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91.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죽은 도시'(Die tote Stadt)

정준극 2016. 11. 23. 21:47

죽은 도시(Die tote Stadt) - The Dead City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3막 오페라

벨기에의 조르즈 로덴바흐의 Burges-la-Morte(죽은 도시 뷔르제) 바탕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벨기에 출신의 상징주의 시인이며 작가인 조르즈 로덴바흐(Georges Rodenbach: 1855-1898)의 1892년도 소설인 '죽은 도시 브뤼헤'[Burges-la-Morte: The Dead (City of) Burges]를 바탕으로 보헤미아 출신의 미국 작곡가인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irch Wolfgang Korngold: 1897-1957)가 '죽은 도시'(Die tote Stadt: The Dead City)라는 제목의 3막 오페라를 작곡했다. 브뤼헤는 벨기에에 있는 아름다운 중세의 고도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도시로서 운하가 많기 때문에 '북부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을 듣고 있는 도시이다. 중세로부터 무역히 활발하여 부유한 도시였다. '죽은 도시'의 대본은 파울 쇼트(Paul Schott)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되어었다. 그런데 파울 슈미트라는 이름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자신과 그의 아버지로서 이름난 음악평론가인 율리우스 코른골트를 한데 묶어서 부르는 필명이다. 그런고로 파울 슈미트라는 인물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는 별명을 두개나 가지고 있다. 하나는 '마지막 신동'(The Last Prodigy)이며 또 하나는 '제2의 모차르트'(The Second Mozart)이다. 이를 미루어보건대 코른골트는 모차르트처럼 대단한 신동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코른골트는 모차르트처럼 어릴 때부터 뛰어난 음악재능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모차르트는 6세 때부터 작곡을 했다고 하지만 코른골트는 8세 때부터 작곡을 했다. 두 사람 모두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것도 연관성이 있다면 있는 얘기이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서 활동하다가 비엔나로 왔고 코른골트는 모라비아의 브륀(현재의 체코공화국의 브르노)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에 비엔나에 와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코른골트는 첫 오페라를 11세 때인 1910년에 완성했다. 오페라라기 보다는 발레음악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판토마임 음악이다. '눈사람'(Der Schneemann)이라는 작품이다. '눈사람'의 초연은 비엔나의 유서깊은 호프오퍼(현재의 슈타츠오퍼)에서였다. 이때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란츠 요셉 황제가 참석했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눈사람'을 보고나서 '아니 11살 밖에 안된 어린이가 이런 훌륭한 음악을 작곡했단 말인가? 놀랍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죽은 도시'의 무대가 된 벨기에의 브뤼헤. 아름다운 고도로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얘기가 조금 빗나갔지만, 아무튼 코른골트는 7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코른골트의 오페라를 소개하면, 연도별로 Der Schneemann(1910. 눈사람, 발레-판토마임), Der Ring des Polykrates(1914. 폴리크라테의 반지, 오페라 부파), Violanta(1915. 비올란타), Die tote Stadt(1920. 죽은 도시), Das Wunder der Heliane(1927. 헬리아네의 기적), Die Kathrin(1939. 카트린), Die stumme Serenade(1950. 무언의 세레나데. 오페레타)이다. 코른골트는 이밖에도 수많은 오케스트라곡, 보컬곡, 실내음악, 피아노곡, 가곡, 영화음악등을 작곡했다. 영화음악으로서는 Of Human Bondage(인간의 굴레), The Adventure of Robin Hood(로빈 후드의 모험)의 음악이 대표적이다. 아무튼 코른골트가 남긴 여러 편의 오페라 중에서 '죽은 도시'가 가장 진지한 평가를 받았기에 소개코자 한다. 코른골트는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나치를 피해서 일찍이 1934년에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계속 오스트리아 시민으로 남아 있다가 거의10년 만인 1943년에 미국시민이 되었고 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다.


캐나다 칼가리 오페라 무대


조르즈 로덴바흐의 소설 '브뤼헤'는 작가가 이미 프랑스어 극본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것을 지그프리트 트레비슈라는 사람이 독일어로 번역했다. 제목은 처음에 Die stille Stadt(고요한 도시)였으나 나중에 Das Trugbild(환영: The Mirage)라고 바꾸었다. 트레비츄는 코른골트의 아버지인 율리우스와 친구 사이였다. 어느날 두 사람은 우연히 길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던 중 '고요한 도시'를 오페라로 만들면 좋겠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곧이어 트레비츄는 청년 코른골트를 만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코른골트도 적당한 대본을 찾고 있었던 중이어서 오페라 작곡을 기쁘게 수락하였다. 코른골트는 극본을 읽고서 단막의 대본을 작성했다. 그런데 나중에 친구들이 단막 보다는 3막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였다. 코른골트는 아버지와 합동하여 3막의 대본을 만들었다. 대본을 아버지와 아들이 공동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우스울것 같아서 두 사람은 파울 쇼트라는 필명을 생각해 내서 사용하였다. 대본에서 여주인공이 실제로 자살하는 대목을 꿈속에서 살해 당하는 것으로 바꾸자는 것은 아버지 율리우스의 아이디어였다. 코른골트는 1916년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마침 당시는 1차 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코른골트는 제국군에 입대하였고 작곡은 중단되었다. 다시 작곡을 시작한 것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인 1919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삼일 독립운동이 일어나던 해이다. 코른골트는 제목을 '죽은 도시'로 바꾸었다.


