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62.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말 없는 부인'(Die schweigsame Frau)

정준극 2016. 9. 16. 20:55

말 없는 부인(Die schweigsame Frau) - The Silent Woman - 조용한 여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3막 코믹 오페라

유태계 슈테판 츠봐이크의 대본이어서 소동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대본을 쓴 슈테판 츠봐이크. 슈트라우스는 츠봐이크보다 17세나 위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의 일곱번째 오페라인 '말 없는 부인'(Die schweigsame Frau: Op 80)은 포스트 호프만슈탈 시기를 시작하는 첫번째 작품이다. 슈트라우스의 '말 없는 부인' 이전의 오페라들은 주로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fmannstahl: 1874-1929)의 대본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장미의 기사'였다.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슈탈이 세상을 떠난 이후 여러 대본가들과 공동작업을 했지만 슈테판 츠봐이크(Stefan Zweig: 1881-1942)와는 '말 없는 부인'이 유일한 협동작업이었다. 오스트리아 시민이면서 런던에 거주하고 있던 츠봐이크는 나치 정권에 복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츠봐이크는 비아리안, 즉 유태계였다. 그래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유태인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었을 때 츠봐이크도 유태계여서 그의 대본에 의한 공연은 당국으로부터 검열을 받아야 했다. 그러던차에 1935년 6월, 드레스덴에서 츠봐이크의 대본에 의한 '말 없는 부인'이 초연을 갖게 되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위대한 독일작곡가라고 찬사를 보냈던 히틀러는 슈트라우스의 새로운 오페라가 초연을 가진다고 하자 자청해서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츠봐이크의 대본은 원래 영국의 극작가인 벤 존슨의 코미디인 '에피코에네'(Epicoene 또는 The Silent Woman)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었다. '에피코에네'(영어로는 Epicene)라는 말은 '남자같기도 하고 여자같기도 한 두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무튼 슈트라우스의 새 오페라는 대본을 츠봐이크가 썼지만 원작이 영국 작가에 의한 것이므로 나치 당국으로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다만, 츠봐이크의 이름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말 없는 부인'의 프로그램에도 대본을 작성한 츠봐이크의 이름을 일부러 넣지 않도록 극장장에게 코치를 했던 모양이었다.


뮌헨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무대


슈트라우스는 '말 없는 부인'의 초연을 며칠 앞 둔 어느날, 그런 내용을 눈치 채고 극장장에게 인쇄에 들어가기 전의 프로그램을 보여달라고 했다.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과연, 프로그램에는 츠봐이크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프로그램에는 대본을 벤 존슨(Ben Johnson)의 영어 대본으로부터 번안했다고 되어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벤 존슨의 원작 코미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대본을 쓴 사람의 이름을 프로그램에 넣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슈트라우스는 속이 상해서 프로그램에 츠봐이크의 이름을 적당한 공간에 직접 써넣었다. 극장장이 무척 당황했음은 물론이었다. 극장장의 당황한 모습을 본 슈트라우스는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보시오. 만일 그렇다면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것이요. 어디, 나 없이 초연을 한번 해 보시오'라고 말했다. 극장장은 히틀러가 오겠다고 한 '말 없는 부인'의 초연에 슈트라우스가 없다면 더 큰 문제이므로 문제가 생기면 슈트라우스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고 프로그램에 그대로 츠봐이크의 이름을 넣었다. 그 사실을 안 나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속만 상해 있었다. 결국 히틀러는 오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 나타나지 않았다. 극장장은 당장 파면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슈트라우스와 나치의 관계는 상당히 곤란해졌다. '말없는 부인'에는 이런 에피소드가 담겨 있었다. 제목을 우리 말로 '말 없는 부인'이라고 했지만 실은 '말을 하지 않는 부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말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결혼식을 끝내자 원래대로 말을 많이 하는 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없는 부인'이 초연된 드레스덴 젬퍼오페라하우스


