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오페라 작곡가 일화

작곡가의 아버지

정준극 2016. 5. 18. 09:58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들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30인의 오페라 작곡가 아버지 소개


우리나라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 날'로 지키고 있다. 전에는 어머니 날만 있었는데 아버지도 함께 기념토록 해서 어버이 날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을 따로 기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체로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 날로 지킨다. 어머니 날에는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지만 아버지 날에는 장미를 달아 드린다는 것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나라마다 아버지 날이 다른데 특별한 것은 태국일 것이다. 태국의 아버지 날은 5월도 아니고 6월도 아닌 12월 5일이다. 현재의 국왕인 부미볼(라마 9세)의 탄생일을 아버지 날로 정했기 때문이다. 11월에 아버지 날을 지키는 나라들도 많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랜드, 에스토니아, 아이슬랜드 등은 11월 둘째 주일을 아버지 날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독일은 기독교의 예수 승천일(Ascension Day)을 아버지 날로 정해서 기념하고 있다. 2016년은 5월 5일이다. 스위스는 6월 5일을 아버지 날로 지키고 있고 오스트리아와 벨기에는 6월 둘째 주일을 아버지 날로 지키고 있다. 2016년에는 6월 12일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나라들은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 날로 지키고 있다. 캐나다, 칠레, 중국, 체코 공화국, 프랑스, 헝가리, 인도, 아일랜드, 일본, 말레이지아, 네덜랜드, 파키스탄, 페루, 필리핀, 사우디 아라비아, 터키, 우크라이나, 영국, 미국이 모두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 날로 지키고 있다. 아버지를 기억하는 달인 6월에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 30명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그 작곡가의 탄생 연도별로 정리해 보았다.


오페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아버지는 크레모나에서 의사 겸 약사로 일했다. 그래서 그다지 궁핍하게 살지는 않았다. 몬테베르디는 나중에 로마 가톨릭의 사제가 되었다.


○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 롬바르디의 크레모나 -1643 베니스). 오페라의 아버지. 작곡가, 기타리스트, 테너, 로마 가톨릭 사제. 대표작은 '오르페오'(L'Orfeo). 아버지 발다사레 몬테베르디(Baldassare Monteverdi)의 직업은 의사 겸 약사. 그리고 간단한 수술도 할수 있는 아마추어 외과의사 

○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 베니스 - 1741 비엔나).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비발디의 아버지인 조반니 바티스타 비발디(Giovanni Battista Vivaldi)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전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전에는 이발사였다.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는 아들 안토니오가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가르쳐서 거장이 되게 만들었다.

○ 조지 프리데릭 헨델(George Frederick Handel: 1685 독일 마그데부르크 공국의 할레-1759 런던). 작곡가. 지휘자. 대표작은 오라토리오 '메시아', 오페라 '리날도'. 아버지 게오르그 헨델(Georg Händel)의 직업은 이발사 겸 외과의사. 주로 귀족이나 왕족들의 머리를 이발했다. 헨델의 아버지는 어린 헨델이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했다. 법학을 공부해서 변호사나 판검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어릴 때에 헨델이 클라피어를 치는것 조차 금지했다.


오라토리오의 아버지 조지 프리데릭 헨델(독일식 이름은 게오르게 프리드리히 핸델). 헨델의 아버지는 이발사였다.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bald Gluck: 독일 바바리아 오베르활츠<Oberpfaltz>의 에라스바흐<Erasbach> - 1787 비엔나).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라 '오르페와 유리디체'. 아버지 알렉산더 글룩(Alexander Gluck)은 삼림관

○ 요제프 하이든(Josef Haydn: 1732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의 로라우 - 1809 비엔나). 작곡가. 대표작은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오페라 '달세계'. 아버지 마티아스 하이든(Mathias Haydn)의 직업은 마차 바퀴 수선공 겸 무보수 마을 촌장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 신성로마제국의 잘츠부르크 주교령 - 1791 비엔나). 대표작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Leopold Mozart)의 직업은 바이올리니스트. 부업은 작곡가, 음악교사

○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 독일 쾰른 선제후령의 본 - 1827 비엔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오페라 '휘델리오' 작곡. 아버지 요한 베토벤(Johann Beethoven)은 쾰른 선제후 궁전 오페라단의 테너. 부업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레슨. 주사가 있는 술꾼으로도 유명했다.

