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디바와 디보

디바와 프리마 돈나

정준극 2015. 8. 1. 13:33

디바와 프리마 돈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오페라의 여주인공 중에서 말할수 없이 뛰어난 인물을 '디바'(Diva)라고 부른다. 오페라의 여주긴공을 디바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언제, 누구부터 였을까? 정확치 않다. 우선 디바라는 단어의 뜻부터 다시 점검해 보자. 이탈리아어에서 '디바'는 여신을 말한다. 디바의 복수형태는 이탈리아어에서 디베(Dive)라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디바스'(Divas)라고 한다. 이탈리아어에서 남신(男神)은 디보(Divo)라고 한다. 이는 라틴어의 디부스(Divus)에서 나온 말이다. 디부스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은 후 그를 신격화하여 부를 때에 사용한다. 라틴어에서 하나님과 같은 신은 데우스(Deus)라고 한다. 학자들은 오페라에서 디바라는 단어보다 디보라는 단어가 먼저 사용되기 사작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오페라의 대단한 여주인공을 디바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보다 남성 주인공을 디보라고 부른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엔리코 카루스 또는 베냐미노 질리를 디보라고 부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런데 오늘날 디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디바라는 단어는 더욱 자주 사용되고 있다. 디바라는 단어는 비단 오페라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와 연극, 팝송의 세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미성의 디보 베냐미노 질리

 

우리는 보통 마리아 칼라스, 레나타 테발디와 같은 뛰어난 오페라 소프라노들을 디바라고 부르고 있지만 어떤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디바라는 단어는 오페라보다는 연극에서 먼저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록상으로 디바라는 단어가 연극의 여주인공에게 처음 사용된 것은 영국에서 1883년이라고 한다. 그후 1870년대에 유럽의 연극무대를 찬란하게 장식했던 여배우 사라 베른하르트(Sarah Bernhardt: 1844-1923)를 디바 또는 라 디뱅(La divine)라고 불렀다. 파리의 신문이 사라 베른하르트를 라 디뱅이라고 처음으로 표현했다. 사라 베른하르트는 파리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오페라 성악가가 되었더라도 대단한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스웨덴 출신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1905-1990)를 처음으로 디바라고 불렀다는 기록이다. 그런가하면 이탈리아의 여배우인 리다 보렐리(Lyda Borelli: 1884-1959)를 디바라고 부른 것이 영화배우로서는 처음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노아 출신의 리다 보렐리는 1913년 영화인 '영원한 사랑'(Love Everlasting)에서 숨막히는 듯한 역할을 맡아했다.

  

그레타 가르보와 리다 보렐리. 영화배우로서 디바라는 호칭을 처음 들은 사람들이다.

 

오페라에서는 누가 디바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들었을까? 마리아 칼라스가 벨리니의 '노르마'에서 '정결한 여신'(Casta Diva)을 부르자 감격한 관중들이 '디바'라고 소리치며 모두 일어나서 박수를 보낸 것이 처음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언제 어디에서 '노르마'를 공연한 것인지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마리아 칼라스를 디바라고 부르는데 반대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관중들은 마리아 칼라스를 '라 디비나'(La Divina)라고 불렀다. 마리아 칼라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서 유명한 바리톤 티토 고비는 '칼라스는 영원불멸의 여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신과 같다는 의미였다. 마리아 칼라스는 실로 뛰어난 소프라노였다. 무거운 역할인 브륀힐데(니벨룽의 반지)로부터 가벼운 역할인 엘비라(청교도)에 이르기까지 소화하지 못하는 역할이 없었다.

 

역사상 최고의 오페라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

 

연극이나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오페라의 여주인공 중에서도 놀랍도록 대단한 감동을 주는 사람들을 디바라고 표현하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디바라는 호칭을 듣고 싶어했고 어떤 소프라노는 자기 스스로 디바라고 부르기도 했다. 디바라는 용어는 오페라계에서 하나의 유행어처럼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디바는 많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출연료를 가장 많이 받는 소프라노들 중에서 특별한 인물들을 디바라고 부르는 경향도 있었다. 오페라의 황금시기에서였다. 스웨덴 출신의 제니 린드(Jenny Lind)가 대표적이었다. 이밖에도 이탈리아의 주디타 파스타(Giuditta Pasta: 1797-1865), 이탈리아의 패니 살비니 도나텔리(Fanny Salvini-Donatelli: 1815-1891), 이탈리아인으로서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아델리나 패티(Adelina Patti: 1843-1919), 스웨덴의 비르기트 닐슨(Birgit Nilsson: 1918-2005), 헝가리의 에텔카 게르스터(Etelka Gerster: 1855-1928), 독일의 앙리에트 존타크(Henriette Sontag: 1806-1854) 등은 모두 높은 출연료를 받기도 하여서 디바라고 불려진 인물들이었다.