1933년 4월부터 독일의 정권을 휘어잡은 나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독일 음악을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로서 마치 아이콘처럼 존경하였다. 슈트라우스 자신도 독일의 음악활동을 위해서는 나치와 협조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1933년 11월에 제국음악협회(Reichsmusikkammer)의 회장을 맡아 나치에 동조하는 모양을 취했다. 슈트라우스가 나치에 동조한 것은 속사정이 달랐다는 것이 나중의 얘기들이었다. 슈트라우스의 하나 뿐인 며느리는 유태여인이었다. 슈트라우스는 손자들을 말할수 없이 사랑했다. 어머니가 유태인이면 자녀들도 유태인으로 간주되는 것이 유태인들의 관례였다. 슈트라우스의 손자들은 학교에서 유태인이라면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슈트라우스의 대부분 초기 오페라들은 유태계인 후고 폰 호프만슈탈과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출판하는 책임을 맡았던 사람도 유태인이었다. 유태인과 합작하고 동업했다는 것은 슈트라우스의 명성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슈트라우스로서는 자기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 나치에게 밉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무척이나 필요했던 일이었다. 본 블로그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집중탐구 편을 보면 슈트라우스가 나치 정권 아래에서 아들 내외와 손자들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처신했는지를 잘 알수 있다.


모르서스가 신부 후보생들을 만나는 장면


슈트라우스는 '말 없는 부인'의 작곡을 1934년부터 시작하였는데 사실상 그때부터 츠봐이크 때문에 말썽이 생길 예감을 갖고 있었다. 나치는 '말 없는 부인'의 대본이 유태인인 츠봐이크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은근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슈트라우스는 만일 츠봐이크의 대본이 아니라면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말하고 이어 츠봐이크의 대본이 손상되지 않고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치는 이 문제를 히틀러와 직접 상의했다. 히틀러는 슈트라우스가 제국음악협회장을 맡고나서 처음으로 만드는 오페라인데 독일 제3제국을 대표하는 슈트라우스의 신작에 제동을 걸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오페라 공연을 허락했었다. 그러나 그후 슈트라우스 문제로 인하여 나치 내부에서 남모르는 투쟁이 진행되었다는 것이 후문이다. 한편에서는 올려 세우고 다른 한편에서는 깎아 내리는 양상이었다. 나치 선전장관인 요제프 괴벨스는 슈트라우스의 국제적 명성을 이용코자 했다. 그래서 슈트라우스가 비아리안인과 협동해서 작품활동을 한다고 해도 양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발


그러나 나치의 악명 높은 인종이론가인 알프레드 로젠버그(Alfred Rosenberg)는 슈트라우스가 유태인 문제에 대하여 건전치 못한 사상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고 심지어는 슈트라우스를 제국음악협회장에서 추방하고 대신 나치 추종자로서 작곡가 겸 지휘자인 페터 라아베(Peter Raabe)를 추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괴벨스는 히틀러가 먼저번에 슈트라우스를 호의적으로 후원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 다시 히틀러에게 들고 갔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느라고 게슈타포가 슈트라우스와 츠봐이크가 교환한 편지를 가로채는 일이 있었다. 편지에는 슈트라우스가 솔직하게 나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썼으며 더구나 나치정부에서 직책을 맡게 된 것은 어쩔수 없이 마지못해서 맡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게스타포가 그 편지를 히틀러에게 보여주었음은 물론이었다. 히틀러의 마음이 변할수 밖에 없었다. '말 없는 부인'은 단 3회만의 공연을 허락받았다. 그후로는 독일의 어느 극장에서도 공연할수 없다는 지시였다. 그렇게 해서 '말 없는 부인'은 우여곡절 끝에 1935년 6월 24일에 드레스덴에서 초연을 가질수 있었다. 며칠후인 7월 6일, 나치 관리들이 슈트라우스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슈트라우스에게 건강상의 이유로 제국음악협회장의 직분을 수행할수 없으므로 사퇴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토록 강요했다. 슈트라우스는 제국음악협회장을 맡은지 2년도 되지 않아서 물러나고 대신 페터 라아브가 그 자리를 맡았다. 페터 라아브는 나치가 붕괴되기 직전까지 거의 10년간 제국음악협회장을 맡았다.


