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로디 음악 집중분석
모방도 창작
음악에서 Parody(패로디)라는 용어는 어떤 작품을 풍자적으로 또는 해학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의 패로디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파로디아(Parodia)에서 나온 것이다. 라틴어의 파로디아는 그리스어에서 발전한 것인데 익살적인 시 또는 노래'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익살적이라는 의미는 영어의 벌레스크(Burlesque)인데 중세로부터 패로디는 익살적이라는 의미를 상실하고 풍자적이며 조소적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되었다. 패로디는 음악적 아이디어를 모방하여 만들수도 있고 가사를 풍자적으로 고쳐서 만들 수도 있다. 오리지널 작품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거의 개작하다시피해서 누가 보면 전혀 새로운 작품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패로디이다. 대체로 패로디 음악은 오리지널 작품이 세상에 잘 알려진 경우이다. 그렇지 않고 잘 모르는 작품을 패로디 해보아야 누가 알아주지를 않기 때문에 공연한 수고만 한다. 위대한 작곡가의 독특한 작곡 스타일을 패로다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서 바흐 스타일, 하이든 스타일, 모차르트 스타일 등등으로 작곡을 하는 경우이다. 사람들은 그런 음악을 듣고 '저건 바흐가 작곡한 곡이야'라며 잘못 인식할수도 있다. 지그프리트 옥스의 '새는 날아오고'라는 작품을 보면 무려 13명 작곡가의 스타일을 패로디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독일 동요인 '새는 날아오고'(Kommt ein Vogel geflogen)를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쇼팽,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베르디, 슈만, 브람스, 마이에르베르, 구노, 바그너의 스타일로 패로디하였다. 그렇다고 풍자를 하거나 익살스럽게 만들 의도는 전혀 없으며 단순히 여러 작곡가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듯 누구나 쉽게 알아볼수 있는 특정 작곡가의 고유 스타일로 패로디를 하면 재미나게 들을수 있다.
그런가하면 오리지널 작품의 한 부분을 떼어와서 자기의 작품에 붙이는 것도 패로디라고 할수 있다. 그러면 왜 패로디를 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이유는 패로디도 하나의 작곡 기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패로디 음악도 하나의 별도 장르가 될수 있다. 또 하나 이유는 잘 알려진 멜로디를 패로디함으로서 자기의 작품에 대한 친근감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자기의 작품도 덩달아서 유명해 질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의도적으로 코믹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여기에다가 풍자적인 또는 비웃는 듯한 내용을 추가하면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속으로 미워하는 작곡가의 작품을 기분좋게 조롱할수가 있다.
패로디 음악은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16세기라고 한다. 당시에는 교회음악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미사곡 중에서 패로디 음악이 더러 모습을 보였다. 20세기에는 민요를 팝송에 패로디하는 작업들이 심심찮게 이루어졌다. 잘 아는 민요가 팝송으로 나오기 때문에 친밀감을 주었다. 또한 신고전주의 작품들의 경우에는 초기 스타일을 패로디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기야 신고전주의(네오 클래시시즘)은 고전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초기의 작품 스타일을 인용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실 따지고 보면 패로디 음악은 바로크의 바흐로부터 현대의 손드하임까지 누구나 한번 이상은 시도해 본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익살적인 시나 노래를 중세에 와서 교회음악에 인용한 경우로 처음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1587년 독일 작곡가인 야곱 페(Jakob Paix: 1556-1623)의 미사곡에서였다. 누구의 미사곡을 패로디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야콥 페의 새로운 미사곡 악보의 표지에는 라틴어로 missa ad imitationem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의 미사곡을 모방한 미사곡이란 뜻이다. 15-16세기에 유럽의 음악에서 고대 그리스의 파로디아 스타일을 흉내내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특히 독일에서 그런 인본주의 사상이 강했다. 그렇다고 파로디아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고 그저 편의상 필요할 때만 사용했다. 패로디 테크니크라는 용어가 정식으로 사용되기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였다. 특히 1913년 독일의 페터 바그너가 '미사곡의 역사'(Geschichte der Messe)라는 책을 펴내고부터였다. 이 책에서는 미사곡을 본래의 멜로디는 크게 수정하지 않고 가사만 바꾸어서 부를수도 있다는 주장이 펼쳐졌다. 사실상 이미 만들어져 있는 다성음악에서 음악은 거의 그대로 놓아두고 가사만 바꾸는 이름바 콘트라팍툼(Contrafactum) 테크닉은 14세기에서 예를 볼수 있었다. 그러다가 15세기에 들어와서 작곡가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음악에 또 하나의 성부를 포함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것은 곧 오늘날 말하는 패로디 음악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는 야콥 오브레헤트()의 Missa Fortuna desperata와 Missa Rosa playsante이다. 16세기를 풍미했던 작곡가들 중에서 빅토리아, 라수스, 팔레스트리나 등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음악을 가져다가 교회음악이나 세속음악에 사용했다.
