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참고자료] '어느 난봉꾼의 행로'

정준극 2016. 11. 1. 11:32

[참고자료] '어느 난봉꾼의 행로'...윌리엄 호가스의 연작그림

스트라빈스키가 시카고 전시회에서 보고 오페라 '난봉꾼의 행로'를 작곡


오페라의 묘지 장면. 니크 섀도우의 최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3막 오페라 '난봉꾼의 행로'(A Rake's Progress)는 18세기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79-1764)의 여덟장 그림인 '난봉꾼의 행로'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오페라 '난봉꾼의 행로'는 1951년에 영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밀라노)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윌리엄 호가스의 '난봉꾼의 행로'를 바탕으로 발레작품도 만들어진 것이 있다. 1935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베이스 겸 배우 겸 작곡가인 가빈 고든(Gavin Gordon: 1901-1970)이 동명의 발레작품을 작곡한 것이다. 니네트 드 발루아(Ninette de Valois)가 안무를 한 작품이다. 오늘날 발레 '난봉꾼의 행로'는 세계적으로 스탠다드 레퍼토리가 되고 있다. 1946년에는 미국의 영화제작사인 RKO(Radio Keith-Orpheum)가 영화 '베들람'(Bedlam)을 제작한 것이 있다. 윌리엄 호가스의 그림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베들람은 런던에 있는 악명높은 정신병원을 말한다. 호가스의 '난봉꾼의 행로'의 내용을 소개한다. 오페라 '난봉꾼의 행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호가스의 8부작은 그가 1732-33년에 제작한 것이다. 이어 1734년에는 판화로 만들어져서 프린트되어 배부되었다. 호가스는 '난봉꾼의 행로'를 완성하기 1년 전에 '매춘부의 행로'라는 여섯 점으로 구성된 그림을 그린 일이 있다. 이것도 스트라빈스키가 오페라를 만들 때에 참고했다고 한다. 8부작의 줄거리는 어떤 부자 상인의 아들인 톰 레이크웰이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아서 런던으로 와서 호화생활을 하고 매춘부들과 지내며 도박을 하여 돈을 모두 날려버리고 결국 플리트 감옥에 갇혔다가 이어 베트렘(또는 베들람)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던 중 세상을 떠난다는 줄거리이다. 원화는 런던에 있는 존 소아느경(Sir John Soane)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아무튼 그림의 줄거리는 오페라나 영화와는 차이가 있지만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래에 소개하는 그림들은 원화를 바탕으로 만든 판화들이다. 그래서 원화와는 구성이 아주 조금씩 다르다.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난봉꾼의 행로'의 첫번째 그림 원화. 이 그림을 바탕으로 프린트용 판화를 다시 그렸다. 위의 그림은 첫번째 것이다. 바로 아래의 첫번째 판화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지면상 모든 원화를 소개하기가 어려워서 예로서 첫번째 그림만 소개한다. 


첫번째 그림. 톰은 구두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재산을 물려 받는다. 아버지가 거느리던 하인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있지만 톰은 새로운 양복들의 치수를 재고 있다. 톰은 사라 영(Sarah Young)과 약혼했지만 아직 정식으로 결혼식은 올리지 않고 살고 있다. 사라는 톰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톰은 돈이 생기자 사라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사라는 톰이 약혼하면서 준 반지를 끼고 있으며 사라의 어머니는 톰이 사라에게 보낸 연애편지들을 간직하고 있다.) 톰은 약혼이고 무어고 사라가 떨어지도록 할 생각이지만 사라는 그렇지 않다. 사라는 아직도 톰을 사랑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자기에게 돌아 올 것으로 믿고 있다. 톰의 아버지의 구두쇠 행적은 방안의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서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아버지의 초상화는 돈을 세고 있는 모습이다. 친절과 자선의 상징인 로스팅 잭(Roasting jack: 고기를 꼬챙이에 꽃고 돌려가면서 굽는 기계)은 방한쪽의 다락에 처박혀 있는지가 오래이다. 가문의 문장(문장)은 삼지창을 그린 것으로 표어는 '조심하라'(Beware)이다. 뿐만이 아니다. 먹을 것을 주지 않아서 삐쩍 마른 고양이 보이는가 하면 벽난로는 언제 불을 지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재만이 남아 있다. 땔감을 사는 돈을 아끼느라고 그랬던 모양이다. 마침 그런 구두쇠가 죽었기 때문에 모처럼 벽난로에 불을 지피려고 노파가 땔감을 들고 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아버지가 다 헤어진 구두 창을 갈지 않으려고 성서의 가죽표지를 사용한 것이 보이는 구두가 있다. 아무튼 구두 수선장이에게 돈을 쓰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재산을 상속받은 톰은 장례를 치룰 생각보다는 우선 양복부터 몇 벌 맞춘다.


