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도니체티의 '파리시나' - 142

정준극 2014. 12. 22. 09:53

파리시나(Parisina) - Parisina d'Este

도니체티-로마니 합작의 3막 비극

의붓아들과의 비극적인 사랑

 

도니체티의 모습을 담은 '파리시나' 음반 커버

 

'파리시나'(Parisina)는 게타노 도니체티(1797-1848)가 작곡한 3막의 비극(Tragedia lirica)이다. 대본은 도니체티와 콤비인 당대의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 1788-1865)가 조지 고든 바이론(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의 서사시 '파리시나'(1816년)를 바탕으로 완성했다. 그러고 보면 대본가인 로마니와 원작자인 바이론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기여서 흥미롭다. 오페라 '파리시나'는 '에스테의 파리시나'(Parisina d'Este)라고도 부른다. 예전에는 이름 뒤에 출신 지명을 쓰는 것이 관례였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베리스모 작곡가인 피에트로 마스카니(1863-1945)도 '파리시나'라는 똑같은 타이틀의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본은 펠리체 로마노의 것이 아니라 가브리엘레 다눈치오(Gabriele D'Annunzio)가 썼다는 점이 다르다. 가브리엘레 다눈치오는 퐁키엘리의 '라 조콘다'(1899), 리카르도 찬도나이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와 같은 우리가 잘 아는 오페라의 대본을 썼으며 이밖에도 수많은 오페라 대본을 쓴 사람이다. 다눈치오의 대본도 바이런의 서사시 '파리시나'를 바탕으로 했음은 물론이다. 오페라의 스토리로서는 별의 별 사랑의 이야기가 다 있지만 '파리시나'의 경우는 파리시나가 의붓아들인 우고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이 특이하다. 찬도나이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에서는 프란체스카가 시동생인 파올로와 사랑하다가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는 내용이어서 물의를 일으켰는데 이번에는 새어머니와 의붓아들간의 사랑을 다룬 것이어서 논란이 되었었다.

 

도니체티의 '파리시나'는 1833년 3월 17일 플로렌스(피렌체)의 테아트로 델라 페르골라에서 초연을 가졌다. 테아트로 델라 페르골라에서는 1847년에 베르디의 '막베스'가 초연되기도 했다. 같은 해에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는 '루크레치아 보르지아'가 처음 공연되었고 로마에서는 '토르쿠아토 타소'가 처음 공연되었다. 이렇듯 '파리시나'는 도니체티의 결실기에 만들어진 훌륭한 작품이다. 오페라 '파리시나'는 초연 이후 거의 20년 동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자주 공연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다른 오페라들에 밀려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잊혀져 있었던 작품이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파리시나'의 존재와 함께 진면목이 차츰 밝혀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소프라노 카르멘 자나타시오(Carmen Giannattasio)와 테너 호세 브로스(Jose Bros)가 레코딩한 것은 '파리시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훌륭한 경우이다.

 

카르멘 자나타시오

 

등장인물들은 아쪼 공작의 부인 파리시나(S), 파리시나와 사랑하는 사이로서 아쪼 공작과 어떤 여인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인 우고(Ugo: T), 아쪼 공작(Bar), 아쪼 공작의 충신인 에르네스토(Ernesto: B), 파리시나의 시녀인 이멜다(Imelda: MS) 등이며 이밖에 기사들, 하녀들, 곤돌라 사공들, 공작의 시종들, 군인들이 등장한다. 바이런의 시와 도니체티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피라시나는 실존인물인 안드레아 말라테스타의 딸 파리시나 말라테스타(Parisina Malatesta)를 모델로 삼았으며 아쪼 공작(Duke Azzo)은 니콜로 3세(Niccolo III d'Este: 1383-1441)를 모델로 삼았다. 파리시나의 아버지인 안드레아 말라테스타는 체세나(Cesena)의 영주이며 에스테의 니콜로 3세는 페라라(Ferrara) 공국의 군주였다. 중세의 이탈리아 반도에는 수많은 공국이 있었으며 그런 공국들은 작은 영지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각각의 영주들이 다스렸다. 아쪼 공작이 지배하는 페라라 공국은 주변의 베니스, 플로렌스, 볼로냐 공화국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작은 공국이었다.

