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작곡가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현한 작품들
작곡가가 작품으로서 다른 작곡가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방법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대체로 인간적으로 존경해서 감사와 경의를 표할수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작곡가의 작품으로부터 커다란 감동을 받아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는 다른 작곡가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현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할수 있다.
1. 변주곡(Variations)을 만드는 경우이다.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 나오는 주제를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변주곡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제목에 누구의 주제에 대한 변주곡이라고 적어서 찬사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또는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이다. 다른 작곡가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곡을 만든 경우는 허다하므로 일일히 소개할수가 없어서 이만 생략한다.
비엔나에서 악보출판을 했던 안톤 디아벨리. 작곡가이기도 한 그는 왈츠 주제를 만들어서 베토벤을 비롯한 30여명의 현역 작곡가에게 변주곡을 부탁했다.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2.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 그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럴 경우에 작품의 제목에 다른 작곡가의 이름을 표현할수가 있다. 그러나 반드시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바탕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작곡가를 모르는 전통 민속 민요 등을 바탕으로 삼을 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 나오는 주제를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 사용하여서 자기 작품을 만들 경우에는 더욱 감사를 보내고 싶을 것이다. 단순한 변주곡의 형태를 넘어서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작품을 마치 다른 작곡가의 작품으로 간주할 정도이다. 예를 들면, 차이코브스키는 모차르트의 주제들을 사용하여 오케스트라 모음곡 4번을 만들었는데 그래서 이 모음곡의 부제를 '모차르티아나'(Mozartiana)라고 붙였다.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higi)의 '로시니아나'(Rossiana)는 로시니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현으로 만든 작품이다. 작품 제목에 -ana라는 어미가 들어간다면 그것은 그 작곡가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현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난하다. -ana가 들어간 타이틀은 또 있다. 로베르트 게르하르트(Robert Gerhard)는 펠립 페드렐(Felip Pedrell)을 존경하여서 '페드렐리아나'(Pedrelliana)를 작곡했다. 요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의 '솔레리아나'(Soleriana)는 안토니 솔레르(Antoni Soler)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작품이다.
환타지아 또는 환타지라는 단어로서 경의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랄프 본 윌리엄스의 '토마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타지아'(Fantasia on a Theme by Thomas Tallis), 또는 프란츠 리스트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주제에 대한 환타지' 등이다. '경의'(Hommage)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직접적으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클로드 드비시의 피아노 모음곡 중에서 두번째 곡인 '이미지'는 '라모에 대한 경의로서'(Hommage à Rameau)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이다. 로렌초 페레로(Lorenzo Ferrero)의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테마 44'라는 작품은 Ad honorem J. Haydn(하이든을 존경하여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로베르트 게르하르트(Robert Gerhard)의 교향곡 중에는 '페드렐에게 존경을 보내는 교향곡'(Symphony Hommage to Pedrell)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것이 있다. 에드바르 그리그의 '무드'(작품번호 73)에 들어 있는 연습곡은 '쇼팽을 존경하여서'(Hommage a Chopin)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알렉산드르 탄스만()의 기타를 위한 작품에도 '쇼팽을 존경하여서'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작품에 주석(Paraphrase)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프란츠 리스트가 '죽음의 춤'(Totentanz)이라고 부르는 작품은 Dies Irae에 대한 주석을 붙인 경우이다.
라프소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라프소디'(Rhapsody on à Theme of Paganini)이다. 파가니니의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치오 24번 A 단조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회상'(Reminiscences)이라는 표현을 한 작품들도 있다. 예를 들면 프란츠 리스트의 '돈 후안에 대한 회상'(Réminiscences de Don Juan)이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주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프랑스어로 통보(Tombeau)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존경하는 심정을 표현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마누엘 드 활라의 '드비시의 통보'(Le Tombeau de Debussy)이다. 통보라는 단어는 어떤 유명한 인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작품을 말한다. 지금은 별로 사용하지 않지만 16세기와 그 이후에는 여러번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3. 다른 작곡가의 이름을 자기 작품의 제목으로 삼아서 그에게 경의를 표현하는 방법은 본 블로그의 다른 항목에서 이미 소개한바 있다. 예를 들면 니콜라스 이수아르(Nicolas Isouard)의 오페라 '치마로사'(Cimarosa)이다. 이탈리아의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경우이다.
