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컬 뮤직 팟푸리/클래시컬 뮤직 팟푸리

정말로 슬픈 음악

정준극 2017. 9. 3. 09:10

정말로 슬픈 음악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게 만드는 음악 10선


클래시컬 음악 중에서 어떤 음악이 가장 슬픈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한 음악일까? 한 두개가 아니지만 슬픔에 넘쳐있는, 슬픈 마음을 갖게 하는, 슬픔을 주제로 삼은 클래시컬 음악 10선을 소개한다. 다만, 선발은 전혀 주관적임을 첨부한다.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Komm, süsser Tod). BWV 478

'고전음악의 아버지'로서 존경받고 있는 바흐가 죽음을 찬양하는 듯한 노래를 말들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사실이다.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오라 축복받은 안식이여'(Kommt, susser Tod, kommt selge Ruh)라는 노래이다. 아주 슬픈 멜로디의 노래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바흐의 깊은 신앙심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굳이 바흐를 염세주의자 또는 자살미화자라고 비난할수는 없다. 이 노래에 담겨 있는 진짜 의미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러 갈수 있도록 죽음이여 어서 오라'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서 천국을 바라본다는 순교자적인 신앙을 표현한 노래이다. 참으로 신실한 신앙인이 아니면 고백하기 어려운 얘기이다. 이 곡은 솔로와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노래이다. 극도로 단순한 반주를 택함으로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을 더욱 진솔하게 강조하였다. 바흐가 1736년에 게오르그 크리스티안 셰멜리(Georg Christian Schemelli)의 '음악집'(Musikalische Gesangbuch)에 넣기 위해 작곡한 69곡의 노래중의 하나이다. 가사는 누가 썼는지 분명치 않다. 이 노래의 멜로디는 단순하면서도 감동적이기 때문에 훗날 여러 사람들이 편곡하여 발표했다. 막스 레거(Max Reger),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Leopold Stokovsky), 쿠르트 니슈테트(Kurt Nystedt) 등이 편곡했다. 바흐의 Kommt, süsser Tod를 인용하여서 나온 예술작품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작가 볼프 하스(Wolf Haas)의 소설 Kommt, süsser Tod가 그것이다. 이 소설은 같은 제목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또한 영화 The End of Evangelion에서 사운드트랙으로도 사용되었다.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교회에 세워진 바흐 기념상. 바흐는 이 교회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수녀 안젤리카'(Suor Angelica)에서 '엄마도 없는데'(Senza mamma)

말못할 한많은 사연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떨어져서 7년이나 지내다가 어느날 그 아들이 이미 2년 전에 죽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얼마나 가슴이 메이는듯 슬픔겠는가? 더구나 어린 아들이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었다면 옆에 있지 못했던 엄마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그런 엄마가 있다. 그리고 그런 엄마가 할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기도 어서 죽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이미 가서 있는 아들을 만나야 생각뿐일 것이다. 그런 간절한 심정을 그린 슬픈 노래가 있다. 푸치니의 '수녀 안젤리카'에서 수녀 안젤리카의 노래 '엄마도 없는데'(센자 마마)이다. '수녀 안젤리카'는 푸치니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를 위해 작곡한 3부작 중에서 두번째의 단막이다. 1918년 12월 14일에 메트로폴리탄에서 초연되었다. 3부작의 다른 두 작품은 '외투'(Il tabarro)와 '자니 스키키'(Gianni Schicchi)이다. '수녀 안젤리카'는 비록 단막이지만 '엄마도 없는데'(Senza mamma)로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수녀가 된 엄마 안젤리카가 떨어져 지내는 어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가련하고 불쌍해서 눈물로서 자기의 심정을 표현하는 노래이다. 가사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앞부분만 소개한다. Senza mamma/o bimbo, tu sei morto!/Le tue labbra senza i baci niei/Scoloriron fredde, fredde...라는 가사이다. '엄마도 없이 오 아가야 네가 죽다니/엄마가 네 입술에 입맞춤을 하려고 해도/네 입술은 이미 파리하게 차가워졌겠구나/너의 작은 두 손은 나를 만져보지도 못하고 포개어져 있겠지/이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지 못한채 죽었구나/너는 이제 하늘의 천사가 되었을 것이야/그러면 지금도 엄마를 볼수 있단다/그리고 창공을 가로 질러서 아래로 내려 올수도 있단다/내려와서 내 주위에서 날개를 파닥여서 내가 너를 느끼게 해다오...


