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가 전하는 전쟁의 교훈
<전쟁과 평화> <평화의 날> <고요한 밤>이 전하는 메시지
2015년은 6.25 전쟁 65주년, 2차 대전 종전 70주년, 대한민국 해방 70주년의 뜻 깊은 해
우리나라의 6월은 공산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참혹했던 6.25 전쟁을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그리고 2015년은 어느덧 6.25 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가 되었다. 2015년은 2차 대전이 종전을 맞이한지도 어언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지 70주년을 기록하는 해이다. 전쟁은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해 주었는가? 그러한 메시지는 오페라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전쟁을 소재로 삼았거나 전쟁이 배경이 되는 오페라들로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본다.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 원작의 <전쟁과 평화>
가장 대표적인 전쟁 오페라는 러시아의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가 작곡한 <전쟁과 평화>(Voyna y Mir)일 것이다.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원작을 바탕으로 삼은 오페라이다. <전쟁과 평화>는 1812년에 나폴레옹군이 제정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점령했다가 퇴각할 때에 제정러시아군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배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어찌하여 제목이 ‘평화와 전쟁’이 아니고 ‘전쟁과 평화’일까? 아마도 전쟁을 겪은 후에야 평화를 얻을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전쟁과 평화>를 2차 대전이 포문을 연 1941년에 착수하여 종전이 된지 7년 후인 1952년에 완성했다.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완성된 오페라이다. 2차대전후 러시아는 스탈린의 전제정치가 시작되었다. 스탈린은 연극이나 오페라가 사회주의 공산혁명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규정지었다. 더구나 당시 공산 소련은 제정러시아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나 연극의 무대를 무조건 금지하였다. 백성들이 제정러시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오페라 <전쟁과 평화>는 오케스트라 파트가 미완성인채 1944년 모스크바에서 피아노 반주로만 초연 아닌 초연을 가졌다. 그러다가 1946년에야 무대 배경과 함께 겨우 공연될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풀 스케일 공연은 1959년이었다. 오페라 <전쟁과 평화>가 처음 완성된 때로부터 17년만의 일이었다. 피날레에서의 대전투 장면은 그랜드 오페라의 전형이었다. ‘전쟁과 평화’는 여러 나라에서 영화로 만들었지만 그 중에서 아직도 고전으로 남아 있는 것은 오드리 헵번(나타샤), 멜 화라(안드레이), 헨리 폰다(피에르)가 주연한 1956년의 영화이다.
프로코피에프의 '전쟁과 평화'에서 나타샤(안나 네트렙코)와 안드레이(드미트리 흐보로스토브스키)
전쟁의 무의미함을 비유한 <평화의 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평화의 날>(Friedenstag)은 유럽 전체가 30년 전쟁(1618-1648)으로 힘들어 했던 때의 마지막 날을 그린 작품이다. 30년 전쟁은 잘 아는대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국가들 간의 전쟁이었다. 오페라 <평화의 날>의 시기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648년 10월의 어느 날로 되어 있다. 장소는 개신교 군대의 공격을 받고 있는 독일의 어떤 작은 요새 마을이다. 당시에 독일은 거의 모든 지역이 개신교였지만 간혹 로마 가톨릭을 고수하고 있는 지역들도 더러 있었다. <평화의 날>은 나치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한 해인 1938년에 뮌헨에서 처음 공연을 가졌다. 그후 이 오페라는 나치의 압박을 받아서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한 리바이벌 되지 못하였다. 종전 후의 첫 리바이벌은 1960년 역시 뮌헨에서였다.
