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 144

정준극 2015. 1. 21. 20:59

화가 마티스(Mathis der Maler) - Matthias the Painter

파울 힌데미트의 7장 오페라

개신교 종교개혁에 대한 주장 표현

 

비엔나 테아터 안 데어 빈 무대. 현대적 연출. 2012. 농민군들이 백작부인을 능욕하고 있다.

 

'화가 마티스'(Mathis der Maler)는 독일 출신의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가 완성한 7장의 오페라이다. 힌데미트는 이 오페라를 1935년에 완성했지만 나치 독일에서 공연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고 결국 1938년에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겨우 첫 공연을 가질수 있었다. 1938년이라고 하면 나치가 유럽 점령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우선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한 해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나치의 학정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작곡된 오페라가 아닌가라고 생각할수 있다. 물론 그런 점도 없다고 볼수는 없지만 더 근본적인 배경은 종교개혁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작곡되었다는 것이다. 개신교의 종교개혁(Reformation) 운동은 1517년부터 1648년까지 거의 130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기독교 교회개혁 운동을 말한다. 오페라 '화가 마티스'는 16세기 독일 농민전쟁 기간을 시대 배경으로 삼고 있다. '화가 마티스'는 권력을 잡은 기득권층에 대한 억압 받은 자들, 즉 농민들의 반항을 그린 작품이지만 또 다른 입장에서는 기득권의 로마 가톨릭에 대한 개신교도들의 항거를 말한다. 결국 나치에 대한 반항이나 로마 가톨릭에 대한 반항이나 다를바가 없다. 또 한가지 이 오페라에서 간과할수 없는 사항은 예술가의 사회참여라는 명제이다. 예술가들은 예술창조라는 본연의 책임만 수행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부조리의 사회와 정치에 대하여 분연히 저항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항이다. 종교개혁의 시작 연도를 1517년으로 잡은 것은 그 해에 마르틴 루터가 로마 가톨릭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95개 조항의 선언문을 정식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개혁 운동이 마무리 된 시점을 1648년으로 잡은 것은 그 해에 구교와 신교의 전쟁인 이른바 30년 전쟁이 마무리 되었기 때문이다. 오페라 '화가 마티스'는 다른 오페라에서처럼 막(Act)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장(Scene)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족이지만, 힌데미트의 대표작은 송사이클인 Das Marienlieben 과 오페라 Mathis der Maler 이다.

 

번뇌하는 화가 마티스

 

이 오페라가 다른 오페라와 유별난 것은 힌데미트가 이 오페라를 작곡하기 전에 예비작품으로서 오페라와 같은 제목의 교향곡을 작곡했고 나중에 이 교향곡에 나오는 음악들을 오페라에 상당히 반영했다는 것이다. 힌데미트가 대규모 교향곡인 '화가 마티스'를 완성한 것은 오페라 '화가 마티스'를 완성하기 4년전의 일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힌데미트에게 베를린 필의 유럽 순회연주를 위해서 작품을 하나 써 달라고 부탁하여 만들어진 교향곡이다. 그때에 이미 힌데미트는 오페라 '화가 마티스'를 구상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때에 작품 의뢰가 오자 이 오페라의 예비 단계로서 교향곡을 작곡하였던 것이다. 푸르트 뱅글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이 교향곡 '화가 마티스'를 처음 연주한 것은 1934년 3월 12일이었다. 그해 10월에는 오토 클렘페러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교향곡 '화가 마티스'를 독일 이외의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연주했다. 또한 1936년에는 레닌그라드(현재의 생페터스부르그)에서 다니엘 슈테른버그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1994년 1월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그란 테아트레 델 리체우에서 연주되던 때에는 뜻밖에도 극장에 불이 나서 건물이 파손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파울 힌데미트

 

오페라 이야기를 하지 않고 교향곡 이야기만 계속해서 송구스럽지만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 하자면, 교향곡 '화가 마티스'는 초연에서 상당히 좋은 반응을 받았지만 이를 주선한 푸르트뱅글러는 이외로 나치로부터 심각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나치는 힌데미트의 작품들이 이른바 '퇴폐작품'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연주하면  안되며 더구나 힌데미트는 유태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작품을 연주하면 안된다고 내세웠다. 나치는 현대음악, 특히 전위(아방 갸르드)음악을 고전을 해치는 퇴폐적인 음악이라고 규정하여 연주금지령을 내렸으며 유태인과 연결된 음악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도 금지하였다. 힌데미트는 순전한 독일이지만 그의 부인은 유태계 여인이었다. 유태계이긴 하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여인이었다. 그런데도 나치는 힌데미트까지 싸잡아서 유태인 운운하며 박해를 시도했다. 이 교향곡을 바탕으로 삼아서 만든 오페라 '화가 마티스'도 나치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기야 교향곡에서는 스토리를 알수 없으므로 어쩔수 없지만 오페라에는 스토리가 있으므로 무슨 내용인지 분명히 알수 있다. 오페라 '화가 마티스'의 내용은 마티스라는 화가가  예술가로서 사회적인 비전을 추구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여 자기의 작품에 그같은 생각을 반영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나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나치는 비록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자유가 있지만 그 창작이라는 것도 나치의 이념을 실현시키는데 조력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화가 마티스가 정치적인 편견은 갖고 있지 않지만 사회를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나치를 저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석하였다. 힌데미트는 오페라 '화가 마티스'를 1935년에 완성했지만 당시 독일의 정치적인 환경 때문에 공연되지 못하고 있다가 1938년에야 겨우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첫 공연을 가질수 있었다.

