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356. 에드워드 솔로몬의 '클로드 듀발'

정준극 2017. 5. 10. 12:00

클로드 듀발(Claude Duval)

에드워드 솔로몬의 코믹 오페라

희대의 강도인 듀발의 사랑이야기


윌리엄 파웰 프리스의 '마차강도'. 듀발 일당의 마차강도 장면을 그렸다. 어떤 부인과 춤을 추는 뒤발.


클로드 듀발(또는 클로드 뒤발)은 17세기에 영국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강도였다. 강도는 강도이지만 대단히 예의 바르고 유머까지 있는 강도였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젠틀맨 강도라고 불렀다. 강도라고 해서 사랑에 대하여 무관심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뒤발의 강도행각과 사랑에 대한 감정을 에드워드 솔로몬(Edward Solomon: 1855-1895)이 19세기 말에 코믹 오페라로 만들었다. 일종의 사보이 오페라였다. 하기야 솔로몬은 사보이 오페라의 원조인 설리반과도 친밀한 사이였고 서로 콤비가 되어 합작 오페라를 만들 계획까지 했었으니 솔로몬의 코믹 오페라를 사보이 오페라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듀발의 활동상을 소개하기 전에 솔로몬은 어떤 사람인지 소개코자 한다. 파란많은 짧은 생애를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솔로몬은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런던의 유태인 가정에서 1855년 태어났다. 솔로몬의 아버지 챨스 솔로몬은 뮤직홀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로서 작곡도 했다. 솔로몬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솔로몬은 아버지를 따라 뮤직홀이나 극장을  드나들다보니 나이도 어린데 인생에 대하여도 상당히 조숙한 편이었다. 솔로몬은 17살인가 18살인가 하던 때에 제인 아이작스(Jane Isaacs)라는 유태인 아가씨와 사랑하느니 어쩌니 하다가 결국 결혼했다. 그때 제인은 15세였다. 두 사람은 딸 하나를 두었다. 딸 클레어 로메인(Claire Romaine)은 나중에 배우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선천적으로 바람끼가 다분한 솔로몬은 제인과 결혼하고나서 얼마후 딸 까지 있는 마당에 다른 여자가 생겨서 법적인 부인인데도 불구하고 제인을 혼자 내버려 두고 두집 살림을 했다. 말이 그렇지 실은 조강지처를 발로 차버린 것이었다. 그후로도 솔로몬은 마치 봄날의 나비처럼 이여자 저여자와 좋게 말해서 로맨스, 나쁘게 말해서 스캔들을 뿌리며 지냈다. 한편, 제인은 가수가 되어서 릴리 그레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며 노래를 불렀다.


