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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스가 뭐길래?

정준극 2017. 9. 24. 05:54

로망스가 뭐길래?

로망스, 로맨스, 로만사, 로만체....로망스 음악 총정리

연애음악과는 관계가 별로 없는 서정적인 기악곡

리트와 오페라 아리아에도 로망스

 

세상의 수많은 음악 중에서 아름답고 사랑스럽지 않은 음악이 어디 있으랴마는 어떤 작품에는 특별히 작곡가들이 서정적이고 로맨틱하다고 생각하여서 로망스라는 말을 붙인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로망스’(또는 로만체)이다. 누군가 가을을 로망스의 계절이라고 불렀다. 연인, 로맨스, 낙엽, 이별... 이런 단어들이 낯설지 않게 들리는 계절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나저나 로망스라고 하면 당연히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의미 말고도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로망스 또는 로만이라는 단어는 사실 시 또는 소설을 말한다. 하기야 사랑 이야기가 없는 소설이라면 심심할 것이니 어차피 로망스와 사랑은 연관이 안 될수 없는 것 같다. 로망스라는 단어는 음악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주로 서정적인 기악곡을 말한다. 로망스는 나라에 따라서 로만사, 로만차, 로맨스 또는 로만체라고도 불린다. 원래 로망스라는 단어는 스페인의 로만사(romanza)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 정열의 나라라고 하는 스페인에서는 이야기체의 발라드를 로만사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삼은 발라드를 로만사라고 불렀으나 나중에는 폭을 넓혀서 모험담이나 성공담 같은 것도 로만사라고 불렀다. 그것이 18세기에 다른 나라로 번져서 노래뿐만이 아니라 기악곡에서도 서정적인 작품이면 로망스라고 불렀다. 가을과 서정적인 음악! 어딘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클래시컬 음악에 나타나 있는 로망스 음악들을 조용하게 들어보는 것도 가을의 낭만일 것이다. 그런 여유가 있다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각박한 세상에서 축복이라고 하면 축복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로망스 좋아하네! 아니, 로망스가 밥 먹여 주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작곡 중인 베토벤. 고집세고 신경질만 부릴 것 같은 베토벤인데 어떻게 해서 로망스와 같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음악에서 로망스라고 하면 우선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아름다운 베토벤의 로망스가 생각날 것이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음악이다. 베토벤의 생긴 모습만 보면 세상 고민은 모두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감탄하게 된다. 우리가 베토벤의 로망스라고 하는 곡은 실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2F장조 Op 50’이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28세 때인 1798년에 작곡한 것이다. 로망스 2번이 있으니 1번도 있을 것이다. 1번은 Op 40으로 G장조이다. 1802년에 작곡한 것이다. 나중에 작곡한 것을 1번이라고 하는 것은 1번의 악보가 2번보다 먼저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을 위한 두 로망스는 베토벤이 월광 소나타와 교향곡 2번을 작곡하는 중에 시간을 내서 완성한 것이다. 귀가 들리지 않기 시작하던 때에 작곡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 이렇게 감미롭고 순수한 멜로디의 작품을 썼다는 것은 아마도 잠시나마 휴식이 필요했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1번과 2번은 다른 모든 작품에 비해서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다. 템포 지시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작품 같으면 아다지오니 알레그로니 등등의 템포 지시가 표시되어 있는데 로망스에는 그런 것이 없다. 짐작컨대 베토벤은 연주자가 알아서 템포를 정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 로망스라는 단어가 붙은 작품들이 또 있다. ‘세 명의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E 단조 로망스 칸타빌레소나티나 G장조 로망스이다. 그런데 소나티나 G장조 로망스는 베토벤이 작곡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확실치는 않다. 평소의 베토벤 스타일과는 다른 음악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하는 요제프 하이든(1732-1809)은 교향곡을 104편이나 작곡했다. 런던에 가서 작곡한 것은 런던교향곡이라고 하고 파리에 가서 작곡한 것은 파리교향곡이라고 부른다. 파리교향곡은 여섯 편이다. 그중에서 네 번째, 즉 교향곡 85번의 2악장에는 로망스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템포는 알레그레토로 되어 있다. 2악장의 멜로디는 옛 프랑스 민요인 귀여운 아가씨 리세트’(la getille et jeune Lisette)의 변주곡이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즐겁고 사랑스러운 음악이다. 이 교향곡에는 왕비’(La Reine)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당시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곡을 듣고서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현을 위한 세레나데 13G 장조 K 525’는 소야곡(小夜曲)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곡이다. 