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메리(Mary of Egypt)
존 태브너(John Tavener)의 4막 종교 오페라
존 태브너(John Tavener: 1944-2013)
'이집트의 메리'는 영국의 존 태브너가 1991년에 완성한 4막 오페라이다. 오페라이긴 하지만 오히려 종교적 전례를 위한 곡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다. 어떤 그리스정교회에서는 이 오페라에 나오는 곡들을 미사시간에 연주한 일도 있다. 런던에서 태어난 존 태브너는 아버지가 햄스테드에 있는 성안드레 장로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종교음악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존 태브너는 12살 때에 아버지와 함께 글린드본 음악제에 가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보고 무척 감명을 받았다. 그후로 '마술피리'는 그가 평생동안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듣는 곡이 되었다. 얼마후에는 스트라빈스키의 '칸티쿰 사크룸'(Canticum Sacrum)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너무 감격해서 작곡가가 되기를 굳건히 결심했다. 존 태브너는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종교적인 것들인 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 그는 어릴 때에 아버지의 영향으로 장로교인이었으나 청년시절에 그리스정교회로 개종하였다. 정교회 신학과 엄숙하고도 진지한 전례 전통에 영향을 받아서였다. '이집트의 메리'는 존 태브너의 정교회 신앙을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대본은 테클라 수녀(Mother Thekla)가 썼다. 1922년 앨드버러 페스티발에서 초연되었다.
메리와 초씨마. 원작에는 초씨마를 나이 많은 은둔자로 그렸으나 캠브릿지 공연에서는 비교적 젊은 사람을 내세웠다.
'이집트의 메리'라고 하면 혹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요셉과 함께 헤롯의 박해를 피해서 이집트로 가서 지낸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집트의 메리'는 이집트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명한 창녀였으나 나중에 성녀가 된 메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메리는 알렉산드리아의 거리에서 자기의 몸 하나를 상품으로 내걸고 남자들과 육욕적인 행각을 벌이는 여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길에서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을 만난다. 메리는 남자들의 무리와 함께 있고 싶어서 순례자의 무리에 합류한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메리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도 메리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다. 메리는 예루살렘 성지에 도착해서 성묘교회도 가보고 성십자가가 있었던 장소도 찾아본다. 하지만 지난날 자기의 방탕하고 육욕적인 죄를 생각하여 차마 교회에 들어가지 못한다. 메리는 마음으로 갈등을 겪으며 자기도 모르게 하늘의 도움을 소리 높혀 구한다. 이때 성모의 음성이 들리며 메리를 광야로 인도한다. 광야에 나간 메리는 무려 40여년간 온갖 고난을 다 겪으면서 진리를 알기 위해 고독한 생활을 한다. 메리의 피부는 사막의 뜨거운 햇빛으로 검게 된다. 메리의 아름답던 머리칼은 광야의 추운 날씨때문에 윤기를 잃는다.
방탕의 생활을 했던 메리가 자기의 죄를 참회코자 한다.
한편, 팔레스타인의 광야에 있는 어떤 수도원에서는 스스로 성자라고 생각하며 금욕생활을 하고 있는 초씨마(Zossima)가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있고 선행에 힘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있는지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느날 초씨마도 메리와 마찬가지로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는다. 모든 것을 부인하고 광야로 나가라는 음성이었다. 그래서 조시마도 광야로 나가서 메리와 마찬가지로 무려 40년 이상이나 지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알지도 못하고 만난 일도 없다. 그러다가 47년만에 처음으로 두 사람이 만난다. 초씨마는 메리에게서 구원의 여인상을 본다. 메리는 초씨마에게서 성스러움이 어떤 것인지를 본다. 초씨마와 메리는 서로에게서 비로서 정신적인 희열의 감정을 느낀다. 두 사람이 부르는 신비한 사랑의 듀엣이 마음을 울린다. 천사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메리를 들어 올라간다. 놀라고 당황한 조시마는 메리를 영원히 볼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지만 메리는 초씨마에게 자기의 과거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얘기해주며 자기를 떠나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메리는 자기가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 즉 영성체라고 말한다. 메리는 초씨마에게 1년 후에 돌아오겠으니 그때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 1년이 지나서 초씨마가 메리를 만나러 온다. 메리와 초씨마 사이에는 큰 강이 있다. 메리는 물 위를 걸어서 언덕에 도착하여 초씨마와 영적인 친교를 가진다. 메리는 초씨마에게 다음 해에 다시 만나자고 말하고 물 위를 걸어서 돌아간다. 1년이 지나서 초씨마가 또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메리를 찾아 볼수 없다. 잠시후 초씨마는 사막의 모래 위에 죽어 있는 메리의 모습을 본다. 메리의 옆에는 '비천한 메리를 묻어 주시오'라고 적혀 있다. 영육간에 극도로 쇠약해진 초씨마가 '비천한 메리'를 묻을 때 지나가던 사자가 돕는다.
