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참고자료]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정준극 2016. 12. 30. 23:04

[참고자료]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 The Ring of the Nibelung

4편의 오페라로 구성된 리하르트 바그너의 링 사이클

바그너가 2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


리하르트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WWV 86)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가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붙인 서사시적 악극으로 모두 4편의 오페라로 구성되어 있다. 네 편의 오페라는 각각 독립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연결된 스토리되어 있다. '니벨룽의 반지'는 음악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연작 오페라(사이클)이다. 물론 일부 작곡가들이 3부작 또는 2부작을 발표했지만 서로 연결된 스토리가 아니며 또한 규모 면에 있어서 '니벨룽의 반지'에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이니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니벨룽의 반지'를 구성하고 있는 네 편의 오페라는 1)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The Rhinegold) 2) 발퀴레(Die Walküre: The Vlakyrie) 3) 지그프리트(Siegfried) 4)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 Twilight of the Gods)이다. '니벨룽의 반지'의 스토리는 대체로 북구의 사가(Saga)와 13세기 초에 완성된 남부 독일의 대서사시인 '니벨룽의 노래'(Nibelunglied)를 바탕으로 삼았다. 사가라는 것은 고대 노르스와 독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주로 초기 바이킹의 항해, 그 항해 중에 벌어진 중요한 전투들, 아이슬란드로의 이주, 아이슬란드 부족들과의 원한관계 등을 기술한 대서사시를 말한다. 노르스 신화는 북부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 뿌리를 둔 신화로서 주로 이들의 우상숭배 이야기를 다룬 것이지만 기독교가 유입된 이후에도 유지되어온 이 지역의 민화를 어우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바그너는 '링 사이클'의 스토리를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신화들과 민화에서 가져왔다. '라인의 황금'의 소재는 주로 고대 노르스의 신화인 에다(Edda)에서 가져왔고 '발퀴레'는 뵐중가 사가(Völsunga saga)를 바탕으로 삼았다. 그리고 '지그프리트'는 에두르(Eddur)와 뵐중가 사가와 티드레크스사가(Thidrekssaga)에서 요점들을 발췌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들의 황혼'은 12세기 독일의 '니벨룽겐리트'(Nibelungenlied)에서 가져왔다. 전반적으로 보아서 독일의 '니벨룽겐리트'가 '링 사이클'에게 오리지널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고 볼수 있다. 


오늘날의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


리하르트 바그너는 '니벨룽의 반지'를 오페라 또는 뮤직 드라마라고 부르는 대신에 뷔넨페스트슈필(Bühnenfestspiel)이라고 불렀다. 글자그대로라면 무대축제연극(stage festival play)라는 뜻이다. 다만, 독일에서 페스트슈필(festspiel)이라는 단어는 공연 중에서도 특별 공연이라는 뜻이 강하다. 네 편의 뷔넨페스트슈필은 개별적으로 공연될수도 있지만 바그너는 네 편이 시퀜스를 가지고 연속해서 공연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전편을 연속해서 공연한다는 것은 장시간의 공연 때문에 연주자들의 체력도 문제이지만 관중들로서도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거의 시도되지 않고 있다. 링 사이클의 전편이 처음으로 모두 공연된 것은 187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서였다. 다만, 하루에 모두 공연할수 없어서 며칠에 걸쳐 공연되었다. 즉, 8월 13일에 '라인의 황금'으로 시작하여 8월 17일에 '신들의 황혼'으로 마무리되었다. 바그너가 '니벨룽의 반지'를 완성하기까지는 26년이나 걸렸다. 1848년에 착수해서 1874년에 완성했기 때문이다. '로엔그린'에 이르기까지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들은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가 아니라 칼 마리아 폰 베버가 발전시킨 독일적 오페라 스타일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다만 여기에 자코모 마이에르베르의 그랜드 오페라 스타일도 가미되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바그너는 이런 예술표현에 만족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바그너의 '나의 친구들에게 대한 대화'(Eine Mittheilung an meine Freunde: A Communication to My Friends: 1851)를 보면 그는 화가와 음악가들을 통틀어서 대다수 현대 예술가들이 '지나치게 여성적인 작품들을 생산하고 있다'면서 못마땅해 했다. 바그너는 예술이 진정한 삶으로부터 담장을 두르고 격리되어 있다고 보았다. 예술을 다만 예술 자체로서 엔조이하고 있으며 그런 역할에 만족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바그너는 삶에 대한 예술가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통하여 예술의 남성적인 요소를 발견할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바그너는 불행하게도 그의 관중들이 그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오지 않고 있다고 탄식했다.


바이로이트 극장 정원에 있는 바그너 흉상.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 작.


