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또 다른 면모...흥미있는 에피소드
○ 나치 선전용으로 사용된 리스트의 '전주곡'(Les Preludes)
리스트의 '전주곡'은 리스트가 작곡한 13개의 교향시 중에서 세번째로서 어느 교향시보다도 아름답고 웅장한 곡이다. 전주곡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프랑스의 시인인 알퐁스 드 라마르탱(Alphonse de Lamartine)의 송시인 '새로운 명상시'(Nouvelles mediations poetiques)에 붙인 음악이기 때문이다. 리스트는 합창 사이클에 이 전주곡을 포함시키고 '네 원소'(Les quatre elemens)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렇듯 아름답고 감동적인 음악이 2차 대전 중에 나치가 전쟁을 부추키는 선전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 나치는 1941년 러시아에 대한 전쟁을 시작한 후부터 1945년 전쟁이 끝나기 직전까지 리스트의 전주곡의 주제 모티프 음악을 나치 선정용 영화인 '독일 주간 소식'(Die Deutsche Wochenschau)의 시그날 음악으로 사용하였다. 독일 공군 폭격기가 소련에 폭탄을 떨어트려서 무고한 농민들을 살상하는 뉴스를 전하면서 리스트의 '전주곡'을 함께 들려주었던 것이다. 리스트가 살아서 그런 내용을 알았더라면 무엇이라고 그랬을까? 바그너의 '발키리의 기행'을 미군이 베트남 전쟁 때에 베트콩 소탕을 위해 헬리콥터를 출격시킬 때에 라우드 스피커를 통해서 울려퍼지게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치의 선전영화인 '디 도이체 보헨샤유'(독일 주간뉴스)의 오프닝 컷. 이때 리스트의 '전주곡'의 테마 모티프가 나온다.
○ 청중들이 난투극을 벌였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Rite of Spring)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이교도적인 봄축제의 모습을 그린 발레음악이다. 그렇지만 발레음악이면서도 콘서트를 위한 오케스트라 작품이기도 하다. '봄의 제전'은 1913년 5월 29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발레와 음악이 1900년도 당시로서는 너무나 기괴하고 엽기적이어서 공연이 진행될수록 청중들 중에서는 춤의 동작과 의상과 난해하기가 이를데 없는 음악때문에 '집어 치워라'라는 함성이 점점 높아졌다. 청중들은 공연을 비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작곡자와 안무가를 싸잡아서 비난하였고 여기에도 만족하지 못해서 '봄의 제전'을 지지하는 층과 반대하는 층으로 갈라져서 언성을 높이는 싸움을 시작하더니 이윽고 주먹다짐으로 발전하여 극장안을 도대체 이런 난장판도 없을 정도의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오케스트라 석에서 연주를 하는 음악가들도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 욕설을 듣고 심지어 집어던지는 물건들에 맞아야 했다. 고상해야 할 연주회장이 난투극장으로 변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였다.
발레 '봄의 제전'의 한 장면. 로잔느. 1959.
○ 모차르트의 '진혼곡', 어디까지 작곡했나?
1984년도 헐리우드 영화인 '아마데우스'(Amadeus)를 보면 마치 살리에리가 음모를 꾸며서 모차르트를 독살한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약 40년 후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푸쉬킨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희곡에서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에 의해 독살된 것처럼 기술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70년 후인 1897년에 러시아의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푸쉬킨의 희곡을 바탕으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단막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물론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내용이다. 어째서 그런 명확치 않은 내용이 공공연히 연극으로도 말들어지고 오페라로도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어딘가는 근거가 있기에 그런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인 '진혼곡'의 경우에도 미완성인 마지막 몇 파트를 임종을 앞에 둔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의 도움으로 완성한 것처럼 되어 있다. 그것은 영화일 뿐이다.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진혼곡'의 첫 파트만 완성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스케치를 해 놓았는데 모차르트의 사후에 그의 지인인 프란츠 사버 쥐스마이르가 미완성 파트를 완성했고 나아가서 독자적으로 네 곡을 작곡해서 붙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모차르트가 어디까지 완성했고 어디까지 미완성으로 남겨 두었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정말로 모차르트는 어느 파트까지 작곡했으며 누구누구가 미완성인 파트를 완성했을까? 아직도 논란이 많은 사항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죽음을 앞둔 모차르트의 지시를 받아서 진혼곡을 완성하는 장면
○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은 과연 미완성인가?