○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 헝가리의 라이딩(현재는 오스트리아) - 1856 독일 바이로이트).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임프레사리오. 아버지 아담 리스트(Adam Liszt: 1776-1827)는 아마추어 첼리스트 겸 피아니스트. 아들 프란츠가 일곱살 때부터 음악을 가르쳤다.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프란츠가 16세 때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까지도 소년 프란츠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 독일 홀슈타인 공국의 오이틴<Eutin> - 1826 런던).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 평론가. 아버지 프란츠 안톤 폰 베버(Franz Anton von Weber)는 홀슈타인 공국의 장교. 제대후 극장의 음악감독 

○ 자코모 마이에르베르(Giacomo Meyerbeer: 1791 프러시아의 베를린 - 1864 파리).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라 '위그노'(Les Huguenots). 아버지 야콥 헤르츠 베르(Jakob Herz Beer)는 설탕공장 운영자 겸 은행가.

○ 조아키노 로시니(Gioachino Rossini: 1792 페사로 - 1868 파리).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아버지 주세페 로시니(Giuseppe Rossini)는 페사로 오케스트라의 혼 연주자 겸 도축장 검사관


도니체티의 아버지는 베르가모에서 전당포의 직원으로 일했다. 


○ 게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 베르가모 - 1848 베르가모). 작곡가. 대표작인 '람메무어의 루치아'. 아버지 안드레아 도니체티(Andrea Donizetti)는 전당포 직원

○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 비엔나 - 1828 비엔나). 대표적인 징슈필은 '휘에라브라스'. 아버지 프란츠 테오도르 슈베르트(Franz Theodor Schubert)는 알저그룬트 교구 학교의 교장이었다. 어린 프란츠 슈베르트는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형으로부터는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의 레슨만으로는 충분할수 없었다. 어린 슈베르트는 일곱살 때에 미하엘 홀처라고 하는 알저그룬트 교구교회 오르가니스트로부터 본격적인 음악 레슨을 받았다.

○ 빈첸조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 시실리 왕국의 카타니아 - 1835 파리 근교의 퓌토).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라 '노르마'. 아버지 로사리오 벨리니(Rosario Bellini)는 카타니아 성당의 오르가니스트 겸 음악교사

○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 프랑스 그레노블 인근 라 코트 생 안드레<La Cote-Saint-Andre> - 1869 파리).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라 '파우스트의 겁벌'(La Damnation de Faust). 아버지 루이 베를리오즈(Louis Berlioz)는 의사 겸 학자. 유럽 최초로 침술 시행

○ 아돌프 아당(Adolphe ADam: 1803 파리 -1856 파리). 작곡가 겸 평론가. 대표작은 발레음악 '지젤', 오페라는 '롱주모의 마부', '투우사' 등. 아버지는 알사스 출신의 작곡가, 피아니스트로서 파리음악원 교수. 아들 아돌프가 음악가가 되는 것을 반대. 아돌프는 피아노, 작곡을 독학하였다.


아돌프 아당


○ 프레데릭 쇼팽(Frederick Chopin: 1810 당시 바르샤바 공작령인 바르샤바 인근의 첼라조바 볼라 - 1849 파리). 피아니스트, 작곡가. 아버지 니콜라스 쇼팽(Nicolas Chopin)은 원래 프랑스인이었으나 그가 16세 때에 부모를 따라 폴란드로 이민을 왔다. 아버지 니콜라스는 바르샤바에 프랑스어 선생으로 봉사했다. 그리고 이름도 폴란드식으로 미콜라이(Mikolaj)라고 고쳤다.