두번째 그림. 톰은 런던에 있다. 아침이 되어서 마치 궁중에서 아침에 가신들이 왕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듯이 시종들이 톰에게 아침인사를 드린다. 음악가도 대기하고 있다. 톰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럴듯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톰이 이들에게 돈을 넉넉히 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을 더 자세히 관찰하면 톰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로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프시코드 옆에 음악선생이 있는데 아마 조지 프리데릭 헨델을 비유한 것처럼 보이며 그 옆에는 펜싱 선생이 있고 또 그 옆에는 쿼터스태프라고 하는 운동경기 강사, 이어서 춤 선생이 바이올린을 들고 있고 또 그 옆에는 정워사인 챨스 브릿지맨이 대기하고 있다. 그리고 퇴역군인이 보디가드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여우사냥 클럽의 나팔도 걸려 있다.아랫쪽 오른편에는 경마의 저키(기수)가 트로피를 들고 있다. 쿼터스타프 강사는 펜싱 선생과 춤 선생을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고 있다. 아마 펜싱 선생과 춤 선생이 프랑스 스타일이기 때문에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벽의 양쪽에는 수탉 그림이 걸려있다. 그것으로 보아서 톰은 닭싸움(투계)도 관여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톰은 마치 귀족 처럼 온갖 것에 흥미를 가지고 지내는 것 같다. 그러나 어딘가 촌스럽고 서민적이라는 냄새를 지울수는 없다.


 런던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톰. 온갖 시중드는 사람들이 다 몰려 있다.


세번째 그림. 창녀들 집에서 벌어지는 난장판의 파티를 그린 것이다. 장소는 장미주점(Rose Tavern)이다. 코벤트 가든에 있는 유명한 매음굴이다. 창녀들이 술취한 톰으로부터 시계를 훔치려 하고 있다. 오른쪽 바닥에는 야경꾼들이 사용하는 지팡이와 랜턴이 있다. 톰의 밤생활에 대한 기념품들이다. 창녀들은 얼굴에 검은 점들을 붙이고 있다. 얼굴에 나타난 매독 증상의 부스럼들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매춘부들의 집에서


네번째 그림. 빚을 갚지 못한 톰이 웨일스 경찰의 체포를 겨우 따돌리고 있는 장면이다. 웨일스 경찰이라는 것은 이들의 모자에 붙어 있는 리크(파의 일종) 뱃지를 보면 알수 있다. 톰은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있으면서도 평소의 사치스런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톰은 자기가 무어라고 카롤린 여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성제임스궁으로 세단 마차를 타고 가고 있다. 마차는 마차인데 말이 아니라 사람이 끄는 마차이다. 참고로 카롤린 왕비의 생일은 성다비드 축일과 겹쳐 있다. 성다비드는 웨일스의 수호성인이다. 톰이 경찰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피할수 있었던 것은 느덧없이 사라를 만났기 때문이다. 사라는 잘 아는대로 톰이 오래전에 결혼약속까지 했으나 쾌락을 위해 버리고 떠났던 여자이다. 사라는 런던에서 모자상점의 판매원으로 착실하게 일하고 있다. 톰을 만난 사라는 팔을 걷어 붙이고 한대 걷어 부칠 태세이다. 가로등에 기름을 넣던 사람이 잘못해서 기름을 톰의 머리위에 쏟는 장면이 있다. 마치 교회에서 머리에 기름을 부어 축복이나 하는 듯한 장면이다. 이 경우에 축복은 톰이 사라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하늘에서는 번개가 치고 있다. 소매치기가 톰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있다. 판화가 아닌 그림에서는 소매치기가 톰의 지팡이를 훔쳐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하늘에서도 번개가 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빚장이들에게 쫓기는 톰. 우연히 길에서 사라를 만난다.