'평화의 날'. 카이저라우템 무대
‘30년 전쟁’은 누가 보던지 특별한 명분도 없이 인명을 포함한 막대한 손실을 감당해야 했던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히틀러의 나치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30년 전쟁’에 비유하여 <평화의 날>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페라 <평화의 날>은 기본적으로 평화에 대한 찬가이다. 아울러 히틀러의 제3제국에 대한 비평도 은연중 표현되어 있다. 가톨릭 군대가 지키고 있는 요새는 개신교 군대의 공성으로 식량이 고갈되고 전염병까지 돌아서 도저히 적의 공격을 막아낼 힘이 없다. 요새의 사령관은 그렇다고 항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생각이다. 사령관은 개신교 군대가 마침내 마지막 공격을 감행할 것을 감지하고 요새가 함락될 때에는 모두가 자폭할 생각으로 폭탄을 있는 대로 모아서 요소요소에 설치한다. 그런데 공격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개신교 군대가 돌연 꽃과 백기를 들고 환희의 함성을 지르면서 다가온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이다. 사령관은 도저히 믿을수가 없어서 마지막 전투를 하려고 할 때에 사령관의 부인인 마리아가 앞을 가로 막으면서 평화가 왔는데 왜 그러냐고 말한다. 가톨릭군의 사령관과 개신교군의 사령관은 마침내 서로 포옹하며 평화의 날을 축하한다. 오페라는 평화와 화해를 축하하는 합창으로 막을 내린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평화의 날'. 드레스덴 젬퍼오퍼
전쟁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고요한 밤>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던 2005년도 프랑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Joyeux Noël)가 오페라로 만들어져서 새로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피바디음악원 교수인 케빈 푸츠(Kevin Puts: 1972-)가 작곡한 오페라 <고요한 밤>(Silent Night)이다. 이 작품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전쟁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는 케빈 푸츠교수의 첫 오페라이지만 그는 이 작품으로 201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영화에서 이미 소개된 대로 1914년 1차 대전 당시 서로 대치하고 있는 영국군, 독일군, 프랑스군이 크리스마스 휴전을 가져 전쟁의 포화에 시달려야 했던 현실에서 잠시 도피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본을 쓴 마크 캠벨은 이 오페라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쟁이란 당신이 당신의 적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생각할 때에 더 이상 계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요한 밤>은 2011년 11월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에서 세계 초연을 가졌다.
'사일렌트 나이트'에서 안나와 니콜라스
시기는 1914년 12월 24일과 12월 25일이며 장소는 프랑스 국경에서 가까운 벨기에의 어떤 전선이다. 프랑스군과 스코틀랜드군(영국군)이 독일군의 벙커 진지를 점령하려고 돌격하지만 독일군의 기관총 때문에 공연히 전사자만 생기고 물러난다. 이런 전투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계속된다. 세 진지의 중간지대는 그야말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무인지대이다. 12월 24일 늦은 오후이다. 스코틀랜드 진지에서 구슬픈 백파이프 소리가 흘러나온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독일 진지의 병사들이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부른다. 프랑스 병사들이 포도주를 들고 나와서 다른 진지의 병사들에게 권한다. 마침내 세 진지의 지휘관들이 만나서 크리스마스 이브 하루만은 휴전하자고 합의한다. 세 진지의 병사들은 모두 무인지대로 나와서 축구도 하고 체스도 두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서로 선물도 교환하고 포도주로 건배를 나눈다.
한밤 중에 독일 진지의 니콜라스 병사가 무인지대로 나와서 ‘고요한 밤’을 부른다. 베를린에서 온 니콜라스의 약혼자인 소프라노 안나도 함께 캐롤을 부른다. 크리스마스의 기분이 충만하다. 다음날 아침이다. 크리스마스 날이다. 세 진지의 지휘관들은 다시 만나서 오늘 하루만은 전사자들의 장례도 치루어야 하기 때문에 휴전하자고 합의한다. 각각 장례식을 치룬 병사들은 이어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막을 내린다. 세 군대의 사령부에서 전선의 병사들이 휴전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여 징계코자 한다. 각 진지는 다시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전투를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사일렌트 나이트'의 다이안느 크루거
불필요한 약속을 그린 <입다의 서약>
이밖에도 전쟁 장면이 나오는 오페라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모차르트의 <크레테 왕 이도메네오>(Idomeneo, re di Crete)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에서 가장 고귀하며 영웅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이 배경으로 되어 있다. 1781년 뮌헨에서 초연되었다. 자코모 마이에르베르의 대작 <입다의 서약>(Jephtas Gelübde)은 구약성경 사사기(판관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사사(판관) 입다에 대한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외적인 에브라임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입다가 이끄는 이스라엘군과 에브라임 군대가 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손을 들어준 이스라엘 군대가 큰 승리를 거둔다. 베르디의 작품 중에는 전투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아이다>에서는 비록 실제적인 전투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라다메스가 이끄는 이집트군과 아모나스로 왕이 이끄는 에티오피아군이 전투를 벌이지만 이집트 군이 승리를 거둔다. 베르디의 <맥베스>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 폭군 맥베스에 항거하는 군대가 영국과 스코틀랜드 국경 인근에서 전투를 벌인다.
