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팟푸리

이국적 배경의 오페라 - 북아프리카

정준극 2015. 12. 9. 08:14

여행의 계절 가을에 찾아보는 이국적 배경의 오페라

북아프리카의 이집트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들

유럽인들은 이집트도 동양으로 간주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여행을 떠나려면 아무래도 색다른 이국적인 문물과 정취를 느낄수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도 이국적인 배경의 오페라들을 소개한다. 18세기와 19세기의 유럽인들은 북아프리카도 중동과 마찬가지로 오리엔트로 보았다. 북아프리카의 나라들이 거의 모두 이슬람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동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북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서도 아무래도 이집트가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명으로 인하여 오페라의 배경으로서 가장 많이 등장한다.

 

<아이다>의 무대는 멤피스와 테베

오페라의 세계에서 이집트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이라고 하면 우선 베르디의 <아이다>가 생각난다. <아이다(Aïda)>는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서 작곡되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이다.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서 카이로에 케디비알 오페라 하우스가 건설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베르디가 <아이다>를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서 작곡한 것은 아니다. 이집트의 총독(케다이브)인 이스마일 파샤가 베르디에게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고 카이로 오페라극장의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서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부탁한 것은 맞지만 베르디는 ‘나는 무슨 기념일을 위해 작곡하지는 않습니다’라면서 수에즈 운하의 개통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에 보면 작곡가들이 국왕의 생일, 결혼기념일, 전승기념일, 세례기념일 등등을 위해 오페라를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베르디는 그런 허울 좋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하며 그런 요청이 들어오면 단번에 거절했다고 한다. <아이다>가 카이로 오페라극장의 개관기념으로 초연되었다는 얘기도 사실과 다르다. 원래는 그렇게 계획되었지만 마침 그 때 프랑스와 프러시아의 전쟁으로 파리로부터 <아이다>에 필요한 의상이나 배경 들을 가져올수 없어서 무기 연기되었고 대신 <리골레토>가 개관기념으로 공연되었다.

 

베르디가 이스마일 파샤의 부탁으로 <아이다>를 작곡하고 받은 작곡료는 15만 프랑이었다고 한다. 아마 역사상 가장 많은 액수의 오페라 작곡료인 듯 싶다. 15만 프랑을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베르디는 <아이다>의 작곡료를 받아 밀라노에 은퇴음악가들을 위한 양로원을 지었으며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더 이상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고향마을인 부세토로 돌아가서 마당이나 쓸며 지내겠다고 선언한 것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그건 그렇고, 베르디의 <아이다>는 187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카이로의 케디비알 오페라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베르디가 58세 때였다.

 

원래 아이다라는 말은 아랍어로서 ‘방문자(Visitor)’ 또는 ‘돌아온 사람’이라는 뜻이며 아랍소녀들의 이름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이다. 오페라 <아이다>의 시기는 대본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냥 고대 이집트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집트의 고대 왕국 시절(기원전 3천년 경)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대본에는 이집트의 왕을 파라오(바로)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집트의 신왕국 시절이 분명하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파라오라는 명칭은 이집트의 신왕국부터 사용되었다.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장소는 멤피스와 테베로 표현되어 있다. 멤피스는 고대에 남부 이집트를 차지한 이넵 헤지 왕국의 수도였다. 현재의 카이로 남쪽 약 20km에 있는 도시였다. 테베는 지중해로부터 남쪽으로 거의 8백 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오히려 홍해가 더 가까운 곳이다. 그렇게 먼 곳까지 스토리가 연결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이스라엘 '마사다'야외무대에서의 '아이다' 공연. 2011.

