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베리스모의 푸치니

푸치니와 대본가들

정준극 2014. 10. 25. 19:28

푸치니와 대본가들

 

푸치니의 두번째 오페라인 '에드가'는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대본이 신통치 않아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푸치니는 대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 대본가를 선정하는 일에 대단한 신경을 썼다. 대본가들이 만들어 온 대본을 검토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때에는 '아니, 이것도 대본이라고 써 온 것이요? 내가 써도 이보다는 더 잘 쓰겠소이다'라며 핀잔을 주었다. 아무튼 푸치니는 대본가들에게 전체적인 구조는 이렇게 변경하고 텍스트는 저렇게 고치라는 식으로 잔소리를 해 댔다. 그리하여 대본가와 작곡가인 푸치니의 관계는 간혹 아주 곤란할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악보 출판사인 카사 리코르디가 중재에 나서느라고 땀깨나 흘렸다.

 

유명한 악보출판사인 카사 리코르디를 운영한 줄리오 리코르디. 그는 푸치니를 적극 후원하였다.

 

푸치니는 오페라의 주제를 선정하는데 있어서도 좋게 말해서 심사숙고했고 좋지 않게 말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지근했다. 푸치니는 여러 주제를 생각해 놓고 대본가들에게 대본을 써 오라고 하고는 조금 음악을 붙여 보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중단하는 경우가 있었다.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들려고 생각했다가 중도에 포기한 주제로서는 '크리스토포로 슬라이'(Cristoforo Sly), 아니마 알레그라(Anima Allegra), '두개의 작은 나막신'(I due zoccoletti: Two Little Wooden Shoes), '마리 앙뚜아네트의 생애'(Life of Marie Antoinette), '코르토나의 마르게리타'(Margherita da Cortona), '콘치타'(Conchita) 등이다. '크리스토포로 슬라이'는 세라핀과 호아킨 알바레즈 퀸테로의 희곡인 엘 제니오 알레그레(El genio allegri)에 바탕을 둔 것으로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중도 포기했다. 푸치니는 피에르 루이(Pierre Louys)의 소설인 '여인과 인형'(La Femme et le pantin: The Woman and the Puppet)을 바탕으로 삼아서 '콘치타'라는 오페라를 만들고자 했으나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했다. '두개의 작은 나막신'은 위다(Ouida)라는 별명의 마리아 루이제 라메(Maria Louise Rame)의 단편소설에 바탕을 둔 것으로 역시 중도 포기하였다. 이 스토리는 나중에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로돌레타'(Lodoletta)라는 제목의 오페라로 만들었다. 프랑코 비타디니(Franco Vittadini)는 푸치니가 포기했던 아니마 알레그라를 오페라로 만들었다. '콘치타'도 나중에 리카르도 찬도나이(Riccardo Zandonai)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리카르도 찬도나이의 '콘치타' 음반. 원래는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들고자 했으나 대본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중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