솔로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돈이나 여자문제에 관해서는 도무지 믿지 못할 사람이다. 하지만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재능만은 말할수 없이 뛰어나다. 그리고 초스피드로 작곡한다'는 것이었다. 솔로몬은 27세 때인 1882년에 뉴욕에 있는 토니 파스터(Tony Pastor) 카지노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초청을 받아 간 일이 있다.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릴리안 러셀(Lillian Russell)은 파스터 극장의 스타였다. 릴리안 러셀은 솔로몬이 기혼 유부남인 것을 알지 못하고 당장에 솔로몬의 애인이 되었다. 말이 좋아서 애인이지 실은 정부였다. 얼마후 두 사람은 뜻이 맞아서 런던으로 갔고 러셀은 솔로몬이 작곡한 오페라들인 '버지니아'(Virginia), '빌리 테일러'(Billee Taylor), 폴리(Polly), '포카혼타스'(Pocahontas)에서 주역을 맡기 시작했다. 그런데 러셀이 런던에서 출연한 이 오페라들은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아마 러셀의 미국식 발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두 사람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뉴욕에서는 런던과는 대조적으로 러셀이 이들 오페라에 출연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솔로몬과 러셀 사이에서 1884년에 딸 도로시가 태어나자 두 사람은 주변의 눈도 있고해서 1885년 뉴저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사이는 얼마 가지 못해서 마치 신맛이 나는 음식처럼 되었다. 솔로몬이 돈을 제대로 벌어오지 못해서가 큰 이유였다. 게다가 이들의 새로운 오페라인 '아가씨와 헛소리꾼'(The Maid and the Moonshiner: 1885)은 예상을 뒤엎고 대실패였다. 결국 '아가씨와 헛소리꾼'은 솔로몬-러셀 콤비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빚장이들이 솔로몬을 고소하자 그는 미국으로부터 야반도주했다. 그러나 벼룩이 뛰어 보았자 라는 말처럼 솔로몬은 얼마 후에 런던에서 체포되었다. 그런데 솔로몬은 실은 빚 때문이 아니라 중혼 때문에 체포되었다. 엄연히 법적인 부인이 있는데 미국에서 다른 여자와 정식으로 결혼해서 결혼신고까지 했다는 고소가 들어와서 체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판을 하려다보니 미국에서 솔로몬이 또 다른 결혼을 했다는 증인이 필요했지만 남의 가정문제에 이렇다 저렇다 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미국인으로서 증인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솔로몬은 석방되어 나왔다. 그러자 러셀이 이혼소송을 냈다. 그간의 경위는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러셀은 마침내 1893년에 이혼소송에서 이겨서 솔로몬의 부인이라는 신분으로부터 탈출하였다. 한편, 솔로몬의 첫째 부인인 제인은 그보다 앞서서 1887년에 솔로몬과 정식으로 이혼하였다. 솔로몬은 1889년에 배우인 케이트 에벌리(Kate Everleigh)라는 여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솔로몬은 러셀과의 이혼이 성립된지 2년 후인 1895년에 장질부사에 걸려 향년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에드워드 솔로몬과 릴리안 러셀


디시 '클로드 뒤발'로 돌아가서, 이 오페라의 대본은 극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헨리 포팅거 스테픈스(Henry Pottinger Stephens: 1851-1903)가 썼다. 스테픈스는 솔로몬과 콤비여서 '클로드 뒤발' 이외에도 '빌리 테일러' 등의 대본을 썼다. '클로드 뒤발'은 1881년 8월 24일 런던의 올림픽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올림픽 극장에서의 런던 공연은 2개월간 계속공연 실적을 올렸다. 이듬해인 1882년 1월부터 3월까지는 유명한 도일리 카르트가 극단을 이끌고 영국 각지를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 이어 1882년 3월부터 4월까지는 뉴욕 공연을 가졌다. 이때에는 길버트-설리반의 '페이션스'와 탄뎀 공연을 가졌다. 오페라에 나오는 인물인 블라드 레드 빌(Blood-red Bill)이 부르는 William's Sure to Be Right 라는 노래는 대인기를 끌었다. 이제는 클로드 뒤발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코자 한다. 클로드 뒤발은 실존 인물이다. 1643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동프론(Domfront)라는 마을에서 태어나서 1670년에 런던에서 처형되어 2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의 집안이 떠한지, 그의 부모는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하여는 논란이 있지만 얘기에 의하면 클로드 뒤발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사정이 있어서 그의 아버지가 귀족의 타이틀과 재산을 모두 몰수 당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홧병이 나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도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뒤발은 14세 소년일 때에 파리로 보내져서 파리에 거주하는 영국 왕당파 귀족들의 마굿간을 돌보는 일을 했다. 영국이 챨스 2세에 의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가 통합되어 말하자면 태평성대가 오자 파리의 영국 왕당파 귀족들은 너도나도 영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뒤발도 이들을 따라서 런던으로 가게 되었다. 뒤발은 런던에서 리치몬드 공작 집에서 마부일을 했다. 