 

바이런의 시와 그 시를 바탕으로 삼은 오페라들에서는 파리시나를 체세나의 영주 안드레아 말라테스타의 딸을 모델로 삼았다고 했는데 과연 파리시나 말라테스타는 어떤 여인인지 역사적인 기록에 입각하여 소개코자 한다. 파리시나 말라테스타의 원래 이름은 라우라 말라테스타였다. 그러나 파리시나 말라테스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여인이었다. 파리시나는 1404년에 태어나서 1425년에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인이다. 파리시나의 어머니인 루크레치아 오르델라피(Lucrezia Ordelaffi)는 파리시나를 낳은지 며칠 후에 무슨 영문인지 친정 아버지인 체코 오르델라피에 의해 독살되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는 파리시나는 그로부터 리미니에 있는 삼촌의 집에서 성장했다. 파리시나는 1418년, 즉 그가 14세의 소녀일 때에 페라라의 영주인 니콜로 3세와 결혼했다. 니콜로는 첫째 부인이 2년 전인 1416년에 역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재혼을 해야만 했었다. 니콜로와 첫째 부인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1424년에 파리시나는 그동안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을 만나보기 위해 리미니와 체세나를 방문하였다. 이때 남편인 아쪼 공작은 파리시나의 무사여행을 위해 아들 우고와 함께 여행하도록 했다. 따지고 보면 파리시나는 우고의 어머니가 되며 우고는 파리시나의 아들이 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파리시나와 우고는 1404년 같은 해에 태어나서 나이가 같았다.  파리시나 일행이 라벤나에서 잠시 머물고 있을 때 두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하여튼 파리시나와 우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마도 파리시나는 남편에게서 느끼지 못한 그 무엇을 우고로부터 찾고자 했던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밀회는 두 사람이 페라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되었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되었던 것은 파리시나가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러 갔을 때가 아니라 1423년 역병을 피해서 카스텔로 디 포사달베로(Castello di Fossadalbero)라는 곳에 잠시 머물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니콜로 공작은 아무래도 파리시나가 이상하게 자기를 멀리하고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자 파리시나의 하녀 한 사람을 설득하여 무슨 일이 있는지 자기에에 보고하도록 했다. 결국 니콜로 공작은 파리시나와 우고가 침대에서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니콜로는 즉시 두 사람을 성채의 감옥에 가두도록 하고 며칠 후에 두 사람을 모두 참수형에 처했다.

 

이제 에스테의 니콜로 3세(1383-1441)가 어떤 사람인지 잠시 소개코자 한다. 니콜로 3세는 도니체티의 오페라에서 아쪼 공작으로 나온다. 니콜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10살 때에 페라라의 군주가 되었다. 그러자 친척으로서 밀라노 공작 휘하의 장군으로 있는 아쪼 10세라는 사람이 니콜로가 사생아임을 내새우며 페라라 군주의 자리에 도전했다. 인근 공국의 군주들이 니콜로의 아버지를 생각해서 페라라에 군대를 파견해서 아쪼 10세 장군의 반란을 진압토록 해주었다. 결국 반란을 일으킨 아쪼 장군은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후로 아무도 니콜로의 정통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니콜로는 파두아 영주의 딸인 질리올라 다 카라라(Gigliola da Carrara)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첫 부인인 질리올라는 1416년에 역병으로 젊은 나이에 자녀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군주로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니콜로는 이리저리 주선해서 체세나의 영주인 안드레아 말라테스타의 딸 파리시나와 결혼하였다. 두 사람은 세 자녀를 두었다. 그러다가 파리시나가 우고와 불륜을 저지르자 니콜로는 1425년에 파리시나를 우고와 함께 처형하였다. 니콜로는 1529년에 세번째로 결혼하였다. 이번에는 살루조의 리키아르다(Ricciarda di Saluzzo)라는 여인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두 자녀가 태어났다. 그런데 니콜로는 여러 명의 정부들이 있었고 이들 정부들로과의 사이에 무려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 중의 하나가 우고였다.

 

이제 오페라의 줄거리를 소개코자 한다. 장소는 페라라이며 시기는 15세기이다. 오페라의 줄거리는 비교적 역사적인 사실과 근접하도록 만들었지만 일부 인물들은 다른 이름들을 썼고 또 가공의 인물들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서 오페라에서는 니콜로 공작을 아쪼 공작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막은 아쪼 공작궁이 무대이다. 노신 에르네스토를 비롯한 여러 귀족들이 공작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E'desto il duca?). 잠시후 아쪼 공작이 나타나서 에르네스토에게 아무래도 부인인 파리시나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밀회를 하는 것 같다면서 이제야 아름다운 부인을 두었는데 그도 잃을 것 같아서 두렵다고 말한다. 아쪼 공작은 세상 떠난 전번 부인도 다른 남자와 불륜의 관계에 있어서 두려웠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아서 심히 걱정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아쪼 공작이 자리를 뜨자 잠시후 우고가 나타난다. 우고는 아쪼 공작과 어떤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이다. 우고는 사생아이기 때문에 아쪼 공작궁에서 자랄수가 없어서 아쪼 공작이 믿고 의지하는 충신인 에르네스토가 대신 데려다가 길렀다. 우고는 처음에 아쪼 공작이 가장 총애하는 아들이었으나 자기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멀리 추방을 보냈던 터였다. 그런 우고가 갑자기 공작궁에 나타난 것이다. 에르네스토는 아직 추방의 풀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우고가 나타나자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에 휩싸인다. 왜냐하면 에르네스토는 아쪼 공작이 아직도 우고를 증오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형편인데 에르네스토는 우고가 실은 파리시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밝히자 무슨 커다란 재난이 닥칠 것 같아서 더욱 두려움에 휩싸인다.

