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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공연 중에 사망한 성악가들

정준극 2017. 2. 5. 20:15

오페라 공연 중에 사망한 성악가들


○ 프레데릭 페데리치(Frederick Federici: 1850-1888)


프레데릭 페데리치. 구노의 '파우스트'를 공연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영국 바리톤으로 런던에서는 사보이 오페라의 주역으로서 인기가 높았다. 특히 '미카도'의 타이틀 롤, '펜잔스의 해적'에서 해적 두목, '피나포어'에서 캡틴 코코란 등의 역할로는 당대에서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도일리 카르트 오페라단의 중심인물로서 1879년부터 1887년, 그가 멜본에서 오페라 공연 중에 갑자기 사망할 때까지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등지에 대한 순회공연에 참여했다. 멜본에서는 1888년 3월 프린세스 극장에서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 역을 맡아 비밀문을 통해 아리아를 부르면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바닥에 굴러 떨어진 후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후 프린세스 극장에는 페데리치의 혼령이 캄캄한 밤중에 무대 위에 나타나서 배회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그런데도 그는 노인 역할을 잘 하였다.


레오나드 워렌(Leonard Warren: 1911-1960).


'일 트로바토레'에서 루나 백작역의 레오나드 워렌


미국의 세계적인 오페라 바리톤인 레오나드 워렌은 뉴욕의 더 브롱스(The Bronx)에서 1911년에 러시아에서 이민온 유태계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원래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드 와레노프(Leonard Warenoff)였다. 워렌은 1938년에 메트로폴리탄과 인연을 맺기 시작해서 리딩 바리톤으로서 활동하였고 그러면서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이나 페스티발에 출연하여 이름을 떨쳤다. 워렌은 1960년 3월 4일, 메트로폴리탄에서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의 돈 카를로를 맡아 공연하는 중에 3막에서 유명한 카발레타를 부르기 전에 갑자기 쓰러져서 숨을 거두었다. 그 장면은 상대역인 돈 알바로가 '죽는다는 것, 순간의 일'(Morir, tremenda cosa)이라는 아리아를 부른 후에 정신을 잃자 돈 카를로가 돈 알바로의 편지주머니를 열어보고 안에 들어 있는 서류들을 살펴보다가 그의 여동생인 레오노라의 초상화를 발견하고는 그가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그의 아버지를 살해한 돈 알바로인 것을 알게되어 '그가 살아 있다. 오 기쁘도다'(E salvo, o gioia)라고 소리친 후에 힘찬 카발레타를 부르도록 되어 있는 장면이었다. 워렌은 무려 22년 동안 메트로폴리탄을 무대로 삼아서 오페라 바리톤으로서 활동하였다. 워렌이 숨을 거둘 당시의 상황을 메트의 루돌프 빙은 '워렌은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고개를 아래로 떨군채 가만히 있었습니다.'라고 말했고 무대에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워렌이 기침을 하더니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했습이다. 그리고는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헬프 미, 헬프 미'라고 소리쳤습니다.  바닥에 쓰러진 워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오페라에서 군의관 역할을 맡은 로알드 리탄(Roald Reitan)이란 사람은 무대에서 워렌의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헬프 미'라는 소리를 듣고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너무나 당황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고 잠시 후엔 워렌이 이미 숨을 거두고 움직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나중에 사인은 급성뇌출혈로 판명되었다. 워렌은 불과 48세였다. 워렌의 죽음으로 메트의 오페라 공연 스케줄은 몇년동안 차질을 빚을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서 워렌은 1960-61 시즌에 메트의 '나부코'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기로 되어 있었지만 갑작스런 죽음으로 취소될수 밖에 없었다. 레오나드 워렌은 코네티커트주의 그리니치에 있는 세인트 메리 묘지에 안장되었다.


