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참고자료] '어느 매춘부의 행로'(A Harlot's Progress)

정준극 2016. 11. 2. 06:19

[참고자료] 윌리엄 호가스의 '어느 매춘부의 행로'(A Harlot's Progress)

'어느 난봉꾼의 행로'를 완성하기 1년전에 완성

영국의 이에인 벨(Iain Bell)이 오페라 스타일로 작곡


작곡가 이에인 벨


18세기 영국의 화가인 윌리엄 호가스가 그린 '어느 난봉꾼의 행로'(A Rake's Progress)라는 8부작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게 영감을 주어서 오페라를 탄생케 했다. 윌리엄 호가스는 '어느 난봉꾼의 행로'를 완성하기 1년 전인 1731년에 '어느 매춘부의 행로'(A Harlot's Progress)라는 6부작의 그림을 완성한바 있다. '어느 난봉꾼의 행로'도 1933년에 판화로 만들어져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만 '어느 매춘부의 행로'도 1732년에 판화로 만들어져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오페라를 작곡함에 있어서 '어느 매춘부의 행로'도 참고했다고 한다. 어떤 내용의 그림들인지 소개코자 한다. 한편, '어느 난봉꾼의 행로'가 오페라로 만들어졌듯이 '어느 매춘부의 행로'도 오페라로 만들어진 것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페라가 아니라 오페라 스타일의 음악작품이다. 영국의 젊은 작곡가 이에인 벨(Iain Bell: 1980-)이 2013년에 완성해서 그해 10월 13일 비엔나의 유서깊은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에서 초연을 가진 작품이다. 초연에서 타이틀 롤은 독일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인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가 맡아서 '대단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에인 벨은 2013년의 '어느 매춘부의 행로'에 이어 2014년에 오페라 '크리스마스 캐롤'(A Christmas Carol), 2016년에 오페라 '괄호안에 넣어서'(In Parenthesis)를 작곡했다.


'어느 매춘부의 행로'는 M Hackabout(엠 해크어바웃)이라는 젊은 여성의 일생에 대한 스토리이다. 이름에서 M 이라는 이니셜은 아마 매춘부로 유명한 Moll Flanders(몰 플란더스)의 이름을 따온 것이 아니겠느냐는 짐작이다. 실제로 그림 해설에서 여주인공의 이름은 몰이라고 나온다. 해크어바웃이란 이름은 또 다른 지독한 매춘부인 케이트 해크어바웃(Kate Hackabout)을 비유해서 붙였다는 해석도 있다. 케이트 해크어바웃은 1730년 4월에 교수형에 처해진 프란시스 해크어바웃의 여동생이다. 프란시스 해크어바웃은 악명 높은 노상강도였다. 그리고 케이트 해크어바웃도 그해 8월에 당국에 의해 풍기문란, 즉 매음굴을 운영했다는 죄로 체포된바 있다. M에 대한 또 다른 의미로는 복되신 성모 마리아(Blessed Virgin Mary)의 호칭에서 Mary의 M을 따온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면 그건 풍자로서 그랬을 뿐이며 성모를 조롱할 이유는 없다. 아무튼 훗날 사람들은 매춘부가 된 그 여인의 이름을 몰(Moll)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게 알려져 있다. 이름은 그렇다고 치고 '어느 매춘부의 행로'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M 이라는 젊은 여인이 시골에서 먹고 살기가 어렵고 또한 대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런던에 올라왔다가 나쁜 사람의 꼬임에 빠져 매춘부가 되었고 겉으로는 화려할지 모르지만 험난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성병에 걸려 끝내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는 얘기이다. 호가스의 연작 그림의 타이틀은 물론이고 그림의 내용도 존 번얀(John Bunyan)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Pilgram's Progress에서 우리는 Progress를 '역정'(歷程)이라고 번역했지만 본 블로그에서는 '행로'(行路)라고 번역하니 양해 바란다.]