EMI 음반. 테오 아담, 자네트 스코보티 등이 주역으로서 취입


'말 없는 부인'는 독일에서 공연금지가 되었지만 외국에서는 여러번 공연되었다. 밀라노, 그라츠, 프라하, 취리히에서였다. 그라츠에서의 공연은 오스트리아가 나치와 합병되기 전의 일이므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슈트라우스의 오페라가 당국으로부터 공연금지를 당한 것은 '말 없는 부인'이 처음이 아니었다. 1902년에는 카이저 빌헬름에 의해서 '불기근'(Feuersnot)이 공연금지된 일이 있다. 전제주의 국가에서 특정 오페라의 공연을 금지한 것은 비단 독일뿐만이 아니었다. 1936년에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가 소련 당국에 의해 금지된 것은 좋은 예이다. 슈트라우스는 츠봐이크 때문에 곤란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없는 부인' 이후에도 츠봐이크와 공동작업을 수행하였다. 1938년에 초연된 '평화의 날'(Friedenstag)이다. 이 오페라의 스토리는 순전히 츠봐이크의 것이지만 당국의 눈을 피하느라고 대본가를 요제프 그레고르(Joseph Gregor)로 내세웠다. 사실상 츠봐이크와 그레고르는 두 사람 모두 평화주의자였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슈트라우스는 나치가 패망한 후에도 4년을 더 살면서 활동했다. 슈트라우스는 전쟁이 끝난 후에 자기의 금지된 오페라들이 당당하게 공연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크게 행복하게 생각했다. '말 없는 부인'은 전쟁이 끝난 후에 드레스덴에서 처음으로 리바이발되었다. 그때 슈트라우스는 드레스덴극장장인 요제프 카일베르트()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제 10년이 지났는데 드디어 모로서스(Morosus)가 제국극장협회라는 강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고향(드레스덴)으로 돌아왔다. 드레스덴은 12년전에 '말 없는 부인'이 처음 공연될 때에 대본가의 이름을 프로그램에 넣는 문제로 곤혹을 치루었던 곳이었다.'라고 말했다. 모로서스는 '말없는 부인'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슈테판 츠봐이크는 '말없는 부인'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말없는 부인'는 1935년에 드레스덴에서 초연을 가졌는데 츠봐이크는 그 전해인 1934년에 나치의 핍박을 두려워해서 오스트리아를 떠나 런던으로 갔었다. 물론 츠봐이크는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기 전까지 간혹 고향 땅을 방문한 일은 있었다. 런던에 살고 있던 츠봐이크는 1940년에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갔다가 이어 브라질에 정착했다. 그러나 나치슴과 독재 권위주의와 불관용의 세태와 그리고 인류애에 대한 미래가 암울한 것을 비관한 나머지 1942년 2월 23일에 리우 데 자네이루 주의 페트로폴리스에서 자살하였다.


소란한 부인을 참을수 없어서 권총으로 위협하며 이혼을 요구하는 모르서스. 프라우 침멀라인과 이발사가 지켜보고 있다.


1935년 드레스덴에서의 초연은 오스트리아 그라츠 출신의 칼 뵘(Karl Böhm: 1894-1981)이 지휘를 맡은 것이었다. 드레스덴에서 리바이발 된 것은 초연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1946년이었다. 그후 베를린, 뮌헨, 뷔스바덴 등지에서의 공연이 뒤따랐다. 미국 초연은 1958년 뉴욕시티오페라에 의해서였다. 슈트라우스가 독일에서 세상을 떠난지 거의 10년 후의 일이었다. 영국 초연은 미국보다 3년 후인 1961년 런던의 코벤트 가든에서였다. 1977년과 1979년에는 글린드본 페스티발에서 공연되었다. 드레스덴에서 다시 공연된 것은 종전후 리발이발 된 때로부터 60여년이 지난 2010년이었다. 뮌헨의 바바리아 슈타츠오퍼는 2010년, 2014년, 2015년에 공연했다. 가장 최근의 공연은 2016년 7월로서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오페라 시어터 섬머 페스트(Opera Theater Summer Fest)에서였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모로서스 경(Sir Morosus: B). 퇴역한 영국 해군함장

- 프라우 침멀라인(Frau Zimmerlein: Cont). 모로서스 집안의 가정부. 과부

- 슈나이데바르트(Schneidebard: High Bar). 이발사

- 헨리 모로서스(Henry Morosus: High T). 모로서스 경의 조카

- 아민타(Aminta: Coloratura S). 헨리의 부인. 평범하고 수줍은 잘 타는 티미디아(Timidia)로 변장

- 이소타(Isotta: Coloratura S), 칼로타(Carlotta: MS), 모르비오(Morbio: Bar), 바누찌(Vanuzzi: Deep B), 파르팔로(Farfallo: Deep B). 오페라 성악가들