'니벨룽의 반지'는 다른 제목으로 '링 사이클'(Ring Cycle)이라고 부른다. 그런가하면 '바그너의 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고 간단히 '링'(The Ring)이라고만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니벨룽이란 말은 게르만과 노르드의 신화에 나오는 난장이 족속들을 말한다. 고대 노르드어에서 '안개 속의 족속'이라는 뜻의 니플룽(Niflung)이라는 말이 발전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니벨룽은 기원후 5세기 초 오늘날의 독일 보름스(Worms)에 살았던 부르군트족의 왕족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말하는 니벨룽은 난장이 알베리히(Alberich)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알베리히는 탐욕이 많은 음흉한 인물이다. '반지'는 알베리히가 라인강 속에 감추어져 있던 황금으로 꺼내어 만든 반지를 말한다. 그래서 '니벨룽의 반지'는 '알베리히의 반지'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제목에서 Nibelungen 이라고 어미 -en이 붙은 것은 복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수를 말한다. 바로 앞에 des 라는 소유격이 나오는 것을 보면 Nibelungen 이 단수형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혹자는 제목을 영어로 번역할 때에 The Ring of the Nibelungs 라고 복수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틀린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 '니벨룽겐의 반지'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연히 잘못된 표현이다. '니벨룽의 반지'이다.


니벨룽인 알베리히가 라인의 처녀들이 간수하고있는 황금을 훔치는 장면


'니벨룽의 반지'는 초대형 스케일의 작품이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면모는 공연시간이다. 네편으로 구성된 사이클을 완전 공연하려면 4일 밤이 걸린다. 전체 공연시간은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수 있지만 대체로 15시간에 이른다. 네 편 중에서 가장 짧은 것이 첫번째 작품인 '라인의 황금'이다. 그러나 이것도 순수 공연시간만 2시간 반이 소요된다. 가장 긴 것은 마지막 작품인 '신들의 황혼'이다. 휴게시간 없이 다섯 시간이나 걸린다. 휴게시간까지 합하면 일곱시간은 족히 걸리는 장편이다. '링 사이클'은 고대 그리스의 드라마 공연 스타일을 모델로 삼았다. 세편의 비극과 한편의 풍자극으로 구성되는 스타일이다. '라인의 황금'은 서막에 해당하며 본 막은 '발퀴레'로부터 시작하여 '신들의 황혼'으로 끝난다. 그래서 지금도 바이로이트 공연을 안내하는 내용에서는 '링 사이클'을 A Stage-festival drama for three days and a preliminary evening(3일과 전야를 위한 무대 드라마)라고 한다. 바그너는 '라인의 황금'을 '전야'(Vorabend) 또는 '예비 저녁'(Preliminary Evening)이라고 불렀다. '라인의 황금'이 '링 사이클'의 서막에 해당한다는 의미이다. '발퀴레', '지그프리트', '신들의 황혼'에는 마치 3부작(trilogy)처럼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해도 네 오페라의 순서를 바꾸어서 공연한다는 것은 바그너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 라고 할수 있다. 가사는 서사시적이다. 한편, 줄거리는 세상을 지배할수 있는 마법의 반지를 둘러싸고 신들과 영웅들, 그리고 신화적인 존재들이 투쟁을 벌이는 것을 그린 것이다. 전체 스토리는 주인공들이 세 세대를 걸치면서 전개되므로서 비록 시대는 변하지만 줄거리는 계속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전체적으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나타나지만 마지막 파트에는 마치 대홍수가 세상을 변화시키듯 대변혁으로 막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1876년 '링 사이클'의 초연시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 오디토리움. 객석은 하나의 경사면으로 이루어졌고 오케스트라 피트는 무대에서 훨씬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무어라해도 '니벨룽의 반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음악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후하고 풍부한 구성이다. 사이클이 진전되는 것과 함께 음악도 더욱 복잡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그너는 '링 사이클'에서 라이트모티프(Leitmotif)를 자주 사용했다. 물론 비단 '링 사이클' 뿐만이 아니라 그 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사용했지만 말이다. 라이트모티프라는 것은 주제 음악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주제를 상징하는 음악이 그 뒤에 나오는 어떤 행동, 목적, 감정, 성격, 또는 다른 제목으로 표현될 때에도 표현되어 나오는 것을 말한다. 바그너는 라이트모티프를 그의 저서인 '오페라와 드라마'에서 '감정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이트모티프는 마치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을 공연할 때에 무대에서 코러스들이 어떤 주제를 부연해서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할이라고 하며 이는 음악적이거나 드라마적인 그 배경에 담겨 있는 의미를 관중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바그너 이전의 몇 몇 작곡가들도 라이트모티프를 사용했지만 '링 사이클'이야말로 라이트모티프의 랜드마크라고 할수 있다.