 

장면은 바뀌어 공작궁의 정원이다. 파리시나가 충성스런 시녀인 이멜다와 함께 정원을 거닐고 있다. 몇 명의 시녀들도 주변에 함께 있다. 기사들이 연회를 위해 도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기사들 중에는 우고도 포함되어 있다. 우고가 정원으로 파리시나를 찾아 온다. 시녀들이 모두 물러나고 정원에는 파리시나와 우고만이 남는다. 파리시나는 우고에게 제발 자기를 데리고 멀리 떠나자고 간청한다. 그때 공작이 나타나는 바람에 두 사람의 대화는 중단된다. 공작은 추방생활을 해야 하는 아들 우고가 파리시나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심히 분노하여서 어째서 여기에 있느냐고 묻는다. 파리시나가 아쪼 백작에게 '그게 아니고...'라고 변명하지만 그럴수록 아쪼 백작의 의심과 분노는 더해진다(If difende! E in sua difesa tanto adopra). 그러나 공작은 설마 우고와 파리시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한다. 아쪼 공작은 우고가 다른 기사들과 함께 공작궁의 연회에 왔으므로 일단은 포(Po)강의 강변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해도 좋다고 말한다. 파리시나는 무사히 위기를 넘긴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파리시나는 아쪼 공작과 함께 궁신들과 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연회 장소로 발길을 돌린다(Vieni, vieni, e in sereno sembiante). 그런데 실은 에르네스토, 우고, 파리시나로서는 앞으로 닥칠 두려움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그리고 아쪼공작은 의심과 분노의 심정으로 어찌할줄 모른다(Ma divoro nel cor tremante un timor/furor che non posse frenar).

 

2막은 파리시나의 거실이 무대이다. 이멜다를 비롯한 시녀들이 연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Lieta era dessa). 이들은 연회에 참석한 파리시나가 평소와는 달리 밝은 모습이어서 기뻐한다. 하지만 아쪼 공작이 아무 말도 없이 굳은 표정으로 있는데 대하여는 두려움을 느낀다는 얘기를 나눈다. 잠시후 파리시나가 방으로 들어온다. 파리시나는 지치고 피곤하여서 그대로 잠이 든다. 시녀들이 모두 물러가고 파리시나 혼자만이 남는다. 그런 파리시나를 아쪼가 한쪽에서 몰래 엿보고 있다. 무슨 일이나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서이다. 깊은 잠에 빠진 파리시나는 꿈 속에서 우고를 만났는지 자기도 모르게 '우리 함께 멀리 도망가요'라고 소리친다. 몰래 숨어서 엿보고 있던 아쪼가 파리시나의 잠꼬대 소리를 듣고는 놀래서 파리시나를 급히 깨운다. 아쪼는 이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파리시나의 불륜을 큰 소리로 크게 비난한다. 파리시나는 이제 더 이상 속일수가 없다고 믿어서 절망 중에 아쪼 공작에게 실은 우고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아쪼는 당장이라도 파리시나를 죽일 듯하다가 잠시 참는다(Non pentirti, mi ferisci).

 

궁전의 다른 방에서는 사람들이 연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아쪼 공작이 등장해야 연회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고는 파리시나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대하여 무슨 일이나 생기지 않았을까 하여 걱정한다. 경비병들이 나타나서 우고에게 아쪼 공작이 기다리고 있으니 함께 가자고 하면서 강제로 데려간다. 우쪼는 우고에게 파리시나가 고백한 것이 사실이냐고 다그쳐 묻는다. 우고가 그렇다고 말하자 아쪼 공작은 경비병들에게 당장 우고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그때 에르네스토가 나타난다. 에르네스토는 아쪼에게 우고가 그의 첫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밝힌다. 아쪼의 첫번째 부인은 궁전에서 추방당하기 직전에 우고를 낳았으며 에르네스토에게 그 아이를 맡아서 길러 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힌다. 아쪼는 그때를 기억하고 우고가 분명히 자기의 아들임을 인정한다. 그리고는 우고를 처형하라고 내렸던 명령을 거둔다.

