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팟푸리

오페라에서의 10대 히로인들

정준극 2015. 12. 30. 22:06

OPERA POTPOURRI

10대의 오페라의 히로인들

줄리엣과 초초상과 루치아는 모두 10대의 여인

 

비극을 불러온 오페라의 어린 여주인공들

비극으로 스토리를 마무리한 오페라의 여주인공들 중에는 의외로 10대의 어리다면 어린 소녀들이 다수 있다. 일찍부터 사랑에 눈을 떠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사랑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극으로 삶은 마감하는 여인들이다. 하기야 10대의 소녀라고 해서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으로 보면 민망스러운 일이다. 어떤 여인들인지 일부만 짚어 보았다.

 

줄리엣은 14세에 로미오와 비밀결혼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비극의 여인 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경우는 줄리엣일 것이다. 로미오와 함께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여 죽음을 택한 줄리엣이다. 줄리엣은 과연 몇 살이었을까?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의하면 14세였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우연히 만난 때에 줄리엣의 나이는 13세였으나 얼마후 로미오가 줄리엣의 14세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무도회에 참석하였으니 줄리엣의 나이가 14세인 것은 틀림없는 사항이다. 14세라고 하면 우리 식으로 중학교 1학년에 2학년에 불과한 어린 소녀이다. 그런데 그런 줄리엣이 로미오와 깊은 사랑에 빠지고 결국은 로미오가 자기 때문에 죽은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놀라운 일이다. 줄리엣은 로미오와 비록 비밀이지만 결혼식까지 올렸다. 13세를 지나 겨우 14세가 된 줄리엣으로서 결혼해서 남의 부인이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이른 것이 아닌가?

 

줄리엣의 아버지는 줄리엣의 14세 생일 파티에 참석한 부유한 파리스 백작에게 줄리엣과의 결혼을 약조한다. 다만 한두해만 기다려 주면 결혼식을 올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으로 보아 당시 줄리엣이 결혼 적령기에 들어가긴 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너무 어린 줄리엣을 파리스 백작과 같은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보내고 싶은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완성한 것은 1595년 경이라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조기결혼이 유행이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14세의 소녀를 결혼시키겠다고 하였으니 아버지로서 일단은 조급한 결단이 아닐지 모르겠다.

 

셰익스피어가 줄리엣의 나이를 일부러 어리게 설정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나이는 더 많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왜 줄리엣의 나이를 낮추었을까? 어떤 사람은 그것이 영국 전래동화에 나오는 마브여왕(Queen Mab)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다. 아일랜드의 전래동화에 나오는 마브여왕은 아주 작은 요정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서 꿈을 꾸게 만든다든지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존재이다. 셰익스피어는 원작에서 로미오의 친구인 머큐셔를 통해서 마브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말하자면 마브여왕을 줄리엣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줄리엣도 마브여왕처럼 작아야 하고 그러자면 나이를 줄이는 방법으로 작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고 줄리엣은 14세라는 것을 알겠는데 로미오는 몇 살인가? 짐작에 따르면 18-19세거나 또는 20대 초반이라는 것이다. 중세의 당시에는 남편의 나이가 부인의 나이보다 훨씬 많은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그러므로 줄리엣의 아버지가 줄리엣의 신랑으로 내정한 파리스 백작도 상당한 나이의 청년인 것으로 짐작된다.

 

'로미오와 줄리엣'(로베르토 알라냐와 안나 네트렙코). 줄리엣의 나이는? 14세였다.

 

나비부인은 15세에 미국 해군장교 핀커튼과 결혼

오페라의 비극적인 주인공으로서 두 번째로 나이가 어린 여인을 들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푸치니의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에 등장하는 초초상일 것이다. 초초상의 나이는 15세라고 되어 있다. 15세의 소녀가 미국 해군 장교와 결혼하였고 얼마 후에는 아들까지 하나 두었다. 초초상은 1막에서 결혼식이 올리기 전에 자기의 나이가 15세라고 밝힌다. 결혼집행관을 기다리는 중에 핀커튼과 초초상, 그리고 핀커튼의 친구인 나가사키 주재 미국 영사인 샤플레스와의 대화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다.