'수녀 안젤리카'에서 죽은 아들을 생각하며 죽어가는 안젤리카. 패트리시아 라세트


○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Rigoletto)에서 '내가 거짓말을 했어요(V'ho ingannato)

하나밖에 없는 딸이 자기의 실수로 죽게 되었고 그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할까? 한없는 회한만이 나타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그 딸은 어머니도 없이 혼자 키운 딸이다. 그리고 딸을 혼자 키운 아버지는 불구자(꼽추)에 직업도 천박한 공작의 비위나 맞추며 살아야 하는 어릿광대이다. 딸은 어떠한가?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착한 딸이 또 어디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제 사랑에 눈을 떠서 자기에게 야욕을 품은 공작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만 성실한 대학생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희대의 카사노바인 공작은 자기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리골레토의 딸 질다를 강제로 납치하여 다른 여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멋대로 야욕을 채운다. 딸이 씻을수 없는 치욕을 당한 것을 안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복수의 불길만이 타오를 것이다. 그리하여 리골레토는 자객 스파라푸칠레에게 부탁해서 공작을 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자객의 여동생인 맛달레나는 공작을 한번 보고 좋아하게된다. 그래서 자객인 오빠에게 부탁해서 주막에 처음 나타나는 사람을 대신 죽이도록 한다. 그 얘기를 리골레토의 딸 질다가 듣는다. 질다는 아직도 대학생으로 믿고 있는 공작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칼을 대신 맞는다. 자객은 남자 복장을 한 질다를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자루에 넣어 보트에 실은 후 강물에 버리기로 한다. 보트에 실린 자루속의 사람이 공작이라고 믿은 리골레토는 자루를 강물에 버리려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열어보니 다름아닌 사랑하는 딸 질다이다. 두 사람이 서로 비통한 심정으로 부르는 노래가 V'ho ingannato이다. 가슴이 찢어질듯 비통한 노래이다. 함께 슬퍼할수 밖에 없는 노래이다. 가사를 잠시 소개한다.


(질다) V'ho ingammato...Colpevole fui...L'amai troppo...ora muoio per lui!(내가 속였어요...내 잘못이어요...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어요...그 사람을 위해 죽기로 했어요)

(리골레토) (자기 자신에게) Dio tremendo! Ella stessa fu colta/dallo stral di mia giusta vendetta!(하나님! 아마 제 딸이 갑자기 벼락을 맞았나 봅니다. 저는 합당한 복수를 한다고 했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질다에게) Angiol caro! mi guarda, m'ascolta! Parla, parlami, figlia diletta(사랑스런 나의 천사, 나를 바라보아라. 내 말을 들어보아. 말좀 해보아라, 나에게 말을 해다오, 사랑하는 딸아)

(질다) Ah, ch'io taccia! a me, a lui perdonate/Benedite alla figlia, o mio padre...Lassu in cielo, vicina alla madre/in eterno per voi preghero(아무 말도 못하겠어요. 용서해 주세요. 그 사람도. 이 딸을 축복해 주세요, 오 아버지. 저 높은 하늘에서, 엄마의 곁에서, 아버지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겠어요)

(리골레토) Non morire, mio tesoro, pietade! Mia colomba, lasciami non dei!(죽지 말아라, 나의 보물, 불쌍히 여기소서. 오 나의 비둘기, 나를 떠나서는 안된다)

(질다) Lassu in cielo, ecc.(저 높은 하늘에서...)

