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팟푸리

한여름의 오페라 향연

정준극 2016. 1. 1. 12:05

한여름의 오페라 향연 - 한여름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 종합점검

브리튼의 ‘한여름 밤의 꿈’과 티페트의 ‘한여름 밤의 결혼’

거슈인의 ‘포기와 베스’와 브리튼의 ‘베니스에서의 죽음’도 한여름이 무대

 

어느덧 한여름이다. Opera Potpourri의 제목을 ‘한여름의 오페라 향연’이라고 붙여 보았다. 그러다보니 ‘혹시 경복궁 근정전 앞이나 그렇지 않으면 시청앞 광장에 무대를 마련하고 야간에 오페라를 공연하나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또는 ‘아마 비엔나의 한여름 밤처럼 라트하우스(시청)앞 광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오페라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 한여름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로서는 대충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짚어 보자는 것이다. 다만, 한여름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들은 스탠다드 레퍼토리에 속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소할지 몰라서 미안할 뿐이다. 한여름이라고 하면 얼른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 중에서 ‘활슈타프’,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함께 가장 유명한 코미디이다. 실제로 ‘한여름 밤의 꿈’ 연극을 본 사람들은 내용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죽을 뻔했다고들 말할 정도였다. 여러 작곡가들이 그런 재미있는 희곡을 오페라로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리해도 원작의 코믹한 내용을 음악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던지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는 중에 영국의 벤자민 브리튼이 3막의 오페라로 만들어서 그나마 영국인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브리튼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오리지널을 비교적 충실히 다룬 것이다.

 

'한여름 밤의 꿈'의 한 장면. 로마 오페라.

 

돌이켜보면 1692년에 헨리 퍼셀이 ‘한여름 밤의 꿈’을 바탕으로 ‘요정 여왕’(The Fairy Queen)이라는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실은 ‘한여름 밤의 꿈’에서 일부 내용만을 추려서 오페라로 만든 것이어서 전체적인 내용을 오페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60년 벤자민 브리튼이 전편의 내용을 압축하여 3막의 오페라로 만들고 6월 11일 한여름의 알드버러 페스티발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그나마 영국인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브리튼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오리지널을 비교적 충실히 다룬 것이다. 대본은 브리튼 자신과 브리튼의 40년 파트너인 테너 피터 피어스가 공동으로 작성했다. 피터 피어스는 브리튼과 개인적으로 그리고 음악적으로 오랜 파트너였다. 브리튼은 피터 피어스를 위해 오페라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피터 피어스에게 주인공 역할을 맡기지 않았다. 다만, 플류트/티스베라는 단역을 맡도록 했을 뿐이어서 화제가 되었다. 알드버러 페스티벌의 초연에서는 브리튼 자신이 지휘를 맡았다. 브리튼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은 초연 이래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그래서 2차 대전 이후에 영국에서 작곡된 오페라로서는 가장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요정 여왕'. 글린드본 페스티발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하면 멘델스존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멘델스존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서 너무 재미나서 우선 서곡을 작곡했다. 나중에 누가 연극을 공연하던지 서곡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그러는 중에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왕자가 자기의 생일 기념으로 그 연극을 공연하게 되자 멘델스존에게 그 연극에 알맞는 다른 음악들도 작곡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이 완성되었다.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3막에 나오는 결혼행진곡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연극 중에 또 다른 연극이 공연되는데 아테네 공작 테세우스와 아마존스 여왕 히폴리타의 결혼식이 거행되는 장면이다. 이때 저 유명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이 연주된다. 오늘날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은 신랑신부가 결혼서약을 마치고 부부로서의 첫 걸음을 걸해 나갈 때 연주되는 곡이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곡이다. 그건 그렇고, ‘한여름 밤의 꿈’에서 ‘한여름 밤’이라는 것은 매년 6월 23일을 전후한 성요한축제의 바로 전날 밤을 말한다. 하지제의 전날밤이기도 한 이 날은 원래 악마를 쫓아내기 위한 이교도의 의식이 행하여지는 밤이었다.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하지제의 전날 밤에 괴이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전설이 있었다. 특히 신들이 광적인 파티를 열고 짝을 찾는 일도 바로 이날 밤에 열렸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이 연극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해주지만 출연자의 하나인 퍼크가 말한 대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내용이다.