- 이밖에 대사만을 하는 앵무새, 오페라단의 다른 배우들, 이웃사람들이 등장한다. 시기는 1760년경이며 장소는 런던 교외에 있는 모로서스 경 저택의 어떤 방이다. 초연에서는 아민타의 역할을 당대의 소프라노 마리아 체타보리(Maria Cetabori)가 맡아했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유명한 에르나 자크((Erna Sack)는 이소타의 역할을 맡아했다. 그리고 주인공인 모로서스 경은 베이스 프리드리히 플라슈케(Friedrich Plaschke)가 맡았다. 1760년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 영조 36년이며 영국에서는 바야흐로 산업혁명이 시작된 해이다. 그리고 유럽본토에서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간에 7년 전쟁이 시작된 해이다. 이 전쟁에서는 오스트리아가 승리했다.


1935년 6월 24일 드레스덴에서의 '말없는 부인' 초연 후 주인공인 아민타를 맡은 마리아 체타보리(왼쪽)와 슈트라우스(가운데)와 젊은 지휘자 칼 뵘(오른쪽에서 두번째). 당시 칼 뵘은 41세였고 슈트라우스는 71세였다. 독일인이 아닌 오스트리아 그라츠 출신의 젊은 지휘자에게 초연의 지휘를 맡긴 것은 파격적이었다.


[1막] 퇴역한 해군함장인 모로서스 경은 소음에 극히 민감하다. 왜냐하면 예전에 그의 전함에서 폭발이 있을 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기 때문이다. 모로서스 경은 퇴역한 후에 런던의 교외에 있는 집에서 가정부인 프라우 침멀라인을 비롯해서 하인과 하녀를 거느리고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프라우 침멀라인이 아주 자상하게 보살펴 주어서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프라우 침멀라인의 쉬지않고 내뱉는 잔소리는 참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 집에 자주 찾아오는 사람으로 이발사인 슈나이데바르트가 있다. 깔끔한 모로서스 경은 이발과 면도를 자주 하는 편이다. 이발사가 가정부와 이번에도 무슨 말다툼을 하고 있다. 모로서스 경은 그런 소리도 참기가 힘들다. 이발사는 시끄러워서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로서스 경을 겨우 진정시키고 이발을 하면서 '아무래도 젊은 여인을 맞아 들여서 새살림을 꾸미는 것이 정신건강상 좋을 것'이라며 어서 결혼하라고 설득한다. 모로서스 경은 별로 내키지 않아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바다처럼 조용한 여인은 있을수 있지만 바다에는 소금이 있듯이 아무리 조용한 여자라고 해도 잔소리를 해 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발사는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마시라'고 안심시키더니 자기는 조용한 비둘기와 같은 여인들을 열명 이상이나 알고 있는데 이 여인들은 모두가 함장님처럼 명예로운 신사분과 결혼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모로서스는 그렇다면 한번 고려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모르서스와 이발사