'링 사이클'에서 '라인의 황금'. 로열 오페라 하우스 


바그너는 오케스트라가 거창한 비중을 차지하도록 작곡했다. 오케스트레이션에 있어서 대단한 발전이었다.바그너는 극중의 어떤 이벤트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악기들을 단독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폭넓게 사용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했다.  특히 금관악기의 비중을 크게 높였다. 그래서 새로운 음색과 음량의 악기들을 도입히였다. 예를 들면 혼과 트럼본의 중간에 해당하는 음색을 표현하기 위해 바그너 투바라고 불리는 새로운 투바를 개발하였고 또한 베이스 트럼펫, 더블 슬라이드를 가진 콘트라베이스 트롬본 등이다. 그리고 '바그너 벨'이라는 것도 개발하였고 바순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B 플랫이 낼수 있는 가장 낮은 음이었으나 그보다 더 낮은 A 내추럴 음을 표현할수 있도록 했다. 이것을 콘트라바순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벨을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콘트라바순이 대신하도록 했다. 네 편의 오페라가 모두 비슷한 악기편성으로 되어 있지만 핵심적인 앙상블이 있어서 변함없는 표현이 유지되도록 했다. 어떤 금관악기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겠다. 너무 전문적으로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라인의 황금'에서는 베이스 드럼, 탐탐, 무대 위에 하프와 18개의 대장장이 모루가 등장하는 것으로 편성했다. '발퀴레'에서는 작은 북, 탐탐, 무대 위의 스티어혼(steerhorn: 뿔피리)을 사용했다. '지그프리트'에서는 코르 앙글레와 혼을 무대 위에 배치토록 했다. '신들의 황혼'에서는 무대 위에 5개의 혼, 4개의 스티어혼이 등장하도록 했는데 스티어혼 중에서 하나는 하겐이 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링 사이클'의 네번째 '신들의 황혼' 무대. 보탄과 브륀힐데. 메트로폴리탄


그런데 특이하게도 바그너는 합창을 상당히 짧게 사용하였다. 그것도 '신들의 황혼'의 2막과 3막에 합창을 도입하였을 뿐이다. 합창은 남성합창을 위주로 하였고 여성합창은 극히 제한하였다. 그리고 바그너는 '니벨룽의 반지'에 담아 놓은 모든 음악적 및 드라마적 요소들을 충분히 표현할 별도의 극장을 건설하였다.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이다. 바이로이트 극장은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의 음성이 한데 어우러질수 있는 특별 무대를 가지고 있도록 했다. 성악가들이 자연적인 성량으로 노래를 부를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성악가들은 오랜 시간의 공연 중에도 긴장하거나 제약을 받지 않고 원래의 음성대로 노래를 부를수 있도록 했다.


2015년 바이로이트 무대. 현대적 연출


[작곡] 바그너는 작곡에 있어서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작가, 논평가, 대본가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바그너는 1848년 여름에 The Nibelung Myth as Sketch for a Drama(드라마를 위한 니벨룽 신화 스케치)라는 글을 썼다. 과거에 나와 있던 중세의 글들을 하나의 대화체 글로 만든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링 사이클'의 줄거리가 되었다. 물론 반드시 같은 줄거리는 아니고 상당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바그너는 이어서 그해 말에 Siegfrieds Tod(지그프리트의 죽음)이라는 대본을 썼다. 당시에 바그너는 Neue Zeitschrift für Musik(음악신보)라는 언론에 기고를 연재하고 있었다. 한번은 바그너가 기고문을 통해서 독일의 작곡가들에게 '니벨룽겐리트'를 바탕으로 '국민오페라'를 작곡할 것을 권유한 일이 있다. '니벨룽겐리트'는 원래 12-13세기 독일의 대서사시였으나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구전되어 온 것을 1755년에 비로소 정리되어 재발견되었던 것이다. '니벨룽겐리트'는 독일 낭만주의자들로부터 독일 국민 서사시로서 높은 찬양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오페라를 작곡하면 좋겠다는 견해는 환영을 받을만한 제안이었다. 그리고 바그너가 대본을 만든 '지그프리트의 죽음'은 니벨룽겐리트의 영웅적 중심인물인 지그프리트의 죽음을 다룬 것이어서 바그너가 이미 '니벨룽겐리트'에 깊이 매료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바그너의 제안에 대하여 멘델스존이 우선 깊은 관심을 보였고 오페라 또는 교향곡을 위해 스케치까지 해 놓았다. 하지만 다른 작곡가들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멘델스존의 '니벨룽겐리트'에 대한 작품은 완성을 하지 못했다.