 

<마술피리>의 무대에는 이시스 신전이 등장

모차르트의 <마술피리(Die Zauberflöte)>의 무대가 이집트인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동화 속의 어느 왕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어떤 숲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원작에 따르면 타미노 왕자는 저 멀리 자바 섬에서 왔다고 되어 있다. 자바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이다. 그래서 혹시 <마술피리>의 배경을 자바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집트이다. 그러면 ‘밤의 여왕’은 어디서 온 사람인가? 또 그의 딸 파미나는 어느 지역 출신인가? 어떤 학자는 파미나가 힌두교의 여신인 데비의 딸이라는 주장을 했다. 한편, 자바에는 마술피리를 가지고 있는 압사라(천사)가 아름다운 공주를 구출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고 보면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는 모두 자바 출신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튼 자라스트로는 이집트 이시스 신전의 고승이다. 그래서 무대에 이집트 세팅이 많이 등장한다. 의상도 그렇고 소품들도 그러하다.

 

이시스 신전에서의 자라스트로 고승과 다른 승려들

 

<타이스>의 무대는 알렉산드리아

‘타이스의 명상곡(Méditation)’으로 유명한 마스네의 <타이스(Thaïs)>도 무대가 이집트이다. 타이스는 이집트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명했던 고급 창녀의 이름이다. 타이스는 늠름한 청년 아다나엘과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아다나엘이 환락의 생활을 벗어나서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승이 되자 타이스는 그런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환락과 정욕의 세계에 남아 있게 된다. 당시에 이집트는 비잔틴 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아다나엘은 비너스를 숭배하고 있는 타이스를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정성스런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타이스도 수도원에 들어가 수녀가 된다는 내용이다. <타이스>는 당시의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사회 풍조에 어울려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초연은 1894년 파리의 오페라 갸르니에(파리 오페라)에서였다. <타이스>는 소프라노 주역에게 대단한 성악적 테크닉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 공연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타이스'에서 아다나엘과 타이스. 스웨덴 요테보리 무대

 

이집트라고 하면 아무래도 역사상 최고의 미인이라는 클레오파트라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이와 함께 클레오파트라와 시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로맨스가 오페라의 테마로서 즐겨 사용되었다. 특히 ‘시저와 클레오파트라’라는 제목의 셰익스피어 희곡이 나와서 세계적으로 대단히 유명해지자 작곡가들은 너도나도 오페라로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것이 헨델의 <줄리오 케사레(Giulio Cesare)>이다. 1724년 런던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오리지널 타이틀은 <이집트의 줄리오 케사레(Giulio Cesare in Egitto)>이다.

 

'줄리오 케사레'. 메트. 클레오파트라에 나탈리 드사이, 케사레에 데이빗 다니엘스

 

<클레오파트라> 주제의 오페라는 나일강이 배경

이집트가 배경인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 이집트가 배경인 모세의 출애굽 이야기와 함게 오페라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출애급과 관련하여서는 로시니가 <이집트의 모세(Mose in Egitto)>라는 오페라를 작곡했고, 아놀드 쇤버그가 <모세와 아론(Moses und Aron)>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대표적인 오페라로는 헨델의 <줄리오 케사레(Giulio Cesare)>,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클레오파트라>, 쥘르 마스네의 <클레오파트라>, 칼 하인리히 그라운의 <세사레와 클레오파트라(Cesare e Cleopatra)>, 페르디난트 아우구스트 카우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Antonius und Cleopatra)>, 사무엘 바버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 헨리 킴벌 해들리의 <클레오파트라의 밤(Cleopatra's Night)> 등이 있고 그리고 오페레타로서는 오스카 슈트라우스의 <클레오파트라의 진주(Die Perle der Cleopatra)>가 있다. 모두 이국적인 이집트의 도시들과 나일 강을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이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역을 맡은 레온타인 프라이스

 

여러 작곡가들이 모세와 바로와 홍해를 다룬 출애굽(엑소도스)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오페라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로시니의 <이집트의 모세(Mosè in Egitto)>와 아놀드 쇤버그의 <모세와 아론(Moses und Aron)>이다. 로시니의 <이집트의 모세>는 1818년 나폴리의 산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로시니는 1827년에 이 오페라를 수정하고 제목도 <모세와 바로(Moïse et Pharaon)> 또는 <홍해를 건너서(Le passage de la Mer Rouge)>라고 바꾸었지만 오늘날에는 대체로 오리지널 타이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집트의 모세>에서 베이스인 모세가 부르는 Dal tuo stellato soglio(당신의 별이 반짝이는 보좌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감동적인 아리아이다. 이 노래는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과 모세의 형인 아론도 함께 부르는 곡이다.