그를 때에 오랫동안 보지 않고 지내던 조카 헨리가 웬 여자,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다. 모로서스를 비롯해서 가정부, 이발사 등이 헨리를 따듯하게 환영한다. 웬 여자는 헨리의 부인인 아민타이다. 모로서스는 자녀가 없기 때문에 조카인 헨리가 찾아오자 이참에 헨리를 아들로 인정해서 상속자로 삼고 함께 살 생각을 한다. 그러자니 굳이 이발사가 말하는 젊은 여자와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잘못하다가는 상속문제가 복잡하게 될수 있기 때문이다. 헨리가 자기의 부인인 아민타를 정식으로 소개한다. 그런데 직업이 오페라 소프라노라는 것이다. 함께 온 친구들도 모두 오페라 성악가라는 것이다. 모로서스는 순간 크게 당황한다. 모로서스는 헨리의 부인인 아민타가 오페라 소프라노이며 헨리의 친구들도 모두 오페라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라고 하니 그렇다면 말할수 없이 시끄러울 것으로 생각해서 그만 공포에 빠져든다. 모로서스는 헨리와 아민타와 친구들을 모두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헨리를 상속자로 삼을 생각을 이내 단념한다. 모로서스는 이발사에게 당장 내일이라도 결혼하겠으니 조용한 젊은 여자를 하나 데려오라고 하고는 침실로 들어간다. 모로서스가 자리에 없자 이발사는 헨리의 친구들에게 모로서스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설명해 준다. Sixty, seventy thousand pounds 라는 노래이다. 재산이 6만인지, 7만 파운드인지 모를만큼 부자라는 내용이다. 아민타는 헨리가 재산에 욕심이 생겨서 자기를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헨리에게 자기와 상속자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만일 모로서스의 상속자가 되고 싶다면 자기는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헨리는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느냐'면서 비록 상속자가 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민타 없이는 살수 없다고 말한다. 이발사가 아이디어를 낸다. 오페라 성악가들이 배우가 되어서 모로서스가 원하는 조용한 신부후보생이 되고 그러다가 모로서스의 마음에 들어서 일단 가짜로 결혼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말할수 없이 소란스럽게 굴어서 결국 이혼하게 만들면 재산을 상속받을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헨리가 '거 참 좋은 아이디어'라면서 찬성한다. 삼촌인 모로서스가 자기 친구들인 오페라 성악가들을 모욕했으니 우리도 무슨 일이던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결국 누가 누구를 바보로 만드는 것인지 두고 보면 알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모두들 이같은 훌륭한 아이디어를 찬양하는 대합창으로 1막의 막이 내린다.


모르서스가 아민타(티미디아)를 신부로 결정한다.


[2막] 다음날이 된다. 이발사가 신부감을 데려온다는 날이다. 모로서스는 프라우 침멀라인의 도움으로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 입는다. 곧이어 이발사가 도착한다. 이발사는 신부가 결정되면 당장 결혼식을 올리고 서약서를 작성하는 것까지 모두 준비해 놓았다고 설명한다. 이발사는 세명의 신부후보자를 소개한다. 하나는 캐서린이라고 하는 평범한 시골 처녀이다. 오페라 성악가 중에서 메조소프라노인 칼로타가 캐서린의 역할을 맡았다. 모로서스는 별로 마음에 내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캐서린은 시간만 있으면 송아지들과 보내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나중에 소를 키우겠다는 것이 희망이란다. 이발사는 다음으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이소타이를 소개한다. 이소타는 아주 학식이 풍부한 귀부인의 역할이다. 모로서스는 귀분인처럼 생긴 여자가 무엇이던지 모르는 것이 없고 악기들도 잘 다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시끄러울 것 같아서 내키지 아니한다. 아무튼 모로서스는 일단 루트를 내주고 연주해 보라고 한다. 그러나 이소타는 노래는 잘 부르지만 루트 연주는 서투르다. 모로서스는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티미디아라는 여인이다. 실은 아민타가 분장한 것이다. 티미디아는 이름처럼 수줍움이 많고 말수도 거의 없어서 조용하기가 이를데 없다. 모로서스는 그만 티미디아에게 마음이 끌려서 이발사에게 당장 교회의 목사님과 공증인들을 불러 오라고 말한다. 결혼식을 즉시 올리겠다는 생각이다. 오페라단의 바리톤인 모르비오와 베이스인 바두찌가 각각 교구 목사님과 공증인으로 변장해서 등장한다. 결혼식이 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아민타는 법적으로는 모로서스의 부인이다. 물론 가짜 주례에 가짜 공증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페라단의 다른 단원들은 수병으로 변장해서 축하한답시고 나타난다. 신랑 모로서스가 해군함장이었기 때문에 수병들이 축하하러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수병들에 이웃사람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소란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가 된다.


모르서스의 신부 후보로 나선 세 여인. 아민타, 이소타, 칼로타. 코벤트 가든.