레오나드 워렌은 바리톤으로 활동하기 전에 아버지의 모피 사업을 도와서 일했다. 그러다가 음성이 너무 좋았고 또한 음악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35년에 우선 레디오 시티 음악홀의 합창단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1938년에 메트로폴리탄이 단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워렌은 성악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경력도 없는 초보였지만 타고난 음성과 음악적 센스로 당장 계약을 맺게 되었다. 메트는 워렌은 그해 여름 한철동안 이탈리아에 보내어 오페라를 공부하게 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워렌은 메트에서 '라 트라비아타'와 '팔리아치'의 발췌곡을 연주하는 콘서트에 출연하여 무대에 데뷔하였다. 그가 오페라에 처음으로 정식 출연한 것은 1939년 1월로서 '시몬 보카네그라'에서 파올로를 맡은 것이었다. 워렌은 이 오페라로서 크게 인정을 받아 곧이어 RCA 빅토와 음반 취입 계약을 맺게 되었다. 이후 워렌은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멕시코 시티,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리고 1953년에는 라 스칼라에 진출하였다. 1958년에는 소련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당시는 미-소간에 냉전상태였지만 러시아계인 워렌은 소련에서도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그때 쯤해서 그는 부인 아가타를 따라서 유태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일생동안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지냈다.  


워렌은 토니오(팔리아치), 에스카미요(카르멘), 스카르피아(토스카)로서 이름을 떨쳤지만 그보다도 그의 진면목은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찾을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리골레토'는 단연 뛰어난 역할이었다. 1950년에는 RCA 빅터가 '리골레토'를 음반으로 제작하였는데 워렌이 소프라노 에르나 버거(Erna Berger), 테너 얀 피어스(Jan Peers)와 함께 부른 것이었다. 이것은 음반의 역사에 있어서 오페라 전편을 처음으로 취입하여 내놓은 경우였다. 그후 그가 오페라 전편을 음반으로 내놓은 것으로는 '라 트라비아타', '팔리아치', '토스카', '아이다', '일 트로바토레', '운명의 힘', '맥베스', '오텔로', '가면무도회' 등이 있다. 모두 당대의 오페라 성악가들과 함께 취입한 것이었다. '라 트라비아타'는 로산나 카테리, 세자레 발레티와 함께, '팔리아치'는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유시 비욜링, 로버트 메릴과 함께, '토스카' '아이다' '일 트로바토레'는 진카 밀라노프, 유시 비욜링과 함께, '운명의 힘'은 진카 밀라노프, 주세페 디 스테파노, 로살린드 엘이아스, 조르지오 토치와 함께, 두번쩨 '일 트로바토레'는 그의 오렌 친구이며 마지막으로 함께 무대에 섰던 테너 리챠드 터커, 그리고 신인으로 메트에 데뷔한 레온타인 프라이스와 함께 취입한 것이었다. '맥베스'는 레오니 리자네크, 카를로 베르곤치와 함께, '가면무도회'는 마리안 앤더슨이 울리카를 맡아 함께 취입했다. 워렌은 TV 오페라에서도 새로운 장을 여는데 동참하였다. 1948년에 메트에서 '오텔로'를 공연할 때에 ABC TV가 전무대를 실황중계하였다. 워렌은 이아고였고 리치아 알바네세는 데스데모나, 라몬 비나이는 오텔로였다. 워렌의 음성은 과연 어떠했는가? 레나타 테발디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너무 부드러운 음성이다. 마치 비로도와 같다. 한마디로 놀랍도록 굉장하다' 


헤르만 우데(Hermann Uhde: 1914-1965)