(리골레토) Oh, mia figlia! No, lasciami non dei, non morir/Se t'involi, qui sol rimarrei. Non morire, o ch'io teco morro!(오 내 딸아, 안돼, 니를 떠나면 안돼, 죽지 마라, 네가 가버리면, 나는 혼자란다. 죽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네 곁에서 나도 죽으련다)

(질다) Non piu...a lui perdonate. Mio padre...Addio! Lassu in ciel. ecc.(이제 그만...그 사람을 용서해 주세요..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저 높은 하늘에서...)

(리골레토) Oh mia figlia! Oh miia Gilda! No. lasciarmi non dei, non morir!(오 내 딸 나의 질다야. 안돼. 나를 떠나면 안돼. 죽지 마라) (질다가 마침내 죽는다) Mia Gilda..E morir!...La maledizione!(나의 질다. 죽었구나...이 저주)(리골레토는 머리를 쥐어 뜯다가 정신을 잃은 듯 질다의 몸 위에 쓰러진다) 


오페라 '리골레토'의 피날레 장면. 리골레토가 사랑하는 딸 질다를 부등켜 안고 절규하고 있다.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무대


○  에드워드 엘가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Serenade for Strings)

영국의 에드워드 엘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고 만족스러운 작곡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절망의 시기, 혼란의 시기가 있었다. 과연 작곡가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섰던 때도 있었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그가 작곡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나서 처음으로 완성한 곡이다. 대체로 초창기의 작품에 대하여는 만족하지 않는 것이 작곡가들의 일반적인 기질인데 엘가는 이 곡에 대하여 나중에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완벽한 작품이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짧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악장에는 알레그로 피아체볼레, 라르게토, 알레그레토라는 템포 지시가 있다. 가운데의 라르게토가 전체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성숙한 음악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가장 자주 연주되는 파트이다. 2악장의 라르게토는 우수에 넘친듯한 인상을 준다. 슬픔 속에 있는 사람이 들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는 음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을 위한 세레나데' 중에서 라르게토를 슬픔의 악장이라고 불렀다. 과연 그러한지는 직접 들어보아야 알 수 있다. 엘가는 이 곡을 오르간 제작지이며 친구인 에드워드 윈필드(Edward Winfield)에게 헌정했다. 공식적인 초연은 1896년 7월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였다. [사족] '현을 위한 세레나데'라는 제목의 음악은 차이코브스키의 것도 있고 드보르작의 것도 있다. 차이코브스키의 것은 C 장조 Op 48로서 1880년에 완성되었고 드보르작의 것은 Op 22로서 1875년에 완성되었다. 모두가 엘가의 것보다 앞선 것들이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 삽화. 세레나데는 반드시 사랑하는 여인의 집 발코니 아래에서 부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스타일의 유연한 작품들을 말한다. 


○  헨리크 고레츠키의 '슬픈 노래의 교향곡'(Symphony of Sorrowful Songs)

헨리크 고레츠키(Henryk Gorecki: 1933-2010)는 전후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그는 폴란드 아방 갸르드 음악의 리더였다. 그는 폴란드 민속음악, 특히 폴란드 서남부 실레지아 지방의 민속음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조사연구하여 그의 작품에 상당히 반영하였다. 그는 특히 억압받고 있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작품으로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교향곡 3번 '슬픈 노래의 교향곡'은 1976년에 완성한 것이다.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프라노 솔로가 각 악장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도록 되어 있다. 초연은 1977년 로얀(Royan)국제음악제에서 였다. 로얀은 프랑스 서남부 해안지대에 있는 도시이다. 1악장은 15세기 폴란드의 교회에서 부르던 애가(哀歌: Lament)로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Mary, Mother of Jesus)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는 아들 예수를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표현한 내용이다. 2악장은 2차 대전중 폴란드의 차코파네에 있는 게슈타포 감옥의 벽에 어떤 소녀가 어머니를 보고싶어서 손톱으로 긁어서 쓴 메시지를 내용으로 삼은 것이다. 3악장은 실레지아 민속 노래에 바탕을 둔 음악이다. 1919-1921년의 실레지아봉기 때에 독일인들에게 무참하게 살해 당한 아들의 시신을 찾아 헤매는 어머니의 노래이다. 1악장과 3악장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허탈라고 비통한 심정을 그린 것이라면 가운데의 2악장은 어머니와 생이별을 해야 했던 아이의 허탈하고 비통한 심정을 그린 것이다.