모로서스는 새로운 소음 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모로서스는 참지 못하고 집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내 쫓는다. 아민타는 모로서스가 얼마나 소음 때문에 괴로웠으면 새로 결혼까지 하려고 했을까를 생각하니 모로서스가 오히려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발사가 처음에 꾸민대로 실행해야 했다. 그래서 갑자기 모로서스를 향해서 화가 난듯 고함을 치기 시작한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모로서스는 그저 놀랍고 두려워서 어쩔줄을 모른다. 아민타는 집안의 물건들을 마구 내팽겨쳐서 부서트리기 시작하더니 다음으로는 커튼들을 잡아 당겨서 못쓰게 만들고 게다가 귀중한 도자기 등을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깨트린다. 정말 말리지도 못하고 어쩔수 없는 상황이다. 난동이 계속되는 중에 헨리가 나타난다. 헨리는 삼촌인 모로서스에게 '제가 저 여자를 어떻게 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는 티미디아, 즉 아민타를 힘으로 제압하여서 더 이상 고함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지 못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이 각본에 의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제서야 사태가 진정되자 모로서스는 헨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해전과 허리케인을 거치면서도 견디어 왔는데 티미디아와 같은 여자의 소란은 정말 견딜수 없는 것이었다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털어 놓는다. 헨리가 모로서스를 침대로 안내해서 쉬게 한다. 모로서스가 피곤한지 그대로 잠에 빠진다. 이제 헨리와 아민타는 계획대로 일이 제대로 잘 진행된 것 같아서 서로 사랑한다는 내용의 듀엣을 부른다. 모로서스가 잠에서 깨어나서 헨리에게 모든 일이 다 잘 되었느냐고 다시 묻는다. 헨리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모로서스가 다시 잠에 빠진다. 모로서스는 잠을 자는 중에 깊은 한숨을 쉰다. 아마 안도의 한숨일 것이다. 아민타도 한숨을 내쉰다. 헨리와의 사랑이 변함없다는 것을 확인한 안도의 한숨일 것이다.


바바리아 방송공연. 모르서스, 헨리, 아민타


[3막]  다음날 아침 일찍, 아민타는 집안을 수리하고 다시 꾸민답시고 일꾼들을 불러들여서 또 다시 난리도 아니게 소란을 떤다. 일하는 사람들이 내는 망치 소리, 문을 쾅쾅 여닫는 소리가 마치 천둥이 치는 것 같다. 여기에 앵무새까지 가세해서 계속 무어라고 떠든다. 뿐만 아니다. 아민타는 음악공부를 한다면서 피아노 선생(오페라 단워인 파르팔로)과 성악 선생(헨리가 변장함)을 불러 들인다. 아민타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식'에 나오는 아리아를 연습삼아 부른다. 대단한 바로크 아리아이다. 그 소리가 또한 시끄럽기가 한량없다. 모로서스가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정말 혼이 나간듯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모르서스는 당장 이혼을 생각한다. 모르서스는 믿느니 이발사여서 그에게 검찰과 변호사를 모시고 오라고 부탁한다. 이혼 절차를 협의하기 위해서이다. 얼마후 이발사가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모르서스에게 소개한다. 한 사람은 베이스 바두찌가 변장한 검찰총장이고 다른 사람들은 바리톤 모르비오와 베이스 파르팔로가 변장한 변호사들이다. 이들은 말할 나위도 없이 이발사의 사전계략에 의해 각본대로 등장한 것이다. 이혼에 대한 협의가 시작되자 티미디아는 이혼이란 절대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조목조목 불가사유를 열거한다. 하지만 검찰과 변호사들이 티미디아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한다. 모르서스의 이혼 주장이 성공하는 듯하다. 하지만 티미디아의 반론도 만만치가 않다. 마침내 변호사들도 더 이상 할 말이 부족하게 된다. 그때 이발사가 나와서 티미디아는 모르서스와 결혼하기 전에 존 경(Sir John)과 섬싱이 있었다고 폭로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신부후보로서 나섰다가 탈락한 칼로타와 이소타의 두 명례로운 여인들도 다른 여인네들로 변장하고 나타나서 티미디아의 과거가 사실이라고 증언한다. 이발사는 그것도 부족한지 또 한사람의 증인을 내세운다. 변장한 헨리이다. 헨리는 자기가 티미디아와 육체적인 관계까지 가진 일이 있다고 증언한다.