바로크 시기가 시작되자 작곡가들 중에는 그저 재미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패로디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생겼다. 예를 들어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그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 이미 만들어 놓았던 세 편의 칸타타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음악의 패션이 달라지자 과거의 선법(旋法: Modal)에 의해서 만들어진 멜로디를 다시 사용하는 경향이 줄어들었다. 17세기 중반부터 작곡가들은 자기 스스로의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였으며 다른 사람의 음악을 가져다가 자기의 작품에 재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패로디 음악은 수면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20세기가 아니더라도 간혹 패로디 음악을 선보인 작곡가들도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농부 칸타타'(Peasant Cantata)는 벌레스크 칸타타라고도 부른다. 내용이 해학적이고 익살스런 면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다 카포(da capo) 아리아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바흐는 재미있으라고 다 카포 스타일의 아리아를 사용했다. 바흐의 영향 때문인지 그 후의 작곡가들은 다른 사람의 음악을 빌려다가 패로디 음악을 만들 때에는 우선 익살스럽고 풍자스러운 것을 염두에 두었다. 18세기에 모차르트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이 만든 별로 뛰어나지 못한 멜로디를 패로디하여 익살스런 음악을 만들었다. '뮤지컬 조크'(디베르티멘토 K522)이다. 그로부터 1세기 지난 때에 카미유 생상스가 '동물의 사육제'(Le carnaval des animaux)를 뮤지컬 조크로서 작곡했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잘 들어보면 몇 곡은 잘 알려진 멜로디를 템포와 악기를 바꾸어 연주토록 하여 패로디한 것을 알수 있다. 바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1943)에는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 교향곡'의 주제가 나온다.
17세기 바흐 가족의 음악회
무대음악에서도 패로디를 자주 발견할수 있다. 18세기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에는 대체로 당시에 유행하던 인기 멜로디나 전통 민요의 멜로디를 풍자적으로 만들어 넣었다. 그것 역시 음악적 패로디이다. 모차르트는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에 오페라 세리아의 아리아들을 사용하였다. 그것도 역시 패로디이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나오는 음악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여년 후부터 비엔나에서 여러 음악작품들의 패로디로 사용되었다. 특히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듀엣 멜로디는 이런저런 가사를 새로 붙여서 다른 목적으로 상당히 사용되었다. 바그너의 음악을 패로디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서 포레의 '바이로이트의 추억'(Souvenirs de Bayreuth)은 바그너의 음악을 패로디한 경우이다. 앙드레 메사저는 링 사이클의 주제들을 댄스 리듬으로 바꾸는 패로디를 했다. 영국계 캐나다의 가수이며 코메디안인 안나 러셀(Anna Russel)은 '링 입문'(Introduction to the Ring)이라는 음악에서 링 사이클의 주요 음악과 가사를 패로디했다. 자크 오펜바흐는 패로디를 자주 이용했다. 주로 글룩, 도니체티, 마이에르베르의 음악들을 패로디했다. 그런데 오펜바흐의 음악을 나중에 생상스와 손드하임이 패로디하였으니 그것도 패로디이다. 설리반은 사보이 오페라에서 헨델, 벨리니, 모차르트, 베르디 등등의 잘 알려진 멜로디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서 패로디했다.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시기의 벌레스크와 그후의 판토마임에서 패로디가 유행했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듀엣은 훗날 많은 사람들이 가사를 바꾸어 패로디로 불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그동안 잠잠했던 패로디 작곡이 리바이발되었다. 그런데 익살과 풍자를 목적으로 했다기 보다는 순수한 음악적 입장에서의 패로디가 많았다. 이를 Serious parody라고 불렀다. 순수 패로디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프로코피에프의 '고전 교향곡'(Classical Symphony)은 하이든 스타일을 패로디한 것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 작품들인 The Fairy Kiss와 Pulcinella도 고전음악을 패로디한 것이다. 20세기 신고전주의 패로디는 주로 16세기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대중음악에서도 여러 방법으로 패로디를 사용하였다. 주로 옛날 음악을 패로디하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을 패로디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주 스타일 그리고 심지어는 연주자를 패로디한 경우도 많았다. 20세기 이전에는 주로 찬송가에 세속적인 가사를 붙여서 패로디한 경우가 많았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행진곡인 John Brown's Body라는 노래는 옛날 찬송가의 곡조를 사용한 것이다.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 운동에 앞장선 캡틴 존 브라운을 추도하기 위한 노래로서 John Brown's Body lies a mounding in the grave, But his soul goes marching on...이라는 가사였다. 그것을 Mine eyes have seen the glory of the coming of the Lord라는 가사로 바꾸었다. 우리가 잘 아는 전송가(戰頌歌)이다. 그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범한 동포여'라는 가사로 바꾸었다. 이같은 관례는 1차 대전 중에서 계속되었다.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부르는 노래의 대부분은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의 곡조에 가사만 바꾼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서 When this lousy war is over 라는 군인 노래는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의 곡조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We are Fred Karno's Army는 The Church's one Foundation(교회의 참된 터는)의 곡조를 사용한 것이다.
존 브라운
민요를 현대의 팝송의 곡조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민요를 조금 수정해서 부르기도 했다. 사실 이런 관례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밥 딜런(Bob Dylon)의 히트 곡인 Blowin' in the Wind는 옛날 노예들의 노래인 No more auction block for me 의 곡조를 사용한 것이다. 1940년대에 스파이크 존스(Spike Jones)와 그의 시티 슬리커스(City Slickers)는 팝송을 자기 스타일로 바꾸어 불러서 인기를 끌었다. 가사를 풍자적으로 바꾸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거친 사운드 효과를 가미하였다. 1957년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Jamaica는 칼립소 리듬을 패로디한 작품이다. 1959년의 Little Mary Sunshine은 옛날 스타일의 오페레타를 풍자한 작품이다. 음악 풍자가인 피터 쉬켈르(Peter Schickele)는 대단히 새로운 패로디인 P.D.Q. Bach를 만들어냈다.
피터 쉬켈레의 P.D.Q.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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