란드의 마음이 다른데 가서 있는 것 같다. 사실상 롤란드는 로버트 브루스가 후견인으로 있는 이소벨(Isobel)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 로버트 브루스의 동생인 에드워드와 이소벨이 가장을 하여 신분을 숨기고 역시 아토니쉬성을 찾아 온다. 얼마후 론 경(Lord of Lorn)인 에디스의 오빠가 등장한다. 에디스의 오빠는 에디스와 롤란드의 결혼이 미루어 지고 있는 것을 알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한편, 론 경은 로버트 브루스가 성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로버트 브루스는 론 경의 친척 겸 심복 한 사람을 죽인 일이 있다. 론 경과 로버트 브루스가 서로 칼을 빼어 들고 결투를 하려고 하는데 이소벨이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결투를 말린다. 그런데 이소벨을 본 롤란드의 태도가 분명치 않다. 마치 싫어하는 사람을 만난 듯한 인상이다. 롤란드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에디스는 수치스럽고 분해서 정처없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시녀 캐슬린만이 에디스의 뒤를 따른다.

 

로버트 브루스는 아토니쉬 성에 붙잡혀 있다. 로버트 브루스에 대한 재판을 위해 영내의 수도원장이 불려 온다. 귀족들간의 분쟁은 국왕이 재판을 하는 것이 일반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교회의 사제 또는 수도원장이 대신 맡아 하기도 한다. 수도원장은 로버크 브루스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보다는 그가 장래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그 말을 들은 론 경은 두려워서 부하들을 데리고 급히 어디론가 사라진다. 론 경은 해적들과 합류하여 후일을 기약코자 한다. 한편, 이소벨은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멀리하고 살아가고자 한다. 해적들은 은밀히 로버트 브루스를 습격하여 죽이고자 하지만 갑자기 에디스가 나타나서 해적들을 물리치고 로버트 브루스를 구해 준다. 로버트 브루스는 에디스가 변장을 했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뜻을 이루지 못한 론 경은 이번에는 부하들과 함께 이소벨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수도원을 습격하여 이소벨을 납치코자 한다. 론 경은 로버트 브루스에 대한 그런 예언을 한 수도원장에게도 복수할 생각이다. 론 경이 급습해 오자 이소벨은 하녀 캐슬린과 함께 요행으로 수도원에서 빠져 나와 캐슬린의 할아버지의 오두막집으로 가서 숨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해적들이 이소벨을 발견하여 결국 이소벨을 납치하여 론 경에게 데려간다. 론 경은 이소벨과 결혼할 생각으로 이소벨을 설득하지만 소용이 없다. 로버트 브루스는 수도승으로 변장하여 이소벨을 구하러 들어가지만 경비병들에게 발각되어 오히려 잡힌다. 론 경은 로버트 브루스를 감옥에 가두고 날이 밝는 대로 처형키로 한다. 그러나 로버트 브루스를 따르는 부하들이 감옥을 공격하여 구출해 낸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켰던 무리들로부터 항복을 받는다. 로버트 브루스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귀족들이 단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론 경을 용서한다. 론 경은 로버트 브루스의 관용에 깊이 감동한다. 한편, 롤란드는 에디스와 화해한다. 그리하여 로버트 브루스와 이소벨이 결혼을 하고, 롤란드와 에디스가 결혼하며 로버트 브루스의 시종인 두갈은 이소벨의 시녀인 캐슬린과 결혼한다. 끝.

 

'로버트 브루스' CD 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