 

3막은 궁전 안에 있는 교회이다. 합창소리가 울려퍼진다(Muta, insensibile). 파리시나는 우고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충실한 시녀인 이멜다가 우고로부터의 편지를 가지고 온다. 안전하게 있으며 어서 함께 멀리 떠나자는 내용이다. 편지를 읽은 파리시나는 그러나 주저한다. 그러다가 우고와 함께 멀리 떠나기로 결심한다. 멀리서 장송곡이 들린다. 누가 죽은 모양이다. 아쪼 공작이 나타나서 파리시나가 떠나랴는 길을 막는다. 그러면서 병사들에게 지시하여 우고의 시신을 파리시나에게 보여주도록한다. 파리시나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다(Ugo e spento! A me si renda!). 파리시나는 우고의 시신 옆에 쓰러져 숨을 거둔다.

 

도니체타의 '파리시나'에 대한 음반이 여러 개가 나와 있다. 그중에서 1974년에 취입한 것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와 테너 제롬 프루에트(Jerome Pruett)가 파리시나와 우고를 맡은 것이다. 이브 퀠러(Eve Queler)가 뉴욕 카네기 홀 오케스트라가 지휘했다. 비교적 최근인 2008년에는 소프라노 니콜라 알라이모(Nicola Alaimo)와 테너 호세 브로스(Jose Bros)가 데이빗 패리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취입한 것이 있다. 1997년에는 알렉산드리나 펜다찬스카(Alexandrina Pendachanska), 다니엘라 바르셀로나(Danielo Barcellona), 아메데오 모레티(Amedeo Moretti) 등이 취입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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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의 시]

그러면 바이론의 원작시의 내용은 어떠한가? 바이런의 시는 1816년 2월에 출판되었다. 아마도 1812년과 1815년 사이에 쓴 것으로 본다. 바이런의 시도 실은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정치가인 에드워드 기본(Edward Gibbon: 1737-1794)이 쓴 '기타 작품집'(Miscellaneous Works)에 들어 있는 니콜로 3세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니콜로 3세는 페라라의 공작으로 15세기에 살았던 사람이다. 니콜로는 자기의 두번째 부인인 파리시나 말라테스타가 자기의 사생아 아들인 우고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두 사람을 모두 사형에 처했다. 바이런의 시에서는 파리시나가 아조(Azo: 니콜로의 바이런 버전)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우고(Hugo)와 약혼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바이런의 시에서는 아조 공작이 우고를 사형에 처했지만 파리시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아조 공작은 우고를 처형하는 장면을 파리시나로 하여금 직접 보도록 했다는 얘기는 나온다. 파리시나는 우고가 처형을 당할 때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크게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급기야 정신이상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세페 베르티니 작 '파리시나 말라테스타'. 1854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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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니의 오페라 <파리시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유명한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도니체티와 마찬가지로 '파리시나'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도니체티의 '파리시나'는 3막인데 마스카니의 '파리시나'는 4막이다. 하지만 너무 길어서 만일 리바이발 한다면 3막으로 줄여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도니체티의 '파리시나'는 펠리체 로마니가 대본을 썼지만 마스카니의 '파리시나'는 가브리엘레 다눈치오가 썼다. 하지만 모두 영국의 바이런 경의 시 '파리시나'를 바탕으로 삼았다는 데에는 같다. 도니체티의 '파리시나'는 1833년 플로렌스에서 초연을 가졌지만 마스카니의 '파리시나'는 그로부터 꼭 30년 후인 1913년 12월 15일에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원래 다눈치오는 3부작의 대본을 만들고자 했다. 첫번째는 '리미니의 프란체스카'(Francesca di Rimini), 두번째가 '파리시나', 세번째가 '시기스몬도'(Sigismondo)였다. 첫번째인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는 대본이 완성되어 리카르도 찬도나이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두번째 대본도 완성되어 마스카니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다눈치오는 세번째인 '시기스몬도'를 시작도 하지 못했다. 다눈치오의 대본을 읽은 마스카니는 '파리시나'의 강력한 비극적인 분위기와 찬란하리만치 아름다운 대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스카니는 '파리시나'의 대본을 '투명하고 명료하다. 마치 종을 울리는 것과 같으며 아름다운 멜로디에 넘쳐 있다'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마스카니는 대본이 마련되는 대로 작곡을 착수했다. 어서 완성해서 '카발레리아' 이후의 침체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열성도 집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일시 중단되었다. 마스카니는 안나 롤리라는 여자와 바람을 피고 있었는데 마스카니의 부인이 그 사실을 알고는 마스카니를 집에서 쫓아냈던 것이다. 마스카니는 얼마 후에 집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밖에 나가 있으면서 그래도 자숙하는 의미에서 작곡에만 열중하여 '파리시나'를 거의 완성했다. 마스카니는 '파리시나'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할이 음악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대단히 힘들고 벅차도록 만들었다. 등장인물들이 감정이나 성격을 급작히 변경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총 공연시간이 3시간 40분이나 걸리는 장편오페라였다. 웬만한 성악가들로서는 힘들어서 못해 먹을 지경이었다. 사실상 이러한 장시간 공연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이탈리아 관중들에게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평론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오페라의 음악이 훌륭하고 극적인 효과도 뛰어나지만 도무지 길어서 지친다면서 마스카니에게 제발 '컷 컷 컷'을 요구했다. 그 시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평론가인 조반니 포짜(Giovanni Pozza)도 '길지만 않다면 그런대로 보아 줄수 있는데'라면서 아쉬움을 표명했다. 그런데 마지막 막인 제4막의 음악이 가장 훌륭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니 그 훌륭한 음악을 감상하려면 대체로 4막이 끝날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했다. 오늘날 '파리시나'를 리바이발 할 때에는 4막을 3막으로 줄여서 공연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어 있다.

