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악성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

정준극 2015. 5. 12. 11:58

디아벨리 변주곡(Diabelli Variations)

안톤 디아벨리의 왈츠 주제에 의한 33곡의 변주곡

50명의 작곡가들이 각각 한 편씩의 변주곡 작곡. 베토벤은 33편 작곡

 

안톤 디아벨리(1781-1858)

 

세상에는 어떤 하나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들이 수많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디아벨리 변주곡이다. 디아벨리 변주곡은 주로 19세기 초반에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던 50명의 작곡가들이 작곡가이며 악보출판가인 안톤 디아벨리가 내건 왈츠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곡을 한곡씩 만들은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베토벤만은 무려 33곡의 변주곡을 만들어서 안톤 디아벨리에게 제공했다. 다른 작곡가들처럼 한 곡만 변주곡으로 만들어서 제공하면 되는데 33곡을 만들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하여 출판된 '디아벨리 변주곡'은 변주곡의 모음집 중에서 가장 특별하고 가장 유명한 것이 되었다. 특히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은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보자.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자필 악보. 베토벤은 알아주는 악필이었다.


안톤 디아벨리(Anton Diabelli)는 1781년 잘츠부르크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이다. 다른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에 온 그는 가벼운 음악, 유쾌한 음악들을 작곡하여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는 또한 피아노 레슨 선생으로서도 유명했다. 디아벨리는 작곡도 하고 피아노도 가르쳤지만 사보가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특히 작곡가들이 마음대로 휘갈겨 놓은 악보를 꼼꼼하게 정리하고 틀린 음표가 있으면 고치기도 하는 재능으로 작곡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디아벨리는 베토벤보다 11살이나 아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벨리는 비엔나에서 베토벤과 깊은 우정을 다지면서 지냈다. 베토벤도 자기를 무척이나 따르는 디아벨리를 좋아했다. 디아벨리는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는 것 보다는 악보출판사를 경영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악보출판사를 경영하면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세상에 알릴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작곡가들로부터 출판권을 얻어서 상당한 돈도 벌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디아벨리는 피에트로 카피(Pietro Cappi)라는 사람을 사업 파트너로 삼아서 비엔나에서 '카피와 디아벨리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러고 나니까 무언가 신설 출판사를 위해 근사한 일을 하고 싶었다. 디아벨리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자기가 작곡한 간단한 왈츠곡을 주제로 삼아서 오스트리아와 연관이 있는 50명의 작곡가들에게 각각 변주곡을 작곡토록 하여 그것을 모아서 악보집을 출판하자는 생각이었다. 음악사상 유례가 없는 시도였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장사하기 위해서 변주곡집을 출판한다고 할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출판한다고 내세웠다. 결론적으로 이같은 디아벨리의 아이디어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

 

디아벨리는 우선 베토벤에게 변주곡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베토벤은 처음에는 바쁘다고 하면서 거절했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저속한 작업이라면서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다가 디아벨리가 수고료를 성의껏 드리겠다고 제안하자 그러면 한번 해보자고 나섰다. 그런 후에 당시 진행중이던 '장엄미사곡'(Missa Solemnis)를 한 옆으로 밀어두고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나저나 베토벤은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한 곡만 만들면 되는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친 김에 무려 33곡의 변주곡을 만들었다. 1819년부터 시작하여 1823년에 마무리했다. 디아벨리로서는 뜻밖의 일이었고 베토벤으로서도 유례가 없는 작업이었다. 디아벨리로서는 횡재를 한 셈이었다. 디아벨리는 당초 50인의 변주곡을 취합하여 출판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베토벤의 33곡만을 집합하여 별도의 책으로 출판키로 했다. 그렇게해서 베토벤의 33개 변주곡만을 집대성한 '조국의 예술가연맹'이라는 악보집의 파트 1이 출판되었다. 베토벤이 50대 초반일 때의 일이었다.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음반. 피아노에 이고르 레베데프


베토벤은 디아벨리가 제시한 왈츠를 주제로 삼아서 33편의 변주곡을 만들고 나서 그 제목을 '잘 알려진 독일 무곡에 대한 대변주곡'(Grosse Veränderungen über einen bekannten Deutschen Tanz)라고 붙였다. 그러다가 정작 출판이 되려고 할 때에는 디아벨리를 생각해서 '디아벨리 왈츠에 대한 33개 변주곡'(33 Veränderungen über einen Walzer von Diabelli)이라고 고쳤다. 베토벤은 이탈리아어에서 나온 Variationen 이라는 용어 대신이 독일어인 Veränderungen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베토벤은 이 33편의 변주곡을 마담 안토니 폰 브렌타노(Mme. Antonie von Brentano)에게 헌정했다는 주장이 있다. 마담 안토니 폰 브렌타노는 베토벤이 언급한 '불멸의 연인'(Unsterbliche Geliebte: Immortal Beloved)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베토벤이 33편의 변주곡을 영국에 있는 오랜 친구인 페르디난트 리스(Ferdinand Ries)에게 주어서 출판토록 할 생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페르디난트 리스는 독일 출신이지만 런던에 있으면서 악보 출판일을 하고 있었다. 베토벤은 1823년 4월에 페르디난트 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33편의 변주곡을 얼마후에 받게 될터인데 그것을 당신의 부인에게 헌정할 생각이요'라고 썼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에 보내는 편지가 무슨 사정으로 지연되는 바람에 차질이 생겼다. 즉, 페르디난트 리스에게 출판을 부탁할수 없게 되었으며 이 변주곡들을 페르디난트 리스의 부인에게 헌정할수도 없게 되었다. 디아벨리가 변주곡들을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베토벤은 다시 페르디난트 리스에게 편지를 보내어서 '다음번 작품을 당신의 부인에게 헌정할 생각이요'라고 말했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33편의 변주곡에 디아벨리에 의해 비엔나에서 '조국 예술가연맹'이라는 악보의 파트 1으로 출판되었다.