마리에타와 폴. 판란드 국립오페라


'죽은 도시'의 초연은 1920년 12월 4일 함부르크와 쾰른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때 코른골트는 23세의 청년이었으며 이미 '폴리크라테의 반지'와 '비올란타'라는 두 오페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던 때였다. 젊은 코른골트가 작곡한 이 두 오페라에 대한 인기는 대단했었다. 그래서 코른골트가 새로운 오페라를 완성했다고 하니까 독일의 오페라 극장들은 너도나도 그 새로운 오페라를 공연하고 싶어서 대단한 경쟁을 벌였다. 하는 수없이 최종적으로 두 곳에서 동시 공연을 하도록 주선되었다. 함부르크의 국립극장(슈타트테아터)과 쾰른 오페라극장(글로켄가쎄 소재)이었다. 이런 경우도 오페라의 역사에서 보기드믄 일이었다. 쾰른 초연은 지휘를 오토 클렘페르(Otto Klemper)가 맡았고 주인공인 마리에타는 그의 부인인 요한나 가이슬러(Johanna Geisler)가 맡아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코른골트는 함부르크 초연에 직접 참석하였다. 그러나 지휘는 직접하지 않았고 대신 에곤 폴라크(Egon Pollak)가 했다. '죽은 도시'의 내용은 세상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마침 당시는 1차 대전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던 때였고 사람들은 전쟁으로 희생당한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죽은 도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초연 이후 '죽은 도시'는 뜨거운 인기를 차지했었다. 독일에서의 초연 이후 '죽은 도시'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리바이발 되었다. 메트로폴리탄에서도 몇 회의 공연이 있었다.


마리의 환상을 지켜보는 마리에타와 폴. 함부르크 국립극장


그러다가 나치가 정권을 잡자 코른골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죽은 도시'를 비롯한 모든 작품이 이른바 퇴폐음악으로 규정되어서 공연이 금지되었다. 2차 대전이 벌어지고 나서는 더욱 그러했다. '죽은 도시'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고 나서 차츰 리바이발 되기 시작했다. 1967년에는 비엔나 폭스오퍼에서 리바이발되어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1975년에는 뉴욕시티 오페라가 리바이발하여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더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면서 공연되었다. 독일의 본,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비엔나 슈타츠오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등지에서의 공연이 특히 그러했다. 프랑스 초연은 1982년 샹젤리제 극장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라다가 첫 무대 공연은 2001년 스트라스부르에서였다. 마리에타를 독일의 안젤라 드노케(Angela Denoke)가 맡았고 폴은 역시 독일의 토르스텐 케를(Torsten Kerl)이 맡은 공연이었다. 전후 첫 런던 리바이발은 2009년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였다.  호주 초연은 2012년 시드니오페라하우스에서였다. 셰릴 바커(Cheryl Barker)가 마리/마리에타를 맡았고 스테판 빈케(Stefan Vinke)가 폴을 맡은 것이었다. 1989년에 미국에서 나온 영화 '뉴욕의 노예들'(Slaves of New York)에 '죽은 도시'에 나오는 음악들이 사용되었다.


핀랜드국립오페라. 카밀라 닐란드(마리/마리에타)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남자 주인공인 파울은 갸스통, 빅토린, 알베르트의 역할도 동시에 맡아 한다. 마리와 마리에트는 다른 사람이 맡을 수도 있고 한 사람이 맡을 수도 있다. 합부르크 초연에서 폴은 테너 리하르트 슈베르트(Richard Schubert)가 맡았다. 프란츠 슈베르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마리/마리에타는 소프라노 안니 뮌호브(Annie Münchow)가 맡았다. 쾰른 초연에서는 폴을 테너 칼 슈뢰더(Karl Schröder)가 맡았고 마리/마리에타는 소프라노 요한나 클렘페러가 맡았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요한나 클렘페러는 지휘자 오토 클렘페러의 부인이다. 장소는 벨기에의 도시 브뤼헤이며 시기는 19세기 말이다.


마리에타. 핀란드 국립오페라


- 폴(Paul: T): 갸스통(Gaston), 빅토린(Victorin), 알베르(Albert) 역할을 겸함

- 마리/마리에타(Marie/Marietta: S)

- 줄리에트(Juliette: S)

- 브리지타/루시앙(Brigitta/Lucienne: MS)

- 프랑크/프릿츠(Frank/Fritz: Bar)