슈베르트의 교향곡 E 단조는 나중에 슈베르트의 전작품을 순번에 따라 정리한 사람(Otto Erich Deutsch)에 의해 교향곡 8번으로 정리되었고 또한 2악장 까지만 완성되었기 때문에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금도 대체로 그렇지만 당시에는 교향곡이라고 하면 4악장으로 구성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렇기 때문에 E 단조 교향곡은 슈베르트가 2악장까지만 완성하고 더 이상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완성교향곡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물론 슈베르트가 완성한 다른 교향곡들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슈베르트는 E 단조 교향곡을 4악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사실상 3악장에 대한 스케치까지 해 놓았다. 슈베르트의 사후에 여러 작곡가들이 미완성이라고 생각한 E 단조 교향곡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슈베르트가 스케치 해 놓은 것도 참고하고 슈베르트의 다른 교향곡들의 스타일과 음악들도 참고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완성해 놓았지만 아무래도 어색했다. 사람들은 슈베르트의 E 단조가 2악장만으로 충분히 교향곡의 체제를 갖추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완성은 필요없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명칭은 그대로 '미완성교향곡'이라고 놓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슈베르트와 친구들(슈베르티아데). 뛰어난 재능의 슈베르트였지만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은 순전히 미국적인 교향곡은 아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은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 또는 그냥 '신세계교향곡'이라고 부른다. 드보르작이 뉴욕음악원의 초청으로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인 1893년에 작곡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미국은 유럽인들이 볼때 신세계였다. 혹자는 이 교향곡이 미국 인디언들과 흑인들의 음악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미국적인 교향곡이라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드보르작의 조국인 보헤미아의 민속적인 주제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 미국적이라고 말할수는 없다. 그래서 번슈타인은 이 교향곡을 '다국적'(Multinational)이라고 논평했다. 드보르작이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한 그해 여름에 미국에 와서 두번째로 완성한 작품이 현악4중주곡 12번, 작품번호 96, F 장조이다. 이 작품에는 '아메리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드보르작이 이 현악4중주곡을 완성하고 표지에 '미국에 와서 완성한 두번째 작품'(The second composition written in America)이라고 썼다. 그래서 이 현악4중주곡을 '아메리카 4중주곡'(American Quartet)라고 부른다. 그래서 혹시 이 현악4중주곡이 미국의 인디언이나 흑인들의 멜로디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실은 드보르작이 미국에 이민 온 체코(보헤미아) 사람들을 위해서 작곡한 것이다. 미국 아이오와 주의 스필빌(Spilville)이라는 곳은 미국에 이민 온 체코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리틀 보헤미아였다. 드보르작은 1893년 여름을 이곳에서 지내며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 분명히 미국에 있는 보헤미아 사람들을 위해서 작곡했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제목이 비록 '아메리카'라고 해도 실은 미국을 위해 작곡한 것이 아니다.
아이오와 주 스필빌에서 보헤미아 이민자들을 위해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드보르작. 1893년 여름.
○ 코플란드의 팡파레는 원래 미국의 1차 대전 참전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의뢰된 작품이었다.
2차 대전 중에 영국에서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참전용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일종의 팡파레를 연주하는 것이 관례였다. 미국에서도 그런 예를 따르고 싶어했다. 신시나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아론 코플란드(Aaron Copland)에게 영국과 비슷하게 참전 병사들을 위한 팡파레를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코플란드는 굳이 영국의 예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4대 자유에 경의를 표하는 음악으로 작곡했다. 미국은 유럽의 어느나라보다도 국민들을 위한 4대 자유를 크게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4대 자유란 공포로부터의 자유,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 그리고 군인들이 아니라 일반국민을 위한 팡파레(fanfare for the common man)라고 정의했다. 신시나티 오케스트라도 코플란드와 뜻을 함께 했다. 코플란드의 팡파레는 1943년 소득세신고 기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처음 연주되었다. 코플란드는 나중에 이 팡파레를 그의 교향곡 3번의 4악장의 주제로 사용했다. 오늘날 코플란드의 팡파레는 올릭픽 경기장에서, 선거운동 대회에서, 그리고 락 콘서트에서도 자주 들을수 있다.