도메니코 치마로사.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오페라가 있다.
4. 편곡(Transcription)하거나 번안(Adpatation) 또는 개작하는 경우이다. 주로 같은 시대에 활동하던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하거나 번안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피아노 곡인 '전람회의 그림'을 오케스트라 곡으로 만든 경우이다. 프란츠 리스트는 베토벤의 교향곡들을 대상으로 삼아서 솔로 피아노 또는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편곡 작품들을 만들었다. 미국의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와 조지 포레스트(George Forrest)는 위대한 고전 작곡가들의 작품에 나오는 주제들을 바탕으로 삼아서 뮤지컬 노래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경우는 알렉산더 보로딘의 주제 멜로디와 에드바르 그리그의 '노르웨이의 노래'를 바탕으로 뮤지컬 '키스멧'(Kismet)의 노래를 만들었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와 '전람회의 그림' 음반 커버
5. 다른 작곡가의 주제를 하나 또는 여러개를 인용(Quotation)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에로이카)에 나오는 장송곡을 자기의 작품인 '23개 솔로 현악기를 위한 변 형'(Metamorphosen for 23 solo strings)에 변형하여 인용한 것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슈베르트의 '군대 행진곡 1번 D 장조'를 자기의 작품인 '서커스 폴카'의 마지막 파트에 편곡하여 인용하였다.
6. 다른 작곡가의 음악을 변형(Transformation)하여서 자기의 작품에 사용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샤를르 구노는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 1권'의 전주곡 1번 C 장조에서 멜로디 라인을 가져와서 '아베 마리아'라는 제목과 함께 가사를 붙이는 변형을 하였다. 그것이 유명한 '구노-바흐의 아베 마리아'이다.
샤를르 구노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구노는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에 나오는 멜로디를 변형하고 가사를 붙여서 '구노-바흐의 아베 마리아'를 만들었다. 노래 제목에 두 작곡가의 이름이 동시에 들어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7. 다른 작곡가의 음악을 자기의 작품에 합성(Synthesis)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루치아노 베리오는 자기의 '렌더링'(Rendering)이라는 작품에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의 부분을 가져와서 합성하였다. 미국에서 태어난 챨스 우오리넨(Charles Wuorinen: 1938-)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위한 유골함'(A Reliquary for Igor Stravinsky)이라는 작품에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음악 중에서 몇개 부분이 합성되어 있다.
8. 다른 작곡가의 미완성 작품을 완성(Completion)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경우는 모차르트의 미완성 '진혼곡'을 그의 제자인 프란츠 사버 쥐스마이르가 완성하였고 푸치니의 미완성 오페라인 '투란도트'를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하였으며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 10번을 데릭 쿠크(Deryck Cooke)가 완성한 것 등이다.
