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팟푸리

이국적 배경의 오페라 - 동남아

정준극 2015. 12. 8. 21:39

OPERA POTPOURRI

이국적 배경의 오페라 총점검

 

중부 아시아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들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티베트

 

○ 인도 - 들리브의 <라크메>가 대표적

인도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이다. 그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대륙이다.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인도에 대하여 깊은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호기심은 오페라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인도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는 생각 외로 여러 편이 있다. <라크메>(레오 들리브), <아쇼카의 꿈>(피터 리버슨), <사비트리>(구스타브 홀스트), 그리고 <그림자 없는 부인>(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의 레오 들리브(Léo Delibes: 1836-1891)의 <라크메>(Lakme)는 무대가 19세기 중반의 인도이다. 인도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다. 라크메는 아름다운 인도 처녀의 이름이다. 브라만교의 고승인 닐라칸타의 딸이다. 브라만은 인도 4성 계급의 최상위로서 승려 계급을 말한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고 나서 브라만교를 밀교로 간주하여 금지하였다. 그러므로 브라만의 고승의 딸 라크메와 인도에 주둔하고 잇는 영국군 장교 제랄드의 사랑은 비극적인 내용을 간직하지 않을수 없다. <라크메>에는 오페라의 여성 듀엣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고 하는 Vien, Mallika, dome epais, le jasmin(보라, 말리카, 재스민으로 덮인 돔을)이 나온다. 라크메와 하녀 말리카가 부르는 듀엣으로 ‘꽃의 2중창’이라고 부르는 곡이다. 그것보다 더 유명하고 더 아름다운 곡도 나온다. 라크메가 시장거리에서 종을 딸랑거리면서 부르는 Ou va la jeune indoue(젊은 인도 여인은 어디로 갔는가?)이다.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 곡이다.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 중에서 가장 어려운 아리아의 하나라고 하는 것으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정수이다. ‘종의 노래’는 라크메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서 부르는 노래이다. 라크메의 아버지 닐라칸타는 시장에서 라크메가 노래를 부르면 문제의 영국군 장교가 노래를 듣고 나타날 것이므로 그때 누군지를 확실히 알아 두었다고 복수를 하려고 라크메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쁜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만은 아니다.

 

'라크메'의 시장 장면

 

뉴욕 출신의 피터 리버슨(Peter Lieberson: 1946-)의 <아쇼카의 꿈>(Ashoka's Dream)은 인도제국의 아쇼카 왕에 대한 스토리를 담은 오페라이다. 아쇼카 마우랴(Ashoka Maurya) 왕은 BC 3세기경 인도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국가를 이루 군주이다. 아쇼카는 인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의 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있다. 아쇼카의 제국은 현재 인도의 거의 전지역은 물론,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일부까지 세력을 뻗친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아쇼카는 무력에 의한 전쟁의 비참함을 깊이 통탄하여 불교를 융성하게 하며 비폭력을 진흥하고 윤리와 관용과 인내의 정치를 실현코자 했다. 그리하여 곳곳에 절을 지어 불교를 진흥하였으며 스리랑카, 태국, 버마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평화를 위한 그의 꿈은 이렇게 하여 실현되었다. 그러나 총애하던 왕비를 잃고 고독과 번민 속에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후에 아라한의 자리에 올랐다.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주의운동도 아쇼카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영국의 구스타브 홀스트(Gustav Holst: 1874-1934)의 오페라 <사비트리>(Savitri)는 힌두교 사상을 반영한 작품이다. 사비트리는 나무꾼 사티야반의 아내이다. 사비트리와 사티야반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인도 서사시집인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느날 사비트리는 죽음의 신이 사자를 시켜서 남편 사티야반을 데리러 오라는 소리를 듣는다. 사비트리는 절망에 빠진다. 그러자 남편 사티야반은 아내 사비트리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환상에 불과하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잠시후 과연 죽음의 사자가 사티야반을 데리러 나타난다. 사티야반은 몸에서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 그 자리에 쓰러진다. 사비트리는 절망 중에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서 죽음을 택한다. 죽음의 신은 사비트리의 지고의 사랑에 감동하여 사티야반을 세상에 되돌려 보내기로 한다. 잠시후 사티야반은 죽음에서 깨어난다. 죽음에서 깨어난 사티야반은 사랑하는 사비트리가 저 세상으로 간 것을 알고 ‘죽음은 환상이야’라고 말한다는 내용이다.

