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초연의 오페라극장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Teatro di San Carlo)

정준극 2015. 7. 1. 21:50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Teatro di San Carlo)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은 밀라노의 라 스칼라, 베니스의 라 페니체보다도 수십년 앞선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일찍이 1621년에 나폴리에는 산 바르톨로메오 극장(Teatro San Bartolomeo)가 있었다. 그러나 규모가 적어서 많은 관객들을 수용할수가 없었고 더구나 무대가 협소하여 대규모의 오페라는 공연키가 어려웠다. 당시 나폴리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다. 그런 연고로 나폴리의 왕은 부르봉 왕조의 샤를르 7세였다. 샤를르 7세(카를로 7세)는 산 바르톨로메오 극장을 대신할 새로운 극장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18세기 초에는 나폴리에 스칼라티가 와서 활동하게 되었으므로 그의 오페라를 공연할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1737년 나폴리에 샤를르 7세를 기념하는 산 카를로 극장이 문을 열게 되었다. 새로운 극장은 샤를르 7세의 명명일(네임 데이)인 11월 4일에 오픈되었다. 개관 기념으로는 도메니코 사로(Domenico Sarro)의 '스키로의 아킬레스'(Achille in Sciro)가 공연되었다.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에 의한 작품이다. 샤를르 7세가 세운 극장이 20세기 오페라의 전성시기에 나폴리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산 카를로 극장의 전신이다.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

 

산 카를로 극장은 18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센터로서 명성을 떨쳤다. 1761-62년에는 독일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초청을 받아 와서 '우티카의 카토네'(Catone in Utica)와 '인도에간 알렉산더'(Alessandro nell'Indie)를 공연했다. 또한 1852년에는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이 초청되어 와서 '티토의 자비'(Cllemenza di Tito)의 공연을 감독한 것도 라 스칼라로서 특기할 사항이었다. 1816년 2월에는 화재가 일어났다. 극장의 일부가 파손되었다. 샤를르 3세의 아들로서 또 하나의 부르봉 군주인 페르디낭 4세가 10개월 만에 재건하였다. 이때 전체적인 확장공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재건된 극장은 1817년 1월에 재개관되었다. 요한 시몬 마이르(Johann Simon Mayr)의 '파르테노페의 꿈'(Il sogno di Partenope)이 재개관 기념으로 공연되었다. 1815년부터 1822년까지는 로시니가 상주작곡가로서 활동했다. 로시니는 산 카를로에서 봉사하면서, '영국 여왕 엘리사베타', '오텔로', '아르미다', '이집트의 모세', '에르미오네', '바안카와 활리에로', '호수의 여인', '마오메토 2세', '첼미라' 등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을 선보였다. 1861년에 이탈리아가 통일되자 이탈리아의 오페라 센터 역할은 산 카를로로부터 북부 밀라노의 라 스칼라로 옮겨졌다. 이탈리아의 경제가 북부로 옮겨지는 것에 영향을 받은 현상이었다. 산 카를로는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1874년에는 적자운영으로 1년 동안 휴관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산 카를로는 20세기에 들어와서 푸치니를 비롯한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조르다노, 칠레아 등 이른바 베리스모 작곡가들의 활동으로 또 다시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으로서 부각되었다.

 

1830년대의 산 카를로 극장. 그 옆에는 나폴리왕궁(Palazzo Reale di Napoli)가 있다.