전편을 통해서 초씨마는 트롬본이 따라 붙는다. 그런가하면 메리는 플륫이다. 초씨마의 경우에는 고대 비잔틴 시대의 목제 악기인 시만트론도 함께하고 있다. 2014년 10월에 캠브릿지대학교 킹스칼리지 채플에서 리바이발 될 때에는 존 태브너의 딸인 테오도라 태브나가 감독을 맡았다.
2014년 10월 캠브릿지대학교에서의 리바이발 포스터. 이집트의 메리 역할은 소프라노 카멜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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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메리
'이집트의 메리'(마리아)는 주후 344년 경에 태어나서 421년 경에 세상을 떠난 성녀로서 참회자들의 수호성인이다. '이집트의 메리'는 특히 동방 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동방 가톨릭 교회에서 숭상을 받고 있지만 로마 가톨릭에서도 높이 존경하고 있다. '이집트의 메리'가 기록에 나타난 것은 7세기에 예루살렘 총대주교를 지낸 성 소프로니우스(St Sophronius)의 '비타'(Vita)라는 자료에서이다. 그럼으로 다음에 소개하는 '이집트의 메리'에 대한 자료는 '비타'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이집트의 메리'(Maria Aegyptica)라고 알려진 성메리는 주후 4세기에 이집트에서 태어났는데 어느 곳인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다. 메리는 열두살 때에 가출하여 알렉산드리아로 왔다. 메리는 이곳에서 참으로 방종한 생활을 했다. 메리는 수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며 지냈다. 메리는 이름난 창녀였다. 간혹 남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가 원해서 관계를 갖게 되면 대가를 받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더 유명했다. 그러다보니 돈이 궁해서 물레를 돌려 얼마의 돈이라도 벌어 지냈으며 그것도 일꺼리가 없으면 구걸을 하며 지낼 때도 있었다. 메리는 이런 생활을 17년이나 했다. 그러다가 일단의 순례자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간다고 하자 성지 순례에 합류한다. 마침 예루살렘에서는 성십자가 대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사실상 메리가 예루살렘을 가게 된 것은 순례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메리는 예루살렘에 가면 성십자가 대축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므로 자기의 욕망을 채워줄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메리는 마침 우연히 성지로 가는 순례단을 만나게 되었다. 성지까지 가려면 순례단에게 경비를 지불해야 하지만 메리는 순례단 사람들에게 섹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경비납부를 대신했다. 메리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도 알렉산드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창녀 노릇을 하며 지냈다.
