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2

리가의 '라트비아 국립오페라'

정준극 2015. 2. 7. 09:31

라트비아 국립오페라(Latvian National Opera)

Latvijas Nacionala Opera

바그너와의 인연

 

라트비아 리가의 라트비아 국립오페라 극장. 화이트 하우스라는 별칭이 있다.

 

발트 3국 중의 하나인 라트비아. 리가의 라트비아 국립오페라(NLO)는 라트비아 국립 발레단(NLB), 라트비아 국립오페라 합창단(NLO Chorus), 라트비아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NLO Orchestra)를 포함하고 있다. 리가에 오페라극장이 처음 생긴 것은 1782년 독일어 전용의 극장이 생긴 것으로부터였다. 말하자면 이 독일극장이 현재의 라트비아국립오페라의 전신이라고 볼수 있다. 독일극장이 생기기 전에는 이탈리아나 독일의 순회오페라단이 찾아와서 대공궁에서 공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독일극장은 1863년에 리가시립극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와 함께 1860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극장의 건축공사도 마무리되었다. 오늘날의 라트비아 국립오페라극장이다. 라트비아 국립극장은 라트비아의 건축 랜드마크이다. 설계는 생페터스부르크 미술원 루드비히 본슈테드 교수가 맡았다. 외관은 고전주의 양식을 따랐다. 마치 그리스 신전과 같은 인상을 준다. 이렇듯 외부가 단아한데 비하여 내부는 화려하다. 내부에는 여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르네상스 양식, 바로크 양식, 고전주의 양식, 여기에 제국양식까지 합해져 있다. 운하 쪽의 부속 건물에는 리가 최초의 발전소가 있어서 극장에 전기를 공급했다. 원래는 보일러 건물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굴뚝이 남아 있다. 극장건물은 1863년에 완성되었지만 전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87년부터였다.

 

라트비아 국립오페라 극장

 

리가시립극장에서는 오페라는 물론, 드라마와 발레도 공연되었다. 그러나 시립극장은 전속 오페라단을 갖지 못하고 그저 수시로 외국의 오페라단을 초청해서 공연을 가져왔다. 그러니 만족할수가 없었다. 1893년에 시립극장에서 라트비아 작곡가인 예카브스 오졸스(Jekabs Ozols)의 오페라 '유령시간'(Spoku stunda: The Ghostly Hour)이 공연되었다. 이때 라트비아의 뜻있는 음악인들은 리가에도 자체의 국립오페라단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들을 제시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별도의 오페라단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리하여 몇년 동안의 심사숙고 끝에 1912년에 '라트비아 오페라'(Latviesu Opera)가 창립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공연을 준비하기도 전에 1차 대전이 일어나서 '라트비아 오페라'의 핵심 멤버들은 잠시 러시아로 피난을 가야했다.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 야제프스 비톨스(Jazeps Vitols)가 주도하여 오페라 인력들이 다시 모였다. 그리하여 '라트비아 오페라'(Latvju Opera)가 새롭게 발족되었다. 야제프스 비톨스는 라트비아음악원을 창설한 사람이었다. '라트비아 오페라'의 데뷔 공연은 1919년 1월 23일 바그너의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이었다.

 

라트비아 국립오페라 극장의 오디토리움

 

돌이켜 보건대 리가와 바그너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잘 아는 대로 바그너는 1837년부터 39년까지 2년 동안 리가 독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있었다. 현재의 라트비아 국립오페라극장이 세워지기 전의 일이었다. 바그너는 드레스덴에서 빚장이들의 빚독촉을 이기지 못해서 부인 민나와 함게 리가로 도피성 여행을 하게 되었다. 바그너는 다행히 리가의 독일극장으로부터 음악감독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2년 동안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그너는 드레스덴의 빚장이들이 바그너가 리가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빚을 받으러 리가로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빚장이들을 피해서 부인 민나와 함께 라트비아를 탈출하여 배를 타고 런던으로 갔다가 파리로 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런던으로 가는 도중 북대서양에서 폭풍을 만나 거의 죽을뻔하다가 가까스로 노르웨이의 어떤 해안에 표류한 일이 있다. 그때문에 파리로 가는 일정이 상당히 지체되었다. 그때의 경험이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에 반영되었다는 얘기다.

 

라트비아 국립오페라 소속의 국립발레단의 수준 높은 공연

 

라트비아는 1944년부터 소련(구소련)에 점령당했다. '라트비아 국립오페라'는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러시아 국립오페라 발레 극장'(Latvian S.S.R. State Opera and Ballet Theater)가 되었다. 그러다가 1990년에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극장의 명칭도 '라트비아 국립오페라'로 환원되었다. 그러나 건물이 너무 오래되어 보수가 시급했다.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 극장은 1991년부터 4년 동안 보수공사를 거쳐 1995년에 재개관되었다. 개관기념 공연은 라트비아 작곡가인 야니스 메딘스(Janis Medins: 1890-1966)의 '불과 밤'(Uguns un nakts: Fire and Night)였다. 2001년에는 3백석 규모의 현대식 새로운 홀이 추가되었다. 라트비아 국립오페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들을 여러 명이나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들로서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란차(Elina Garanca), 소프라노 인가 칼나(Inga Kalna), 크리스티네 오팔라이스(Kristine Opalais), 마이야 코발레브스카(Maija Kovalevska), 테너 알렉산드르스 안토넨코(Alexsandrs Antonenko), 베이스 바리톤 에글리스 실린스(Eglis Silins) 등이다. 라트비아 국립오페라에서 활동했던 마에스트로들로서는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프릿츠 부슈(Fritz Busch),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클레멘스 크라우스(Klemens Krauss), 헤르만 아벤드로트(Hermann Abendroth) 등이 있다. 라트비아 국립오페라에 속한 국립발레단의 명성도 뛰어나다. 라트비아 국립발레단 출신의 세계적인 발레 댄서들로서는 미하일 마리쉬니코프(Mikhail Baryshnikov), 마리스 리에파(Maris Liepa), 알렉산드르스 고두노프스(Alexandrs Godunovs) 등이 있다. 국립발레단은 러시아 고전 발레의 전통을 거의 그대로 받아 들였다.

 

리가에서는 매년 리가 오페라 페스티발이 열린다. 사진은 리가오페라페스티발에서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