 

1890년에는 드디어 전기가 설치되었다. 그렇게 유지되어 오던 중, 전쟁 중인 1943년에 폭격을 받아 건물의 일부가 파손되었다. 그해 10월에 나폴리가 해방되지 곧이어 산 카를로 극장의 복구공사에 들어갔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두달 만에 공사를 마칠수 있었다. 1943년 12월 26일의 재개관에는 푸치니의 '라 보엠'이 공연되었다. 그후 산 카를로의 현대화와 확장을 위한 공사가 추진되었다. 공사는 2010년 초에 마무리 되었고 재개관 기념으로는 2010년 1월 27일에 모차르트의 '티토의 자비'(La Clemenza di Tito)가 공연되었다. 모차르트 탄생 254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1901년에는 나폴리에서 태어난 엔리코 카루소가 산 카를로에서 '사랑의 묘약'에 출연하였다. 그날 카루소는 콘디션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관중들의 갈체를 받지 못하고 대신 야유를 받았다. 그로부터 카루소는 다시는 산 카를로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산 카를로의 오디토리엄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된 주요 오페라들은 다음과 같다.

 

○ 스키로의 아킬레(Achille in Sciro). 1737년. 도메니코 사로(Domenico Sarro). 대본은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P. Metastasio). 나폴리의 카를로스 7세(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의 명명일(네임 데이)에 산 카를로 극장의 개관 기념으로 공연되었다.

○ 시로에(Siroe). 1758년. 파스쿠알레 에리켈리(Pasquale Errichelli). 메타스타시오의 대본.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시로에 왕에 대한 이야기. 핸델도 1728년에 '페르시아 왕 시로에'(Siroe, re di Persia)를 작곡했다.  

○ 화르나체(Farnace). 1767년.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대본은 안토니오 마리아 루키니(Antonio Maria Lucchini). 1세기 소아시아가 무대. 폰투스의 왕 화르나체와 로마제국간의 전쟁 이야기. 안토니오 비발디가 1727년 같은 타이틀의 오페라를 베니스의 산탄젤로 극장에서 공연한바 있다.

○ 벨레로폰테(Il Bellerofonte). 1767년.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대본은 주세페 보네키(Giuseppe Bonecchi).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린도 왕자 벨레르폰테와 리키아의 공주 아르제네(Argene)의 사랑이야기. 두 시실리의 페르디난드 1세에게 헌정한 작품.

○ 버림받은 아르미다(Armida abbandonata). 1770년. 니콜로 조멜리(Niccolo Jommelli). 토르쿠아토 타소의 '예루살렘 해방'(Geruslamme liberata)을 바탕으로 프란체스코 사베리오 데 로가티스(Francesco Saverio de Logatis)가 대본을 썼다.

○ 로몰로와 에르실리아(Romolo ed Ersilia). 1773년.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메타스타시오의 마지막 극본. 로마를 창설한 로몰로와 그의 약혼녀인 화려한 에르실리아에 대한 이야기

○ 아르타세르세(Artaserse). 1774년. 체코의 조세프 미슬리베체크(Josef Mislivecek).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 사용. 18세기에는 오페라 대본가들이 메타스타시오의 오리지널 대본을 변경하여 대본으로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였으나 조세프 미슬리베체크는 메타스타시오의 오리지널 대본에 충실하였다.

○ 데모폰테(Demefoonte). 1775년.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메타스타시오의 대본. 데모폰테는 트라키아의 왕이다.

○ 에치오(Ezio). 1775년.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대본은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 미슬리베체크가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을 사용한 첫번째 케이스이다. 5세기경 로마 황제 발렌티니안 3세와 그의 장군 아에투이스(Aetius)의 이야기.

○ 올림피아드(L'Olimpiade). 1778년.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메타스타시오의 대본. 고대 그리스에서의 올림픽 경기에 얽힌 사랑과 영광의 이야기.

 

미슬리베체크의 '올림피아드'. 프라하 국립극장

 

○ 라 칼리로에(La Calliroe). 1779년. 체코의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물의 요정인 칼리르호에(Callirrhoe)에 이야기로서 마테오 베라치(Matteo Verazi)가 대본을 썼다.

○ 데메트리오(Demetrio). 1779년.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의 대본. 미슬리베체크의 아홉 편 오페라 중에서 마지막 작품. 시리아의 왕 데메트리오의 사랑 이야기. 데메트리오는 처음에 알체스테로 가장한다.

