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머 프라이하이트(Bremer Freiheit: 브레멘 자유)
루마니아 출신의 아드리아나 횔츠키(Adriana Hoelszky)의 오페라
루마니아-독일계 작곡가인 아드리아나 횔츠키
세상에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이는 그런 내용의 오페라가 있다. 기셰(Geesche)라는 여인이 자기에게 거추장스럽다고 생각되는 주변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독살한다는 내용이다.그렇게 살해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아무런 죄책감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자기가 낳은 전 남편의 아이들 세명도 죽인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아이들이 시끄럽게 군다고 불평을 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도 죽인다. 자기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 부모도 죽인다. 욕심을 부린다는 이유에서이다. 살인에는 모두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라는 것이 살인을 할 만큼 중요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면 이 오페라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죽음의 미학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무감각을 표현코자 했단 말인가? 잘 모르겠다. 원작은 독일의 유명 영화감독 겸 극작가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 1944-)가 쓴 '브레멘 자유'(Bremer Freiheit)이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의 대본가인 토마스 쾨르너(Thomas Körner: 1942-)가 오페라 대본을 만들었고 그 대본으로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출신의 독일계 작곡가인 아드리아나 횔츠키(Adriana Hoeltsky: 1953-)가 같은 제목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1988년 6월 4일 뮌헨 가슈타이그 회관의 칼 오르프 홀(Carl-Orff-Saal)에서 초연되었다.
원작자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아드리아나 횔츠키는 현재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오페라가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른바 신베리스모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베리스모라고 하면 20세기 초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오페라 사조이다. 레온카발로, 마스카니, 푸치니, 조르다노 등이 베리스모 오페라를 만들어서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신베리스모는 그러한 이탈리아식 사실주의 사조에 바탕을 두기는 했으나 여기에 정신분석학적 또는 상상외로 충격적인 사항을 첨가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웬만한 충격적인 사건도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위에서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일상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그러할까?
기셰의 첫 남편 밀텐버거는 친구들과 술과 노름으로 날을 보낸다.
오페라 '브레멘 자유'는 일반적인 오페라가 막(Act)이나 장(Scene)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단계(Phase)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 9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인 기셰(Geesche)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의 최후의 운명을 무관심하게 이끈다. 그런데 그 무관심이라는 것이 어떤 때는 유쾌하기도 하다. 살인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별다른 감정이나 감상이 없이 진행된다. '열명의 작은 인디안'(Ten Little Indians)보다 더 무관심하게 진행된다. 아드리아나 횔츠키는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들을 오히려 희생당한 여인의 입장에서 다루었다. 또한 관객들은 살인사건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모두 공범자들로서 이끌고 있다. 그러면서 살인자와의 동질성을 느끼게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인형극인 그랜드 지뇰(Grand Guinol)을 오페레타로 만든 것과 같다. '브레멘 자유'에서 주인공인 기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기의 의사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억압을 받아 행동하는 인형들에 불과하다. 이렇듯 전체적인 줄거리가 공포와 충격, 그리고 상상외의 정신이상적인 행동으로 점철되고 있지만 작곡자인 횔츠키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장난치고 웃고 즐거워하는 요소들을 첨가하여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다. 실제로 횔츠키는 론도 형식의 음악구조를 즐겨 사용했고 또한 이탈리아의 부포적인 요소들을 군데군데 가미하였다. 아무튼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현대인의 사고방식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기셰의 친구들은 기셰를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워한다.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기셰 마르가레테(Geesche Margarethe: MS). 브레멘에 살고 있는 여인. 기셰 팀(Geesche Tim)
- 요한 팀(Johann Tim: Bar). 기셰의 남동생
- 기셰의 친정부모(Das Ehepaar Tim: B & A)
- 요한 밀텐버거(Johann Miltenberger: Bar). 기셰의 첫 남편
- 고트프리트(Gottfried: T). 기셰의 두번째 남편
- 룸프(Rumpf: T). 첫 남편 밀텐버거의 친구
- 고트프리트(Gottfried: B). 첫 남편 밀텐버거의 또 다른 친구
- 마르쿠스 목사님(Pater Marcus: B). 동리 교회의 목사님
- 루이자 마우어(Luisa Mauer: S). 기셰의 친구
- 봄(Bohm: Bar). 기셰의 사촌.