'파르지팔'에서 암포르타스 역의 헤르만 우데


헤르만 우데는 독일의 바그너 베이스 바리톤이다. 1914년, 1차 대전이 시작된 해에 브레멘에서 태어났고 1965년 10월 10일 코펜하겐에서 공연을 하는 중에 무대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작고했다. 향년 51세였다. 고향인 브레멘에서 성악공부를 한 그는 1936년 나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에 오페라에 처음으로 데뷔했다. 전쟁 중에는 뮌헨에서 노래를 불렀고 나치 점령하의 코펜하겐에서도 오페라에 출연했다. 그렇다고 그가 나치에 부역을 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음악만을 위해서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1949년부터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의 고정 출연자가 되었다. 잘츠부르크에서 처음 맡았던 역할은 칼 오르프의 '안티고네'(Antigone)에서 크레온이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는 1951년부터 출연했고 195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메트에서 1964년까지 출연했다. 헤르만 우데의 음성은 초기에는 낮고 어두운 이른바 다크 베이스였으나 나중에는 밝은 바리톤으로 옮겨졌다. 그래도 다크 베이스의 역할을 종종 맡았는데 대표적인 것은 '돈 카를로스'에서 종교재판관의 역할이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서는 그의 낮은 음성과 딕션이 칼로 짜른듯이 날카롭기 때문에 주로 악역을 많이 맡았다. 예를 들면 '로엔그린'에서 텔라문트, '파르지팔'에서 암포르타스 또는 마법사인 클링조르, 그리고 도덕적으로 혼란스런 역할인 보탄, 귄터 등이었다. 간단한 역할도 자주 맡았다. '라인의 황금'에서 돈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멜로트,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슈첼칼로프 등이었다. 미국에서는 '보체크'의 타이틀 롤로서 데뷔하여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보체크'에서 상대역인 마리는 미인 소프라노인 엘레아노르 스테버(Eleanor Steber)가 맡았었다. 


리챠드 버살르(Richard Versalle: 1932-1996)


'탄호이저'에서 타이틀 롤의 리챠드 버살르


리챠드 버살르는 1932년 미국 미쉬간주의 머스키곤(Muskego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오페라 테너이다. 미쉬간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2차 대전 중에 미해군의 잠수함에서 근무했고 제대후에는 사업을 시작했으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숨길수가 없어서 계속 성악공부를 하였고 마침내 테너로서 데뷔하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오라토리오 또는 가곡을 불렀지만 연륜을 쌓으면서 오페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45세가 되던 해에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의 아우구스틴 모저를 맡아 처음으로 오페라에 데뷔하였다. 대기만성이었다. 이후 그는 주로 무거운 테너 역할을 맡았다. 예를 들면 오텔로, 플로레스탄(휘델리오), 트리스탄, 그리고 탄호이저였는데 탄호이저는 그야말로 가장 뛰어난 역할이었다. 그는 탄호이저로서 1985-89년 기간동안 바이로이트 페스티발에 출연하여 '미국에도 저런 훌륭한 테너가 있었구나'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해외순방 공연도 자주하였다. 제노아, 도쿄, 비엔나, 본 등이었으며 마침내 메트에도 진출하였다. 메트 데뷔는 1978년 12월 8일 '아이다'에서 전령이라는 단역을 맡은 것이었다. 그는 더욱 경력을 쌓기 위해서 유럽의 여러 곳에서 오페라의 주역을 맡았다가 1995년에 메트로 다시 돌아왔다. 메트의 복귀 역할은 '마하고니 도시의 흥망'에서 야콥 슈미트였다. 이듬해인 1996년 1월 5일, 그는 야나체크의 '마크로풀로스 사건'(The Makropoulos Case)의 메트 초연에서 비테크(Vitek)를 맡았다. 그는 무대에서 약 6미터 높이의 사다리에 올라가서 비테크의 노래인 'You can only live so long'를 부르기 시작할 때에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사다리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연은 당연히 즉시 중단되었다가 결국은 취소되었다. 버살르는 인근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숨을 멈춘 상태였다.