 

비엔나 베토벤강(Beethovengang)의 기념상


디아벨리가 변주곡을 요청한 작곡가들은 칼 체르니, 프란츠 슈베르트, 요한 네포무크 훔멜, 이그나즈 모셀레스, 프리드리히 칼크브렌너, 프란츠 리스트 등 당대의 작곡가들이었다. 프란츠 리스트는 그때 불과 12살의 소년이었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디아벨리가 특별히 요청을 했다. 그리고 위대한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도 포함되었다. 이들 50명의 작곡가들이 각각 한 편씩의 변주곡을 써서 50곡이 되었으며 여기에 베토벤이 33편의 변주곡을 만들어서 도합 83편의 변주곡이 만들어진 것이다. 피아노 교본으로 유명한 체르니는 한 편의 변주곡을 쓰고 이어서 마지막의 코다도 만들었다. 디아벨리는 자기의 왈츠를 주제로 삼아서 만들어진 83편의 변주곡을 '조국의 예술가연맹'(Vaterländischer Künstlerverein)이라는 제목으로 악보집을 출판했다. '조국의 예술가연맹'이라는 악보집은 파트 1과 파트 2로 나뉘어져 있다. 파트 1은 베토벤의 33편의 변주곡만을 담았다. 그리고 파트 2에는 나머지 50명 작곡가들의 변주곡들 담았다. 파트 1은 카피와 디아벨리 출판사가 출판했지만 파트 2를 출판할 즈음에는 디아벨리와 카피가 헤어졌고 디아벨리는 다른 사람과 동업하여서 디아벨리 회사(Diabelli & Co)를 설립한 때였기 때문에 파트 2는 새로운 회사가 출판했다. 디아벨리 변주곡은 1823년과 1824년에 출판되었다. 

 

이제 파트 2에 포함된 변주곡 작곡가들로서는 누가 있는지 알아보자. 주제는 안톤 디아벨리(1781-1858)의 C 장조 왈츠로서 빠르기는 비바체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변주곡을 만든 일부 작곡가들은 빠르기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런 경우에는 디아벨리처럼 비바체로 연주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는 변주곡이 수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디아벨리 변주곡은 마치 변주곡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디아벨리 변주곡과 겨눌수 있는 변주곡은 아마도 바흐의 '골드버그 변주곡'뿐일 것이다.

 

1. 이그나즈 아쓰마이어(Iganz Assmayer: 1790-1862)

2. 칼 마리아 폰 보클레트(Carl Maria von Bocklet: 1801-1881). 프라하 출신. 베토벤이 디아벨리에게 추천하였음. 슈베르트의 절친으로서 슈베르트의 D 장조 소나타 D 850은 그에게 헌정된 것임.

3. 레오폴드 유스타키우스 차페크(Leopold Eustachius Czapek: 1792-1840). 보헤미아 출신으로 쇼팽의 친구

4. 칼 체르니(Carl Czerny: 1791-1857)

5. 요제프 체르니(Joseph Czerny: 1785-1842). 칼 체르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


6. 모리츠 그라프 폰 디트리히슈타인(Moritz Graf von Dietrichstein: 1775-1864)

7. 요제프 드레흐슬러(Hoseph Drechsler: 1782-1852)

8. 에마누엘 알로이스 푀르스터(Emanuel Aloys Förster: 1748-1823). 1823에 세상을 떠남. 그래서 사후에 그의 변주곡이 포함된 악보집에 출판되었음.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가장 긴 작품임.

9. 프란츠 야콥 플라이슈태틀러(Franz Jakob Freystädtler: 1761-1841). 모차르트의 제자. 칼 마리아 폰 베버와 자코모 마이에르베르의 친구.

10. 요한 밥티스트 갠스바허(Johann Baptist Gänsbacher: 1778-1844)


11. 요제프 겔리네트(아베 겔리네크: Abbé Gelinek: 1758-1825)

12. 안톤 할름(Anton Halm: 1789-1872)

13. 요아힘 호프만(Joachim Hoffmann: 1788-1856)

14. 요한 호르찰카(Johann Horzalka: 1798-1860)

15. 요제프 후글만(Joseph Huglmann: 1768-1839)


16. 요한 네포무크 훔멜(Johann Nepomuk Hummerl: 1778-1837)

17. 안젤름 휘텐브렌너(Anslem Hüttenbrenner: 1794-1868).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막역한 친구. 몇년 동안이나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의 악보를 보관하고 있었음.