 

'화가 마티스'의 주인공인 마티스는 16세기 독일의 실존인물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unewald: 1470-1528)를 말한다. 마티아스는 마티스라고도 표기한다. 르네상스 화가로서 주로 종교화를 남겼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현재 프랑스 동북쪽 독일과의 국경에서 가까운 알사스 지방의 콜마르(Colmar)에 있는 이젠하임 제단화(Isenheim Altarpiece)이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가 1515년에 제작한 것으로 처음에는 알사스 지방의 이젠하임 마을에 있는 성안토니 수도원에 있었으나 현재는 알사스 지방의 중심 도시인 콜마르의 운터린덴 박물관에 있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세개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주제로 삼은 것이며 두번째가 그리스도의 탄생, 세번째가 부활과 재림에 대한 내용이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주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작가인 조리스 칼 후이스만(Joris-Karl Huysman)의 소설 '저 아래'(La-bas 또는 저주 받은 자)이다. 힌데미트도 물론 이 작품으로부터 많은 감동을 받았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의 첫번째 성화. 가운데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세례 요한과 십자가를 지닌 어린 양과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요한의 모습을 볼수 있다. 왼쪽은 성세바스티안, 오른쪽은 성안토니, 아랫부분은 그리스도를 무덤에 누이는 장면이다. 알사스 지방의 안토니커수도원에 있었으나 현재는 알사스 지방의 콜마르에 있는 운터린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힌데미트는 오페라 '화가 마티스'의 대본을 독일의 작가인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에게 의뢰할 생각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직접 작성키로 했다. '화가 마티스'의 시대적 배경은 독일의 '농민전쟁'(Deutscher Bauernkrieg)시기로 설정되어 있다. '농민전쟁'은 주로 농민들이 귀족들의 억압과 전횡에 항거하여 일으킨 민중혁명이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고 커다란 희생만 남겼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독립을 외치면서 중세의 농노스시템에서 탈피코자 했다. 마티아스는 당시의 억압적인 환경을 그림으로 표현코자 했다. 마티아스는 예술적인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였다. 그러한 투쟁은 아마도 힌데미트 자신의 나치에 대한 저항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오페라의 정치적인 메시지는 나치 당국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힌데미트는 독일에서 '화가 마티스'의 공연의 기회를 갖지 못하자 취리히와 연락하였다. 그리하여 1938년 5월, 나치가 스와스티카를 어느때보다도 높이 치켜든 때에 취리히에서 취리히 출신인 로베르트 덴츨러(Robert Denzler: 1892-1972)의 지휘로 초연을 가졌다. 그러나 초연 이후에는 전쟁의 여파로 상당기간 동안 잊혀져 있다가 1952년 8월에 에딘버러에서 영국 초연이 이루어졌고 1956년에는 비로소 보스턴에서 미국 초연이 있었다. 미국 초연은 사라 컬드웰(Sarah Caldwell)이 지휘했다.

 

오페라 '화가 마티스'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시기는 독일 농민전쟁(1524-1525).

 

- 마티스(Mathis: Bar): 젊은 화가. 우르술라를 사랑하고 있다.

- 우르술라(Ursula: S): 리딩거의 딸

- 리딩거(Riedinger: B): 부유한 개신교 상인

- 로렌츠 폰 폼머스펠덴(Lorenz von Pommersfelden: B): 마인츠 대성당 주임신부

- 알브레헤트 폰 브란덴부르크(Albrecht von Brandenburg: T): 마인츠 교구 추기경

- 볼프강 카피토(Wolfgang Capito: T): 알브레헤트의 자문관

- 헬펜슈타인 백작부인(Grafin Helfenstein: Cont): 마티스를 구해 주는 헬펜슈타인 성주의 부인

- 질베스터 폰 샤움버그(Sylvester von Schaumberg: T): 군인 장교

- 트루흐제스 폰 발트부르크(Truchsess von Waldburg: B): 장군

- 한스 슈봘브(Hans Schwalb: T): 농민 부대의 지도자

- 레지나(Regina: S): 슈봘브의 어린 딸

 