 

'한여름 밤의 꿈'. 캐나디언 오페라 그룹

 

벤자민 브리튼의 또 다른 오페라인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도 한여름이 배경이다.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베니스의 해변이 무대이다. 브리튼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토마스 만의 소설을 바탕으로 삼은 오페라이다. 브리튼이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부터였다. 브리튼은 테너 피터 피어스와 마치 인생의 반려자처럼 상당기간 동안 함께 지냈다. 사람들은 브리튼과 피어스가 동성연애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저 친구로서 각별하게 지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브리튼과 피어스의 관계는 일반적인 친구사이보다는 한층 격상된 것이었다.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Der Tod in der Venedig)도 따지고 보면 두 남자의 동성연애적인 스토리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브리튼으로서도 이 소설에 아주 특별한 관심을 갖고 오페라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이다. 다만, 브리튼과 피어스의 관계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한 사람은 나이가 많은 중년의 작가이고 상대방은 10대의 소년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그러던 차에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오페라로 만들 것을 권고했고 특히 토마스 만의 아들인 골로 만(Golo Mann)이 적극적이었다. 브리튼은 작곡에 착수했다.

 

브리튼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그런데 미국의 워너 브러더스사가 1971년에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영화로 만들었다. 주인공 작가인 폰 아셰바흐의 역할을 다크 보가드가 맡은 영화였다. 영화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브리튼에게 영화를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영화가 오페라의 작곡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영화를 본 브리튼의 친구들은 소년 타지오와 중년의 폰 아셴바흐의 관계가 지나치게 센티멘탈하고 심지어는 외설적이기까지 하다면서 브리튼의 오페라는 저런 방향으로 나아가사는 안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무튼 브리튼은 영화 때문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타지오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 까지도 모두 노래는 물론 대화도 하지 않는 댄서들로 캐스팅했다. 그래서 타지오는 물론이고 그의 어머니와 두 딸들과 타지오의 친구조차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댄서들로 설정했다. 하지만 오페라의 전편을 통해서 베니스의 뜨거운 해변을 느낄수 있으며 또한 열정적인 중년의 작가와 미소년의 에로틱한 심정을 살펴볼수 있다.

 

영국의 마리클 티페트가 ‘한여름의 결혼’(A Midsummer Marriage)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 있다. 1953년 코벤트 가든에서 초연되었다. 타이틀이 ‘한여름의 결혼’이어서 혹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과 관련이 있지 않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다. 오히려 오페라를 보고 나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연상하게 된다. ‘마술피리’에서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가 여러 시련을 거친 후에 사랑을 완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여름의 결혼’에서는 마크와 제니퍼가 여러 시련을 겪은 후에 사랑을 완성한다. ‘한여름의 결혼’에는 특별한 아리아가 나오지는 않지만 사원에서 제사를 지낼 때의 춤곡은 유명하여서 콘서트의 레퍼터리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성실한 마크는 예쁘고 착한 제니퍼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이지만 제니퍼의 아버지 킹 피셔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기 때문에 걱정이다. 마침내 마크와 제니퍼는 두 사람만이 어느 여름날 동이 틀 무렵 산속의 사원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린후 이어 멀리 떠난다는 계획을 세운다. 사원의 무희들이 이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춤을 춘다. 어떻게 알았는지 제니퍼의 아버니 킹 피셔가 여비서 벨라와 함께 찾아온다. 킹 피셔는 사원의 문을 열려고 하지만 도무지 열리지 않는다. 사원 안으로부터 문을 열려고 하면 재앙이 올 것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사원의 계단 위에 제니퍼가 등장한다. 제니퍼는 계단의 아래에 있는 마크와 서로 영적인 경험을 하나하나 얘기한다. 사원에 들어가지 못한 킹 피셔는 보이지 않는 힘에게 도전한다. 킹 피셔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의 베일을 벗겨보려고 애쓰지만 헛수고이다. 이어 마크와 제니퍼가 연꽃 가운데서 모습을 보인다. 세속의 모습들이 아니다. 킹 피셔는 마크를 죽이려 하지만 마크로부터 나오는 눈부신 빛 때문에 눈이 멀게 되어 실패한다. ‘한여름의 결혼’에는 네 편의 무용이 핵심을 이룬다. 사계절의 표현하는 무용이다. ‘가을의 대지’, ‘겨울의 물’, ‘봄의 공기’ 그리고 ‘여름의 불’이다. 이 무용들은 남성과 여성간의 대립을 의미한다. 아무튼 그래서 이 오페라는 오페라라기보다는 한 편의 무용극을 보는 듯하다.