○ 고린도의 메데아(Medea in Corinto). 1813년. 요한 시몬 마이르(Johann Simon Mayr).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의 대본. 유리피데스의 그리스 신화 '메데'를 바탕으로 삼았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루이지 케루비니가 1797년에 '메데아'(Médée)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마이르의 '고린도의 메데아'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이다.

○ 영국 여왕 엘리사베타(Elisabetta, regina d'Inghilterra). 1815년. 조아키노 로시니. 대본은 조반니 슈미트. 소피아 리(Sophia Lee)의 1785년 소설인 '은밀한 방'(The Recess)을 바탕으로 카를로 페데리코가 쓴 희곡을 참고로 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이야기. 부제는 '레이체스터의 사환'(Il paggio do Leichester)이다.

○ 아르미다(Armida). 1817년. 조아키노 로시니. 토르쿠아토 타소(Torquato Tasso)의 극본인 '예루살렘 해방'(Geerusalemme liberata)을 바탕으로 조반니 슈미트(Giovanni Schmidt)가 대본을 썼다.

○ 이집트의 모세(). 1818년. 조아키노 로시니.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의 대본. 1760년도 프란체스코 링기에리()의 극본 '오시리스'(L'Osiride)를 바탕으로 삼았다. 로시니는 1827년에 파리 공연을 위해 타이틀을 '모세와 바로'(Moise et Pharaon), 또는 '홍해를 건너다'(Le passage de la Mer Rouge)로 바꾸었다. 프랑스어 대본은 루이지 발로키(Luigi Balocchi)와 빅토르 조셉 에티엔트 주이(Victor-Jooseph Etienne Jouy)가 맡았다.

○ 리키아르도와 초라이데(Ricciardo e Zoraide). 1818년. 조아키노 로시니. 프란체스코 베리오 디 살사()의 대본. 십자군 시절 고대 누빕아의 동골라가 무대.

○ 호수의 여인(La donna del lago). 1819년. 조아키노 로시니. 월터 스콧의 1810년도 소설인 The Lady of the Lake(호수의 여인)을 바탕으로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가 대본을 썼다.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 시절, 반란세력의 지도자인 더글라스 로드리고의 딸 엘레나의 사랑 이야기. 엘레나는 제임스 5세와 결혼키로 되어 있으나 나중에는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말콤과 결혼하게 된다.

○ 에르미오네(Ermione). 1819년. 게타노 도니체티. 대본은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Andrea Leone Tottola). 장 라시느(Jean Racine)의 소설 안드로마크(Andromaque)를 바탕으로 삼았다. 트로이 전쟁 직후의 이야기로서 에르미오네는 헬렌과 메넬라우스의 딸이다.

○ 마오메토 2세(Maometto II). 1820년. 조아키노 로시니. 대본은 체사레 델라 발레(Cesare della Valle)가 그의 종전의 희곡 '안나 에리초'(Anna Erizo)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1470년대 터키와 베니스의 전쟁이 배경이다. 마오메토 2세(1432-1481: 마오메토 세군도)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인물이다.

 

로시니의 '마오메토 2세'

 

○ 첼미라(). 1822년. 조아키노 로시니. 대본은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 프랑스의 극작가 드 벨로이()의 희곡 '첼미르'(Zelmire)를 바탕으로 삼았다. 로시니의 나폴리 시대를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작품. 첼미라는 레스보스의 왕 폴리도로의 딸이다.

○ 알프레도 대제(Alfredo il grande). 1823년. 게타노 도니체티.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의 대본. 1818년에 발표된 요한 시몬 마이르의 동명 오페라를 참고로 했다. 앵글로 색슨 왕인 알프레드 대제에 대한 이야기.

○ 인도의 알레산드로(Alessandro nelle Indie). 1824년. 조반니 파치니(Giovanni Pacini). 대본은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Andrea Leone Tottola).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의 극본 '인도의 알레산드로'(Alessandro nell'Indie)를 바탕으로 삼았다.

