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82. 알프레도 카탈라니의 '라 왈리'(La Wally)

정준극 2016. 11. 7. 13:56

라 왈리(La Wally)

알프레도 카탈라니의 4막 오페라

스위스 알프스가 배경. 무대 세팅의 어려움으로 거의 공연되지 않아


알프레도 카탈라니


'라 왈리'(La Wally)는 이탈리아의 알프레도 카탈라니(Alfredo Catalani: 1854-1893)의 4막 오페라이다. 대본은 당대의 대본가인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가 썼다. '라 왈리'의 초연은 1892년 1월 20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있었다. 카탈라니는 푸치니 이전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오페라 작곡가였다. 모두 6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라 왈리' 이외에도 '로렐라이'(Loreley)가 대표작이다. 카탈라니는 교향곡적 작품도 여러 편을 남겼다. 대본을 쓴 루이이 일리카는 다시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름난 대본가였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들인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안드레아 셰니에' 등의 대본을 쓴 사람이다. 뛰어난 작곡가와 훌륭한 대본가가 만났으니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수 없다. 오페라 '라 왈리'를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주인공 왈리의 아리아인 Ebben! Ne andro lontana(그래요? 그럼 난 멀리 떠나겠어요) 때문인 것 같다. 오늘날 오페라 '라 왈리'는 제작에 어려움이 있어서 거의 공연되고 있지 못하지만 왈리의 아리아 Nebben?...은 콘서트 레퍼토리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Nebben?...이라는 오페라 아리아는 기억하고 있지만 오페라 '라 왈리'가 어떤 작품인지는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라 왈리'의 제작이 어렵다는 것은 이 오페라의 배경이 스위스의 알프시이며 마지막 장면에는 주인공이 눈사태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므로 이 장면을 한정된 무대에 재현한다는 것이 어려워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삼은 무대


왈리의 아리아 Nebbe?...은 1981년도 장 자크 베이네익스의 영화 '디바'(Diva)에 나왔기 때문에 잊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영화에서는 이 아리아를 미국의 소프라노 윌헬메니아 페르단데스(Wilhemenia Fernandez)가 불렀다. 사실 이 노래는 카탈라니가 1878년에 샹송 그로엔란데이스(Chanson Groenlandaise)라는 제목으로 작곡해 놓은 것이다. 이것을 10년도 훨씬 지난 때에 오페라 '라 왈리'를 작곡하면서 주인공의 아리아로 인용하였던 것이다. '라 왈리'의 원작은  독일 작가인 빌헬미네 폰 헬레른(Wilhemine von Hillern: 1836-1916)의 대인기를 끌었던 고향소설 시리즈인 Die Geier-Wally, Eine Geschichte aus den Tyroler Alpen(The Vulture Wally: A Story from the Tyrolean Alps: 탐욕스런 발리: 티롤의 알프스 이야기)이다. 고향소설(Heimatroman)이란 고향인 시골을 배경으로 삼은 사랑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을 말한다. 주인공인 왈리(Wally)는 독일 이름인 봘부르가(Walburga)의 애칭이다. 독일에서는 '발리'라고 발음하지만 대본이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왈리'라고 부르고 있다. 빌헬미네 폰 헬레른의 소설은 티롤의 화가인 안나 슈타이너 크니텔(Anna Stainer-Knittel)의 이야기를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원작자인 빌헬미네 폰 헬레른은 안나 슈타이너 크니텔을 만난 일이 있다. 소설의 제목이 '가이어 발리'(Geier-Wally)라고 되어 있는데 가이어라는 단어는 독수리(Vulture)를 말한다. 가이어는 왈리의 별명이다. 그런 별명이 붙게 된 것은 언젠가 왈리가 독수리 둥지에서 갓 태어난 독수리 새끼를 꺼낸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빌헬미네 폰 힐러른이 왈리 시리즈를 쓰게 된 것은 독일 방송국의 드라마를 위해서였다.


소프라노 윌헬메니아 페르난데스. 영화 '디바'에서 Ebben?...을 불러서 유명해졌다.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왈리(Wally: S). 스트로밍거의 딸