'링 사이클'의 '발퀴레' 무대. 멜본 오페라


바그너는 '지그프리트의 죽음'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850년에 '지그프리트의 죽음'이라는 작품의 음악 스케치를 완성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무슨 사연인지 내팽개쳐 두었다. 바그너는 지그프리트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그프리트의 청년 시절에 대한 오페라부터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Der junge Siegfried(젊은 지그프리트)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바그너는 나중에 이 오페라의 제목을 간단히 '지그프리트'라고 고쳤다. 이듬해에 바그너는 기왕 시작한 김에 네 편의 오페라를 사이클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한편씩의 오페라를 매일 밤 공연해서 사흘동안 연속 공연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바그너는 일단 네 편의 오페라를 '라인의 황금', '발퀴레', '젊은 지그프리트', '지그프리트의 죽음'으로 정했다. 네 편의 오페라에 대한 대본은 1852년 12월에 모두 완성했다. 그리고 이들을 1853년 2월에 개인적으로 출판했다. 이와함께 바그너는 1853년 11월부터 우선 '라인의 황금'부터 작곡 초안을 잡기 시작했다. 작곡은 계속되었다. '지그프리트의 죽음'의 2막이 완성된 것은 1857년이었다. 그러다가 바그너는 여러 사정으로 작곡을 한 쪽으로 미루어 두고 다른 작품들을 썼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였다. 1869년에 바그너는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의 후원으로 루체르네 호반에 있는 트리브셴()에서 살았다. '지그프리트'의 2막을 완성한 때로부터 12년이 지난 때였다. 바그너는 다시 '지그프리트의 죽음'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마침내 '지그프리트'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했다. 바그너는 '지그프리트의 죽음'이라는 제목을 '신들의 황혼'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었다. 바그너는 원래 마지막을 신들이 구원받는 것으로 계획했었다. 낙관주의적인 접근이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염세주의적 분위기에 부응해서 파멸을 당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바그너가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파트리스 로셰에 의한 현대적 연출. 바이로이트 2015


'링 사이클'은 언제 처음 공연되었나? 먼저 '라인의 황금'이 루드비히 왕의 요청에 의해 1869년 9월 22일에 뮌헨의 국립극장에서 '특별 시연'이라는 이름 아래에 공연되었다. 바그너는 '특별 시연'을 반대했지만 자기를 지극히 후원해 주고 있는 루드비히 2세의 요청인지라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그리고 '발퀴레'는 이듬해인 1870년 6월에 역시 루드비히 왕을 위해서 공연되었다. 루드비히 왕은 그 다음 작품인 '지그프리트'도 미리 보자고 요청하였지만 바그너는 자기의 의사에 반하여 자꾸 미리 공연되는 것을 싫어하여서 '지그프리트'가 완성이 되지 않았다는 핑게를 대고 공연을 미루었다. 한편, 바그너는 오래 전부터 '링 사이클'의 공연을 위해서 별도의 특별 한 극장이 있어야 한다고 염원해 왔다. 바그너는 그런 극장이 마련될수 있다면 설계는 자기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그너는 우선 극장이 들어설 부지부터 생각했다. 뮌헨에서 멀지 않은 바이로이트를 후보지로 결정했다. 그리고 1872년에는 식구들을 데리고 바이로이트 마을로 이사를 갔다. 얼마후 정초석이 놓여졌다. 그후 바그너는 2년 동안 건축비 조달을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하지만 뜻대로 모금이 되지 않았다. 루드비히 왕이 도와주기로 나섰다. 루드비히 왕은 1874년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부담해 주었다. 바이로이트 페스트슈필하우스(축제극장)는 1876년에 오픈하였고 첫 공연은 주지하는 대로 '링 사이클'이었다. 개관기념 '링 사이클' 공연은 8월 13일에 시작하여 17일에 끝났다. '링 사이클'의 영국 초연은 바이로이트 풀 초연으로부터 6년 후인 1882년이었다. 안톤 자이들(Anton Seidl)이 지휘하였다. 이탈리아 초연은 1883년 베니스의 라 페니체(La Fenice)에서였다. 바그너는 라 페니체에서의 공연으로부터 두 달 전에 베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발렌시아 무대. 보탄과 로게의 장면


'니벨룽의 반지'는 초연 이래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무슨 수가 있더라도 한번쯤은 시도해 보고 싶은 레퍼토리로서 자리매김을 하였다. 그렇지만 잘 아는대로 4편의 오페라를 사이클로서 공연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이 가는 일이 아니다.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예술적으로도 그렇다. 그래서 큰 극장들은 하긴 하지만 한꺼번에 네편을 연속해서 공연하지는 못하고 올해에는 두편을, 내년이나 몇 년후에는 나머지 한편이나 두편을 공연하는 것으로서 자랑스러워해야 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바이로이트극장이다. 바이로이트는 거의 해마다 전체 사이클을 공연하고 있다. 그것이 사명이기 때문이다. '니벨룽의 반지'를 공연함에 있어서 가장 문제는 무대 장치를 포함한 연출이다. 초연 이래 '니벨룽의 반지'를 공연할 때에는 대체로 바그너가 직접 지도했던 바이로이트의 연출방식을 따르는 것이 관례였다. 적어도 2차 대전 직전까지는 그러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에 들어서자 시대의 변화와 함께 연출방식에 있어서도 대대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에 바이로이트의 연출은 바그너의 손자인 빌란트 바그너(Wieland Wagner: 1917-1966)와 볼프강 바그너(Wolfgang Wagner: 1919-2010) 형제가 맡았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오페라 감독들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연출방식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을 지향하였다. 이를 '신바이로이트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신바이로이트 스타일의 연출은 신들보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한 것이며 무대장치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것보다는 추상적인 것을 추구한 것이다. 이후 '니벨룽의 반지'를 연출하는 사람들은 창의적이며 독창적인 현대적 스타일의 무대를 시도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발퀴레'에서 브륀힐데의 이별. 오스트레일리아 오페라