그러는 중에 어느때 부터인가 런던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노상강도가 나타나서 마차를 세우고 돈과 물건들을 강탈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뒤발이었다. 뒤발은 특히 하이게이트와 이슬링튼 사이에서 노상강도 행위를 자주하였다. 그런데 일반 마차강도와는 달리 아주 신사다운 행동으로 강도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뒤발은 옷도 잘 차려 입어서 마치 귀족같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어떤 기록도 없다. 전해내려오는 얘기가 전부였다. 아무튼 뒤발은 강도이면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기껏 폭력성 행동을 했다는 것은 왕실에서 사냥개를 담당하는 로퍼라는 사람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뒤발에게 제지를 당했는데 돈 50 기니를 빼앗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나무에 묶였던 것이 유일한 폭력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뒤발의 강도 행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줄이어 등장했다. 그 중에서 유명한 얘기 한가지는 마차 강도를 하면서 어떤 남자가 가지고 있는 돈의 절반만 가져가기로 했다는 것인데 다만 그 남자의 부인이 뒤발과 쿠랑트(Courante)라는 춤을 함께 추는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전설과 같은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 상단에서 보는 것처럼 윌리엄 파웰 프리스(William Powell Frith)가 1860년에 그린 '클로드 뒤발'이다. 뒤발이 신사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국이 그를 체포해서 벌주는 것을 별로 내키지 않아했다. 그러다가 당국이 상금을 내걸자 사정은 달라졌다. 너도나도 뒤발을 체포해서 상금을 벌고자 했다. 뒤발은 은밀히 프랑스로 도피하였다. 그러다가 몇달 후에 불현듯 런던으로 돌아왔다. 뒤발이 자기를 수배중인 런던에 어째서 돌아왔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뒤발은 코벤트 가든의 챤도스 스트리트에 있는 호울 인 더 월(Hole-in-the-Wall) 여관에서 체포되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전해내려오는 얘기에 의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1670년 1월 17일 판사 윌리엄 모턴은 뒤발을 강도 6회에 대한 죄를 물어서 사형을 선고했다. 더 많은 강도를 했다고 하지만 6회 이외에는 근거가 없어서 추가할수 없었다. 뒤발을 아는 여러 사람들이 사면을 청원했고 아니면 최소한 사형만을 면하게 해 달라고 소원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챨스 2세는 어떠한 사면도 허용하지 않았다. 뒤발은 1760년 1월 21일 타이번(Tyburn)이란 곳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수급은 인근의 탄지에 주점에 높이 전시되었다. 수많은 인파가 뒤발의 처형장면을 보기 위해 몰려왔었다고 한다. 뒤발의 시신은 코벤트 가든의 세이트 폴 교회의 중앙 회랑 아래의 지하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교구교회의 기록을 보면 '1670년 1월 Peter Du Val 매장'이라고 적혀 있다. Duval의 원래 표기는 Du Val이 맞는 것이므로 그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Claude를 Peter로 적은 것은 아마도 영국에서는 Claude라는 이름이 드믈기 때문에 성자 중의 한 사람이 Peter(베드로)의 이름을 가져다 쓴 것 같다. 여러 극작가들과 자서전 집필가들이 용감하고 멋있는 클로드 뒤발의 행적을 바탕으로 작품들을 만들었지만 재미를 덧 붙이느라고 이런 저런 가공을 추가하여서 클로드 뒤발을 마치 초인간처럼 그려 놓았다. 예를 들면 뛰어난 연금술사, 놀라운 운수의 도박사, 카사노바는 저리 가라고 할 만큼 유능한 걸헌팅의 대표선수 등으로 묘사해 놓은 것이다. 또 하나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갖도록 하는 얘기는 뒤발의 혼령이 옥스포드셔어에 있는 홀트 호텔에 자주 나타나서 배회하다가 떠난다는 것인데 홀트 호텔은 생전에 뒤발이 자주 머물렀던 곳이다.


이제 오페라 이야기로 돌아가자. 등장인물들은 젠틀맨 강도인 클로드 뒤발, 뒤발과 친구가 된 챨스 로리모어(Charles Lorrimore), 콘스탄스와 결혼하려던 늙은 휘플 와플 경(Sir Whiffle Waffle), 콘스탄스의 삼촌으로 콘스탄스를 돈많은 와플 경과 결혼시키려던 마틴 맥그루더(Martin McGruder), 뒤발의 부하인 캡틴 할리(Captain Harleigh), 역시 뒤발의 부하인 블라드 레드 빌(Blood-red Bill), 노상강도 팀의 멤저들인 보스캐트(Boscatt)와 홋지(Hodge)와 폿지(Podge), 로리모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콘스탄스(Constance), 콘스탄스의 친구 겸 하녀인 로우스(Rose), 맥그루더의 여동생인 미스트레스 베티(Mistress Betty), 마을 아가씨들인 돌리(Dolly), 메리(Mary), 프루덴스(Prudence), 케니아(Kenia), 바바라(Barbara) 등이다.