폴란드의 헨리크 고레츠키의교향곡 3번 '슬픈 노래의 교향곡'의 음반 커버. 어떤 소녀가 벽에 무어라고 글을 쓰는 모습이 들어 있다.


2악장을 만든 배경은 이러하다. 고레츠키는 1973년 말에 차코파네(Zakopane) 마을에 있는 나치 게슈타포 감옥의 어떤 방 벽에 손톱으로 긁어서 쓴 글씨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코파네는 폴란드의 남쪽 타트라(Tatra) 산맥의 자락에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감옥의 벽에는 많은 글들이 적혀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알고보니 당시 18세이던 헬레나라는 이름의 소녀가 써놓은 것이었다. 폴란드 산간마을에서 살았던 헬레나는 전쟁이 끝나기 얼마 전인 1944년 9월 25일에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차코파네에 수감되었던 것이다. 벽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오 엄마 울지 말아요 안돼요 하늘에 계신 흠없으신 성모처럼 엄마도 언제나 나를 도와주어요'(O Mamo, nie placz, nie. Niebios Przexzysta Krolowo, Ty sawsze wspieraj mnie). 나중에 고레츠키는 이 글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회상하면서 '복수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복수심에 불타서 대단한 각오들을 말합니다. 아마 나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야 한다면 남들처럼 복수를 외칠것입니다. 그런데 차코파네의 감방 벽에 적혀있는 글은 달랐습니다. 사죄의 글이었습니다. 남들을 원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위로를 구하였던 것이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글이었지만 너무나 의미있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고레츠키는 이어서 '감옥의 벽을 보면 '나는 무고하다' '살인자들' '처형자들' '풀어다오' '나를 구원해 주어야 합니다' 등등의 글이 적혀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정말로 갇혀 있는 사람들의 외침을 듣는 듯 합니다. 어른들이면 이런 글들을 남겼겠지요. 그런데 헬레나는 달랐습니다. 아마 아직도 어린티가 남아 있는 18세의 소녀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헬레나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울지도 않았습니다. 복수를 위해서 소리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자기의 어머니만을 생각했습니다. 헬레나는 진정으로 절망의 심정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헬레나의 글은 무언가 특별했습니다. 정말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했을 대에 차코파네에 있던 게슈타포 감옥 건물. 고레츠키는 이 감옥의 어떤 감방의 벽에 적혀 있는 글을 보고 감동하여서 2악장을 작곡했다.


3악장에도 그럴만한 에피소드가 있다. 고레츠키는 1973년에 폴란드의 민속학자인 아돌프 디가츠(Adolf Dygacz)를 만났다. 새로운 작품에 사용할 폴란드의 통적인 멜로디를 찾을수 있을까 해서였다. 디가츠는 그가 폴란드의 남서부 실레지아 지방에서 채취하고 녹음한 네개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고레츠키는 그 중에서 '사랑하는 내 아들, 그는 어디로 갔나'라는 민요에 감명을 받았다. 독일의 통치에 항거하여 일으킨 실레지아 봉기(Aufstände in Oberschlesien: 1919-21) 때에 전쟁터에서 실종된 아들을 찾지 못해서 비통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노래였다. 사실 고레츠키는 이 노래를 1960년인가에 한번 들은 일이 있다. 하지만 그 때에는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민속학자인 디가츠가 새롭게 정리한 가사는 고레츠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새로운 가사는 절망이나 슬픔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비통한 탄식에 대한 것일 뿐이었다. 고레츠키는 그 노래를 바탕으로 '슬픈 노래의 교향곡' 3악장을 만들었다. 