 

등장인물은 도니체티의 인물들과 차이가 있다. 마스카니의 '파리시나'에서는 우선 파리시나 말라테스타(S)의 남편의 이름을 아쪼 공작이 아닌 니콜로 데스테(Nicolo d'Este: Bar) 후작으로 했다. 그리고 마스카니의 '파리시나'에는 우고의 생모인 스텔라 델라사시노(Stella dell'Assassino: MS)가 등장한다. 이어 우고(Ugo d'Este: T)의 친구의 이름은 알도브란디도(Aldobrandino: B)라고 했고 파리시나의 시녀의 이름은 라 베르데(La Verde: MS)라고 했다. 스토리도 당연히 도니체티의 것과 마스카니의 것이 차이가 있다.

 

1막. 니콜로 후작의 별장이 무대이다. 활쏘기 게임이 한창이다. 후작의 아들인 우고도 활쏘기 게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때 우고의 어머니인 스텔라가 나타난다. 스텔라는 얼마 전에 후작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후작의 저택에서 추방되었고 대신 파리시나 말라테스타가 후작부인으로서 집안을 다스리고 있다. 스텔라는 그러한 후작에 대하여 복수의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다. 스텔라는 아들인 우고도 자기와 같은 심정일 것으로 믿어서 우고에게 후작에 대한 복수를 맡아 달라고 간청한다. 2막은 로레토 수도원이다. 성스러운 헌신의 찬송이 들린다. 저 멀리서는 아드리아 바다의 선원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린다. 파리시나는 성모에게 자기의 가장 귀중한 만토를 드리고자 준비한다. 그때 우고의 친구인 알도브란디노가 들어와서 우고가 에스클라봉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다는 말을 전한다. 잠시후 우고가 등장한다. 파리시나는 우고를 제단 앞으로 인도하여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도록 한다. 우고는 자기의 귀중한 칼을 성모에게 봉헌한다. 우고는 전쟁으로 너무나 지쳐 있지만 승전의 기쁨을 파리시나와 함께 나누기 위해 파리시나를 포옹한다. 그 바람에 우고의 갑옷에 묻어 있던 피가 파리시나의 겉옷에 묻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로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다시금 성스러운 봉헌의 찬송이 들려 온다. 3막은 벨휘오레 궁전이 무대이다. 파리시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마치 그들의 이야기가 자기와 우고의 이야기인것처럼 생각되어 우고가 죽임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 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파리시나가 읽고 있는 책에는 리미니의 프란체스카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파리시나는 프란체스카가 다른 남자(실은 남편의 동생)와 함께 침대에 있을 때 남편에게 발견된다는 내용을 읽고서 더욱 걱정이 앞선다. 잠시후 우고가 파리시나를 만나러 찾아온다. 두 사람은 뜨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갈망하며 사랑의 불길을 태우고자 한다. 그때 파리시나의 시녀인 라베르데가 뛰어 들어오면서 사냥을 나갔던 니콜로 후작이 갑자기 돌아왔다고 전한다. 니콜로 후작은 자기의 아들이 자기의 부인과 함께 침대에 있는 모습을 본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니콜로 후작은 부하들에게 두 사람을 참수형에 처하라고 명령한다.

 

마스카니의 '파리시나' 음반 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