현대적 연출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것은 아무래도 바이로이트에서의 1976년 1백주년 기념공연일 것이다. 이때의 '링 사이클'을 Jahrhundertring(1백년 링: 야르훈데르트링)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출신의 유명 연출가인 파트리스 셰로(Patrice Chereau: 1944-2013)가 감독했고 역시 프랑스 출신의 거장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가 지휘한 공연이었다. 파트리스 셰로의 연출은 신업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라인강 깊은 물속은 수력발전소 댐으로 표현했다. 무대는 19세기와 20세기에 비스니스 양복을 입은 일반 사람들과 신들이 들어차있는 지저분한 세트로 구성했다. 그런 관계로 파트리스 셰로의 '링'은 혁명적 드라마이며 현대사회에 대한 비평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이같은 무대가 선보이자 초기의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1980년대에 그같은 무대를 연출하자 관중들은 무려 45분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오늘날 파트리스 셰로의 바이로이트 연출은 혁명적이면서도 클래식한 연출로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링 사이클'을 공연할 때에는 바그너의 오리지널 연출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면에 현대의 관중들을 위해서 현대적인 연출을 시도하는 경우가 더 많이 있다. 바그너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데코와 액션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1983년 바이로이트에서의 공연은 연극감독으로 유명한 피터 홀(Peter Hall)이 연출을 맡고 거장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를 맡은 것이었는데 이 공연은 바그너의 오리지널 연출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서 평판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1994-96년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리챠드 존스(Richard Jones)가 연출하고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나르드 하이팅크(Bernard Haitink)가 지휘한 것은 바그너의 오리지널 연출과는 사뭇 다른 양상의 연출이었다.

 

2015년 바이로이트 무대. 보탄과 두 거인


현대에 들어와서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링 사이클'이 완전공연을 가진 것은 2006년 상트 페터스부르크의 마리인스키에서였다. 게오르게 치핀(George Tsypin)이 설계하고 발레리 게르기에프(Valery Gergiev)가 지휘한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코카사스 사람들의 오세티안(Ossetian) 신화를 연상케 하는 내용이었다. 2006년에 왕립덴마크오페라가 완전공연한 것도 특기할만하다. 코펜하겐의 해변에 새로 지은 현대적 오페라극장에서의 공연이었다. 새로 지은 극장에서 공연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그너와는 다른 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에 관심을 받은 공연이었다. 코펜하겐 공연은 지그프리트가 아니라 브륀힐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남성적이 아니라 여성적인 각도에서 연출되었다. 예를 들면 나무에 박힌 노퉁 검을 뽑아 낸 사람은 지그문트가 아니라 지글린데로 설정한 것이다. 또한 사이클의 마지막에는 브륀힐데가 죽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코펜하겐 연출에서는 죽지 않고 지그프리트의 아이를 출산하는 것으로 설정해 놓았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캐나다오페라단의 본부인 훠 시즌스 센터가 2006년 9월에 개관되었을 때 개관기념 공연은 링 사이클이었다. 2006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가 '링 사이클'을 공동제작하였다. 거장 프란체스카 참벨로(Francesca Zambello)가 감독한 무대는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여러 장면들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 공연은 여성주의자와 환경주의자의 견해를 참고로 하여 논란이 되었다. 로스안젤레스 오페라는 2010년에 에이킴 프라이어()의 감독으로 '링 사이클'을 무대에 올렸다. 전통적인 수법과는 달리 추상적인 제작이어서 관객들은 물론 출연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무대를 객석으로 향해 경사가 지도록 만들었고 공중에서 비행하는 장치를 사용하였는가 하면 스크린을 통해 영상을 보여주는 배경이었고 여러가지 특수 효과를 도입한 것이었다.