헨리와 아민타. 헴니츠 오페라


이렇게 되자 이혼을 요청했던 모르서스가 단연 승리하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자축하려고 하는 순간에 변호사들이 또 다른 장애가 있다고 제시한다. 결혼 계약서에는 신부가 반드시 처녀여야 한다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티미디아가 과거에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던지 아니던지 그건 문제가 될수 없으므로 이혼을 하지 말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서스로서는 진짜 신경쇠약에 걸려서 쓰러지기 직전이다. 이때 헨리가 모두에게 '자, 이제 속임수 장난은 그만하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모두들 수긍하고 자기의 본래 정체를 들어낸다. 티미디아는 물론이고 시골처녀인 캐서린과 귀부인(두 증인), 검찰총장과 변호사들(목사와 공증인), 또 다른 증인(헨리) 등이 모두 원래의 신분을 밝히고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게임이었다고 설명한다. 아민타(티미디아)는 특별히 모르서스로부터 용서를 구한다. 그제서야 사실을 알게 된 모르서스는 자기가 속아넘어 갔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나중에는 오페라 성악가들의 기가막힌 연기력에 감탄을 하여 생전에 이렇게 즐거운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연극이었고 더구나 이제는 더 이상 티미디아 때문에 속이 상하지 않아도 되어서 기쁨에 넘친 모르서스는 오페라단 멤버들을 무시한 것을 사과하고 화목하게 된다. 이어 모르서스는 헨리와 아민타의 재결합을 축하하고 두 사람을 축복한다. 그리고 모르서스는 원래대로 헨리를 상속자로 지명한다. 이제 모르서스는 그가 그렇게도 갈구하던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오페라는 모르서스의 독백으로 막을 내린다. '조용한 것을 찾고 예쁜 아가씨를 찾는 것은 말할수 없는 기쁨이다. 하지만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속한 사람이란 것은 더욱 기쁜 일이다.'


3막의 피날레. 모두들 연극을 아주 잘했다.


지금까지 발매된 주요 음반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 음반은 1959년에 제작되었다. 칼 뵘이 지휘하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연주이며 프리츠 분더리히(헨리), 한스 호터(모로서스), 헤르만 프라이(이발사), 힐데 귀덴(아민타) 등이 취입한 것이었다. 그후에 1971년에는 볼프강 자발리쉬가 지휘하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연주로 도날드 그로우브(헨리), 크루트 뵈메(모로서스), 배리 맥다니엘(이발사), 레리 그리스트(아민타)가 취입한 것이었다. 1977년에는 마레크 야노브스키가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연주로 에버하르트 뷔흐너(헨리), 테오 아담(모로서스), 안넬리스 부르마이스터(가정부), 볼프강 쇠네(이발사), 자네트 스코보티(아민타)가 취입한 것이다.


해피엔딩의 피날레. 산타 페 오페라


[슈테판 츠봐이크가 번안한 벤 존슨의 오리지날 희곡]


돈이 많지만 나이도 많은 홀아비가 혼자서 살수 없어서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젊은 여자와 결혼해서 여생을 엔조이하고 편하게 지내고자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서 곤란한 입장이 된다는 얘기는 옛날부터 내려온 재미난 소재였다. 기록에 의하면 그런 내용의 연극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3세기 경이다. 로마의 희극작가인 티누스 플라우투스(Tinus Plautus: 251-184 BC)가 쓴 '카시나'(Casina)라는 연극이 그런 내용이었다. 그후에는 그리스의 철학자인 리바니우스(Libanius: 314-392)가 신화 중에서 그런 내용을 라틴어로 번역한 Declamatio Sextra 라는 것이 있다. 18세기에 영국의 벤 존슨이 쓴 '에피코에네'(Epicoene)도 그런 내용의 대표적인 코미디이다. 벤 존슨의 코미디를 바탕으로 해서 여러 사람이 오페라로 만들었다. 1800년에 비엔나에서 활동하고 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가 작곡한 '안졸리나'(Angiolina 또는 Il Matrimonio)를 시작으로 1810년에는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파베시(Stefano Pavesi: 1779-1850)가 '세르 메르칸토니오'(Ser Mercantonio)를 작곡했다. '세르 메르칸토니오'는 1843년에 초연된 도니체티의 '돈 파스쿠알레'()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유랑극단들이 즐겨 공연하던 코미디의 주역으로서 판텔로네(Pantelone)가 있다. 판텔로네는 돈 파스쿠알레의 바탕이 된 인물이며 돈 파스쿠알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말 없는 부인'에서 모로서스와 거의 같은 이미지였다. 벤 존슨의 '에피코에네'를 바탕으로 삼은 오페라 중에서 가장 최근의 것은 1930년 독일의 마르크 로타르(Mark Lothar: 1902-1985)가 작곡한 '슈플렌 경'(Lord Spleen)일 것이다.