○ 폼페이 최후의 날(L'ultimo giorno di Pompei). 1825년. 조반니 파치니. 대본은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 베수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인한 폼페이 최후의 날을 그린 작품. 초연이후 대인기를 끌었다.

○ 엘비다(Elvida). 1826년. 게타노 도니체티. 대본은 조반니 슈미트. 두 시실리의 마리아 왕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작품. 15세기말 카스틸리아의 귀부인 엘비다가 그라나다를 점령하고 있는 무어인들에게 포로로 잡히지만 높은 정절로 인하여 석방된다는 이야기. 모차르트의 '후궁에서의 도주'와 플로트가 비슷하다. 

○ 로마로부터의 추방(L'esule di Roma). 또는 '추방자'(Il proscritto). 1828년. 게타노 도니체티. 대본은 도메니코 지랄도니가 루이지 마르키오니의 '로마의 추방자'(Il proscritto romano)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 비안카와 페르난도(Bianca e Fernando). 1828년. 빈첸조 벨리니. 카를로 로티(Carlo Roti)의 희곡 '아그리젠토의 공작 카를로 4세의 무덤에 있는 비안카와 페르난도'(Bianca e Fernando alla tomba di Carlo IV, duca di Agrigento)를 바탕으로 도메니코 지랄도니(Domenico Giraldoni)가 대본을 썼다. 나중에 이를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가 수정본을 내놓았다.

○ 케닐워스 성(Il castello di Kenilworth). 1829년. 게타노 도니체티. 월터 스콧의 1821년 소설 '케닐워스'를 바탕으로 빅토르 위고가 1828년에 쓴 '에미 로브사르'(Amy Robsart), 그리고 외진 스크리브(Eugene Scribe)의 희곡 '레이체스터'(Leicester)를 참고로 하여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가 대본을 썼다.

○ 대홍수(Il diluvio universale). 1830년. 게타노 도니체티. 바이런경의 '천국과 지상'(Heaven and Earth)을 바탕으로 도메니코 지랄도니(Domenico Giraldoni)가 대본을 썼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

○ 람베르타찌의 이멜다(Imelda de' Lambertazzi). 1830년. 게타노 도니체티. 대본은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 가브리엘레 스페르두티(Gabriele Sperduti)의 비극 '이멜다'(Imelda)를 바탕으로 삼았다. 16세기 볼로냐가 무대이다.

 

○ 푸아의 프란체스카(Francesca di Foix). 1831년. 게타노 도니체티의 코믹 오페라. 대본은 도메니코 지랄도니. 중세 프랑스가 무대. 백작은 부인 프란체스카의 미모 때문에 궁정에서 국왕으로부터 유혹을 받을 것 같아서 부인이 추녀라고 소문을 내는 바람에 벌어지는 코미디.

○ 카스틸리아의 산치아(Sancia di Castiglia). 1832년. 게타노 도니체티. 대본은 피에트로 살라티노(Pietro Salatino). 중세 스페인의 카스티유가 무대

○ 화우스타(Fausta). 1832년. 게타노 도니체티. 대본은 도메니코 지랄도니가 일부만 작성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나머지는 도니체티가 직접 완성했다. 토마소 스그리치(Tommaso Sgricci)의 1827년도 비극인 '크리스포'(Crispo)를 바탕으로 삼았다. 화우스타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노 2세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 람메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1835년. 게타노 도니체티. 대본은 살바도레 카마라노. 스코틀랜드의 문호 월터 스콧의 '람메무어의 신부'(The Bride of Lammermoor)를 바탕으로 삼았다. 17세기 스코틀랜드 두 가문간의 갈등으로 희생된 루치아와 에드가르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 칼레 공성(L'assedio di Calais: The siege of Calais). 1836년. 게타노 도니체티. 살바도레 카마라노의 가장 뛰어난 대본. 루이지 마르키오니(Luigi Marchionni)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삼았다. 1347년 영국군이 프랑스의 칼레를 공략한 이야기.

