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비스(Alexandre Bis) - Alexander Twice
체코의 보후슬라브 마르티누의 초현실주의적 코믹 오페라
부제는 '수염을 깎은 어떤 남자의 비극'(The Tradegy of a Man who Had His Beard Cut)
알렉산드르와 오스카의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아르만다. 뒷편에는 필로메느
부인 또는 애인의 정절에 대한 마음을 테스트하는 내용의 오페라로서는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가 대표적이며 또 있다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 정도를 들수 있다. '박쥐'에서 아이젠슈타인의 부인인 로잘린데는 옛 애인인 알프레도가 몰래 찾아오자 옛날을 잊지 못해서 남편이 출타하는 중에 밀회를 즐겼기 때문이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율리시스의 조국 귀환'(Il ritorno d'Ulisse in patria)도 비슷한 내용이다. 오랫동안 조국을 떠나 있던 율리시스가 은밀하게 돌아와서는 아내인 페넬로페의 정절을 테스트하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소재는 오래전부터 많은 공연작품의 주제가 되어 왔다. 체코의 폴리치카에서 태어나서 한동안 파리에서 활동을 했다가 스위스의 리슈탈에서 세상을 떠난 보후슬라브 마르티누(Bohuslav Martinu: 1890-1959)의 단막 오페라 '알렉산드르 비스'(체코어로는 Dvakrat Alexandr)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작품이다. 아내의 마음(정절)을 테스트하기 위해 수염을 깍아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하여 아내에게 접근해 보는 내용이다. 아무리 수염을 깎았다고 해도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남편인데 몰라 본다니 도무지 이해가 안가지만 아무튼 그래서 이 오페라의 부제는 '수염을 깎은 어떤 남자의 비극'이다. 제목의 '알렉산드르 비스'라는 말은 '알렉산드르 쌍둥이'라는 뜻이다.
스토리야 간단하지만 이 작품은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상당한 관심을 끌고 논란의 대상이 되었었다. 말하자면 빈부의 격차가 심하였지만 부유층에서는 사치스럽고 퇴폐적인 풍조가 만연하던 시기였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인 면에서 가치관의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던 때였다. 그리고 독일에서 나치가 발흥한 것은 유럽의 정치판도에 적잖은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프랑스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파리에서 만국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에펠탑은 프랑스 영광의 상징이었다. 마르티누는 이 오페라를 193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서 완성했다. 때문에 이 오페라의 시대적 배경도 자연히 1930년대였다. 사실상 그는 1923년부터 1940년까지 파리에서 지냈었다. 극심한 변환기에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지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알렉산드르 비스'의 무대배경으로는 파리의 개선문이 보이고 1930년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스타일의 건축양식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 겸 작가인 르 코르뷔지에는 밀집도시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데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여기에 달리 스타일의 초현실주의 디자인이 눈길을 잡도록 하고 있다. 그나저나 마르티누의 '알렉산드르 비스'는 2차 대전의 와중에서 초연의 기회를 갖지 못하였고 마르티누의 사후 5년만인 1964년에 독일의 만하임에서 겨우 초연될수 있었다. 곧이어 마르티누의 모국인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르노(Brno)에서 야나체크 오페라가 공연하였다. 프랑스어 대본은 프랑스의 앙드레 부름저(André Wurmser: 1899-1984)가 썼다. 앙드레 부름저라고 하면 Kravchenko versus Moscow: The Report of the Famous Paris Case(1950)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원래 마르티누는 부름저에게 '노래하는 고양이'를 등장시켜 달라고 부탁했으나 부름저는 마르티누의 제안을 절충하여 '노래하는 초상화'로 바꾸었다. 초상화는 해설자의 역할도 겸한다. 출연진은 다섯 사람이다. 주인공인 알렉산드르(Alexandre: 알렉산더: Bar), 미국에서 왔다는 알렉산드르의 사촌이라는 오스카(Oskar: T), 알렉산드르의 부인인 아르망드(Armande: 아르만다: Armanda: Sop), 알렉산드르 집안의 하녀인 필로메느(Philoméne: MS), 그리고 말하는 초상화(B)이다.