 

홀스트의 '사비트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부인>(Frau ohne Schatten)의 무대는 태평양에 있는 어떤 섬나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인도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는 아니다. 다만, 나중에 이 섬나라의 왕의 부인이 되는 여인이 인도에 있는 정령들의 왕 케이코바드의 딸이라는 인연이 있을 뿐이다. 어느날 이 섬나라의 왕이 매사냥을 갔다가 영양 한 마리를 잡아온다. 영양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했고 왕은 그 여인과 결혼한다. 왕비가 된 여인은 실은 정령들의 왕 케이코바드의 딸로서 그림자가 없다. 그래서 아이를 잉태할 수 없다. 케이코바드는 사신을 섬나라에 보내어 왕비가 열두 밤 안에 그림자를 얻지 못하면 정령의 나라로 다시 불러들일 것이며 섬나라의 왕은 돌로 변할 것이라고 전한다. 왕비는 다른 백성에게 깊은 상처를 주더라도 자기 그림자를 찾아야 한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이 허황된 꿈이라는 것을 알고 후회하는 것으로 막이 내려진다. 바그너 스타일의 라이트모티브가 무던히도 얽혀 있는 가운데 오케스트라는 계속해서 앞으로의 일을 암시하는 음악이다.

 

'그림자 없는 부인'. 취리히 오페라

 

쥘르 마스네의 <라호르의 왕>(Le roi de Lahore)도 인도가 배경이다. 라호르는 지금은 파키스탄 제2의 도시이며 펀자브지방의 주도이지만 예전에는 인도제국에 속해 있으면서도 독립왕국이었다. 그러다가 무슬림이 점령하게 되어 위대한 무굴제국의 수도로서 영화를 떨쳤던 고도이다. 그래서 <라호르의 왕>이라고 하니까 파키스탄이 배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오페라의 스토리가 진행될 당시에는 라호르가 인도에 속해 있는 독립왕국이었다. 이 오페라는 19세기초, 프랑스 사람들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팽배해 지고 있을 때에 나온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다. 동양의 신비성, 이국적인 장면, 기독교와는 거리가 있는 힌두교의 얘기 등이 얽혀있어서 흥미를 갖게 하는 작품이다. 라호르 왕국의 젊은 왕인 알림은 인드라 사원의 아름다운 여사제 시타와 사랑에 빠진다. 시타도 여사제로서 순결한 처녀로 살기로 서약했지만 알림 왕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억제할수 없다. 알림 왕의 수석 보좌관인 신디아 역시 아름다운 여사제 시타를 한번 보고 깊은 정념에 빠지게 된다. 알림 왕과 시타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신디아는 시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시타는 당연히 냉담하게 거절한다. 시타에 대한 신디아의 정념은 증오로 변한다. 신디아는 부하들과 함께 알림을 몰아내고 왕이 된다. 알림은 신디아와의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결국 시타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그러나 인드라 신이 알림을 불쌍하게 여겨서 세상으로 환생시켜준다. 알림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본 신디아는 백성들에게 알림은 유령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신디아로부터 결혼 협박을 이겨내지 못한 시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인드라 신은 알림과 시타가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해 알림을 다시 영혼으로 만든다. 알림과 시타는 인드라의 낙원에서 다시 만난다. <라호르의 왕>은 1877년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라호르의 왕'

 

○ 스리랑카(실론) - 비제의 <진주잡이>

오페라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남성 듀엣을 꼽아 보라고 하면 아마 비제(George Bizet: 1838-1875)의 오페라 <진주잡이>(Les pêcheurs de perles)에 나오는 테너-바리톤 듀엣인 ‘성스러운 사원에서’(Au fond du temple saint)일 것이다. 일명 ‘진주잡이의 듀엣’(The Fishermen's Duel)이라는 곡이다. 스리랑카(실론)의 어떤 어촌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추르가와 나디르 두 진주잡이 사나이가 한 여자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다. 비제의 <진주잡이>는 원래 무대를 멕시코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스리랑카로 바뀌게 되었다. 스리랑카는 예전에는 실론이라고 불렀다. 무대를 멕시코에서 실론으로 바꾼 것은 아마 유럽 사람들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부채질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오늘날 <진주잡이>는 중남부 아시아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 중에서 세계무대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되었다. <진주잡이>가 1863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을 때 비제는 겨우 25세의 청년이었다.