○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La Bohéme)에서 '모두 떠났나요'(Sono andati)

파리의 라틴구역에 있는 어느 허룸한 다락방에서 예술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시인 로돌포는 우연히 옆 방에 사는 미미라는 아가씨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함께 지낸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한 돈은 없고 건강은 나빠지게 되자 두 사람은 헤어지기로 한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로돌포는 다시 친구들과 함게 라틴구역의 다락방에서 지낸다. 그때 허약해 질대로 허약해진 미미가 로돌포를 찾아온다. 미미는 폐렴이 지나쳐서 이제 얼마 살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로돌포를 만나러 온 것이다. 그제서야 로돌포도 자기의 진정한 사랑은 미미라는 것을 깨닫고 한없는 후회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미미는 로돌포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미미와 로돌포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부르는 듀엣이 Sono andati이다. 앞소절의 이탈리아어 가사와 전체 가사를 번역한 것을 소개한다. 너무나 애절한 사랑이었기에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시울을 닦지 않을수 없는 노래이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사실 별것도 아닌 일반 연인들의 그저 그런 대화일 뿐이다.


(Mimì) Sono andati? Fingevo di dormire/perché volli con te sola restare/Ho tante cose che ti voglio dire/o una sola, ma grande come il mare/come il mare profonda ed infinita.../Sei il mio amore e tutta la mia vita!
(Rodolfo) Ah, Mimì, mia bella Mimì!
(Mimì) Son bella ancora?
(Rodolfo) Bella come un'aurora.
(Mimì) Hai sbagliato il raffronto/Volevi dir: bella come un tramonto/"Mi chiamano Mimì, Mi chiamano Mimì/il perché non so...".
(Rodolfo) Tornò al nido la rondine e cinguetta.
(Mimì) La mia cuffietta, la mia cuffietta!/Ah! Te lo rammenti quando sono/entrata la prima volta, là?......


(미미) 모두들 갔나요? 잠 들려고 했어나봐요/당신과 단 둘이서만 있고 싶었어요/할 얘기가 너무 많답니다/그렇지 않으면 한마디 뿐일지도 모르지요/하지만 저 바다처럼 넓은 이야기지요/무한히 깊은 바다처럼 말입니다/당신은 내 사랑 내 삶의 전부예요

(로돌포) 오 미미 아름다운 미미

(미미) 아직도 내가 예쁜가요?

(로돌포) 떠오르는 해처럼 사랑스럽다오
(미미) 당신의 그 말을 틀렸어요/지는 해 처럼 사랑스럽다는 뜻이겠지요/사람들은 나를 미미라고 불러요/왜 그런지는 나도 몰라요
(로돌포) 제비가 돌아와서 둥지를 틀고 노래한다오(로돌포는 간직했던 미미의 모자를 보여준다)

(미미) 내 모자, 내 작은 모자/아 내가 처음으로 이 방에 들어섰을 때가 생각나나요?
(로돌포) 물론 기억한다오/촛불이 꺼졌지요/당신은 속이 상해서 어쩔 줄을 몰랐지요/그리고 열쇠를 잃었고/당신은 주변을 더듬어 보며 찾기 시작했지요/나도 찾았어요

(미미) 이 잘생긴 젊은 양반아/이젠 말할수 있어요/당신은 열쇠를 금방 찾았지요/내가 운명을 도와주고 있었나봐요


'라 보엠'의 피날레 장면. 미미가 마침내 눈을 감자 슬픔에 오열하는 로돌포. 2014 메트로폴리탄


○  카미유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Samson et Dalila)에서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Mon coeur s'ouvre a ta voix)