'이집트의 메리'. 호세 데 리베라 작
메리는 성십자가 대축제가 열리는 중에 깊은 호기심이 생겨서 성묘교회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고자 했으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들어가는 것을 제지 당한다. 성묘교회를 비롯한 성지의 여러 기념장소들은 누구나 들어갈수 있는 곳이었다. 메리는 그렇게 제지 당한 것이 자기의 타락한 생활 때문인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메리는 후회에 넘친다. 교회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회 밖에서 어찌할줄 모르고 있던 메리는 마침 성모를 그린 그림을 보자 성모화를 향해서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아울러 이제부터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메리는 금욕생활을 하기로 결심한다. 메리는 다시 성묘교회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는다. 메리는 교회 안에 있는 성십자가에게 진심으로의 경배를 드린 후에 밖으로 나와서 좀 전에 보았던 성모화에게 감사를 드리러 찾아간다. 그러자 어디선가 메리에게 '요단 강을 건나간다면 영광스런 안식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아마 성모화에서 나온 음성 같았다. 메리는 그 길로 요단 강변에 있는 성세례요한 수도원을 찾아간다. 수도원은 메리를 따듯하게 마지하고 수도원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메리는 아무도 없는 광야로 나가서 고행을 하며 지내기로 마음 먹는다. 다음날 아침 메리는 수도원을 떠나 광야로 들어간다. 그리고 참회의 생활을 하면서 은둔의 생활을 한다. 메리는 광야생활을 시작하면서 다만 빵 세 덩어리만 가지고 떠났다. 그 후에는 광야에서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며 지냈다.
메리는 광야에서 우연히 팔레스타인의 초시마스(Zosimas)를 만난다. 메리는 초시마스에게 자기가 지금까지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를 비로소 얘기한다. 메리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의 일이다. 초시마스가 메리를 만났을 때 메리는 누더기 옷조차 걸치지 못하고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혹독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차마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메리는 초시마스에게 만토를 벗어서 덮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가 지나온 얘기를 길게 나눈다. 메리는 초시마스에게 1년 후에 요단강 건너편 언덕에서 만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 자기를 위한 영성체(Holy Communion)을 가지고 오라고 당부한다. 1년후 초시마스는 메리가 당부한 대로 영성체를 가지고 요단 강변에서 메리를 기다린다. 메리가 물위를 걸어와서 영성체를 받은후 다시 물 위를 걸어서 돌아간다. 그러면서 다음번 유월절에 사막에서 만나자고 말한다. 그 다음해에 초시마스는 수도원을 떠나서 20일 만에 메리를 처음 만났던 그 사막에 도착한다. 초시마스는 사막에서 죽어 있는 메리를 발견한다. 메리의 머리 쪽 모래에는 메리가 영성체를 받고 나서 돌아온 그 날 밤에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의 글이 써져 있다. 메리는 기적적으로 이곳까지 옮겨 왔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메리의 몸은 썩지 않았다. 초시마스는 마침 지나가던 사자의 도움을 받아 메리를 정성스럽게 매장한다. 초시마스는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다른 형제들에게 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그 얘기가 전설처럼 오랜 세월을 두고 전해 내려 왔으며 마침내 성소프로니우스가 정리해서 적어 놓았다는 것이다.
성화에서 이집트의 메리는 피부가 검게 보일 정도로 햇볕에 그을렸으며 머리칼은 헝크러진 회색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옷을 입지 않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초시마스로부터 빌린 만토를 걸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집트의 메리는 간혹 빵 세 덩어리와 함께 그려지고 있다. 메리가 처음에 사막으로 떠날 때에 가지고 간 빵들이다. 메리의 축일은 정교회에서 4월 1일로 지키고 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4월 3일을 기념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도 이집트의 메리를 숭모하고 있지만 성공회 교회력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예루살렘의 성묘교회에는 이집트의 메리가 방문했음을 기념하는 예배처(채플)가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성모에게 파우스트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세명의 참회자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이집트의 메리'로 되어 있다. '이집트의 메리'가 했던 말을 인용해서 구스타브 말러가 그의 교향곡 제8번에 마지막 성자가 영광의 성모에게 간구하는 말로서 표현되어 있다. 벤 존슨(Ben Johnson)의 희곡 '볼포네'(Volpone)에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Marry Gip 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는 Mary of Egypt를 말하는 것이다. '이집트의 메리'는 오토리노 레스피기와 존 태브너의 오페라의 타이틀이 되어 있다. 존 태브너의 '이집트의 메리'는 1922년 알드버러 페스티발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존 베리맨(John Berryman)의 그의 퓰리처 수상 시집인 The Dream Songs의 47번째 시에는 April Fool's Day 또는 St Mary of Egypt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집트의 메리'가 요단 강을 건너서 걸어간 얘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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