 

'진주잡이'

 

○ 티베트 - 리버슨의 <게사르 왕>

미국의 피터 리버슨(Peter Lieberson: 1946-2011)이 1991년에 완성했지만 2013년 9월에 가서야 캘리포니아의 롱비치에 있는 공원에서 초연을 가진 <게사르 왕>(King Gesar)은 티베트가 무대이다. 리버슨은 <게사르 왕>을 캠프화이어 오페라라고 불렀다. 야외에서 마치 캠프화이어를 둘러싸고 앉아서 공연을 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게사르 왕은 고대 티베트의 전설에 등장하는 용감한 전사이며 링(Ling) 왕국을 창시한 왕이다. 게사르는 이 세상에 악마와 마귀들이 권세를 잡고 인간들을 노예로 부리자 하늘나라에서 지상으로 내려와서 악마와 마귀들을 물리치고 서로 갈라져 있던 왕국들을 통일하여 티베트를 건국하고 왕이 되었다고 한다. 게사르 왕의 생애에 대한 대서사시는 티베트의 고전일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리버슨은 일찍부터 불교철학에 심휘하여 <아쇼카의 꿈>이라는 오페라를 만들어 불교철학의 오묘함을 널리 소개코자 하였다. <아쇼카의 꿈>에 이은 그의 두번째 불교 오페라가 <게사르 왕>이다.

 

'게사르 왕'

 

○ 버마 - 힌데미트의 <누슈 니쉬>

버마는 오늘날의 미얀마이다. 독일의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가 작곡한 <누슈 니쉬>(Nusch-Nischi)라는 오페라는 버마의 인형극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래서 부제목이 <버마 인형극>이다. 1921년 슈투트가르트의 란데스테아터에서 초연되었다. 누슈-니쉬는 무섭게 생기기도 하지만 우스꽝스럽게 생긴 괴물의 이름이다. 누슈-니쉬는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달리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런데 <누슈-니쉬>의 실제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라 차트와이라고 부르는 영주이다. 영주의 성에는 터키의 하렘과 같은 시설이 있어서 여러 젊은 여인들이 기거하고 있다. 차트와이 영주는 섹스에 대하여 만족을 모르는 인물이다. 그래서 섹스에 대한 여러 가지 민망스런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차트와이의 하인인 툼툼은 주인인 차트와이 영주가 너무나 섹스에 탐닉하기 때문에 결국 그를 떠나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해서 찾은 새주인이 와잉 장군이다. 그러나 와잉 장군의 운이 다하자 툼툼은 거세를 당할 운명에 처한다. 도대체 무슨 스토리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 오페라는 성악가들이 무용도 하며 꾸미는 무대이다.

 

'누슈누쉬'

 

파울 힌데미트는 푸치니 또는 에른스트 크레네크처럼 3부작을 만들었다. 첫번째가 <살인, 여자들의 희망>(Mörder, Hoffnung der Frauen: 1919)이며 두번째가 <누슈-니쉬>(1920)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성녀 수잔나>(Sancta Susanna: 1921)이다. 비록 3부작이라는 타이틀로 만들었지만 서로의 스토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면서도 3부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생각난 듯이 한 해에 한 편씩 작곡했으며 모두 단막으로 구성된 오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힌데미트의 3부작은 사회적인 변화가 급격하던 시절에 작곡된 것이다. 힌데미트 자신이 경험한 변화였다. 그는 이 시기를 ‘낡은 세계가 폭발한 시대’라고 규정하였으며 이 시기에 남아 있는 유일한 변화는 혼란이라고 말했다. <누슈 니쉬>도 그러한 맥락에서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