발할라의 장면. 베이징 오페라 극장


메트로폴리탄의 최근 공연은 2010년이었다. 새로운 '링 사이클'이었다. 제임스 르바인(James Levine)이 지휘를 하고 브린 터플(Bryn Terfel)이 보탄을 맡은 공연이었다. 2011년 4월의 '발퀴레' 공연에서는 드보라 보이그트(Deborah Voigt)가 브륀힐데를 맡아서 바그너 소프라노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라인의 황금'의 무대는 거장 로버트 르페이지(Robert Lepage)가 설계한 것으로 24개의 쐐기를 사용해서 무대를 경사지게도 만들고 돌아가게도 만드는 등 마음대로 활용할수 있게 한 것이었다. 무대에서 거품이 일고 돌들이 떨어지며 불이나는 것 등은 콤퓨터로 음악과 연결하여 정확하게 작동하도록 했다. 메트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2013년에 '링 사이클'의 레코딩으로 최우수 오페라 레코딩에 대한 그래미상을 받았다. 2013년에 호주의 멜본에서 오페라 오스트레일리아가 무대에 올린 '링 사이클'은 많은 평론가들이 근래에 가장 뛰어난 공연이었다는 호평을 받은 것이었다. 리제 린드스트롬(Lise Lindstrom), 스테판 빈케(Stefan Vinke), 자클린 다크(Jacqueline Dark) 등이 주역을 맡은 것이었다. 가장 최근의 공연은 2016년 4월과 5월에 워싱턴의 존 에프 케네디 공연센터에서 가진 것이다. 프란체스카 참벨로가 감독을 하고 필립 오귄()이 지휘를 맡은 공연이었다.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Catherine Foster)와 니나 스템메(Nina Stemme)가 브륀힐데를 맡았고 다니엘 브렌나(Daniel Brenna)가 지그프리트를, 알란 헬드(Alan Held)가 보탄을 맡았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링 사이클'을 되도록이면 단축해서 공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예를 들어 1990년에 버밍엄 투어링 오페라(현재는 버밍엄 오페라단)는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역할을 맡게 함으로서 출연진의 숫자를 줄였고 음악도 줄여서 공연한 일이 있다. 또한 오케스트라도 18명의 소규모로 구성하였다. 미국에서도 버밍엄의 전례를 따르는 공연이 있었다. 그리고 201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극장에서는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링 사이클'을 무대에 올렸는데 전체의 상당부분을 커트한 것이어서 4편을 모두 공연하는데 15시간이 걸리지만 콜론에서는 불과 7시간 정도만 걸렸다.


독일 본에서의 무대. 라인의 황금과 라인처녀들


[출연자] 다섯 부류로 나눌수 있다. 첫째는 신들이다. 둘째는 인간들, 셋째는 발키리들, 넷째는 라인의 처녀들과 거인들과 난장이인 니벨룽들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연의 소리, 예를 들면 숲속의 새소리이다. S는 소프라노, MS는 메조소프라노, Cont는 콘트랄토,  Bar는 바리톤, B는 베이스, B-Bar는 베이스 바리톤을 말한다.


(1) 신들

- 보탄(Wotan: B-Bar). 신들의 왕. 빛, 공기, 바람의 신.

- 프리카(Fricka: MS). 보탄의 부인. 결혼의 여신.

- 프라이아(Freia: S). 프리카의 여동생. 사랑, 젊음. 아름다움의 여신.

- 돈너(Donner: Bar). 프리카의 남동생. 천둥의 신.

- 프로(Froh: T). 프리카의 남동생. 봄과 행복의 신. 

- 에르다(Erda: Cont). 지혜, 운명, 땅의 여신.

- 로게(Loge: T). 불의 신(반신반인).

- 노른들(The Norns: Cont, MS, S). 에르다의 딸들. 운명을 짜는 자들.


(2) 인간들: 지그문트, 지글린데, 지그프리트는 밸중스(Wälsungs)에 속하며 훈딩은 나이딩스(Neidings)에 속한다. 그리고 군터, 구트루네, 하겐은 기비훙스(Gibichungs)에 속한다.

- 지그문트(Siegmund: T). 보탄의 인간 아들. 

- 지글린데(Sieglinde: S). 지그문트의 쌍둥이 누이.

- 지그프리트(Siegfried: T). 지그문트와 지글린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 훈딩(Hunding: B). 지글린데의 남편. 나이딩스의 우두머리.  

- 군터(Gunther: Bar). 기비훙들의 왕

- 구트루네(Gutrune: S). 군터의 누이. 

- 하겐(Hagen: B). 구트루네의 이복 오빠. 알베리히의 아들.

- 기타. 기비훙 가신들로 구성된 남성합창단, 기비훙 여인들로 구성된 소규모의 여성합창단.


(3) 발키리들

- 브륀힐데(Brunnhilde: S), 봘트라우테(Waltraute: MS), 헬름뷔게(Helmwige: S), 게르힐데(Gerhilde: S), 지그루네(Siegrune: MS), 슈베르트라이테(Schwertleite: MS), 오르틀린데(Ortlinde: S), 로쓰봐이쎄(Rossweisse: MS).