이스라엘의 사사(판관)인 삼손은 하나님으로부터 힘의 은총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블레셋 사람들을 징벌하는 도구로서의 사역을 한다. 블레셋 총독은 델릴라라고 하는 요염한 여인으로 하여금 삼손의 마음을 빼앗아서 절대적인 힘의 비밀을 알아내도록 한다. 델릴라가 삼손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가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이다. 삼손의 음성이 얼마나 매혹적이었으면 델릴라의 마음을 열게 만들었는지 알수 없지만 이 노래가 슬픈 것은 사랑을 빙자해서 결국은 하나님의 사사를 한없는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트렸기 때문이다. 첫부분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Mon coeur s'ouvre a ta voix comme s'ouvrent les fleurs/Au baiser de l'aurore!/Mais o mon vien aime, pour mieux secher mes pleurs/Que ta voix parle encore!/Dis-moi qu'a Dalila tu reiens pour jamais!/Redis a ma tendresse/Les serments d'autrefois, ces sements que j'aimais!.....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려요/새벽의 입맞춤에 꽃송이가 열리듯/사랑하는 그대여/나의 눈물을 그치게 하려거든 다시한번 그대 음성을 들려주오/이 델릴라 곁에 영원히 돌아와 있겠다고 말해주어요/다시 말해주어요/지난날 내가 좋아했던 그 약속을/아 내게 말해주어요/나를 황홀함 속에 잠기게 해주어요....) 

 

'삼손과 델릴라'에서 삼손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힘의 비밀을 얻어내고자 하는 델릴라(다나 베스 밀러)


○  프레데릭 쇼팽의 녹턴(야상곡)

밤은 아무래도 어둡고 적막하기 때문에 고독을 느낄수 있고 비애를 느낄수 있다. 밤의 분위기를 표현한 음악이 녹턴(Nocturn: 야상곡)이다. 쇼팽은 1827년부터 1846년까지 모두 21곡의 녹턴을 작곡했다. 하나같이 주옥과 같은 작품이지만 그 안에는 남모르는 슬픔이 담겨 있다. 쓸쓸한 가을 밤에 녹턴을 듣는다면 왜 그런지 비장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쇼팽의 녹턴을 슬픈 음악에 포함한 것이다. 쇼팽의 녹턴은 20세기 낭만주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던져 주었다. 쇼팽 이후에 수많은 작곡가들이 녹턴을 작곡했다. 대표적으로는 클로드 드비시, 가브리엘 포레, 미하일 글링카, 알렉산더 스크리아빈, 에릭 사티 등이다. 녹턴을 쇼팽이 처음 발전시킨 것은 아니다. 18세기에 처음 나온 음악 스타일이었다. 원래는 가톨릭의 미사에서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었을 때 부르는 노래가 녹턴이었으나 그것이 발전되어서 저녁 모임이나 연회와 같은 행사에서 앙상블이 연주하는 음악을 녹턴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의 노투르노 D 장조 K 286과 세레나타 노투르나 K 239 를 들수 있다. 피아노 연주의 녹턴을 처음 발전시킨 사람은 아일랜드 출신의 존 필드(John Field: 1782-1837)이었다. 피아노 녹턴의 개척자이다. 그후 쇼팽은 가장 뛰어난 녹턴 작곡가였다. 그의 손을 통해서 녹턴은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갖게 되었다.


쇼팽이 어떤 저녁 사교 모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그림.