- 기타 이웃사람들, 소식전하는 사람, 아이들, 농부들.
기셰의 첫 남편 밀텐버거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 흉내를 내고 있다.
1단계. 기셰 팀(Geesche Tim)은 요한 밀텐버거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 요한 밀텐버거는 말안장을 만들어서 파는 억센 남자이다. 남편 밀텐버거는 술을 자주 마시는 버릇이 있으며 술에 취하면 집에 들어와서 아내인 기셰를 몽둥이로 때리고 심한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아무리 부부사이라고 해도 강제로 성폭행을 하기가 일수이다. 어느 날은 남편 밀텐버거가 술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노름을 하다가 돈을 많이 잃게 되자 그 친구들로 하여금 아내 기셰를 성폭행하여 대신 빚을 갚기도 했다. 인면수심이다. 기셰는 말할수 없이 참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고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셰는 밀텐버거와의 사이에 세 아이를 낳는다.
기셰가 첫 남편 밀텐버거에게 커피를 권하고 있다.
2단계. 그로부터 얼마후 못된 남편 밀텐버거는 갑자기 복통이 나서 뒹굴더니 그냥 죽고 말았다. 밀텐버거의 장례식에는 기셰의 친정 부모도 참석한다. 기셰의 친정부모는 아무런 속사정도 모르고 사위 밀텐버거가 좋은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죽게 되어 슬퍼할 뿐이다. 정말로 누구도 밀텐버거가 왜 죽었는지 모른다. 기셰의 친정부모는 그래도 누군가는 말안장 사업을 맡아 해야하고 상점도 꾸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셰가 누군가는 사업에 적합한 사람과 재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밀텐버거의 친구들인 고트프리트, 침머만, 룸프 등이 장례식을 위해 찾아와서 기셰를 위로한다. 기셰가 그 중에서 비교적 착실하게 보이는 고트프리트에게 남편의 사업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자 고트프리트가 쾌히 승락한다.
마르쿠스 목사님은 아무래도 기셰가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증거가 없으니 할 말이 없다.
3단계. 고트프리트는 사업수완이 좋아서 장사를 잘한다. 고트프리트는 사업을 맡은 후에 아예 기셰의 집으로 들어와서 함께 산다. 하지만 둘이서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니다. 기셰의 친정 어머니는 동리 사람들이 기셰가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채 고트프리트와 동거하고 있다고 수근덕 거리는 소리를 참지 못한다. 친정 어머니는 기셰를 불러 놓고 소문때문에 창피해서 못살겠다고 하며 기셰에게 저주를 퍼붓지만 기셰는 웬 참견이냐면서 대든다. 두 사람은 자주 말다툼을 벌인다. 그러다가 얼마후 친정 어머니는 기셰가 만들어준 커피를 마신후에 갑자기 죽는다.
4단계. 기셰의 집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고트프리트는 기셰의 전남편에게서 낳은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굴기 때문에 기셰의 집에서 나가서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기셰는 고트프리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따로 나가서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물론 고트프리트도 아이를 하나 갖는 것을 원하고 있지만 기셰가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얼마후 세 아이는 모두 죽는다. 이유를 알수 없지만 아마 독을 마시고 죽은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기셰는 시끄러운 아이들이 사라졌으므로 고트프리트가 조용한 가운데 지낼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트프리트는 원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기셰의 집에서 지낸다.