첫번째 그림의 디테일. 몰과 포주


호가스는 처음에 세번째 그림에 해당하는 드러리 레인에 있는 초라한 다락방에 살고 있는 어떤 매춘부의 방을 그리다가 기왕에 그 여인이 어떻게 매춘부가 되었는지, 그리고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는지도 상상해서 그리기로 하여 결국 여섯 점의 시리즈를 완성했다고 한다. 첫번째 그림에서는 어떤 노파가 길을 가던 어떤 젊은 여인을 붙잡고 정말 예쁘게 생겼다고 칭찬하면서 그런 모습이면 고생하지 않고 돈을 벌수 있는 직업이 있다고 듣기 좋은 말로 유혹하며 결국 어떤 신사를 위해 젊은 여인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떤 노파는 악명 높은 포주이다. 두번째 그림에서는 이 젊은 여인이 어느새 두 남자를 정부(정부)로 둔 매춘부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며 세번째 그림에서는 사기죄 등등으로 체포된다는 이야기, 네번째 그림에서는 브라이드웰 감옥소에서 밧줄로 매질을 만들기 위한 노동을 하는 이야기, 다섯번째 그림에서는 몹쓸 성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그림에서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한다는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이야기에 나오는 지명 등은 모두 런던의 실제 지명들이므로 실감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물론 18세기 당시의 런던의 어두운 면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실감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린 윌리엄 호가스는 청년 시절에 은세공의 도제로서 생활을 한 일이 있다. 호가스는 그런 경험을 살려서 오리지널 그림을 바탕으로 판화를 만들었다. 호가스는 판화를 이용해서 1,240부의 한정판 프린트를 만들었고 특별 주문하는 사람에게만 1기니를 받고 팔았다. 이 그림에 대한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자 해적판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호가스는 자기 그림에 대한 저작권을 얻어서 복사본이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진보된 조치였다. 이어 그는 '어느 난봉꾼의 행로'를 만들어서 발표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역시 여섯 점으로 구성된 Marriage a-la-mode(결혼 유행)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어느 매춘부의 행로'의 오리지널 그림은 런던의 폰틸 하우스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1755년에 불이 나는 바람에 모두 소실되었다. 폰틸 하우스는 정치인인 윌리엄 베크포드의 전원저택이었다. 그러나 오리지널 그림은 불에 타서 없어졌지만 오리지날 판화는 다행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리지널 판화는 호가스의 미망인인 제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1789년에 존 보이델이란 사람에게 팔았고 이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후 1835년에 헨리 본(Henry Borne)이라는 사람의 소장이 되었다. 판화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동안 추가 복사본이 만들어져서 과연 어떤 것이 오리지널 복사본인지 알기가 어렵게 되었다.  


첫번째 그림. 몰 해크어바웃이 런던에 도착하여 칩스사이드에 있는 벨 여관 앞에서 못된 포주를 만나다.



주인공인 몰 해크어바웃이 런던에 도착했다. 몰은 바느질 가위를 들고 있고 팔에는 바늘쌈을 걸치고 있다. 누가보더라도 바느질 일감을 구하는 아가씨이다. 어떤 노파가 몰의 앞을 가로막아 선다. 엘리자베스 니덤(Elizabeth Needham)이라는 노파이다. 얼굴에는 마마자국이 보기 싫게 나 있다. 엘리자베스는 이름은 고상하지만 하는 일이란 매음굴의 포주이다. 매춘부가 될 만한 여자들을 꼬셔서 남자들에게 돈을 받고 소개해주는 일을 한다. 엘리자베스는 몰이 일꺼리를 구하는 것을 알고는 매춘부로 삼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집의 문 앞에는 악명 높은 난봉꾼인 프란시스 챠터리스() 대령과 그를 따라다니는 핌프 존 굴레이()가 서 있으면서 마우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인 몰의 거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다 쓰러져가는 듯이 보이는 그 건물은 도덕의 붕괴를 의미한다. 난봉꾼 챠터리스는 몰을 품 안에 넣으려는 생각으로 빙그시 웃고 있다.