알브레헤트 추기경과 마티스와 우르술라

 

1장. 수도원의 안뜰에서 마티스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마티스는 자기의 직업인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하여 과연 계속해야 할지를 두고 번민하고 있다. 바깥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 화가로서만 집착할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티스는 '자유란 무엇인가?' '과연 나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있는가?' 라는 문제를 두고 깊이 생각한다. 그때 농민 봉기의 지도자인 슈봘브가 딸 레지나를 데리고 나타난다. 슈봘브는 조금 후에 귀족 군대가 농민군을 타도하기 위해 밀어 닥칠 터인데 만일을 위해서 어린 딸 레지나를 마티스가 돌보아 달라고 간청한다. 마티스는 슈봘브의 간청에 마음이 움직인다. 마티스는 자기야 말로 추기경이 총애하는 화가이기 때문에 아무리 귀족 군대의 장교인 질베스터라고 해도 자기를 함부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농민군 지도자인 슈봘브가 마티스에게 레지나를 부탁한다.

 

2장. 마인츠에 있는 알브레헤트 추기경의 저택 앞에서 가톨릭 신도들이 루터란 신도 및 학생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다. 자칫 큰 불상사로 확산될 기미가 있다. 가톨릭과 루터교의 대치는 때 마침 알브레헤트 추기경이 성 마르틴의 성물을 들고 나타나는 바람에 가라 앉는다. 알브레헤트 추기경은 리딩거에게 모든 이단적인 서적들을 불태우라고 명령한 것을 취소하겠다고 약속한다. 한편, 마인츠 대성당의 주임신부인 폼머스펠트는 로마(교황청)에 도전하거나 반항하는 일이란 있을수 없다고 강조한다. 리딩거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그의 이같은 선언을 이해한다. 잠시후 그 자리에 나타난 마티스는 사랑하는 우르술라가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워하며 지금은 전쟁 중이므로 부디 조심하라고 말한다. 귀족 군대의 장교인 질베스터와 마티스가 서로를 알아본다. 마티스는 마인츠 교구의 추기경인 알브레헤트에게 제발 농민들의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알브레헤트는 마티스가 농민들의 편에 있는 것을 알고 비록 친구 사이이지만 적으로 생각하려다가 마지막 관용을 베풀어서 마티스가 이 장소에서 무사히 도피할수 있도록 허락한다.

 

레지나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3장. 루터교도들은 알브레헤트의 자문관인 카피토가 귀족 병사들을 이끌고 리딩거의 저택으로 몰겨가는 것을 보고 분명히 리딩거의 저택에 숨겨온 개신교 서적들을 압수해서 불사르려는 줄 알고 분개한다. 루터교도들은 그같은 행동이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죄악이며 독일 신앙에 대한 죄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루터가 알브레헤트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알려지자 분노를 진정시킨다. 편지에서 루터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며 하나님만이 인간이 지은 죄를 사해주실수 있고 믿음으로서만이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성직자의 본분과 생활에 대하여도 평소 그의 주장을 다시 강조하였다. 예를 들면 성직자라고 해서 결혼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것 등이다. 알브레헤트는 다른 것은 몰라도 결혼해도 된다는 사항에 대하여는 공감한다고 말한다. 알브레헤트는 리딩거의 딸 우르술라를 마음에 두고 있다. 우르술라의 아버지인 리딩거도 기왕이면 딸이 알브레헤트와 같은 권세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 결혼은 루터교의 신앙을 위해서,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을 위해서 모두 유익한 일이라고 믿는다. 마티스가 나타나서 멀리 떠나게 되었다고 하면서 모두에게 작별을 고한다. 마티스는 우르술라가 알브레헤트와 함께 전쟁터에 나간다고 하자 그러지 말라고 강조한다. 잠시후 리딩거가 들어오자 우르술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모두들 하나님과 자기들의 신앙과 조국 독일을 위해 찬양을 부른다.

 

우르술라와 마티스

 

4장. 농민군들이 헬펜슈타인 백작의 가족들을 포로로 잡는다. 농민군들은 헬펜슈타인 백작을 처형하기 위해 형장으로 행진하여 간다. 농민군들은 백작부인을 모욕하고 핍박한다. 백작부인이 도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농민군의 한 사람이 '황제를 구하려고 하는 어떠한 군주 또는 영주라고 해도 모두 배격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마티스가 나타나서 농민군들에게 백작부인에게 이러면 되느냐고 질책하자 농민군들은 오히려 마티스를 붙잡아서 사정없이 구타한다. 그때 연방군이 도착한다. 농민들은 전투를 시작하지만 연방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농민군 지도자인 한스 슈봘브는 전투에서 죽는다. 백작부인이 농민군들에게 붙잡혀 있던 마티스를 가까스로 구출한다. 마티스는 전사한 슈봘브의 어린 딸인 레지나를 데리고 급히 도피한다.