슈테판 츠봐이크는 벤 존슨의 코미디 극본인 '말 없는 부인'을 슈트라우스를 위한 독일어 오페라 대본으로 만들기 전에 이미 볼포네'(Volpone)를 오페라 대본으로 만든 경험이 있다. 그런데 츠봐이크가 벤 존선의 '말 없는 부인'을 직접 독일어 대본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독일의 루드비히 티에크()라는 사람이 벤 존슨의 원작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오페라 대본을 만든 것이다. 루드비히 티에크의 번역 소설은 제목이 출판에 따라서 '벙어리 아가씨(Stumme Mädchen) 또는 '조용한 부인의 방'(Stille Frauenzimmer)이었다. 츠봐이크의 대본은 존슨의 오리지널에 비하여 몇가지 바꾼 내용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주인공인 모로서스에 대한 것이다. 츠봐이크의 대본에서는 모로서스를 퇴역 해군함장으로 삼았는데 존슨의 오리지널에서는 함장이 아니가 그냥 부자 영감으로 되어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둘 다 시끄러운 것이라면 죽어라고 싫어한다는 것이다. 존슨의 오리지널에서는 모로서스의 조카의 이름이 도핀 경(Sir Dauphine: 도팽)으로 되어 있지만 츠봐이크는 헨리라고 바꾸었다. 존슨은 모로서스가 조카인 도핀 경을 대단히 싫어해서 조카에게 상속하느니 차라리 새로 결혼해서 부인에게 상속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츠봐이크의 대본에서는 죽을줄 알았던 조카 헨리가 나타나자 아들로 삼아서 상속할 생각을 한다. 츠봐이크의 대본에 의하면 모로서스 해군함장이 소음을 극도로 싫어하게 된 이유는 어느 때인가 함선에서 폭발이 있어서 그때부터 귀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더구나 모로서스 함장이 부자로 살게 된 것은 스페인 노예선을 나포해서 보물들을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 붙였다.


츠봐이크의 대본에서 헨리는 이발사의 아이디어에 따라 자기의 부인인 아민타를 티미디아라는 아가씨로 변장시켜서 결국은 모로서스와 결혼토록 만든다. 그런데 모로서스는 참으로 마음씨가 갸륵하게도 자기와 같은 늙은이와 결혼하는 티미디아(아민타)를 불쌍하게 생각한다.  모로서스의 대사 중 한 구절을 보면 그런 내용을 잘 알수 있다. '아이야, 내 말을 들어보거라. 늙은이는 반쪽 사람이다. 나머지 반쪽은 과거에 묻어 두었단다.'이다. 티미디아와 결혼한 모로서스는 티미디아를 아주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티미디아는 감동하여서 남편인 헨리 등이 꾸민 음모에서 빠질 생각까지 하게 된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차이는 존슨의 오리지널에서는 '말 없는 부인'이 실은 소년인 것으로 설정해 놓았다. 그러나 츠봐이크의 대본에서는 모로서스의 조카인 헨리의 부인인 아민타를 티미디아라는 이름으로 변장시켜 내보낸다. 아민타는 남편인 헨리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기는 떠나겠으니 모로서스의 상속인이 되어 재산을 상속받으라고까지 말한다. 뿐만 아니라 아민타는 시아버지가 되는 모로서스에 대하여 각별한 연민의 애정을 갖는다. 그래서 할수만 있으면 도와주려고까지 한다. 헨리도 존슨의 원작에서는 순전히 욕심이 많은 젊은이로 그려져 있으나 츠봐이크의 대본에서는 삼촌인 모로서스를 무척 사랑하는 청년으로 그렸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모로서스가 너무나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있는 것 같아서 결국은 모든 것이 장난이고 속임이었다고 털어 놓아서 해피엔딩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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