[1막]. 히스(Heath)의 시장터이다. 뒤발의 노상강도 팀은 집시 점장이들로 변장하고 앉아서 누가 마차를 차고 여행을 떠나는지, 누가 돈이 많은지 등등 사정을 둘러보고 있다. 마을 아가씨들은 집시 점장이들이 진짜 집시인줄 알고 재잘거리면서 점을 치러 몰려온다. 잠시후 챨스 로리모어도 등장한다. 로리모어는 궁정에서국왕에게 반대하는 편을 드는 바람에 체포될 위기에 처해 있으나 요행으로 도망쳐 나온 길이다. 노상강도 팀은 아무래도 로리모어가 첩자인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이용해서 그를 붙잡아 시장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대장 뒤발에게 데려간다. 뒤발은 전에 로리모어를 만난 일이 있다. 그리고 그의 정의로운 생각을 옳다고 믿어서 그를 좋아하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친하게 된다. 로리모어는 뒤발에게 실은 콘스탄스라는 아가씨를 사랑하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콘스탄스는 자기의 재산을 억지로 빼앗은 구두쇠 맥그루더의 조카이기 때문에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그런지 얼마후 맥그루더와 그의 두 조카들이 탄 마차가 히스를 지나 멀리 가려다가 노상강도 팀에 붙잡힌다. 두 조카 중의 한 사람은 콘스탄스이다. 가면을 쓴 뒤발은 콘스탄스에게 미뉴엣을 추자고 권한다. 그러면서 자기와 춤을 추면 콘스탄스를 포함해서 모두를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2막]. 밀든 장원이 있는 푸르른 시골마을이다.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있을 콘스탄스와 휘플 와플 경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이다. 와플 경은 대단한 부자이지만 마찬가지로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이다. 귀족 칭호가 탐이나서 남작이라도 되려고 돈을 쓰는 사람이다. 콘스탄스와 와플 경의 결혼은 콘스탄스의 구두쇠 삼촌인 맥그루더가 우겨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콘스탄스가 원하는 결혼은 아니었다. 로리모어가 은밀하게 찾아와서 콘스탄스와 만난다. 두 사람은 짖굳은 운명만을 탓할 뿐이다. 그런데 저 멀리서 군인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로리모어를 체포하기 위해서이다. 뒤발이 로리모어와 옷을 바꾸어 입고 로리모어 대신에 군인들에게 체포된다.


[3막]. 뒤발을 따르는 노상강도 팀은 결혼식 축제에 손님으로 가장해서 참석한다. 이들은 사람들이 정신이 없을 때에 몰래 장원 안으로 숨어 들어가서 훔칠만한 물건들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한편, 장원 내의 넓은 응접실에서는 뒤발이 신임하는 부하인 블라드 레드 빌이 구두쇠 맥그루더의 여동생인 베티에게 일부러 잘 보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결국 블라드 레드 빌은 베티로부터 이 집안에서 귀중품과 중요한 서류들을 감추어 둔 커다란 상자의 열쇠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서류 중에서 하나는 로리모어가 이 장원의 원래 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서류는 백지로 위임되어 있는 사면장이다. 누구든지 이름을 적어 넣으면 아무리 중한 죄를 지었다고 해도 사면을 받을수 있는 서류이다. 아마 국왕이 서명한 것으로 보인다. 블라드 레드 빌리는 서류들을 가지고 궁전으로 가서 모든 사실을 밝힌다. 그리하여 밀든 장원은 로리모어의 소유가 된다.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던 뒤발은 탈출하여 사면장에 로리모어의 이름을 적어 넣고 제출한다. 로리모어가 사면된다. 콘스탄스와 로리모어는 사랑으로 결합된다. 모두들 해피하다. 다만 휘플 와플 경만이 씁씁한 표정이다. 맥그루더 영감은 오히려 조카 사위가 지체높은 귀족이며 지주인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