 

알브레헤트 추기경과 마티스. 루터의 서한을 보면서 그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5장. 알브레헤트 추기경은 자문관인 카피토와 함께 그가 지금까지 진 빚에 대하여, 그리고 루터의 도전에 대하여 논의를 하고 있다. 이어 알브레헤트는 부자집 아가씨인 우르술라를 신부로 맞아 들이기에 앞서서 우선 인터뷰를 하고자 한다. 잠시후 우르술라가 들어온다. 알브레헤트는 우르술라를 보고 그가 어찌된 연유로 자기와의 결혼을 승락했는지 의심한다. 그러면서 우르술라가 결혼코자 하는 것은 모두 계획적인 술책이라면서 비난한다. 그러자 우르술라는 알브레헤트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실로 사랑으로 결혼코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따라서 결혼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알브레헤트와 결혼함으로서 그를 로마 가톨릭에서 루터교로 개종시킬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알브레헤트의 우유부단함과 앞날에 대한 비전이 없음을 비난한다. 알브레헤트는 우르술라의 호소에 크게 감동한다. 그는 모든 사람을 불러모은후 자기가 서약한대로 돌아갈 것이며 자기 방식대로 개혁을 추진하겠고 결혼을 하지 않는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겠다고 선언한다.  

 

비엔나 테아터 안 데어 빈 무대.

 

6장. 오덴발트(Odenwald) 숲이다. 마티스가 정신이 이상하게 된 레지나를 달래서 잠을 재우느라고 애쓰고 있다. 마티스가 천사들의 콘서트라는 노래를 낮으막하게 불러준다. 레지나도 그 노래가 생각나는 듯 함께 중얼 거린다. 독일 민요인 '세 천사의 노래'(Es sungen drei Engel)이다. 힌데미트가 그의 '화가 마티스' 교향곡의 1악장에서 사용했던 멜로디이다. 레지나가 잠이 들자 이번에는 마티스가 그를 유혹하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다. 마티스는 성 안토니의 의상을 입고 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가 이젠하임 제단화에 그린 성 안토니의 모습이다. 마티스를 유혹하려는 사람들 중의 하나는 마티스가 농민군의 폭행으로부터 구해준 헬펜슈타인 백작부인의 모습도 있다. 헬펜슈타인 백작부인은 마티스에게 화려한 생활을 약속하겠으니 함께 가자고 유혹한다. 마인츠 대성당의 주임신부인 폼머스펠덴의 모습도 보인다. 그는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대신에 돈의 위력을 찬양한다. 이어서 거지의 행색으로 변장한 우르술라가 등장한다. 마티스가 사랑했던 여인이다. 다음에는 요염한 여인이 나타나서 마티스를 유혹을 한다. 그러더니 실은 마티스를 교수대로 데리고 간다. 순교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학자가 된 알브레헤트 추기경의 자문관인 카피토가 나타나서 마티스에게 이 세상은 과학으로 지배할수 있다고 말하며 그가 순종적이지 아니한데 대하여 크게 비난한다. 이어서 농민군의 지도자였던 슈봘브가 나타나서 마티스가 전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면서 역시 신랄하게 비난한다. 그러더니 무대의 배경이었던 이젠하임 제단화에서 유혹의 장면이 성 안토니가 성 바오로를 방문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바오로와 알브레헤트는 안토니, 즉 마티스를 위로하며 그에게 그의 임무인 '가서 그리라'를 수행토록 권한다.

 

마티스가 수많은 유혹을 받고 있다.

 

7장. 우르술라가 죽어가고 있는 레지나를 돌보아주고 있다. 레지나는 마티스가 그린 운명하시는 그리스도를 자기의 아버지 슈봘브라고 혼돈한다. 마티스의 모습이 레지나를 안정시킨다. 그리고 레지나는 숨을 거둔다. 이어 교향곡에서의 간주곡이 연주된다. 아침이다. 알브레헤트가 찾아와서 집을 마련해 줄테니 가서 편히 쉬라고 말한다. 마티스는 이제 자기의 생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혼자서 지내겠다고 말한다. 마티스는 짐을 챙긴다. 성서의 말씀을 적은 두루마리, 나침판과 척도자(야망), 그림 그리는 붓(창조), 금으로 만든 줄(의문), 책들을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르술라에게사 받은 리본(사랑)에 입맞춤을 한다.  

 

마티스가 레지나를 위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