○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 독일 라이프치히 - 1883 이탈리아 베니스). 작곡가, 지휘자, 극장감독, 평론가. 대표작은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아버지 칼 프리드리히 바그너(Carl Friedrich Wagenr)는 라이프치히 경찰서 직원. 아버지는 바그너가 생후 6개월이 되던 때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요한나는 남편의 친구인 배우 루드비히 가이어와 재혼하였다. 그래서 어린 바그너는 계부 가이어를 친부로 알고 자랐다. 

○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 르 론콜레<현재의 론콜레 베르디> - 1901 밀라노). 작곡가, 지휘자. 대표작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아버지 카를로 베르디(Carlo Verdi)는 마을에서 작은 여관 운영

○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 1818 파리 - 1893 생 클루<St Cloud>).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라 '파우스트'. 아버지 루이 프랑수아 구노(Louis Francois Gounod)는 화가 겸 동판조각가. 어머니는 피아니스트

○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 쾰른 - 1880 파리). 작곡가, 첼리스트, 임프레사리오. 대표작인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아버지 아삭 유다 오펜바흐(Isaac Juda Offenbach)는 책제본사, 유태교 회당 순회 칸토, 바이올리니스트

○ 클로드 드비시(Claude Debussy: 1862 프랑스 생제르맹앙레 - 1918 파리). 작곡가. 아버지 마누엘 아쉬유 드비시(Manuel Achille Debussy)는 도자기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지방으로 다니며 도자기 세일스를 했다. 그는 또한 인쇄소 보조원으로 일했고 아떤 회사의 사무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보고 바이올린 레슨을 받도록 했다. 다만, 레슨비는 그의 숙모가 내도록 했다. 

○ 조르즈 비제(Georges Bizet: 1838 파리 - 1875 파리).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라 '카르멘'. 아버지 아돌프 비제(Adolphe Bizet)는 헤어드레서 겸 가발 제조가. 후에는 부업으로 음악교사

○ 피터 일리이치 차이코브스키(Peter Ilyich Tchaikovsky: 1840 제정러시아 브야트카 지방의 보트킨스크 - 1893 생페테르부르크). 작곡가, 지휘자. 아버지 일랴 페트로비치 차이코브스키는 광산성 기사로서 육군 중령으로 복무하였다. 그가 어린 차이코브스키의 음악적 재능을 적극 지원했는지의 여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어린 차이코브스키의 피아노 레슨비를 지불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 차이코브스키가 법조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 열살짜리 어린 차이코브스키를 법률학교에 입학시켰다. 나중에 음악가보다는 경제적으로 더 나은 수입이 있을 것으로 기대해서였다.

○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1841 체코 프라하 부근의 넬라호체베스<Nelahozeves> - 1904 프라하). 작곡가. 대표작인 오페라 '루살카'. 아버지 프란티세크 드보르작(Frantisek Dvorak)은 여관 주인 겸 도축사. 치터 전문연주자


체코의 드보르작의 아버지는 작은 여관을 경영했고 마을 도축장에서도 일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민속악기인 치터를 전문가 이상으로 훌륭하게 연주하여 칭송을 받았다.


○ 아서 설리반(Arthur Sullivan: 1842 램버스<Lamberth> - 1900 런던).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레타 '펜잔스의 해적'. 아일랜드 출신의 아버지 토마스 설리반(Thomas Sullivan)은 군악대장, 클라리네티스트, 음악교사

○ 쥘르 마스네(Jules Massenet: 1842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몽토<Montaud> - 1912 파리).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라 '마농'. 아버지 알렉시스 마스네(Alexis Massenet)는 규모가 큰 철물점 운영. 