'라인의 처녀들'. 몬트리올 오페라


(4) 라인의 처녀들, 거인들, 니벨룽들

- 라인의 처녀(Rhinemaidens): 보글린데(Woglinde: S). 벨군데(Wellgunde: S), 플로스힐데(Flosshilde: MS)

- 거인들(Giants): 파솔트(Fasolt: B-Bar 또는 High B), 파프너(Fafner: B). 파솔트의 동생. 나중에 용으로 변함.

- 니벨룽들(Nibelungs): 알베리히(Alberich: B-Bar), 미메(Mime: T). 알베리히의 동생. 지그프리트의 계부.


(5) 기타: 숲속의 새소리(S)


2011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론극장의 무대


[스토리]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해하자면 먼저 반지의 정체에 대하여 아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을 지배할 능력을 가질수 있다는 마법의 반지는 니벨룽인 알베리히가 라인의 처녀들로부터 훔친 황금으로 만든 것이다. 바그너 자신은 반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설명했는가? 바그너는 반지를 하나의 부적(탈리스만)이라고 보았다. 글자 그대로라면 Rune-magic taufr 라는 것이다. '신비로운 마법의 부적을 말한다. taufr 라는 단어는 원래 사슴의 뿔처럼 가지가 있는 물건을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사슴의 뿔을 신비스러운 존재로 여겼던 모양이다. 이 부적(또는 반지)은 여성의 번식력을 지배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같은 능력은 '사랑의 부인'(Liebesverzicht: Denial of Love)이라고 규정되는 두려운 마법행위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부인'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번뇌를 없애기 위한 하나의 의식으로 보고 있다. 신들의 왕인 보탄은 로게의 도움으로 알베리히로부터 반지를 훔친다. 그러나 보탄이 가지고 있던 반지는 거인들인 파솔트와 파프너에게 넘겨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인들은 신들의 집인 발할라를 건설하였지만 댓가를 받지 못하자 대신 프라이아 여신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프라이아 여신은 신들에게 젊음을 유지할수 있는 황금사과를 제공해 주고 있다. 때문에 신들로서 프아이아를 빼앗긴다면 큰일이 아닐수 없었다. 거인들에게 반지를 넘겨 준 보탄은 기회를 기다리면서 거인들로부터 반지를 되찾고자 한다. 마침내 보탄의 손자가 되는 인간 지그프리트가 파프너를 칼로 베어서 죽이고 반지를 되찾는다. 그러나 지그프리트는 알베리히의 아들인 하겐에 음모에 의해 배반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하겐도 반지를 소유하고 싶었음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빌키리 중의 하나인 브륀힐데가 하겐으로부터 반지를 되찾아서 라인의 처녀들에게 돌려 준다. 브륀힐데는 보탄의 딸 들 중의 하나로서 지그프리트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브륀힐데는 자그프리트의 아버지인 지그문트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 아버지인 보탄에게 반항하였고 그래서 신으로서의 불멸을 읽게 된다. 반지를 라인의 처녀들에게 되돌려 준 브륀힐데는 지그프리트를 화장하는 불더미 속에 뛰어들어서 목숨을 버린다. 하겐이 반지를 되찾으려고 하지만 물에 빠져 죽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중에 신들의 집인 발할라가 파괴되고 신들도 황혼을 맞게 된다.  


발렌시아 무대. '라인의 황금'에서 라인의 처녀들


[음반과 비디오] '링 사이클' 전편을 연주하는 것은 15시간 이상이나 걸리는 일이고 더구나 성악가들과 오케스트라를 합하여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것이며 또한 녹음 스튜디오를 사용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별도의 스튜디오에서 취입한 음반 등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대신 극장에서의 공연실황을 녹음하여 음반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링 사이클'의 음반들은 바이로이트에서의 실황을 녹음한 것이 대부분이다. 바이로이트에서는 어쨋든 매년 '링 사이클'을 무대에 올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링 사이클'의 전편 음반을 연도별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만을 소개한다. '링 사이클'의 음악을 발췌하여서 1시간짜리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만든 것이 있다.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가 만들었고 1988년에는 로린 마젤이 지휘한 것이 있다. Der Ring ohne Worte(무언의 링)이라는 타이틀이다. 1991년에는 헹크 드 블리거(Henkk de Vlieger)가 지휘한 The Ring: an Orchestral Adventure라는 음반도 있다.