아론 코플란드의 '일반국민을 위한 팡파레' 음반 커버
○ 바그너의 '축혼가'와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은 원래부터 결혼식을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평소에 자주 듣는 음악이지만 무심해서 그 음악의 유래에 대하여는 별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라든지 '해피 버스데이 투유'는 늘상 부르면서도 누가 어떤 경우에 작곡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결혼식 음악의 경우에도 그렇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에 의례 연주되는 음악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2막에서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과 브라만테 공국의 공주 엘자가 결혼식을 올릴 때 신부를 위해 여인들이 부르는 음악이다. 이 음악은 '브라이달 코러스'(신부를 위한 합창)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축혼가'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 음악의 제목은 '진실로 인도하소서'이다. 마찬가지로 결혼식에서 부부로서 선포된 신랑신부가 첫 행진을 할 때의 음악은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극중의 극 장면인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와 아마존 여왕 히폴리타의 결혼식에 나오는 음악이다. 그런데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에는 별도의 가사가 없지만 바그너의 '축혼가'에는 가사가 있다. 사람들은 딴따다 단∼으로 시작되는 '축혼가'에 무슨 가사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의미있는 가사가 있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진실로서 인도하소서
그대를 지켜주는 사랑의 축복이 있는 곳으로
사랑은 개선의 승리로서 보상을 받으리
가장 행복한 한 쌍으로서 믿음 안에서 결합하리
덕성의 챔피언이여 나아가라
젊음의 보석이여 나아가라
마음으로부터의 기쁨이 그대의 것이 되어라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이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퇴장할 때 연주되는 음악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58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딸인 빅토리아 공주와 프러시아의 프레데렉 빌헬름 왕자가 결혼식을 올릴 때 연주된 이후부터이다. 빅토리아 공주는 멘델스존의 음악을 사랑하여서 멘델스존이 영국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그를 초청하여 자주 연주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 이후로 영국에서는 물론이고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결혼식 후에 신랑신부가 행진해 나갈 때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결혼행진곡이 관례처럼 연주되었고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에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도 나치가 집권한 후부터는 멘델스존이 유태인이라고 해서 금지곡목으로 지정되어서 결혼식에서 들을수가 없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들을수 있게 되었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아테네 왕과 아마존 여왕의 결혼식 장면. 이때 유명한 결혼행진곡이 연주된다.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 원작이며 멘델스존은 연극에 들어가는 음악(인시덴탈 뮤직)을 작곡했다.
○ 헨델의 '왕궁의 불꽃 놀이'가 초연되는 날에는 비가 내리고 불이 나서 혼란스러웠다.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Royal Fireworks)는 1748년 스페인 왕위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끝나고 전화로 시달렸던 유럽에 평화가 온 것을 축하하여서 영국의 조지 2세가 특별히 헨델에게 작곡을 부탁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다섯 파트로 구성된 '왕궁의 불꽃놀이'는 1749년 4월 27일 런던의 그린 파크(Green Park)에서 조지 2세를 비롯하여 백관과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초연되었다. 그린 파크는 버킹검 궁전에서 가까운 공원으로 테임스강을 끼고 있다. 조지 2세는 이날의 공연을 위해 수천개의 불꽃을 공원과 왕궁과 테임스 강위의 보트에서 쏘아 올리도록 했고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자리 잡을 무대와 귀빈들이 편안히 관람할수 있는 근사한 정자를 두개나 만들도록 했다. 연주회는 저녁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자 안에 앉아서 구경하는 사람들이야 비가 오던 말던 상관할 일이 아니지만 불꽃을 쏘아 올리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비 때문에 화약이 터지지 않을까 보아서 노심초사였다. 그러나 공원에 몰려든 시민들은 내리는 비에 개의치 않고 낭랑한 헨델의 음악에 정신을 잃고 서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갑자기 두 곳의 정자 중에서 한 곳에서 불이 난 것이다. 순식간에 정자는 불길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혼란스럽게 우왕좌왕하였다. 헨델은 침착하게 오케스트라를 그대로 지휘하여 연주 자체는 성공적으로 끝나게 만들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이겠지만 연주 도중에 사방에서 쏘아 올린 불꽃들은 그야말로 런던의 밤하늘을 보석을 뿌린듯 찬란하게 장식했다. 당시의 불꽃놀이 장면을 그린 그림이 남아 있어서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게 해주고 있다. 바로 아래의 그림이다. 테임스강에 떠 있는 수많은 보트에서도 불꽃을 쏘아 올렸으니 장관은 장관이었다. 다만, 왜 하필이면 '왕궁의 불꽃놀이'를 초연하는 때에 비가 와서 많은 사람들을 속상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런던 그린 파크에서의 연주회와 불꽃놀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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