리챠드 앙가스(Richard Angas: 1942-2013)


설리반의 '미카도'에서 타이틀 롤의 리챠드 앙가스


리챠드 조지 앙가스는 영국의 베이스이다. 오랫동안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ENO)에서 활동했던 베이스이다. 물론 영국의 다른 오페라단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오페라 데뷔는 1966년 스코티쉬 오페라에서 '오텔로'를 공연할 때에 베니스공국의 대사인 로도비코를 맡은 것이었다. 이어 브리튼의 '컬류 리버'(Curlew River)에서 수도원장, '오르페오'의 플루토,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바질리오, '리어'의 글라우체스터, '플레아와 멜리상드'의 아르켈 등으로 오페라 경력을 쌓아갔다. 특히 설리반의 '미카도'는 150회 이상이나 출연했기 때문에 앙가스만한 미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앙가스는 세계초연의 오페라 공연에 출연해서 여러 인물들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창조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카틸라인 음모'(The Catiline Conspiracy: 이에인 하밀튼, 1974), '강으로 가다'(We Come to the River: 헨체, 1975), '오르페우스의 마스크'(The Mask oof Orpheus: 버트위슬, 1986), '마스터와 마르가리타'(Master and Margarita: 횔러, 1989), '바그너의 꿈'(Wagner Dream: 하비, 2013),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안드레 차이코브스키, 2013) 등이다. 앙가스는 2014년 2월 16일 리즈(Leeds) 대극장에서 그의 생애와 경력을 축하하는 콘서트가 열리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오페라 공연에 출연해서 무대 위에서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축하공연에 참석했다가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것이다. 향년 71세였다. 축하 콘서트는 영국의 주요 오페라단에서 주역급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 30여명과 지휘자만해도 5명이 참석하는 대규모였다.


화브리스(Fabris: 1975-2013)


'수녀 안젤리카'에서 타이틀 롤의 화브리스(마리아 플로렌시아 화브리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75년에 태어난 화브리스는 오페라를 공연하는 중에 무대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난 케이스가 아니라 콘서트에서 솔리스트로서 노래를 부른후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후에 세상을 떠난 케이스여서 차제에 소개한다. 화브리스의 원래 이름은 마리아 플로렌치아 화브리스()는 어릴 때부터 성악적 재능이 뛰어나서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음악애호가인 할아버지의 후원을 받아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그리고 미국에서 오페라 활동을 했다. 화브리스는 리릭 소프라노이지만 콜로라투라여서 여러 역할을 소화하였다. 예를 들면 '팔리아치'의 네다였다. 이외에도 그는 '일 트로바토레'(레오노라), '나비부인'(초초상), '리미니의 프란체스카'(프란체스카), '수녀 안젤리카'(안젤리카), '나부코'(아비가일), '돈 카를로'(엘리자베스) 등에서 놀랄만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화브리스는 콘서트 소프라노로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화브리스는 세상을 떠나기 이틀전에 산 후안에서 열린 베르디의 '진혼곡' 연주회에서 소프라노 솔로를 맡았다. 그런데 사실상 고단한 중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솔로를 맡아서 힘들어했다. 다행히 연주회는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그러나 집으로 가기 전에 이미 기진해서 쓰러졌고 놀란 주위 사람들이 그를 급히 인근 멘도사에 있는 스페인병원에 데려가서 뇌동맥에 대한 응급수술을 받도록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38세였다.


[이밖에도...]

- 프랑스의 오르가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루이 비에르네(Louis Vierne)는 1937년에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오르간 리사이틀을 하는 중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오르간에 엎드린채 세상을 떠났다.

-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인 시몬 바레레(Simon Barere)는 1951년 카네기 홀에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 단조를 연주하는 중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 1912년 4월 10일 대서양에서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1,514명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절명의 순간에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 음악가들이 있다. 모두 8명의 앙상블이었다. 이름은 테오도르 로날드 브레일리, 로저 마리 브리쿠, 존 프레데릭 프레스튼 클라크, 월레이스 하틀리, 존 러 흄, 조르즈 알렉산드르 크랭, 퍼시 코르넬리우스 테일러, 존 웨슬리 우드워드이다. 이들은 절망의 순간에 승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끝까지 연주를 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는 이들이 '내주를 가까이'를 연주하며 타이타닉과 함께 침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