다섯번째 그림. 톰은 난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나이 많고 못생긴 하녀와 성메릴르본(St Marylebone)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뒤편에는 아기를 안은 사라가 방금 도착한 모양이다. 아기는 사라와 톰의 아기이다. 사라의 어머니는 톰이 웬 못생기고 나이 많은 여자와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니까 분이 나서 사라와 함께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결혼식이 진행 중이라서 아마 결혼식에 온 사람인듯한 어떤 여자와 싱갱이를 하고 있다. 톰의 눈길은 늙고 못생긴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들러리 쯤으로 생각되는 어떤 젊은 여자에게 이미 향하고 있다.   


결혼하는 톰


여섯번째 그림. 소호에 있는 화이트 클럽이라는 도박장이다. 운이 다해서 그나마 있는 돈을 탈탈 털린 톰은 그래도 한가닥 희망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도와 달라고 간청한다. 도박장에는 서로 돈을 주고 받는 사람들, 싸움을 하는 사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빌려간 돈이 얼마인지 적고 있는 모습 등을 볼수 있느나 천정에서 불이 나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보는 사람은 없는듯 하다.


도박장에서


일곱번째 그림. 톰은 이제 무일푼이 되었다. 톰은 악명 높은 플리트의 빚갚지 못한 사람들은 수용하는 감옥소에 갇힌다. 톰은 새로운 늙은 와이프와 성실한 오래된 와이프, 즉 사라 때문에 정신이 없다. 톰은 이들에 대한 절망감을 잊고자 한다. 사라는 톰이 지난 번에 경찰에게 체포당할 뻔했을 때 나타나서 잡히지 않게 도와주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감옥에서 간수와 심지어는 맥주 심부름을 하는 어린아이도 톰에게 돈을 요구하지만 톰은 줄 돈이 없다. 톰은 미쳐가기 시작한다. 우선은 비록 철창 안에서이지만 천체를 관측하기 위한 망원경을 통해서 톰은 점차 미쳐가고 있다. 이 장면은 영국 정부가 경도상(Longitude reward)을 제정한데 대한 비유이다. 다음은 감방의 뒷쪽에서는 뒷마당에서 연금술 실험을 하고 있다. 톰은 금을 만들려는 노력을 보고 정신 이상이 심해진다. 감방에 있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면 나라 빚을 갚을수 있을까라는 팜플렛을 썼다. 톰은 그것에는 관심을 가졌다. 톰의 침대 위에는 날개처럼 생긴 커다란 기구가 있다. 아마 밖으로 탈출하려는 욕심을 표현한 것 같다.


플리트 감옥에서


여덟번째 그림. 베들레헴 병원이다. 베들람(Bedlam)이라고도 하는 곳이다. 런던에서도 악명 높은 정신병원이다. 사라 영만이 톰을 위로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 온다. 바닥에 앉아 있는 머리 벗겨진 사람이 톰이다. 그 옆에 예쁜 아가씨가 사라이다. 그런데 톰은 무슨 심사인지 계속 사라를 모른체 한다. 이 그림의 어떤 장면들은 현대에 사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호가스의 시대에는 일반적인 것이므로 그렇게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잘 차려입은 두 명의 여인네들이 보이는데 이는 이들이 정신병원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것이며 괴기한 분위기에서 접대 받는 것을 좋아해서 온 것이다. 망원경을 보는 사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 어릿광대의 모습을 한 사람 등등 여러 형태의 사람들을 볼수 있다. 톰은 얼마후 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베들람 정신병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