이 장면은 누가보더라도 못된 포주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를 매춘부로 유혹하려는 것임을 알수 있다. 그나저나 거리를 지나가는 런던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말을 타고 가던 목사는 아가씨가 곤경에 빠져 있다는 것을 짐작할 것 같은데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마치 자기의 말이 길 한 쪽에 쌓여 있는 양동이들을 쓰러트리고 있는데도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몰은 노파가 포주인지도 모르고 적당한 직장을 구해주겠다고 하자 그것이 몸을 팔아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얘기인 줄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오른쪽 구석에는 MH라는 이니셜이 적혀 있는 트렁크가 있고 그 앞에는 바구니에 들어 있는 거위 한마리가 있다. MH는 몰 해크어바웃의 약자이므로 당연히 몰의 짐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바구니에 들어 있는 거위도 몰의 것이 틀림없다. 거위는 죽은 것 같이 보이지만 아무튼 몰에게 '길을 잘 못 들어갔다'고 말하는 것 같다. 몰은 하얀색 옷을 입고 있다. 순진하고 나이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죽은 거위도 흰색이다. 몰의 멍청함으로 속아서 결국 죽음에 이르를수 밖에 없다는 것을 예견해 주는 내용이다. 여관에는 커다란 종이 하나 걸려 있다. 영어의 bell 이지만 프랑스어의 belle, 즉 미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골에서 방금 런던에 도착한 아름답고 순진한 아가씨를 뜻한다. 금방 쓰러질 것같은 양동이 더미는 몰이 타락할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거위와 쓰러질 것 같은 양동이들은 매독과 같은 성병으로 무기력하게 된 것을 뜻한다. 아마도 몰의 특별한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는 것 같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그림은 마치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사촌인 엘리자베스를 방문한 것을 표현한 그림을 연상케 한다. 누가복음 1장 39-56절의 말씀이다.


두번째 그림. 몰은 이제 매여 있는 몸이다. 어떤 부자 상인의 정부가 되어 있다.



몰은 이제 어떤 부자 상인의 정부(情婦)가 되어 있다. 부자 상인은 유태인이다. 몰은 옷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 같다. 몰이 시골에서 런던에 올라 올 때에 입었던 단조로운 옷은 어느새 사라지고 유한 마담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몰은 이제 부유하게 지내고 있다. 서인도제도에서 데려온 것 같은 흑인 아이는 몰의 시종이다. 전속 하인과 하녀도 있다. 왼편에 방에서 나가려는 듯한 두 사람이 그들이다. 애완용 원숭이도 한 마리 있다. 당시에는 부자집이라면 원숭이를 사다가 길렀다. 이 모든 것이 부자 상인이 정부인 몰에게 마련해 준 것이다. 시중을 드는 소년, 하녀와 하인, 원숭이, 마호가니 티 테이블, 티 테이블에서 떨어져서 깨진 찻잔들...모두 상인이 식민지와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마련해 준 것들이다. 왼쪽의 탁자 위에는 가면무도회에서나 볼수 있는 가면(마스크)이 있고 값비싼 화장품들도 보인다. 벽면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몰의 성관계가 문란하다는 것과 몰이 도덕적으로 해이해 져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내용들이다. 몰은 발로 티 테이블을 걷어찬다. 자기의 신분이 정부, 즉 두번째 애인이라는 것을 상인에게 알리려는 의도이다. 첫번째 부인 같으면 남편 앞에서 티 테이블을 발로 걷어 찬다든지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그림. 몰이 부자의 정부에서 일반 창녀가 된다.



몰은 부자집에서 안락하게 지내는 정부의 입장에서 평범한 창녀로 전락한다. 몰의 하녀는 젊고 일잘하는 여자가 아니라 늙은 여자이다. 게다가 매독에 걸려서인지 얼굴에 표시가 있다. 헨리 필딩이 '톰 존스'(Tom Jones)라는 뮤지컬을 만든 것이 있는데 몰의 하녀는 '톰 존스'에 나오는 미세스 패트릿지처럼 보이는 여자이다. 그건 그렇고, 몰의 방에 있는 가구 중에서 그나마 쓸만한 것은 침대 하나이다. 고양이 한마리도 있다. 그런데 고양이의 포즈가 흥미롭다. 몰의 새로운 입장을 상징해 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벽에는 마녀 모자와 마녀 빗자루가 걸려 있다. 이건 도대체 무엇인가? 몰이 흑주술을 하고 있다는 표시인가? 그보다는 몰의 현재 직업이 악마의 작업에 의한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왼쪽 벽에는 두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알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하나는 '거지 오페라'(The Beggar's Opera)에 나오는 노상강도 맥히스(MacHeath)이며 다른 하나는 헨리 세이케베렐(Henry Sacheverell)이다.