오스카와 아르망드, 그리고 초상화
당시의 파리 극장가는 1920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사실주의 오페라가 압도하고 있었다. 사실상 사실주의 오페라는 1890년대 말부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거세게 치솟기 시작했고 이어 얼마후에는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도 이탈리아적 사실주의 오페라가 커다란 관심을 끌기 시작했던 터였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그리고 푸치니의 '라 보엠'은 이탈리아 사실주의(베리스모)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들이었다. 마르티누는 그러한 이탈리아의 멜로드라마라고 할수 있는 사실주의 오페라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대신에 그는 초현실주의적인 무대작품에 관심을 두었다. 이와 함께 중세의 이야기들, 전래 민화, 사회상을 풍자하는 코미디에도 관심을 두었다. 마르티누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찌보면 실제로 살아 있는 인물들이라기 보다는 인형극에 나오는 인물들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고나면 그 인형처럼 생긴 인물들을 통해서 삶의 진실한 면을 읽어볼수 있다.
알렉산드르와 아르망드
1900년대 초반에 파리에 살고 있는 비교적 상류층의 알렉산드르는 아내 아르망드가 과연 자기만을 사랑하고 있는지 한번 테스트해 보고 싶다. 아르망드는 지난 몇년동안 그를 좋아해서 따라 다니던 남자들과 일체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르망드의 예전 습성으로 보아 남자들을 좋아하는 성격이 어디 갔다고 볼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알렉산드르는 구렛나루 수염을 근사하게 기른 신사이다. 그 구렛나루 때문에 다른 여인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선망의 시선을 받았지만 그에게는 아르만드 한 사람 뿐이다. 아무튼 알렉산드르는 아르망드의 마음(정절)을 시험해 보고 싶다. 생각 끝에 미국에 살고 있는 사촌인 오스카르로 변장해서 아르망드에게 접근해 보기로 한다. 이런 내용은 '여자는 다 그래'의 설정과 비슷하다. 더구나 '여자는 다 그래'에도 중간 역할을 하는 데스피나라는 영리한 하녀가 있는데 '알렉산드르 비스'에도 필로메느라는 장난끼가 있는 하녀가 등장한다. 아르망드는 남편 알렉산드르의 사촌으로 오스카라는 사람이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오스카를 실제로 만나본 일은 없다. 알렉산드르는 그 점에 착안하여서 자기가 오스카로 변장해서 아르망드에게 접근해 보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애지중지하던 수염을 밀어버리기로 결심한다. 오스카가 되었다가 알렉산드르로 돌아가고자 할 때에는 가짜 수염을 붙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르망드는 오스카가 재미있고 명랑하며 게다가 돈도 많은 멋쟁이라서 마음이 끌린다. 그러면서도 수염만 있다면 남편 알렉산드르와 어쩌면 저렇게도 똑같은지 모르겠다고 감탄한다. 혹시 아르망드가 알렉산드르가 변장해서 오스카로 등장한 것을 알아채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튼 아르망드와 오스카는 그야말로 뜨거운 사이로 변한다.
관중들은 어느 때는 알렉산드르가 되었다가 또 어느 때는 오스카가 되는 상황에 대하여 점차 현실인지 상상 속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르망드도 현실과 상상 속을 헤매는 입장이 된다. 아르망드는 급기야 오스카를 침대로 이끈다. 다음날 아침, 알렉산드르는 수염을 붙이고 본래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르망드는 어제 밤에 잠자리를 함께 했던 오스카가 실은 자기의 남편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아마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박쥐'에서 로잘린데와 알프레도의 관계를 연상케 한다. 그러면서 결국 자기가 남편을 속이고 성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아르망드는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면 또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해도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남편 알렉산드르는 자기 자신을 속인 것이 아니던가? 여기에서 도덕적인 가치관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것은 온전히 관중들의 몫이다. 다 폰테의 '여자는 다 그래'에서는 여자들이 잘못을 뉘우친다. 남자들도 자기들의 테스트가 지나쳤기 때문에 여자들을 함정으로 몰아 넣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두 해피 엔딩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비스'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당신의 아내를 일부러 시험에 들지 말게 하라. 대저 악마는 밤낮 없이 깨어 있기 때문이니라.'이다. 결론적으로 알렉산드르는 그의 아내를 신뢰하기 보다는 시험하는 우를 범했다. 그리하여 아르망드는 남편이란 사람이 한낱 얼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렉산드르 비스'의 음악은 '다리 위의 코미디'보다는 좀 더 따듯하다고 볼수 있다. 물론 '다리 위의 코미디'보다는 선명성이 부족하지만 대신에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든지 또는 인물 설정을 위한 음악은 보다 복잡하여서 생동감을 준다. '다리 위의 코미디'는 우리는 모두 연약하므로 우리는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비스'는 우리는 모두 연약하므로 서로를 시험하거나 악에 빠지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스카와 아르망드. 알렉산드르의 초상화가 진짜 알렉산드르처럼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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