 

샤플레스가 초초상(나비부인)에게 ‘몇살이나 되었느냐?’고 묻자 초초상은 ‘맞추어 보세요’라고 대답한다. 옆에 있던 핀커튼은 마치 장난이나 하듯 ‘열살?’이라고 말하자 초초상은 ‘좀 더 올려요’라고 대답한다. 핀커튼이 ‘스무살?’이라고 묻자 초초상은 ‘조금만 더 내려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열다섯 살, 꼭 열다섯 살이지요’라고 말하고서 이어 ‘제가 나이가 많은가요, 아닌가요?’라고 오히려 묻는다. 그러자 샤플레스는 ‘열다섯 살이라! 아직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 나이가 아니던가?’라고 농담조로 말하자 핀커튼이 그 말을 받아서 ‘사탕과자나 먹으면서 지낼 나이지’라고 말한다. 아무튼 이들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초초상의 나이는 15세이다. 15세의 신부가 아마 최소한 30세는 되었을 듯한 미국 해군 장교와 결혼한다. 초초상은 얼마후 아들을 낳는다. 그러니까 늦게 보아주더라도 16세에 아이를 낳은 것이다. 초초상은 미국으로 떠난 남편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으로 믿어서 아들의 이름을 ‘슬픔’(이탈리아어로 Dolore)이라고 짓는다. 그러다가 3막에서 과연 3년 후에 핀커튼이 나가사키로 돌아오자 ‘슬픔’이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고 믿어서 아이의 이름을 ‘기쁨’(영어로 Joy)이라고 고쳐 부른다.

 

‘나비부인’의 원작은 미국의 존 루터 롱(John Luher Long)이라는 사람이 1898년에 쓴 단편소설이다. 그의 누이인 제니 코렐이 일본에 파견된 미국 선교사의 부인으로 일본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를 존 루터 롱에게 해주어서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쓴 것이다. 존 루터 롱은 소설 ‘나비부인’을 쓸 때에 1887년에 프랑스의 피에르 로티라는 사람이 반자서전적으로 쓴 소설 ‘국화부인’(Madame Chrysantheme)도 참고로 하였다. ‘국화부인’의 스토리는 ‘나비부인’과 비슷하여서 무대가 나가사키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방 남자가 ‘나비부인’에서는 미국 해군장교이지만 ‘국화부인’에서는 프랑스 해군장교라는 것이다. ‘국화부인’은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앙드레 메사저(André Messager: 1853-1929)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나비부인'에서 나비부인은 15세였다. 핀커튼과 나비부인의 결혼식 장면(플라시도 도밍고와 미렐라 프레니)

 

루치아는 16세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하여 신랑을 살해한다

그 다음으로는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 롤인 루치아를 내세워야 할 것이다. 루치아의 나이는 16세로 되어 있다. 당시로서 16세라고 하면 결혼해도 무리가 아닌 나이라고 볼수 있다. 하기야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도 16세 정도면 결혼을 했었다고 생각된다. 현제명의 ‘대춘향전’에서 춘향의 나이는 이팔청춘이라고 했다. 이팔청춘은 곧 16세를 의미한다. 춘향이도 어느새 16세 나이에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행동했음을 상기해 볼 때 루치아가 16세에 결혼했다는 것은 크게 특별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루치아가 진작부터 사랑했던 에드가르도를 잊지 못해서 신혼 초야에 법적인 남편인 아르투로를 정신이 없는 중에 살해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지나친 일이 아닐수 없다. 물론 정신이상이 생겨서 그렇게 했다는 것은 이해할만 하지만 말이다.

 

영화 '성춘향'에서 춘향(최은희)와 향단(도금봉). 이때 춘향의 나이는 이팔 청춘, 즉 16세였다. 그런데 영화 속의 최은희를 16세라고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상대역인 이도령은 김진규, 방자는 허장강.