 

 

전설적인 디바 주디타 파스타와 아델리네 패티

 

제니 린드에 대하여 조금 더 설명하자면, 지금이야 제니 린드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평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제니 린드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미국 순회공연을 가졌을 때에는 입장료가 당시의 시세로서는 너무나 엄청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료를 사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줄을 섰었다. 그래서 신문들은 그런 열광적인 팬들을 '제니 린드 매니아'(Jenny Lind Mania)라고까지 표현했다. 제니 린드는 미국에서만 39회의 콘서트를 가졌다. 제니 린드가 받은 출연료는 모두 35만불이었다.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1천만불이나 되는 거액이었다. 제니 린드는 출연료로 받은 수입의 대부분을 자선활동에 사용했다. 그래서 제니 린드의 명예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널리 확산되었다. 제니 린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에 대한 기념 명판이 1894년에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 코너에 설치되었다. 성악가로서 그런 영광을 받은 경우는 제니 린드가 처음일 것이다.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제니 린드는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는 1840년부터 스웨덴 왕립음악원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스웨덴 정부는 스웨덴 화폐인 50 크로나에 앞 면에 제니 린드의 초상화를 넣어 그를 존경했다. 안톤 봘러슈타인은 1850년경에 '제니 린드 폴카'를 작곡했다. 폴카라는 춤곡은 폴란드가 오리진이라는 말이 있지만 스웨덴이 오리진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니 린드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들이 제작되었지만 그 중에서 1930년에 헐리우드가 만든 A Lady's Moral이 유명하다. 그레이스 무어가 제니 린드의 역을 맡았다. 1941년에는 독일에서 The Swedish Nightingale 이라는 뮤지컬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밖에도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지만 일일히 소개하기에는 지면에 한계가 있다. 세계의 여러 곳에 제니 린드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 만들어졌다. 캐나다의 '제니 린드 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 영국에는 제니 린드 어린이 병원등이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에도 제니 린드 예비군 병원이 있다. 미국에는 제니 린드의 이름을 딴 거리가 수두룩하다. 제니 린드의 이름을 붙인 교회도 있고 공원도 있다. 코네티커트에서는 제니 린드 경연대회가 열려서 가장 뛰어난 소프라노에게 제니 린드 상을 수여한다. 제니 린드는 진정한 디바였다.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고 불린 제니 린드.

 

미국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비벌리 실스(Beverly Sills: 1929-2007)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디바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디바라고 불렀지만 나중에는 신문이나 잡지, 방송 등 모든 미디어 매체들도 디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는 비벌리 실스에 대하여 '가장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가장 찬란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고 치하했다. 비벌리 실스는 무대에서 은퇴하여서 미국의 오페라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메트로폴리탄의 르네 플레밍(Renée Fleming: 1959-)을 디바라고 부르는데에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르네 플레밍은 미국의 수퍼 보울 경기에서 미국 국가를 부른 최초의 오페라 소프라노였다. 그런 르네 플레밍에 대하여 미국 언론은 '수퍼 디바'라고 표현했다. 르네 플레밍은 오바마 대통령의 첫 취임식에서도 미국 국가를 불렀다. 오바마 대통령은 르네 플레밍을 '진정한 미국의 자랑이며 미국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특별한 부류의 디바들도 있다. 예를 들면, 바로크의 디바는 안네 조피 폰 오터(Anne-Sofie von Otter), 디지틀 시대의 디바는 다니엘라 드 니세(Daniella de Niese), 최초의 크로스오버 디바는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 이 시대의 진정한 디바는 던 업쇼(Dawn Upshaw)이다.