○ 로베르토 드브러(Roberto Devereux). 1837년. 게타노 도니체티. 대본은 살바도레 카마라노. 프랑수아 앙슬로(Francois Ancelot)의 비극 '영국의 엘리자베스'(Elisabeth d'Angleterre)를 바탕으로 삼았다. 프랑스 작곡가로서 드브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두 편이 더 있다. 토마스 코르네이유(Thomas Corneille)의 '에섹스 백작'(Le comte d'Essex)과 고티에 드 코스테(Gauthier de Costes)의 '에섹스 백작'이다.

○ 펠트레의 엘레나(Elena di Feltre). 1839년.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대본은 살바도레 카마라노. 카마라노는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대본을 쓴 사람이다. '펠트레의 엘레나'는 나폴리 카니발 시즌을 위해 제작되었다. 1250년경 북부 이탈리아의 펠트레가 무대.

○ 사포(Saffo). 1840년. 조반니 파치니. 대본은 살바도레 카마라노. 프란츠 그릴파르터(Franz Grillparzer)의 희곡을 바탕으로 삼았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인 사포에 대한 이야기.

○ 베스타 여사제(La vestale). 1840년.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대본은 살바도레 카마라노. 스폰티니의 동명 오페라도 있다.

○ 카테리나 코르나로(Caterina Cornaro). 또는 '사이프러스 여왕'(La Regina di Cipro). 1844년. 게타노 도니체티. 쥘르 앙리 베르노이 드 생 조르즈(Jules-Henri Vernoy de Saint-Georges)가 알레비를 위해 쓴 1841년 희곡인 '사이프러스 여왕'(La reine de Chypre)을 바탕으로 자코모 사케로(Giacomo Sacchero)가 도니체티를 위한 대본으로 구성했다.

 

카테리나 코르나로 초상화

 

○ 알치라(Alzira). 1845년. 주세페 베르디. 대본은 살바도레 카마라노(Salvadore Cammarano). 볼테르의 '알지르'(Alzire) 또는 '아메리카인'(Americaines)을 바탕으로 삼았다. 16세기 남미의 페루가 무대이다.

○ 오라치와 쿠리아치(Orazi e Curiazi). 1846년.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대본은 살바도레 카마라노. 호라티와 쿠리아티의 싸움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

○ 루이자 밀러(Luisa Miller). 1849년. 주세페 베르디. 대본은 살바도레 카마라노가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폰 쉴러의 '불륜과 사랑'(Kabale und Liebe)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17세기 티롤이 무대이다.

○ 비르지니아(). 1866년. 사베리오 메르카단테. 대본은 살바도레 카마라노. 비토리오 살피에리의 동명 지극을 바탕으로 했다. 고대 로마가 무대. 평민출신의 비르지니아와 귀족 출신의 이칠로의 사랑 이야기.

○ 베르지의 가브리엘라(Gabriella di Vergy). 1869년. 게타노 도니체티. 대본은 안드레아 레오네 토톨라가 드몽 드 벨로이(Demont De Belloy)의 비극인 '베르지의 가브리엘레'(Gabrielle de Vergy: 1777)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드 벨로이의 비극은 프랑스 중세로부터의 전설인 Le chatelain de Coucy et la dame de Faayel과 Le Roman de la chastelaine de Vergy를 바탕으로 삼았다.

○ 글로리아(Gloria). 1907년. 프란체스코 칠레아. 대본은 아르투로 콜라우티(Arturo Colautti). 14세기 시에나가 무대인 로메오와 줄리에트의 이야기.

○ 구즈만의 산 도메니코(San Domenico di Guzman). 1997년. 안토니오 브라가(Antonio Braga). 13세기 스페인 출신의 성자로서 도미니크 종파를 창설한 도밍고 데 구즈만의 생애에 대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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