네번째 그림. 몰이 브라이드웰 감옥소에서 밧줄을 다듬는 노동을 하고 있다.



몰은 빚더미에 올라 앉는 바람에 브라이드웰 감옥소에 수감된다. 몰은 감옥에서 사형수 밧줄을 만들기 위해 삼을 두드리는 노동을 한다. 감옥의 간수가 몰에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시하고 있고 만일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위협한다. '톰 존스'에 나오는 가학적 간수인 스워쿰(Thwackum)이 바로 브라이드웰의 간수와 닮았다. 간수의 옆, 몰의 뒤에 있는 여자는 간수의 마누라이다. 몰의 뒤에서 몰이 입고 있는 비싸게 보이는 옷을 몰래 훔치려고 하고 있다. 노동을 해야하는 죄수들은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가지고 있는 돈의 정도에 따라 서열로서 서있다. 몰은 그나마 돈이 좀 있고 더구나 하녀까지 데리고 왔으므로 가장 왼쪽에 서서 일을 한다. 그러나 저 끝에는 흑인처럼 보이는 여자가 있다. 가진 돈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몰의 옆에는 카드놀이 사기꾼이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카드 사기꾼이라는 것은 그에게서 카드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앞에 있는 개는 카드 사기꾼이 데리고 온 개이다. 감옥의 생활을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왼쪽 벽에는 죄인의 두 손을 채우는 나무 차꼬가 있다. 죄수 한 사람이 차꼬에 두 손이 채워진채 고통스럽게 서 있다. 차꼬의 나무 판자에는 표어가 적혀 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표어이다. Better to Work/than Stand thus(할 일 없이 서 있지 말고 일을 하는 것이 더 좋다)라고 적혀 있다. 차꼬에 두 손이 채워진 죄수는 아마 노동을 거부했던 것 같다. 오른쪽에 있는 여인 중의 하나는 몰의 하녀이다. 얼굴에 매독의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몰의 하녀는 몰이 신었던 구두를 빼앗아서 신고 있다. 옷도 몰의 옷을 훔친 것이다.


다섯번째 그림. 몰이 매독으로 죽어가고 있다.



몰은 이제 매독으로 죽어가고 있다. 벽난로 앞에서 하얀 천에 싸인 사람이 몰이다. 두 사람의 신사는 의사들이다. 검은 가발이 닥터 리챠드 로크(Dr Richard Rock)이며 하얀 가발이 닥터 진 미서빈(Dr Jean Misaubin)이다. 둘 다 성병 전문의사이다. 두 사람은 매독 치료법에 대하여 의견이 맞지 않아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리챠드 로크는 피를 흘리게하여 뽑아 내어서 치료하는 방법을 주장하고 있다. 진 미서빈은 커핑(cupping)이라는 방법을 주장하고 있다. 피를 빨아서 뽑아내는 방법이다. 몰의 옆에서 마치 간호하듯 서 있는 여자는 몰의 하녀이다. 두 의사에게 제발 소란을 떨지 말고 치료방법이나 생각하라고 핀잔을 주고 있다. 몰의 하녀는 포주같이 생긴 여자가 몰의 물건을 뒤지는 것에 대하여도 그러지 말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몰의 하녀도 매독에 걸린 것 같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매독의 흔적을 찾아 볼수 있다. 왼쪽의 여인이 포주이거나 집주인으로 생각되는 여자이다. 몰에게서 돈을 못받을 것 같자 몰의 트렁크를 뒤져서 무엇이든지 돈이 될만한 것을 가져가려고 찾고 있다.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아이는 몰의 아들이다. 짐작컨대 엄마의 성병의 영향으로 몸에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몰의 아들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 거리고 있다. 이나 벼룩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마루 바닥에는 유태인들이 유월절에 사용하는 무교병이 있다. 몰이 지금까지 동거해 왔던 부자 상인이 유태인이어서 아마 무교병으로 몰의 병을 고칠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가져다 놓은 것 같다. 옛날 애급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벨 백성들은 가나안 복지로 떠나는 먼 여행을 위해 무교병을 만들어 먹었는데 몰의 경우에도 무교병을 먹으면 혹시 질병이 낫지 않을까 해서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그러나 방안의 무교병은 파리를 잡기 위한 미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마루 바닥에는 진통제로서 아편 몇개와 치료약들이 처방전과 함께 흩어져 있다. 몰을 하얀 천으로 입혀 놓은 것은 사후에 악마가 몰의 영혼을 지옥으로 데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섯번째 그림. 몰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람들이 밤샘을 한다.



