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초연의 오페라극장

토리노의 왕립극장(Teatro Regio)

정준극 2015. 7. 2. 12:38

토리노의 왕립극장(Teatro Regio)

푸치니의 '라 보엠'이 초연된 곳

 

토리노(튜린)도 이탈리아의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일찍부터 오페라 활동이 활발했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미 16세기부터 오페라 전용극장은 아니지만 이곳 저곳의 무대에서 오페라가 공연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토리노의 유지들은 아무래도 토리노에도 전용 오페라 극장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1713년부터 새로운 오페라 극장의 건설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건축이 시작된 것은 1738년이었다. 엠마누엘 3세의 후원이 있었다. 새로운 극장은 1740년 12월 26일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새로운 극장의 명칭은 왕립극장(Teatro Regio)라고 불렀다. 엠마누엘 3세를 기념해서였다. 개관 기념으로 프란체스코 페오(Francesco Feo)의 '아르사체'(Arsace)가 공연되었다. 그렇게 유지되어 오던 왕립극장은 17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각국에 혁명의 기운이 감돌고 이에 따라 정치정세가 혼돈해지는 바람에 마침내 1792년 왕명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왕립극장은 창고로 사용되었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게 되었고 유럽 제패의 꿈으로 이탈리아도 넘보게 되었다.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이 계속되었다. 프랑스군이 토리노를 점령하였다. 프랑스군은 왕립극장의 명칭을 국립극장(Teatro Nazionale)라고 바꾸었다. 그리고 얼마후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지 극장이름을 테아트로 임페리알(제국극장: Teatro Imperial)로 바꾸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던가!

 

현대식의 테아트로 레지오 오디토리움

 

1814년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제국극장의 명칭은 다시 오리지널 명칭인 테아트로 레지오로 바뀌었다. 그러나 테아트로 레지오는 경영난으로 고생을 면치 못하였다. 결국 1870년에 토리노시 당국이 테아트로 레지오를 인수하였다. 테아트로 레지오는 여러부분이 손상되어서 보수공사를 해야했다. 1904년 마침내 보수확장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토리노 시민들은 이제야 극장다운 극장을 갖게 되었다고 하면서 기뻐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잠시뿐. 1차 대전으로 극장 문은 다시 닫혀야 했다. 그리고 1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19년에(우리나라에서 삼일독립운동이 일어나던 해) 문을 열게 되었다. 그런데 1936년에 테아트로 레지오가 큰 화재를 당했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악화되는 등 여러 사정으로, 그리고 무솔리니가 집권을 하고 2차 대전에 휘말리는 바람에 테아트로 레지오의 복구공사는 전쟁이 끝난지 한참 후인 1963년에 가서야 겨우 가능해졌다. 그러나 복구공사도 어려움이 많아서 정작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67년부터였다. 그리하여 1973년 4월 10일 마침내 재개관이 되었고 재개관 기념으로 베르디의 '시실리의 저녁기도'(Les vepres siciliennes)가 공연되었다. 마리아 칼라스와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주역을 맡은 공연이었다. 토리노의 테아트로 레지오가 1973년 재개관을 보기까지는 테아트로 카리냐노(Teatro Carignano)가 토리노 오페라 공연의 센터 역할을 했다.

 

토리노의 테아트로 레지오

 

토리노의 테아트로 레지오에서 초연된 주요 오페라는 다음과 같다.

 

○ 클렐리아의 승리(Il trionfo di Clelia). 1767년.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메타스타시오의 대본. 글룩도 메타스타시오의 대본으로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 있다. 에트루상의 왕 포르세나, 로마의 귀부인 클릴레아, 로마 대사 오라치오간의 사랑 이야기.

 

○ 안티고나(Antigona). 1773년. 조세프 미슬리베체크. 게타노 로카포르테(Gaetano Roccaforte)의 대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외디푸스의 딸 안티고나의 이야기.

 

눈먼 외디푸스와 테베의 백성들

 

○ 로렐라이(Loreley). 1890년. 알프레도 카탈라니(Alfredo Catalani). 안젤로 차나르디니(Angelo Zanardini), 주세페 데파니스(Giuseppe Depanis), 카를로 도르메빌레(Carlo D'Ormeville) 등 3인의 공동대본. 1500년경, 라인강변이 무대이다. 라인강의 님프인 로렐라이와 발터(Walter) 백작의 비극저인 사랑 이야기.

 

○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 1893년. 자코모 푸치니. 프랑스 아베 프레보(Abbé Prévost)의 '데 그류씨와 마농 레스코의 이야기'(L'histoire du chevalier des Grieux et de Manon Lescaut)를 바탕으로 삼은 작품. 대본은 루제로 레온카발로, 마르코 프라가, 주세페 지아코사, 루이지 일리카, 도메티코 올리바의 5명이 공동으로 완성했다. 1884년에 프랑스의 쥘르 마스네가 같은 내용으로 '마농'(Manon)이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

 

○ 라 보엠(La Bohème). 1896년. 자코모 푸치니. 대본은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지아코사. 프랑스의 앙리 뮈르제(Henri Murger)의 소설 '보헤미아인들의 삶의 모습'(Scenes de la vie de bohème)을 바탕으로 삼은 작품. 초연의 지휘는 젊은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맡았다.

 

푸치니의 '라 보엠'. 크리스마스 이브의 카페 모뮈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