○ 에드바르드 그리그(Edvard Grieg: 1843 노르웨이 베르겐 - 1907 베르겐). 작곡가, 피아니스트. 아버지는 알렉산더 그리그(1806-1875)는 상인이었으며 어머니 게신느(Gesine)는 음악교사였다. 그리고의 음악적 재능은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머니는 그리그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다.

○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ff: 1844 상트페테르부르크 부근 티흐빈<Tikhvin> - 1908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표작인 오페라 '짜르 살탄의 이야기'. 아버지 안드레이 페트로비치 림스키 코르사코프(Andrei Petrovich Rimsky-Korsakoff)는 공무원. 노보고르드 부지사 역임.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6 이탈리아 루카 - 1924 벨기에 브뤼셀). 작곡가. 대표작인 오페라 '라 보엠'. 아버지 미켈레 푸치니(Michele Puccini)는 루카의 산 마르티노 성당 음악감독(Maestro di cappella)

○ 피에트로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3 투스카니의 리보르노 - 1945 로마). 작곡가. 대표작은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아버니 도메니코 마스카니(Domenico Mascagni)는 베이커리(빵집) 운영. 와 빵은 많이 먹었겠다. 빵!

○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 1860 체코 칼리슈테(당시는 오스트리아제국) - 1911 비엔나). 작곡가. 지휘자. 말러의 아버지인 베른하르트 말러(Bernhard Mahler)는 마부 겸 시골 여관집 주인이었다. 베른하르트 말러의 아버지는 거리에서 행상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베른하르트는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일찍이 아들 구스타브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차리고 비엔나음악원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하라고 적극 권고했다. 위대한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구스타브 말러의 뒤에는 비록 자기는 배우지 못했으나 아들만은 훌륭한 음악가로 만들고자 하는 아버지 베른하르트 말러의 헌신이 있었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 바바리아의 뮌헨 - 1949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헤). 작곡가, 지휘자. 대표작은 오페라 '장미의 기사'. 아버지 프란츠 슈트라우스(Franz Strauss)는 뮌헨 궁정오케스트라의 혼 연주자. 한고집하는 사람이었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 제정러시아 상트페터르부르크 인근 오라니엔바움의 로모노소프 - 1971 뉴욕).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대표작은 오페라 '난봉꾼의 행로'(Rake's Progress). 아버지 표도르 스트라빈스키(Fyodor Stravinsky)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리인스키 극장의 베이스

○ 조지 거슈인(George Gershwin: 1898 뉴욕의 브루클린 - 1937 캘리포니아 로스안젤레스). 작곡가, 피아니스트. 대표작은 오페라 '포기와 베스'. 우크라이나의 유태인 후손인 아버지 모이셰 게르쇼비츠(Moishe Gershowitz)는 미국으로 와서 이름을 미국식으로 모리스 거슈인(Morris Gershwin)으로 바꾸었다. 모이셰 게르쇼비츠는 피혁공장에서 일하다가 미국에 와서는 친척이 경영하는 양장점에서 여자 구두를 만들었다. 

○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 서포크의 로이스토프트 - 1976 앨드버러). 작곡가, 지휘자. 아버지 로버트 빅터 브리튼(Robert Victor Britten)은 치과의사.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 상트 페테르부르크 - 1975 모스크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대표작은 오페라 '므첸스크구의 레이디 막베스'. 아버지 드미트리 볼레슬라보비치 쇼스타코비치(Dmitri Boleslavovich Shostakovich)는 수학을 공부한 엔지니어. 


벤자민 브리튼. 테너 피터 피어스를 평생의 반려자처럼 생각하고 함께 지냈다. 영국의 작곡가 중에서 생전에 귀족의 작위인 경(Sir)를 받은 첫 인물이다. 브리튼이 앨드버러에서 세상을 떠나자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을 위해 공헌한 위대한 인물만이 사원 내에 마련할수 있는 묘소를 제안하였으나 브리튼은 이미 유언을 통해서 앨드버러 묘지에 있는 피터 피어스의 묘지 옆에 묻히겠다고 말해서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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