- 스트로밍거(Stromminger: B). 농부

- 하겐바흐(Giuseppe Hagenbach: T). 왈리를 사랑하는 사람

- 겔너(Vincenzo Gellner: Bar). 왈리를 사랑해서 하겐바흐를 질투하는 사람

- 아프라(Afra: MS). 하겐바흐가 약혼한 여관집 주인

- 발터(Walter: S). 왈리의 친구. 바지역할

- 이밖에 티롤지방 사람들, 목동들, 농부들, 사양꾼들, 나이 많은 여인들, 마을 어린이들


오페라 '라 왈리'는 독일의 작은 마을인 호흐슈트로프(Hochstroff)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아가씨 왈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왈리는 푸치니의 '황금서부의 아가씨'의 주인공인 미니를 생각나게 하는 여자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마을 남자들이 모두 왈리를 사랑한다. 그런데 왈리는 순수하고 착하면서도 터프한 면이 있다. 웬만한 남자 뺨치는 성격이다. 다시 말하면 고집이 세다. 그런하하면 어떤 음악평론가는 오페라 '라 왈리'를 '루이지 밀러', '로미오와 줄리엣', '라 트라비아타'가 혼합된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왈리는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 주세페 하겐바흐라는 청년을 남몰래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하겐바흐는 왈리의 아버지 스트로밍거와 오랜 원수지간이었다. [1막] 호흐슈트로프 마을에서는 스트로밍거의 70세 생일 잔치가 열리고 있고 아울러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격대회가 열린다. 잠시후 하겐바흐의 인솔로 이웃 마을인 죌텐(Sölten)에서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사격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한다. 하겐바흐는 앞으로 장인이 될지도 모르는 스트로밍거에게 잘 보이고 싶고 나아가서 두 집안간의 해묵은 원한 관계를 청산하고 싶어서 자진 방문한 것이다. 그러나 하겐바흐를 본 스트로밍거는 크게 노해서 냉대한다. 두 사람은 이내 언쟁을 벌인다. 스트로밍거는 하겐바흐에게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겁을 주다가 자기의 70회 생일이란 것을 생각해서 싸우지는 않고 대신에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모욕적인 언행으로 하겐바흐와 일행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결국 하겐바흐와 일행들은 사격대회에 참석도 하지 못하고 물러난다.


왈리의 아버지 스트로밍거 노인의 칠순 버스데이 파티. 왈리와 하겐바흐가 춤을 추고 있다.


왈리와 같은 마을에 사는 빈첸조 겔너는 사람이 약아 빠졌고 경솔하며 욕심이 많다. 겔너는 실은 은근히 왈리를 사랑하고 있다. 겔너는 스트로밍거의 생일 잔치에 참석했다가 스트로밍거와 하겐바흐가 언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는 두 사람이 보통 원수는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왈리는 두 사람의 언쟁에서 자기 아버지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하겐바흐를 두둔하는 것이 아닌가? 겔너는 왈리가 하겐바흐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겔너는 그렇다면 자기는 뭐란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후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뜨고 스트로밍거와 겔너만이 남아 있게 되자 겔너는 스트로밍거에게 왈리와 하겐바흐가 아무래도 서로 사랑하는 것 같아서 의심스럽다고 속삭인다. 스트로밍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겔너가 그렇게 말한 이면에는 그가 왈리를 좋아해서인 것을 알게 된다. 스트로밍거는 기왕에 왈리와 겔너가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트로밍거는 딸 왈리를 불러서 앞으로 한 달 안에 겔너와 결혼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영영 쫓아내겠다고 엄히 말한다. 뜻밖에 아버지의 그런 말에 왈리는 겔너와 결혼해야 한다면 차라리 알프스의 눈 속으로 들어가서 죽어버리겠다고 대답한다. 이때 왈리가 부르는 아리아가 Ebben? ne andro lontana ...이다. 


눈 속에 묻혀 있던 하겐바흐를 구하는 왈리


[2막] 1년이란 세월이 쏜 살같이 흘렀다. 스트로밍거 노인이 세상을 떠나고 왈리가 재산을 상속 받았다. 하겐바흐는 독수리 여관집 여주인인 아프라와 약혼한다. 하겐바흐는 당연히 왈리에 대하여 점점 무관심해 진다. 결국 하겐바흐는 왈리를 마치 뜨거운 감자처럼 손에서 떨어트린다. 봄이 되었다. 마치 숨어 있듯이 집에만 있던 왈리는 봄축제가 열린다고 하자 모처럼 궁금해서 마을 파티가 열리는 독수리 여관집으로 간다. 왈리는 사실 하겐바흐가 보고 싶어서 만나러 가는 것이다. 여관의 주점에서 하겐바흐의 친구들은 왈리가 나타난 것을 보자 하겐바흐와 내기를 건다. 하겐바흐가 옛 애인인 왈리와 키스를 할수 있는지에 대한 내기이다. 하겐바흐가 왈리에게 다가가서 다정하게 인사하자 아직도 하겐바흐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식지 않은 왈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하겐바흐와 키스를 한다. 하겐바흐가 내기에서 이긴 것이다. 나중에 하겐바흐가 자기와 키스한 것이 장난이라는 것을 알게 된 왈리는 너무나 분해서 어찌할줄 모르게 된다. 왈리는 아직도 자기를 따라 다니는 겔너에게 하겐바흐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왈리는 겔너에게 하겐바흐를 죽여 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왈리와 겔너. 노바야 오페라


