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초연의 오페라극장

파리의 테아트를 리릭(Théâtre Lyrique)

정준극 2015. 7. 5. 21:57

테아트를 리릭(Théâtre Lyrique)

샤틀레 광장 소재의 테아트르 드 라 비유(Théâtre de la Ville: 시립극장)

 

플라스 뒤 샤틀레의 테아트르 들 라 비유. 과거에는 테아트르 리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테아트르 리릭은 오페라단이면서 오페라 극장의 이름이다. 19세기 중반부터 파리에는 오페라를 공연하는 단체가 네개가 있었다. 파리 오페라, 오페라 코미크, 테아트르 이탈리앙, 그리고 테아트르 리릭이었다. 오페라단으로서의 테아트르 리릭은 1847년 작곡가인 아돌프 아당(Adolphe Adam)이 뜻한바 있어서 창설했다. 당시에는 아돌프 아당의 새로운 오페라단을 오페라 나쇼날(Opera-National)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852년에 테아트르 리릭크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테아트르 리릭크는 1871년 샤틀레에 있는 전용극장이 화재로 전소되자 이듬해인 1872년에 오페라단도 문을 닫게 되었다. 문을 닫은 이유는 재정파탄 때문이었다. 테아트르 리릭 오페라단은 창단 이후 약 30년을 거치면서 주로 글룩, 모차르트, 베버, 베르디와 같은 다른 나라 작곡가들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공연했다. 바그너의 리엔치를 파리에서 초연한 것도 테아트르 리릭이었다. 한편, 테아트르 리릭 오페라단은 위대한 프랑스 오페라들의 초연을 주관하여 음악사에 길이 기록될수 있었다. 예를 들면 비제의 '진주잡이', 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들',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특히 구노의 '파우스트'가 테아트르 리릭 오페라단에 의해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플라스 뒤 샤틀레의 테아트로 리릭. 1869년 에르네스트 불랑제리의 '돈 퀴쇼트' 초연의 무대. 테아트르 코믹 오페라단이 공연한 것은 아니다.

 

테아트르 리릭 오페라단은 창단되고 나서 2년 동안은 블르바르 뒤 땅플에 있는 시르크 올림피크(Cirque Olympique)에서 공연했다. 그후 1851년부터 1862년까지는 역시 블르바르 뒤 땅플에 있지만 시르크 올림피크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테아트르 이스토리크(Théâtre Historique)에서 공연했다. 그리고 1862년부터 1871년까지 9년 동안 플라스 뒤 샤틀레에 있는 테아트르 리릭 극장(Salle du Théâtre Lyrique)에서 공연을 가졌고 1871년부터 1872년까지는 아테네극장(Salle de l'Athénée)에서 공연을 가졌다. 현재의 플라스 뒤 샤틀레(Place du Châtelet)에 있는 테아트르 리릭 극장은 1860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862년에 완공한 건물인데 사실상 테아트르 리릭 오페라단을 위해 건축한 건물이다. 테아트르 리릭 극장, 또는 현재 부르는 대로 테아트르 들 라 비유(시극장)은 1862년 완공된 이래 여러번에 걸쳐 명칭이 변경되어 간혹 혼돈을 줄 정도였다. 어떻게 명칭이 바뀌었는지를 살펴보면, 테아트르 리릭 임페리얼(Théâtre Lyrique Impérial: 1862-1870), 테아트르 리릭(Théâtre Lyrique: 1870–71), 테아트르 리릭 드라마티크(Théâtre Lyrique-Dramatique: 1874), 테아트르 이스토리크(Théâtre Historique: 1876), 테아트르 데 나숑(Théâtre des Nations: 1879), 다시 테아트르 리릭(Théâtre Lyrique: 1887), 테아트르 사라 베른하르트(Théâtre Sarah-Bernhardt: 1898), 테아트르 들 라 시테(Théâtre de la Cité: 1941), 다시 테아트르 사라 베른하르트(Théâtre Sarah-Bernhardt: 1947), 테아트르 데 나숑(Théâtre des Nations: 1957), 그리고 마침내 테아트르 들 라 비유(Théâtre de la Ville: 1968)이다. 그러므로 다시 정리해보면 테아트르 리릭이라는 용어는 오페라단이면서도 극장의 이름이었다. 오페라단은 1847년 설립되어 1872년에 문을 닫았다. 테아트르 리릭 극장은 오늘날 테아트르 들 라 비유라고 불리는 파리시 관할의 극장으로서 플라스 뒤 샤틀레에 있으며 1862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플라스 뒤 샤틀레의 테아트르 들 라 비유(테아트르 리릭)