 

마이클 티페트의 '한여름의 결혼'의 환상적인 무대

 

조지 거슈인의 ‘포기와 베스’도 한여름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이다. 미국 남부의 후덥지근한 여름이 무대를 뒤덮고 있는 오페라이다. ‘포기와 베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오페라이다. 그만큼 미국적이다. 음악학자들은 이 오페라를 민속오페라(Folk Opera)라고 분류하기도 했다. ‘포기와 베스’는 타이틀에서 볼수 있듯이 주인공이 포기와 베스이다. 포기라고 하니까 무얼 포기한다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 오페라에 나오는 불구자 걸인의 이름이 포기(Porgy)이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소프라노 아리아인 ‘서머타임’이다. 그런데 이 아리아는 주인공인 베스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단역에 불과한 클라라가 아기를 재우면서 부르는 자장가이다. 클라라는 어부 제이크의 젊은 아내로서 오페라에서 특별한 역할은 없다. 이 오페라는 출연자가 모두 흑인이다. 무대는 미국 사우드 캐럴라이나 주의 해안마을인 캣피쉬 로우(Catfish Row)로 되어 있다. 이렇듯 오페라에서는 캣피쉬 로우라는 마을이 무대이지만 원래는 챨스턴 인근에 있는 캐비지 로우가 무대라고 한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들의 가사는 작곡자인 조지 거슈인의 형인 아이라 거슈인이 썼다. 하지만 가사에는 미국 흑인들의 슬랭이 많이 사용되어서 알아듣기가 어려울 경우도 있다. 전 3막의 ‘포기와 베스’는 1935년 9월 남부가 아닌 북부 보스턴의 콜로니얼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거슈인의 '포기와 베스'의 무대. 메트로폴리탄. 모두 흑인들만 출연한다.

 

쿠르트 봐일의 ‘거리풍경’(스트리트 신)도 무더운 한여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만일 이 오페라에서 찌는 듯한 여름밤이 배경으로 설정되지 않았다면 그만큼 흥미도 반감했을 것이다. 때는 1946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며 이야기는 맨해튼의 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어떤 아파트의 계단에서 시작된다. 무더위를 피해서 아파트의 계단에 웅기중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모두 셋집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리풍경’은 보통 사람들의 로맨스와 남에 대한 말을 좋아하는 이웃들의 가십과 서로간의 시시한 말다툼을 그리고 있지만 주인공인 모랑씨네 가정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폭력적인 비극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거리풍경’은 미국의 극작가인 엘머 라이스의 동명 희곡을 쿠르트 봐일 자신이 대본을 쓴 브로드웨이 뮤지컬,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메리칸 오페라(American Opera)이다. 노래가사는 주로 미국의 시인 겸 극작가인 랭스턴 휴스가 썼다. 쿠르트 봐일 자신은 ‘거리풍경’을 ‘브로드웨이 오페라’라고도 불렀다. 새로운 용어이다. 그는 ‘거리풍경’을 유럽의 전통적인 오페라와 미국의 뮤지컬 극장(Musical Theater)을 합성한 것으로 보고 그런 이름을 붙였다. ‘거리풍경’은 1947년 브로드웨이 초연이 있은 후에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 분야에서 토니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풍경’은 또 다시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 된 일이 없다. 하지만 일반 오페라단이 브로드웨이 이외의 지역에서 자주 공연하였다. ‘거리풍경’은 음악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드라마틱한 면에서 봐일의 ‘서푼짜리 오페라’(Threepenny Opera: 1928)와 번슈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57)의 중간쯤에 오는 작품이다.

 

쿠르트 봐일의 '거리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