 

‘람메무어의 루치아’의 스토리는 스코틀랜드의 문호 월터 스콧의 ‘람메무어의 신부’(The Bride of Lammermoor)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비운의 주인공은 애쉬턴 가문의 루시(Lucy)와 레이븐스우드 가문의 에드가(Edgar)이다. 도니체티의 오페라는 이탈리아어 대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루치아와 에드가르도로 바꾸었던 것이다. 월터 스콧의 ‘람메무어의 신부’는 1819년에 발표되었다.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는 그로부터 15년이 더 지난 1835년에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월터 스콧의 ‘람메무어의 신부’의 스토리는 1669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당시 스코틀랜드에는 달림플과 러더포드라는 두 가문이 서로 원수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달림플의 딸인 자넷(Janet)과 러더포드의 아들인 아치발드(Archibald)가 서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사랑하여서 비밀리에 결혼식까지 올렸다. 그 사실을 모르는 자넷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의 명문가 자제인 데이빗 던바르라는 사람과 결혼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자넷과 아치발드의 비극적인 운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자넷의 나이가 16세였다고 한다.

 

'람메무어의 루치아'에서 루치아의 광란의 장면(안나 네트렙코)

 

비올레타는 16세부터 파리의 환락적인 사교계에서 활동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인 비올레타가 파리에서 환락적인 생활을 시작하던 때도 16세부터이다. 잘 아는 대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스토리는 알렉산드르 뒤마(아들)의 소설 ‘카멜리아 꽃을 단 여인’(La Dame aux Camiélias: 동백꽃 여인)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소설 ‘카멜리아 꽃을 단 여인’에서는 여주인공을 마르게리트 고티에라고 했고 남주인공을 아르망 뒤발이라고 했지만 두 사람은 실은 소설을 쓴 알렉산드르 뒤마(아들) 자신과 당시 파리에서 이름을 날리던 실제 인물인 고급창녀 마리 뒤플레시스(Marie Duplessis)를 그린 것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페라의 여주인공인 비올레타는 마리 뒤플레시스라는 여인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마리 뒤플레시스는 어떤 여인인가? 기록에 따르면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 지방의 노낭 드 팽이라는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알퐁신 로즈 플레시스(Alphonsine Rose Plessis)였다. 알퐁신은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15세에 파리로 무작정 상경하였다. 그리고 그나마 운 좋게 어떤 의상실의 종업원으로 일할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부유한 귀족 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그 귀족은 알퐁신의 미모를 찬미하여서 친절하게도 별도로 살 집을 마련해주고 가정교사들을 붙여 주어서 파리의 사교계에 나가도 손색이 없는 교양 있는 여인으로 가꾸었다. 이름도 바꾸었다. 알퐁신이라는 이름을 마리라고 바꾸었고 성도 플레시스의 앞에 귀족 출신인 것처럼 du 라는 단어를 넣어서 뒤플레시스라고 바꾸었다. 마리 뒤플레시스는 볼로뉴 숲에서 승마를 즐겼고 멋있는 드레스를 입고 갸르니에극장의 오페라에도 참석하였다. 그렇게하여 마리 뒤플레시스는 파리의 환락적인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그때가 16세였다. 사람들은 마리 뒤플레시스를 지성적이고 위트에 넘쳐 있으며 다정한 여인이라면서 찬사를 보냈다. 마리 뒤플레시스는 자그마한 키에 매력적인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마리 뒤플레시스는 말하자면 행세깨나 하는 한량들의 정부였다. 16세 때부터 그런 역할을 하였으니 대단하기는 대단했다. 파리의 사교계에서 한다하는 남자들은 모두 마리 뒤플레시스에게 허리를 굽히고 제발 자기와 데이트 한번 해 달라고 간청할 정도였다. 마리 뒤플레시스는 19세 때에 알렉산드르 뒤마(아들)를 알게 되어 1년 동안 그의 정부로서 지냈다. 그러다가 알렉산드르 뒤마(아들)가 아프리카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었고 얼마후 그가 파리로 돌아와 보니 마리 뒤플레시스는 이미 난치병인 결핵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마리 뒤플레시스가 청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크게 상심한 알렉산드르 뒤마(아들)는 마리 뒤플레시스와의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그것이 ‘카멜리아를 단 여인’이었고 그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베르디가 저 유명한 ‘라 트라비아타’를 완성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불후의 오페라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마리 뒤플레시스는 알렉산드로 뒤마(아들)가 멀리 떠나 있는 중에 세기적인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의 정부로서도 지냈다고 한다. 리스트는 마리 뒤플레시스와 결혼까지 할 생각으로 있었다고 한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는 그냥 ‘라 트라비아타’라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춘희’(椿姬)라고 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차화녀’(茶花女)라고 부르고 있다.