- 이밖에 파티 참석자들


달라스오페라 무대


[1막] 폴은 브뤼헤에 살고 있는 중류층 젊은이이다. 얼마전에 사랑하는 아내 마리를 저 세상으로 보낸 폴은 아직도 그 슬픔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폴은 마리를 추모하기 위해 집안에 작은 빈소를 마련해 놓았다. 빈소에는 마리의 초상화와 사진들, 마리의 머리칼 묶음, 그리고 두 커플이 한때 함께 즐거워했던 추억의 물건들도 놓아 두었다. 예를 들면 값싼 장신구들이다. 폴의 친구인 프랑크가 폴의 집을 찾아온다. 프랑크는 폴이 세상 떠난 마리에게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제 그만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폴은 오히려 화를 내고 '마리가 아직 살아 있는데 무슨 말이냐'라고 주장한다. 그 사연인즉, 어느날 폴이 거리를 지나가는데 마리와 똑같이 생긴 어떤 여자를 보았다는 것이다. 폴은 그 여자를 보자마자 마리가 죽지 않고 살아서 다닌다고 믿었다. 폴은 그 여자를 우정 붙잡고서 말을 건넨다. 그 여자는 자기가 댄서이며 이름은 마리에타라고 소개한다. 폴은 그여자가 마리일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마리에타를 포옹하려고 한다. 그러자 마리에타는 폴의 이상한 행동에 경계심을 가지고 뒤로 물러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에타도 폴에게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는지 이런 저런 얘기를 건네며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폴은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으니 제발 한번 와 달라고 간청하기까지 한다. 두 사람은 어떤 카페에서 춤을 추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마리에타는 우연히 폴이 가지고 다니는 마리의 사진을 보고 무언가 혼돈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마리에타는 더 이상 폴과 함께 있는 것이 이상해서 리허설에 가야 한다면서 떠난다. 혼자 있게 된 폴은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혼돈스럽다. 마리 이외의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죄스럽다는 생각 때문이다.


환상적인 달라스 오페라 무대


그로부터 얼마후, 폴과 마리에타는 간혹 데이트를 하며 사람들의 눈에 띠기 시작한다. 폴의 친구들은 폴이 마리에타 때문에 집에만 틀어박혀서 슬퍼하면서 지내는 버릇을 버리고 자못 명랑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기뻐한다. 폴의 친구들은 마리에타에게 제발 그의 매력으로 폴을 다른 데에 정신을 쏟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마리에타가 루트에 맞추어서 부르는 노래가 Glück das mir verblieb(내게 머물고 있는 행운)이다. 마리에타는 노래를 부르고 유혹적인 춤을 추어서 폴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하지만 그런데도 폴의 마음은 웬만해서 열리지 않는다. 마리에타는 마침내 폴에게 지쳐서 떠난다. 폴은 마리에타가 떠나자 갑자기 대단히 초조해지고 불안해 한다. 마침내 폴은 사랑했던 마리와 새로 나타난 마리에타의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그만 의자에 파묻혀 몽롱한 가운데 환각증세를 보인다. 폴은 마리의 혼령이 자기의 초상화로부터 나와서 폴에게 이제 그만 자기를 잊어버려 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자기의 삶을 살라고 당부한다.


[2막] 폴은 그후에도 여러번이나 마리의 환상을 본다. 마리의 환상은 어느덧 마리에타의 모습으로 변한다. 폴은 자기가 정말로 누구의 환상을 보고 있는지, 또 누구를 추구하는 있는지 혼란스럽다. 폴은 방에 며칠씩이나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친구들이 하나 둘씩 멀리하기 시작한다. 폴은 점점 외톨이가 되어간다. 마침내 마리에타가 폴의 거부를 극복하고 폴의 마음 속에 사로 잡는다. 두 사람은 무대 뒤에서 열정적인 포옹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폴의 상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3막] 폴의 환상은 계속된다. 폴은 자기의 집에서 마리에타와 함께 살고 있다. 폴은 마리에타와 다투기를 시작한다. 마리에타는 이제 폴의 엉뚱하고도 이상한 행동에 지친다. 폴은 아직도 마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에타는 그런 폴에게 일부러 유혹적인 춤을 추면서 조롱한다. 마리에타는 심지어 세상 떠난 마리의 머리칼 뭉치를 들고 폴을 토닥토닥 두들기기도 한다. 폴은 마리에타의 행동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폴은 마리에타의 손으로부터 마리의 머리칼 뭉치를 빼앗아 그것으로 마리에타의 목을 감아 조른다. 마리에타가 죽는다. 폴은 마리에타의 시신을 붙잡고서 '이제 마리에타는 마리와 똑같이 되었다'라고 소리친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폴은 마리에타의 시체를 찾아보지만 방 안의 아무곳에도 없다. 마리의 머리칼 묶음은 예전처럼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그때 가정부인 줄리에트가 들어와서 방금 전에 집을 나간 마리에타가 자기의 우산을 가져오라고 시켜서 찾으러 왔다고 말한다. 폴은 아직도 조금 전에 마리를 죽인 충격적인 꿈속의 일들이 생생하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충격을 받는다. 친구들인 브리지타와 프랑크가 찾아온다. 폴은 친구들에게 이젠 자기만의 삶을 살기로 했다고 말한다. 폴은 과거는 과거이므로 뒤로 돌리고 마리를 위한 빈소도 치우기로 결심한다.


그라츠 무대. 폴의 여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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