○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

아르보 패르트(Arvo Part: 1935-)는 바릍 3국 중의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현대음악 작곡가이다. 주로 종교음악을 작곡했지만 스타일에 있어서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였다. 그렇다고 고전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레고리안 챤트 스타일을 합창곡에 인용하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스타일을 틴티나불라(tintinnabula)라고 부른다. 아르보 패르트는 에스토니아가 소련의 입김을 받는 공산 정권이 되자 공산치하에서는 창작활동을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간다. '거울 속의 거울'은 패르트가 오스트리아로 이민을 가기 직전인 1978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역시 미니멀리즘 작품이다. 패르트는 원래 이 곡을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곡으로 작곡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곡은 너무나 유명해서 바이올린 대신에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클라리넷, 혼, 플루트 심지어는 타악기로서 연주하고 있다. 거울 앞에서 거울을 들고 있으면 거울 속에서 무한대의 이미지가 펼쳐 보인다. '거울 속의 거울'은 단순한 것으로서 무한대를 창조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탕음을 기본으로해서 3화음이 연속해서 나오는 것은 비록 조작되었지만 무한대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무한대는 거울 속에서만 비춰지는 것이고 실은 정말로 하찮은 미약한 존재가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곡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이 어째서 가장 슬픈 음악이 되었는지는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거울 속의 거울'은 수많은 영화음악으로 인용되었다. 가장 최근의 것은 2015년에 프랑스의 에마뉘엘르 베르코가 감독한 La tete haute에서이다.


'거울 속의 거울'에서 보이는 나 자신의 존재는 무엇인가?

                        

○  뢰최 세레스의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세상에 자살 충동을 일으키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면 곤란한 일이지만 헝가리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뢰체 세레스(Rezso Seress: 1889-1968: 세레스 뢰체)의 '글루미 선데이'(헝가리어로는 Szomoru Vasarnap)는 작곡자로서는 참으로 원하지도 않았던 일이겠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곡을 듣고는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자살을 감행한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아무튼 세레스의 '글루미 선데이'가 나온 후에 세계적으로 자살율이 증가했다는 것은 유념해 볼 사항이다. 그래서 '글루미 선데이'를 죽음을 부르는 노래라고 부른다. 세레스는 1차 대전도 겪었고 2차 대전도 겪었다. 2차 대전에 즈음해서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서 죽을 고비를 한두번 넘긴 것이 아니었다. '글루미 선데이'는 세레스가 나치의 직접적인 핍박을 받기 전에 파리에 잠시 체류할 때인 1933년에 작곡한 것이다. 1933년이라고 하면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완전히 잡은 해이다. 1930년대는 역사적으로 절망과 고통의 시기였다. 1차 대전을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유럽에 전운이 감돌고 있었던 때였다.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세레스 뢰최와 그가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 악보 배경


1930년대는 전체주의 독재정치가 시작되던 때였다. 히틀러가 그랬고 무솔리니가 그랬다. 또한 세계적으로 경제공황이 뒤따르던 시기였다. 수백만명의 실업자들이 거리를 헤매던 시기였다. 또한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유럽의 유태인들에게는 재앙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세레스가 처음 작곡했을 때의 제목은 '세상은 종말이다'(The world is ending: Nege a vilagnak)였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절망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 노래는 각광을 받지 못했다. 얼마 후에 헝가리의 시인인 라즐로 자보르(Laszlo Javor)가 이 노래에 또 다른 가사를 붙이고 제목을 '슬픈 일요일'(Sad Sunday: Szomoru vasarnap)이라고 붙였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자기도 따라서 죽고 싶다는 심정을 표현한 내용이다. 이 가사에 의한 노래가 아주 인기를 끌어서 처음 만들어진 가사는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후로 이 노래는 영어로 '글루미 선데이'라는 제목으로 전세계에 보급되었다. '글루미 선데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1941년에 영국의 빌리 홀리데이가 이 노래를 자기 스타일로 고쳐서 음반에 담아내고서였다. 음반의 제목은 '헝가리 자살 노래'(Hungarian Suicide Song)이었다. 그로부터 세계 각국의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나름대로 가다듬어서 불렀고 또한 음반으로 내 놓았다. 아무튼 '글루미 선데이'가 되었던 '슬픈 일요일'이 되었건 이 노래는 절망에 놓여 있는 젊은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어서 심지어는 여러 젊은이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서 자살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과연 슬픈 노래이다. 한때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괴테의 '젊은 베르데르의 슬픔'을 읽고 나서 베르테르를 쫓아서 빨간 조끼를 입고 자살하는 풍조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자살을 부추키는 노래가 나왔으니 세상이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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