'입다의 서약'. 비엔나 페스티발 2015
구국 소녀 잔다크의 이야기
베르디의 <오텔로>에서는 오텔로가 지중해에서 터키의 해적들을 소탕하는 해전을 벌이지만 실제로 무대에서는 그런 전투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오텔로의 승전귀환을 환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베르디의 <아틸라>에서도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 병사들이 로마제국을 침공하지만 실제로 전투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베르디의 <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I lombardi alla prima crociata)에서는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키 위해 롬바르디인들로 구성된 십자군이 터키군과 전투를 벌이지만 실제로 전투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베르디의 <운명의 힘>에서는 스페인군과 이탈리아군의 전투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돈 알바로를 찾아 나선 돈 카를로는 얼마후 우연히 함께 스페인군에 입대하지만 서로의 신분은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돈 알바로가 돈 카를로를 전투 중에 죽음에서 구해준다. 원수가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고 돈다. 베르디의 <조반나 다르코>(Giovanna d'Arco)는 프랑스의 구국 소녀 잔다크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반나 다르코>는 프랑스군을 독려하여 영국군을 물리치고 프랑스 왕인 샤를르 7세의 대관식을 갖도록 하지만 다시 전투에 참가했다가 전사한다는 내용이다. 잔다크에 대한 오페라는 차이코브스키가 작곡한 <오를레앙의 처녀>(Maid of Orleans)도 있다. <오를레앙의 처녀>에서는 마지막에 이오안나(잔다크)가 영국군에 잡혀서 마녀로 낙인이 찍혀 화형을 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베르디의 '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 피아첸자 시립극장
벨리니의 오페라에서도 전쟁 장면을 엿볼수 있다. <노르마>에서는 갈리아를 정복한 로마군과 원주민인 켈트족간의 갈등이 그려져 있다. 벨리니의 <청교도>(I puritani)는 17세기 영국의 내전 당시 청교도들과 왕당파간의 전투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로시니의 <탄크레디>는 11세기 도시국가인 시라큐스와 사라센간의 전쟁이 배경이다. 구노의 <파우스트>에는 유명한 ‘병사들의 합창’이 나온다. 시기는 16세기이며 무대는 독일이다. 전쟁터에 나갔던 병사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경쾌한 합창곡이다. 그러나 누구와 전쟁을 하러 출전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브라질 출신의 안토니오 카를로스 고메스가 작곡한 <일 과라니>(Il Guarani)에서는 파라과이 원주민인 과라니 족과 포르투갈 정복자간의 전투가 벌어진다. 시기는 16세기이며 무대는 리오 데 자네이로 부근의 파라과이 강변이다.
벨리니의 '노르마'.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
전쟁의 코믹하게 그린 오페레타들
헝가리의 졸탄 코다이가 작곡한 오페라 <하리 야노스>(Harry Janos)에서는 헝가리 출신의 노병 하리가 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하여 모험적인 혁혁한 전공을 세우는 바람에 오스트리아제국의 프란시스 1세 황제로부터 치하를 받는다는 얘기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집시 남작>은 18세기 오스트리아제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이 배경이다. 당시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하여 있던 헝가리에서 젊은 바린카이가 명예를 위해 전쟁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우는 바람에 남작의 작위를 받았으며 고향에 돌아와서 터키 파샤의 딸인 자피와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집시 남작>은 오스트리아-스페인간의 전쟁이 배경이지만 무대에서는 전투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하리 야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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