몰이 마침내 세상을 떠난다. 사람들이 문상을 하러 온다. 밤샘이라도 할 모양이다. 그런데 문상하러 온 사람들은 마치 썩은 고기라도 서로 빼앗아 먹으려는 포식자들 같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관 위에 놓인 종이조각에는 몰이 1731년 9월 2일 23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 있다. 장례를 주관하기 위해 교회에서 목사가 왔다. 목사는 한쪽에 앉아서 손에 브랜디 한 잔을 들고 있다. 그런데 술잔에서 브랜디가 흘러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목사는 흘러내리는 술에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인다. 대신에 옆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마 분명히 술잔을 들지 않은 다른 한 손은 여자의 치마 속으로 넣고 있을 것이다. 여자는 창녀로 보인다. 목사의 손이 자기의 치마 속을 더듬고 있자 은근히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검은색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여자들은 거의 모두 창녀들이다. 검은 상복을 입을 형편이 아니므로 간단히 검은 스카프로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양이다. 목사의 오른편, 관 위에 술잔을 놓고 있는 여자는 목사를 노려보며 무언가 불만스런 표정이다. 그나저나 몰이 들어 있는 관을 주점의 카운터로 생각들 하는 모양인지 술잔을 올려 놓고 있으니 도대체 문상을 온 것인지 술을 마시러 온 것인지 구별이 안된다. 몰의 아들은 주위가 소란한데도 무심하게 놀고 있다. 오리지널 그림에는 몰의 아들이 팽이를 가지고 노는 모습이 있지만 판화에서는 무얼 가지고 노는지 분명치 않다. 아무튼 몰의 아들은 엄마의 시체 아래에서 순진하게 놀고 있으니 묘한 조화이다. 다만, 몰의 아들의 모습은 그 자신도 무언가 운명적으로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여자는 몰의 주인, 즉 포주이다. 벌써 술에 취해 있는 듯이 보인다. 옆에는 브랜디인 난츠(Nants) 병이 있다. 슬며시 웃고 있는 해골이 그려져 있어서 소름끼치는 모습이다. 포주 한 사람만이 몰의 관을 술집의 카운터처럼 쓰고 있다면서 사람이 그러면 되느냐고 불만을 털어 놓는다. 문상하러 온 어떤 창녀는 장의사에게서 손수건을 훔치고 있다. 장의사는 그런줄도 모르고 그 창녀에게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뒤에는 창녀 한 사람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화장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창녀는 창녀이다. 그런데 이마에는 매독 부스럼이 나 있다. 그 옆에 있는 두명의 창녀들 중에 한 사람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다쳐서 아파서 우는 것이다. 그 창녀는 다친 손가락을 친구 창녀에게 보이면서 아프다고 징징대고 있다. 벽에는 이 집의 문장(紋章)을 그린 것 같은 그림이 걸려 있다. 가만히 보면 병마개가 세개 그려져 있다. 병마개는 목사의 술잔에서 브랜디가 흘러 내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몰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의미도 있다. 그 옆으로 하얀 모자가 걸려 있다. 몰이 처음 런던에 왔을 때 쓰고 있던 모자이다. 순진했던 시골 아가씨의 모자였다. 모자는 몰의 파란많은 생애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은 관속에 누어 있는 신세가 되어 있다.


여섯번째 그림의 디테일. 창녀들의 얼굴에는 대체로 매독 증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