 

 

뉴스위크지의 커버를 장식한 비벌리 실스와 르네 플레밍

                                       

1990년대에 들어와서 디바라는 용어는 비단 오페라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계의 여성으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특히 대중문화 분야에서 그랬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머리아어 캐리, 글로리아 에스테판, 휘트니 휴스턴, 셀리느 디온, 아레타 프랭클린, 샤니아 트웨인, 비욘세(Beyoncé) 등을 디바라고 불렀다. 한술 더 떠서 이들의 매니저들도 이들이야말로 디바라고 하면서 선전용으로 디바라는 말을 크게 내세웠다. 그러다가 어느때부터인가 디바라는 단어는 성질이 온화스럽지 못하거나 자기 고집이 세고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되었다. 예술가라고 하면 한 고집하는 성격이 별로 흠이 되지 않겠지만 지나치게 고집만 부리고 자기 생각만 하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면 곤란하다. 물론 자기의 분야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하기야 옛날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도 여신이라고 하는 디바들의 성격도 못 말리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과 출산의 여신인 주노(Juno)는 이니아스가 트로이를 떠나 로마를 세우려고 하자 그를 대단히 증오하였다. 주노는 트로이 사람들에 대하여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니아스도 증오하였다고 한다.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는 베를 짜는 경연대회에서 인간여인에게 패배할 것 같자 그 인간여인을 거미로 만들었다. 로마시대에는 이 세상과는 거리가 먼 저 세상의 여신이면서도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여신들을 디바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반드시 디바라고 해서 모두 훌륭하고 뛰어난 인물들은 아니라고 보아야겠다. 보통 사람들(특히 여인)과 마찬가지로 미워하고 질투하며 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머라이어 캐리. 현대의 대중문화에서 디바라고 불린다.

 

반면, 프리마 돈나(Prima donna)는 어떤 내력을 가진 용어일까? 뛰어난 감동을 주는 역할의 오페라 여주인공을 디바라고 하지만 프리마 돈나라는 용어도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오페라에서 디바는 반드시 소프라노일 필요가  없다. 메조소프라노, 콘트랄토도 디바가 될수 있다. 예를 들면 카르멘 또는 델릴라(생 상스의 '삼손과 델릴라'에서)이다. 카르멘과 델릴라의 역할은 전통적으로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 프리마 돈나의 남성 카운터파트는 프리모 우오모(Primo uomo)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 프리모 우오모라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디바는 뛰어난 음악적 및 연기적 재능으로서 관중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는 여주인공을 말하지만 프리마 돈나는 반드시 가장 중심되는 여주인공일 필요가 없다. 단역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는 역할이면 프리마 돈나라고 부를수 있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아주체나를 보면 알수 있다. 그리고 또한 반드시 무대 위의 주인공일 필요도 없다. 무대 뒤에서 모든 출연진을 감독하고 독려하는 역할의 스태프도 프리마 돈나라고 부를수 있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루나 백작의 병사들에게 체포된 아주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프리마 돈나라는 용어는 19세기 초반과 중반에 이탈리아에서 유행하였던 순회극단(코메디아 델라르테: Commedia dell'arte)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는 여인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어의 프리마 돈나를 번역한다면 '훠스트 레이디'(First lady)이다. 프리마 돈나는 순회극단의 공연에서 주로 여주인공을 맡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노래를 부르더라도 다른 출연자들보다 더 많이 부른다. 그러다 보니 박수도 더 받는다. 유명한 프리마 돈나들 사이에서는 라이발 의식 때문에 서로 공격하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당사자 프리마 돈나들은 친밀하게 지내는데 이들의 팬들이 서로 편을 짜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과거 한때 마리아 칼라스와 레나타 테발디의 팬들에 의한 라이발 의식이었다. 프리마 돈나 아솔루타(Prima donna assoluta: 절대적 프리마 돈나)라는 용어가 있다. 프리마 돈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악가들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프리마 돈나 아솔루타라는 호칭은 본인이 그렇게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그렇게 불러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누가 보더라도 수긍할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프리마 돈나 아솔루타로서는 마리아 칼라스, 레나타 테발디, 에디타 그루베로바, 조앤 서덜랜드, 레온타인 프라이스, 비벌리 실스, 비르기트 닐슨, 몽세라 카바예 등등을 들수 있다. 프리마 돈나들, 특히 프리마 돈나 아솔루타라고 인정받은 사람들은 겸손해야 하는데 종종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들은 무언지 계속 요구하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당당한 프리마 돈나 아솔루타인 몽세라 카바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