18. 프리드리히 칼크브렌너(Friedrich Kalkbrenner: 1785-1849). 오스트리아 출신이 아니고 독일 출신이지만 생애의 대부분을 런던과 파리에서 보냈으며 비엔나에도 간혹 방문하였음.

19.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칸네(Friedrich August Kanne: 1778-1833)

20. 요제프 케르츠코프스키(Joseph Kerzkowsky: 1791-?). 자료가 없어서 어떤 사람인지 분명치 않음. 다만, 폴랜드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카츠코브스키(Kaczkowski)가 아닌가라는 추측임.


21. 콘라딘 크로이처(Conradin Kreutzer: 1780-1849)

22. 에두아르트 바론 폰 란노이(Eduard Baron von Lannoy: 1787-1853). 귀족으로서 아마추어 작곡가임.

23. 막시밀리안 요제프 라이데스도르프(Maximilian Joseph Leidesdorf: 1787-1840). 역시 악보출판가임.

24.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리스트의 '디아벨리 왈츠 변주곡 S 147'임. 디아벨리의 변주곡집인 '조국 예술가연맹'이 출판되었을 때에 리스트는 겨우 12세였다. 아마도 너무 어려서 처음에는 디아벨리의 초청 대상에 들지 않았으나 리스트의 스승인 체르니가 디아벨리에게 부탁해서 50인 중에 포함되었다고 함.

25. 요제프 마이제더(Joseph Mayseder: 1789-1863)


26. 이그나즈 모셀레스(Ignaz Moscheles: 1794-1870)

27. 이그나즈 프란츠 에들러 폰 모젤(Ignaz Franz Edler von Mosel: 1772-1844). 제국도서관 관리자.

28.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Franz Xaver Wolfgang Mozart: 1791-1844). 모차르트의 아들. 두 편의 변주곡을 작곡했으나 악보집에는 한 편만 포함되었음. 미등록 변주곡은 나중에 28a로서 포함되었음.

29. 요제프 파니(Joseph Panny: 1796-1838)

30. 히에로니무스 파이어(Hieronymus Payer: 1787-1845)


31. 요한 페터 픽시스(Johann Peter Pixis: 1788-1874)

32. 벤첼 플라히(Wenzel Placy: 1785-1858)

33. 고트프리트 리거(Gottfried Rieger: 1764-1855). 보헤미아 오르가니스트. 브르노의 음악감독. 그는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두 편이나 작곡하였으나 두번째 것은 수락되지 못하였음. 그러다가 나중에 추가로 33a 라는 번호로 등재되어 출판되었음.

34. 필리포 야콥 리오테(Philipp Jakob Riotte: 1776-1856)

35. 프란츠 로저(프란츠 드 파울라 로저: Franz Roser: Franz de Paula Roser: 1779-1830). 극장 오케스트라 지휘자.


36. 요한 밥티스트 셴크(Johann Baptist Schenk: 1753-1836)

37. 프란츠 쇼벌레흐너(Franz Schoberlechner: 1797-1843)

38.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디아벨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D 718로서 카탈로그에 정리되어 있음.

39. 시몬 제흐터(Simon Sechter: 1788-1867)

40. SRD(오스트리아의 루돌프 대공: Archduke Rudolf of Austria: 1788-1831). SRD는 Serenissimus Rudolfus Dux의 약자. 루돌프 대공의 호칭 중의 하나. 베토벤의 제자로서 아마추어 작곡가. 베토벤은 황제 협주곡, 대공 트리오, 함머클라피어 소나타 등을 헌정함.


41. 막시밀리안 슈타들러(Maximilian Stadler: 1748-1833). 작곡가, 음악학자, 피아니스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의 친구. 특히 모차르트의 미완성 작품들을 완성함.

42. 요제프 폰 찰라이(Joseph von Szalay: 1800-1860). 푀르스터, 훔멜, 살리에리의 제자. 피아니스트로서 9세때부터 활동.

43. 벤첼 요한 토마셰크(Welzel Johann Tomaschek = Vaclav Tomasek: 1774-1850)

44. 미하엘 움라우프(Michael Umlauf: 1781-1842)

45. 프리드리히 디오니시우스 베버(베드리츠 디비스 베버: Friedrich Dionysius Weber: 1766-1842)

46. 프란츠 베버(Franz Weber: 1805-1876)

47. 칼 안젤리우스 폰 빈클러(Carl Angelus von Winkhler: 1796-1845). 페스트의 아마추어 작곡가.

48. 프란츠 바이스(Franz Weiss: 1778-1830). 바이올리니스트. 슈판치크현악중주단 멤버.

49. 요한 네포무크 아우구스트 비타세크(Johann Nepomuk August Wittasek: 1770-1839)

50. 요한 후고 보르치셰크(얀 바클라브 보리세크: Johann Hogo Worzischek: 1791-1825)

 

 

ö  é  ü  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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