[3막] 알프스 계곡이다. 집으로 돌아온 왈리는 자기가 너무나 끔찍한 말을 했다고 생각해서 후회한다. 왈리는 할수만 있다면 겔너에게 하겐바흐를 죽여 달라고 간청한 것을 취소하고 싶다. 그래서 자기의 혼란스런 심정을 친구 발터에게 말하고 위로를 받고자 한다. 그때 왈리의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겔너이다. 겔너는 왈리가 부탁한대로 마치 사슴처럼 하겐바흐를 뒤쫓아가서 처치했다고 말한다. 비록 추운 겨울 밤이어서 사방이 컴컴하고 두려웠지만 하겐바흐를 계곡 아래의 눈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왈리는 한편으로는 너무나 겁이 나지만 일단 하겐바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어서 아무런 생각없이 계곡으로 달려간다. 왈리는 천만다행으로 의식이 없이 눈속에 묻혀 있는 하겐바흐를 구해낸다.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도 하겐바흐는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지만 왈리 때문에 목숨을 건진 것이다. 왈리는 하겐바흐가 아프라와 약혼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하겐바흐가 더 이상 자기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프라에게 하겐바흐를 데려가도록 한다. 그리고는 허탈한 심정이지만 집으로 돌아온다.


눈사태 속의 왈리


[4막] 왈리는 외롭고 절망적이 된다. 죽고 싶은 심정이다. 왈리는 정신없이 산 위로 올라간다. 왈리의 유일한 친구인 발터가 그런 왈리를 쫓아간다. 발터는 왈리에게 제발 산으로 올라가지 말고 이제 크리스마스 축제들이 열릴 것이니 어서 함께 가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산 꼭대기로 자꾸 올라가면 잘못하다가는 눈사태 때문에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왈리는 발터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계곡의 눈속으로 뛰어 들어서 죽을 생각을 한다. 그러는데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하겐바흐이다. 눈속에 묻혀 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하겐바흐는 왈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목숨을 구해 준것을 알고 너무나 감동하여서 왈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다시 솟아난다. 그래서 왈리를 찾아 갔으나 산으로 올라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급히 쫓아가서 왈리에게 자기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고 사랑을 고백할 생각이다. 하겐바흐의 진정한 사랑고백을 들은 왈리는 하겐바흐에 대한 원망과 증오의 감정이 모두 눈 녹듯이 사라진다. 두 사람은 화해하고 서로의 사랑이 영원히 변치 말자고 다짐한다. 하겐바흐는 어서 집으로 내려가자고 말하고 안전하게 내려갈수 있는 길을 찾으로 간다. 아래로 내려갔던 하겐바흐는 왈리에게 길을 찾았으니 어서 이리로 와서 내려가자고 소리친다. 그런데 하겐바흐가 그렇게 소리치는 바람에 고요하던 산 속에서 눈사태가 일어난다. 눈사태는 하겐바흐를 집어 삼킨다. 왈리는 하겐바흐가 눈 속에 묻혀서 사라진 것을 알고 잠시 정신없이 서 있다가 '여기 주세페의 아내가 있어요'라고 소리치고는 이내 눈사태 속으로 몸을 던진다.


왈리로부터 멀어져가는 하겐바흐


'라 왈리'의 1892년 초연에서 타이틀 롤은 루마니아 출신의 아름다운 소프라노 하리클레아 다르클레(Hariclea Darclee)가 맡았고 주세페 하겐바흐는 테너 마누엘 수안게스(Manuel Suanges)가 맡았다. 그리고 왈리츼 친구 발터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소프라노 아델리나 슈텔레(Adelina Stehle)가 맡았다. 지금까지 나온 음반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1960년에 레나타 테발디(Renata Tebaldi)가 타이틀 롤을 맡아 취입한 것, 이어 1968년에도 레나타 테발디가 취입했고 1989년에는 헝가리 출신의 소프라노 에바 마튼()이 취입한 것이 있다. 그리고 2014년에는 비엔나 출신의 수잔나 폰 데어 부르그(Susanna von der Burg)가 타이츨 롤을 맡은 것이 있는데 이때 합창은 인스부르크의 티롤주립극장 합창단이 맡았고 오케스트라는 인스부르크 오케스트라였다. 역시 티롤을 무대로 삼은 오페라이기 때문에 티롤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열심히 취힙했다.


 

왼쪽으로부터 초연에서 왈리의 이미지를 창조한 하르클레아 다르클레, 가장 인기가 높았던 레나타 테발디, 헝가리의 에바 마튼, 그리고 비엔나 출신의 수잔나 폰 데어 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