완쪽. 영국의 데릭 쿠크(1919-1976). 말러의 교향곡 10번을 완성했다. 가운데 모차르트의 '진혹곡'을 완성한 프란츠 사버 쥐스마이르. 오른쪽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완성한 프랑코 알파노
9. 다른 작곡가의 작곡 스타일을 일부러 모방(Imitation)하는 방법이다. 주로 해학적인 패로디(Parody) 음악으로 만드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지그프리드 옥스(Siegfried Ochs)는 10여명 위대한 작곡가의 작곡 스타일을 빌려서 '새가 날아왔는데'(Kommt ein Vogel geflogen)이라는 작품을 완성한 경우이다. 이 작품에서 지그프리트 옥스는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베르디, 구노, 쇼팽, 바그너, 베토벤,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마이에르베르 스타일로 '새가 날아왔는데'를 모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새가 날아왔는데'는 원래 티롤지방의 민요라고 한다. 또 다른 모방 작품으로서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1번을 들수 있다. '클래식'이라는 부제의 이 교향곡은 프로코피에프가 하이든 스타일로 모방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모리스 라벨은 1913년에 두 개의 피아노 작품을 작곡했는데 하나는 '보로딘 스타일로'(A la manière de Borodin)이며 다른 하나는 '샤브리에 스타일로'(A la manière de Chabrier)이다. 브라질의 국민작곡가인 에이토르 빌라 호보스(Heitor Villa-Lobos: 1887-1959)는 '바키아니스 브라질레이라스'(Bachianas Brasileiras)라는 연작을 작곡한 것이 있다. 바흐 스타일을 모방한 음악이다. 차이코브스키는 그의 Op 72 모르소(Morseaux)에서 어떤 곡은 '슈만 스타일로'(Un poco di Schumann) 연주하라고 했으며 또 어떤 곡은 '쇼팽 스타일로'(Un poco di Chopin)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24개 소품으로 구성된 '어린이 앨범'(Album des enfants)은 '슈만의 어린이 소품처럼'(Children's Pieces à la Schumann)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칼 체르니(Carl Czerny)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하이든 주제에 대한 변주곡'은 주제가 1797년 하이든이 프란츠 황제의 생일 축하곡으로 작곡한 '신이여 우리 황제를 보호하소서'(Gott erhalte den Kaiser)이다. 체르니는 이 작품에서 오케스트레이션을 어떻게 하는 것이 완벽한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한편, 체르니는 바흐의 푸가 스타일, 스칼라티의 소나타 스타일, 그리고 하이든과 모차르트, 또한 당연히 스승인 베토벤의 작품에서 일부를 모방해서 음악을 만들었다. 특히 활기에 넘친 피날레는 베토벤의 피아노 음악 작곡 기법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새는 날아왔는데'를 10여명의 위대한 작곡가 스타일로 모방한 독일의 지그프리트 옥스
10. 존경하는 작곡가 또는 연주자에게 자기의 작품을 헌정(Dedication)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안톤 브루크너는 교향곡 3번을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헌정하였고 베르디를 중심으로한 13명의 작곡가들이 합동하여 작곡한 '로시니를 위한 미사'(Messa per Rossini)는 로시니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아담 카차투리안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데이빗 오이스트라크(David Oistrakh)에게 헌정하였다. 볼프강 림(Wolfgang Rihm)의 '서브 콘투르'(Sub-Kontur)라는 작품은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송가'(Hymnen)는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앙리 푸쇠르(Henri Pousseur), 존 케이지(John Cage),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의 4명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랄프 본 윌리엄스의 교향곡 5번은 장 시벨리우스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자기의 작품을 다른 작곡가나 연주자에게 헌정한 경우는 허다해서 일일히 기술하지 못함을 양해하기 바란다.
11.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게 암호(Cryptogram)로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경우이다. 작곡가의 이름이 음표 속에 암호로 들어 있는 경우이다.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바흐 모티프'(BACH Motif)이다. 이후 4백여명이나 되는 작곡가들이 바흐를 존경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들의 작품에 바흐 모티프를 사용하였다. 물론 바흐 자신도 암호 음표를 자기 작품에 사용하였다. '바흐 모티프'를 사용한 예를 들어보면 모리스 라벨의 '하이든 이름을 위한 메누에트'(Menuet sur le nom d'Haydn), 아놀드 박스(Arnold Box)의 '하프와 현악기를 위한 가브리엘 포레 이름의 변주곡'(Variations on the name Gabriel Faure for harp and strings) 등이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모티프도 있다. DSCH 모티프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것 역시 다른 작곡가들이 많이 사용하여서 쇼스타코비치에게 경의를 표명하였다. '바흐 모티프'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작곡을 할 때에 음악의 중요하고 특별한 부분에 네개의 음표를 연속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네개의 음표라는 것은 B 플랫, A, C, B 내추럴을 말한다. 독일에서는 작곡하는 사람들이 B 플랫은 그냥 B라는 글자로, B 네추럴은 H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면 네개의 음표는 BACH라는 단어가 된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가족명칭이다. 그러므로 후세의 작곡가들이 작곡을 하면서 B 플랫, A. C, B 내추럴이 연속으로 나오는 멜로디를 구성했다면 그것은 곧 BACH 모티프를 사용했다는 것이 되며 따라서 바흐를 존경하여서 그런 모티프를 사용했다고 인정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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