 

테아트르 리릭 오페라단이 초연을 가졌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뉘른베르크의 인형(La poupée de Nuremberg). 1852년. 아돌프 아당. 대본은 아돌프 드 뢰븐(Adolphe de Leuven)과 빅토르 아서 루소 드 보플랑(Victor Arthur Rousseau de Beauplan). E.T.A. 호프만의 단편 Der Sandmann을 바탕으로 삼은 작품

 

○ 내가 만일 왕이라면(Si j'étais roi: If I Were King). 1852년. 아돌프 아당(Adolphe Adam). 대본은 아돌프 데느리(Adolphe d'Ennery)와 쥘르 앙리 브레실(Jules Henri Brésil). 고아의 젊은 어부 체포리스와 고아의 공주 네메아와의 사랑 이야기.

 

○ 은둔자의 작은 종(Les Dragons de Villars). 1856년. 에메 마이아르(Aimé Maillart). 로크로이(Lockroy)와 외진 코르몽(Eugene Coormon)의 공동 대본. 1704년 사보이 전선부근의 산마을에서 있었던 사랑이야기.

 

○ 파우스트(Faust). 1859년. 샤를르 구노. 대본은 쥘르 바르비에와 미셸 캬레가 캬레의 희곡 '파우스트와 마르게리트'()를 바탕으로 작성. 괴테의 파우스트 1부에 의한 스토리

 

○ 동상(La Statue: The Statue). 1861년. 에르네스트 라이어(). 대본은 쥘르 바르비에와 미셸 캬레. 천일야화를 바탕으로 삼은 스토리.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부자 아랍인의 사랑 이야기.

 

○ 진주잡이(Les pêcheurs de perles: The Pearl Fishers). 1863년. 조르주 비제. 대본은 외진 코르몽과 미셸 캬레. 고대 세일론(스리 랑)이 무대. Au fond du temple saint(성스러운 사원에서) 듀엣은 유명하다.

 

○ 트로이 사람들(Les Troyens: Les Troyens à Carthage). 1863년은 3막과 5막만 초연. 1890년에 전체 초연. 엑토르 베를리오즈. 대본은 비르질의 서사시 이니드(Aeneid)를 바탕으로 작곡자 자신이 썼다.

 

'트로이 사람들'. 메트로폴리탄. 디도에 수잰 그레이엄

 

○ 미레이유(Mireille). 1864년. 샤를르 구노. 대본은 미셸 캬레. 프레데릭 미스트랄()의 시 미레이오(Mireio)를 바탕으로 삼았다. 하노버 공작 조지 5세에게 헌정한 작품. 19세기 프랑스의 프로방스가 무대.

 

○ 퍼스의 아름다운 아가씨(La jolie fille de Perth: The Fair Maid of Perth). 1867년. 조르즈 비제. 대본은 쥘르 앙리 베르노이 드 생 조르주와 쥘르 아데니스(Jules Adenis)가 공동으로 작성. 원작은 월터 스콧의 소설.

 

○ 로미오와 줄리에트(Roméo et Juliette). 1867년. 샤를르 구노. 대본은 쥘르 바르비에와 미셸 캬레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에트'를 바탕으로 작성. 줄리엣의 왈츠인 Je veux vivre(나는 살고 싶어요)가 유명하다.

 

○ 실버 벨(Le timbre d'argent: The Silver Bell). 1877년. 카미유 생 상스. 대본은 쥘르 바르비에와 미셸 캬레. 1865년에 완성했지만 초연은 12년 후가 되었다. 아리아 Le bonheur est chose légère(행복은 가벼운 것)가 유명하다. 생 상스의 첫번째 오페라.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메트로폴리탄 무대. 안나 네트렙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