라인의 처녀들. 아리조나 오페라


○1950.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라 스칼라 오페라 오케스트라 ○ 1953.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RAI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 1953. 클레멘스 크라우스.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 1952, 1953, 1955. 요제프 카일베르트(Joseph Keilberth).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 1956, 1957, 1958. 한스 크나퍼츠부슈(Hans Knappertsbusch).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 1957. 루돌프 켐페(Rudolf Kempe).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 1958-65. 게오르그 솔티.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1966-70.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1966-67. 칼 뵘.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 1968. 한스 스바로브스키(Hans Swarowsky). 그로세스 심포니오헤스터 ○ 1968. 볼프강 자발리슈(Wolfgang Sawallisch). RAI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 1974-78. 레지날드 구달(Reginald Goodal).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 오케스트라 ○ 1979-80. 피에르 불레즈.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야르훈데르트링) ○ 1980-83. 마레크 야노브스키.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 1987-89. 제임스 르바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 1988-91.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바바리아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 1989. 볼프강 자발리슈. 바바리아 슈타츠오퍼 ○ 1991-92. 다니엘 바렌보임.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 1993-95. 귄터 노이홀트. 바디셰 슈타츠카펠레 ○ 1998-2001. 구스타브 쿤(Gustav Kuhn). 오헤스터 데어 티롤러 페스트슈필 ○ 2006-07. 아셔 피슈(). 아델라이데 심포니 오케스트라 ○ 2005. 하르트무트 핸헨(Hartmut Haenchen).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2008. 크리스티안 틸레만.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 2008-2010. 사이몬 영(Simone Young). 필하모니커 함부르크 ○ 2010-12. 세바스티안 봐이글레(Sebastian Weigle). 프랑크푸르터 오페른 운트 무제움오헤스터 ○ 2012-13. 마레크 야노브스키(Marek Janowski). 룬트풍크 신포니오헤스터 베를린.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의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발에서의 무대. 드레스덴 슈타트카펠레 연주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한 음반은 스테레오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레코딩 한 것이다. BBC의 시청자 투표에 의하면 솔티 지휘의 음반은 20세기에서 가장 위대한 음반으로 선정되었다. 무대 공연을 스테레오 기술로서 처음 레코딩한 것은 1955년에 데카가 요제프 카일베르트가 지휘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실황을 레코딩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레코딩은 그후 여러 사정으로 발매되지 못하고 있다가 50년이 지난 2006년에 CD로서 발매되어서 기쁨을 주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레코딩은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특이한 캐스팅과 지휘 스타일 때문이었다. 평론가들을 이를 '실내악 지휘'라고 말했다. 이말은 다시 말해서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드라마를 손상했다는 것이다. '링 사이클'은 DVD로서도 가능해졌다. DVD이건 CD이건 전체 '링 사이클'은 여러 장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피에르 불레즈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1980-81. 필립스/도이체 그라마폰 ○ 제임스 르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1990. 도이체 그라마폰 ○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 2006. 오푸스 아르테 ○ 베르트랑 드 빌리(Bertrand de Billy) 지휘 오케스트라 드 그란 테아트르 델 리세우. 2003-04. 오푸스 아르테 ○ 로타르 차그로세크 지휘 슈타츠오퍼 슈투트가르트. 2004. Tdk ○ 하르트무트 헹헨 지휘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06. 오푸스 아르테 ○ 미하엘 쇤반트 지휘 로열 대니쉬 오케스트라. 2006. 데카 ○ 주빈 메타 지휘 오케스트라 드 라 코무니타트 발렌시아나. 2007-09. C major ○ 제임스 르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2011. 도이체 그라마폰


메트 실황녹음 DVD

 

야르훈데르트링(Jahrhundertring) - Centennial Ring

1976년은 바그너의 '링 사이클'의 바이로이트에서 전편 초연된지 1백주년을 맞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바이로이트는 또 다시 '링 사이클'의 전편을 무대에 올렸다. 이를 야르훈데르트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야르훈데르트링이 커다란 논란에 휩싸였다. 파트리스 셰로의 연출 때문이었다. 관중들은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 한쪽에서는 셰로의 연출을 지지하는 고함이 터져나왔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야유하고 비난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던 것이다. 오늘날 셰로의 연출은 신기원을 이루는, 획기적인 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세계의 많은 극장에서 셰로의 새로운 연출을 마치 스탠다드 세팅처럼 간주하여 제작에 임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일약 대단한 스캔들이었다. 셰로의 연출은 배경을 지저분한 사업지구로 설정하였고 등장인물들은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노동자 차림이거나 말쑥한 신사복 차림이었다. 셰로의 연출에서는 신들과 인간이 구별없이 똑같은 레벨이 되도록 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바그너 연출에 몰두해 있던 애호가들은 셰로의 혁명적인 연출을 받아들일수 없었던 것이고 한편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측은 셰로의 현대적인 연출을 과감한 도전이라면서 환영하였던 것이다. 다만, 두 진영의 의사표현 방식이 너무나 거칠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관중들이 어찌나 과격했던지 객석에 있던프강 바그너의 새로운 부인은 드레스가 찟기는 수난을 겪었으며 또 다른 여인은 누가 귀거리를 낚아 채는 바람에 귓볼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심지어 죽이겠다는 위협도 있었고 폭탄을 설치해서 공연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아무튼 그런 소동이 있었다.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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