기셰의 어머니가 말안장 만들어 파는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5단계. 기셰와 기셰의 친정 아버지와 고트프리트가 죽은 아이들을 땅에 묻은후 집으로 돌아온다. 고트프리트는 아이들이 죽은 것에 대하여 자기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제 기셰와 정식으로 결혼해서 마음 잡고 살 결심을 한다. 그러나 고트프리트는 자기가 이 집에 불운을 가져왔다는 생각을 하며 기셰와의 결혼을 잠시 미룬다. 기셰의 아버지는 그런 고트프리트를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하며 저주를 퍼붓는다.
6단계. 얼마후 기셰는 임신을 한다. 그러나 임신소식을 들은 고트프리트는 자기의 아이가 아니라며 기셰를 비난한다. 심지어는 기셰를 심하게 몰아세우며 구박한다. 얼마후 고트프리트는 갑자기 심한 병에 걸린다.
7단계. 기셰는 이번에도 고트프리트에게 독약을 먹였던 것이다. 고트프리트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마르쿠스 목사님을 오라고 해서 죽기 전에 기셰와 결혼식을 올린다. 기셰는 그런 고트프리트가 가여워서 소원대로 결혼식을 올린다. 그후 기셰는 목사님에게 자기가 고트프리트에게 독약을 먹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목사님으로서는 신도의 고백을 지켜주지 않을수 없다. 사람들은 연달은 죽음에 대하여 기셰를 의심하지만 그렇다고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셰와 기셰의 친정 부모
8단계. 기셰의 친정 아버지는 이제 고트프리트가 죽었으므로 장사를 이어 나가려면 기셰가 다른 누구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정 아버지는 조카인 봄(Bohm)에게 우선 기셰의 상점을 사라고 권한다. 그후에 기셰와 결혼하면 상점이 조카의 것이 되고 그러면 자기가 콘트롤 할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런 기미를 눈치 챈 기셰는 만일 그렇게 되면 자기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다고 생각하며 대책을 강구한다. 그래서 친정 아버지와 조카 봄을 둘다 독약으로 처리한다. 그후 기셰는 혼자서 상점을 운영한다. 장사가 잘된다. 그러자 얼마후 첫번째 남편이었던 밀텐버거의 친구인 침머만이 기셰를 찾아와서 예전에 돈을 빌려 준 것이 있으니 갚으라고 강요한다. 침머만은 기셰가 빚을 못갚겠다고 하면 상점을 인수할 생각이다. 기셰는 침머만에게 커피를 대접하면서 대화로서 문제를 풀어가자고 제안한다. 커피를 마신 침머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기셰의 남동생인 요한이 멀리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온다. 동생 요한은 누나 기셰가 혼자서 사업을 해 나가는 것을 보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자기가 사업을 맡아서 하고 누나 기셰는 다시 재혼을 하여 편안히 쉬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기셰는 동생 요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얼마후 요한도 기셰가 타 준 차를 마신후 죽는다.
9단계. 친구 루이자가 기셰를 찾아온다. 루이자는 기셰가 커피에 독을 타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소문을 도무지 믿지 못한다. 루이자는 사람들이 농담으로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셰는 루이자가 자기의 비밀을 발견하기 위해 찾아온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루이자는 역시 독약의 희생물이 된다. 얼마후 전남편 밀텐버거의 친구였던 룸프가 기셰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서 반가워한다. 룸프는 범죄수사를 맡고 있는 당국이 그동안 기셰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망사고를 수상하게 여겨서 범인체포를 위한 현상수배를 내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룸프는 기셰의 집안을 살피다가 커피잔에서 알약과 같은 물질을 발견한다. 비소이다. 그 장면을 목격한 기셰는 이제는 누구로부터의 도움이나 구조도 받지 못할 것을 예감한다. 기셰는 자기가 그동안의 살인에 직접 관련했다는 내용의 노래를 나즈막하게 부른다. 이제 기셰가 커피를 마실 차례이다. 그나저나 기셰가 독살한 사람들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것일까?
말안장을 만들 가죽들을 걸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두 소를 죽이고 나서 얻은 물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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