 

'이집트의 모세'. 페사로

 

<모세와 아론>의 무대는 이집트 사막과 시내산

비엔나에서 태어난 아놀드 쇤버그는 유태인이었다. 나치의 핍박을 받아야 했다. 쇤버그는 나치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출애굽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쇤버그의 <모세와 아론>은 그의 생전에 완성된 공연을 가지지 못했다. 쇤버그는 1951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완성된 무대 공연은 1957년 취리히에서였다. 모세는 말솜씨가 어눌하여서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지만 아론은 능란한 말솜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론이 하나님에 대한 모세의 절대적인 인식을 백성들에게 거짓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말솜씨가 없음을 한탄할 뿐이었다. 일설에는 아론을 유태인 핍박을 위한 나치의 교묘한 선전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쇤버그는 특이하게도 13이라는 숫자를 지극히 기피하는 성격이었다. <모세와 아론>의 독일어 제목은 Moses und Aaron이다. 이 제목의 알파벳을 모두 합하면 13이 된다. 쇤버그는 13이 되는 것이 싫어서 Aaron을 Aron 이라고 적어서 알파벳의 합계가 12가 되도록 했다. 그래서 쇤버그의 <모세와 아론>의 독일어 타이틀은 Moses und Aron 이 되었다.

 

'모세와 아론'. 메트. 현대적 연출

 

<이집트의 요셉>의 무대는 멤피스

이밖에 이집트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로서는 프랑스의 에티엔느 메울의 <이집트의 요셉(Joseph en Égypte)>, 비제의 <쟈밀레(Djamileh)>, 라보의 <마루프(Maruf)>, 하이든의 <우연한 만남(L'incontro improvvisio)> 등이 있다. <이집트의 요셉>은 노예였다가 파라오의 신임을 얻어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에 대한 이야기이다.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인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지만 파라오의 꿈을 정확하게 해석해 주어서 신임을 얻어 총리대신이 되고 이름도 클레오파스(Cleophas)로 바꾼다. 요셉은 7년의 풍년을 통해 곡식을 비축하여 7년의 기근에 대비하였다. 그 지경에 이스라엘에서도 대기근이 들어 야곱의 가족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야곱의 아들들이 곡식을 구하러 애급으로 간다. 요셉의 형제들은 멤피스에 있는 요셉의 궁전을 찾아간다. 형제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다. 요셉은 형제들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놀라지만 일부러 내색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 야곱은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여서 노예로 팔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고 너무나 참담하여서 어찌할줄 모르다가 요셉을 판 아들들을 모두 내치기로 결심한다. 그때 총리대신 요셉이 야곱을 찾아와서 형제들이 어쩔수 없이 그런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 자비를 베풀라고 간청한다. 이어 요셉은 비로소 자기가 바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라고 밝히고 파라오가 모두를 흉년이 지날 때까지 애급에서 지낼 것을 허락했다고 말한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이집트의 요셉>은 1807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쟈밀레>의 무대는 카이로

비제는 <진주잡이>에 이어 <쟈밀레>(Djamileh)로서 동양에 대한 애정을 다시한번 표현하였다. 무대는 이집트(어떤 버전에는 터키로 되어있다)이다. 하렘이 나오고 아름다운 여자 노예들의 춤이 나온다. 여기에 비제 특유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넘친다. <쟈밀레>는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은 파리에서만 잠시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었다. 하렘과 여자노예, 인신매매와 같은 내용이 나오므로 당시의 도덕기준으로는 곤란했으며 자녀교육에도 좋지 않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사후 1백여년이 지난 오늘날 쟈밀레는 음악적으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 이야기는 카이로를 통치하고 있는 하룬과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자 노예 쟈밀레의 사랑에 대한 것이다. <쟈밀레>는 1872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쟈밀레'의 무대. 피츠버그