 

'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는 16세부터 환락의 세계에서 지냈다.

 

클레오파트라는 10대 말에 이미 시저와 내연의 관계였다

역사상 가장 미인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서양에서는 클레오파트라를 내세우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가 케사르(시저)의 정부가 되었던 때에 과연 몇 살이었을까? 케사르와의 사이에서 아들 케사리온을 두었던 때에 과연 몇 살이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69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30년에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케사르는 기원전 44년에 피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클레오파트라는 대체로 기원전 40년부터 케사르와 함께 지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19세, 또는 20세 때부터라고 할수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정신적인 남편 케사르가 세상을 떠나자 곧 이어 로마의 새로운 실력자 안토니우스와 정식으로 결혼해서 살았으니 그 모든 사정이 이집트의 안보를 위해서 그랬다는 설명이다.

그런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가 몇 편의 오페라에 담아져 나왔다. 헨델이 1724년에 ‘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 in Egitto)라는 오페라를 만들었고 마스네가 ‘클레오파트르’(Cléopâtre)라는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 마스네의 ‘클레오파트르’는 마스네의 사후 2년에 처음 공연된 것으로 원래는 클레오파르타의 역할을 메조소프라노가 맡는 것으로 작곡했으나 실제로 초연에서는 소프라노가 맡았고 그로부터 줄곧 소프라노가 타이틀 롤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1966년에 미국의 사무엘 바버(Samuel Barber: 1910-1981)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라는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 아무튼 이 오페라들은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대략 19세부터 줄리어스 시저의 정부였다.

 

잔다크는 19세에 이단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다

또 한 사람의 10대 여인으로서 오페라의 비극적인 주인공은 잔다크이다. 잔다크는 이성간의 사랑이니 무엇이니 때문에 삶은 마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으니 안타까운 심정에서 소개코자 한다. 프랑스의 구국 영웅 잔다크를 주인공으로 삼은 오페라로서는 대표적으로 두 편이 있다. 하나는 베르디의 ‘조반나 다르코’(Giovanna d'Arco)이며 다른 하나는 차이코브스키의 ‘오를레앙의 처녀’(The Maid of Orleans)이다. ‘오를레앙의 처녀’라는 것은 잔다크의 별명이다. 베르디의 ‘조반나 다르코’는 1845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고 차이코브스키의 ‘오를레앙의 처녀’는 베르디보다 거의 40년 후인 1881년 생페터스부르크의 마리인스키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두 오페라 모두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쉴러의 희곡 ‘오를레랑의 처녀’(Die Jungfrau von Orleans)를 바탕으로 삼아 대본을 만든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잔다크는 영국과 프랑스간의 ‘백년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시기에 프랑스 동북부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느날 소녀 잔다크는 대천사인 성미가엘로부터 프랑스를 침공한 영국군을 물리치고 아직 대관식을 올리지 못한 샤를르 7세의 대관식을 거행할수 있도록 하라는 예언을 받는다. 이에 잔다크는 영국군이 포위하고 있는 오를레앙으로 가서 영국군을 물리치고 샤를르 7세가 렝에서 대관식을 올릴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러나 잔다크는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하여 죽임을 당한다. 잔다크는 몇 살에 죽임을 당하였는가? 아직도 10대 소녀였던 19세에 죽임을 당하였다. 실제로는 1431년 5월 30일이었다.

 

'조반나 다르코'(잔 다크)에서의 조반나는 19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