 

<마르푸>의 무대도 카이로

프랑스의 앙리 라보의 <카이로의 구두장이 마루프(Mâruf, savetier du Caire)>는 1차 대전이 일어난 해인 1914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라보는 <마루프>에서 동양적인 멜로디를 최대로 사용했다. 카이로의 공처가로 유명한 마루프는 마누라의 구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뱃사람들과 함께 저 멀리 키아탄이라는 곳으로 떠난다. 마루프는 키아탄에서 대상들의 물건이 오기를 기다리는 부자 상인의 행세를 한다. 키아탄의 술탄은 마루프에게 호감을 가져서 공주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마루프는 거짓이 들통이 나서 도망가야 했다. 어느덧 마루프를 사랑하게 된 공주가 그를 따라온다. 마법사가 마루프의 소원을 들어주어서 마루프가 큰 부자가 되도록 해준다. 술탄은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공주와 마루프의 결혼을 허락하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준다.

 

'카이로의 구두장이 마루프'의 무대

 

<우연한 만남>의 무대도 카이로

<우연한 만남>은 하이든이 합스부르크의 밀라노 총독인 페르디난트 대공을 위해 작곡한 코믹 오페라이다. 1775년 헝가리 훼르퇴드에 있는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당시 비엔나에서 유행하던 터키 주제의 내용이어서 사랑을 받았다. 음악과 스타일은 터키 풍이지만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의 술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술탄이 사랑하는 여인이 페르시아의 레지아 공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라고 볼수는 없으며 다만 그저 동양에 대한 호기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이든은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였는데 그런 입장에서 이교도의 이야기, 그것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하렘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예외적인 일이었다. 레지아는 페르시아의 공주이다. 어찌하다가 잘못되어서 술탄의 하렘에 들어오게 된다. 레지아는 이집트의 술탄이 하렘의 여인 중에서 가장 총애하는 여인이 된다. 술탄은 레지아가 페르시아의 공주인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알리라고 하는 애인이 나타나서 도망가려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 현상금을 걸고 체포코자 한다. 그러나 술탄은 레지아에 대한 알리의 사랑이 진실된 것임을 알고 알리를 용서하고 축복을 내려 준다는 내용이다.

 

에스터하지 궁전 극장에서의 '우연한 만남' 무대 스케치

 

<주디타>의 무대는 모로코

프란츠 레하르의 마지막 대작인 '주디타'는 첫번째 막의 배경의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어떤 항구마을이지만 2막의 배경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이다. 주디타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딧의 이탈리아어 표현으로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을 침공한 적장의 목을 베어오는 용감한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오페라에서는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항구에 임시로 주둔하고 있는 스페인 군부대는 다음날 아침 모로코로 파견될 예정이다. 옥타비오 대위는 불행한 결혼생활에서 탈피하고 싶은 주디타와 함께 마침내 모로코로 가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날 안토니오 대위는 남부지역의 반란을 토벌하기 위해 떠나면서 동료인 안토니오 중위에게 주디타를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안토니오는 평소에 주디타를 마음에 두고 있어서 주디타에게 옥타비오를 잊고 자기와 새 생활을 시작하자고 유혹한다. 전투에 나간 옥타비오는 주디타에게 어서 돌아가고 싶지만 군인이라서 어찌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에 주디타는 모로코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나가서 노래와 춤을 춘다. 주디타는 스타가 된다. 영국의 귀족인 배리무어가 주디타에게 접근한다. 그 장면을 마침 전투에서 돌아온 옥타비오가 목격한다. 옥타비오는 주디타에게 '배신자, 창녀'라고 하면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심하게 모욕한다. 그리고 얼마후 옥타비오는 차가운 바람처럼 주디타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아무튼 이 오페레(또는 오페레타)에서는 이국적인 모로코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흥미를 준다.

 

스페인 외인부대의 옥타비오 대위와 춤추고 노래하는 여인 주디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