원래 제목은 독일어로 Eine kleine Nacht Musik이다. ‘작은 세레나데라는 뜻이다. 이 곡의 2악장에는 로만체(Romanze)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템포는 안단테이다. 천천히 서정적으로 연주하라는 지시이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돈 조반니를 작곡하는 중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시간을 내서 작곡한 것이다. 왜 갑자기 할 일도 많은데 이 곡을 작곡했는지는 이유를 알수 없다. 모차르트는 세레나데를 누구의 부탁을 받고 작곡했는데 이 곡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더구나 이 곡은 모차르트의 생전에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36년 후인 1827년에 비로소 출판되어서 알려진 곡이다. 1827년이라고 하면 베토벤이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이 곡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인근에 있는 오펜바흐 암 마인이란 도시에서 출판되었다. 비엔나나 파리가 아니고 왜 그곳에서 출판되었을까? 모차르트의 미망인인 콘스탄체가 돈이 궁해서 모차르트의 다른 악보들 한 묶음과 함께 연줄 연줄해서 오펜바흐 암 마인의 악보출판가인 요한 안드레라는 사람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요한 안드레는 이 곡의 악보를 처음 보자마자 이 곡이 앞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D단조 K 4662악장은 로만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모차르트는 4개의 혼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 3번과 4번의 2악장이 로망스로 되어 있다. 템포는 3번의 2악장이 라르게토이며 4번의 2악장이 안단테 칸타빌레이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는 로만체라는 제목의 가곡(리트)을 여러 곡이나 작곡했다. D114의 로만체는 아가씨가 캄캄한 탑에서 슬퍼하고 있네’(Ein Fräulein klagt’ im finstern Turm)라는 리트이다. D 144의 로만체는 아버지의 방에서 쉬겠어요’(In der Väter Hallen ruhte’)이다. D 222의 로만체는 사랑하는 민나’(Lieb Minna)이다. D 907사자왕 리챠드의 로만체’(Romanze des Richard Löwenherz)이다. 그리고 극음악 로자문데도 로만체에 속한다.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라고 하면 클라라와의 사랑이 감동적이어서 로망스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슈만은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로만체’(3 Romanzen: Op 28)를 작곡했고 이어서 오보에와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로만체’(Drei Romanzen: Op 94)도 작곡했다.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로만체는 슈만이 29세 때인 1839년에 클라라를 생각해서 작곡한 것이다. 세 곡 중에서 두 번째 F# 장조는 단순하며 지나친 테크닉이 필요하지 않아서 연주하기 쉬운 곡이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들이 가장 즐겨서 연주하는 곡이다. 다만, 호흡 조절을 잘 해야 한다는 주문이 있을 뿐이다. 슈만은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주로 피아노를 위한 곡들을 작곡했지만 30세가 지나서 어느 때에 오른손의 넷째 손가락을 다쳐서 사용할수 없게 되고나서부터는 피아노 이외의 악기들을 위한 작품들도 쓰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하나가 오보에와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로만체이다. 슈만의 작품 중에서 오보에를 위한 작품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슈만은 이 곡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클라라에서 헌정했다. 이 곡을 작곡한 이후부터 슈만의 정신건강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드레스덴을 떠나서 뒤셀도르프로 간 것도 이 즈음이었다. 슈만은 뒤셀도르프에서 절망감으로 자살하려고 라인강에 투신했으나 마침 다리 밑을 지나가던 뱃사공이 구해 주어서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그 후로 정신요양원에 입원했고 결국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클라라 슈만(1819-1896)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로망스1853년에 작곡했다. 클라라는 이 곡을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곡의 초연에서는 요아힘이 바이올린을, 클라라가 피아노를 맡았다.

 

요한네스 브람스(1833-1897)Op 118여섯 개의 피아노 소품’(6 Klavierstücke)에서 다섯 번째 곡은 로망스 F 장조이다. 여섯 소품 중에서 1, 2, 4, 6번은 인터메쪼(간주곡)이고 3번은 발라드이며 5번이 로망스이다. 브람스는 이 곡을 1893년에 완성했다. 브람스가 60세 때이다. 그만큼 원숙한 작품들이라고 말할수 있다. Op 14는 그보다 훨씬 전인 1858년에 작곡한 여덟 개의 리더와 로망스이다. 노래의 내용들이 모두 서정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일곱 번째 노래는 세레나데’(Ständchen)이며 여덟 번째 노래는 동경’(Sehnsucht)이다. 세레나데는 독일어로 슈탠드헨이라고 하는데 글자그대로라면 서서하는 잡담을 말한다. 그 의미가 발전하여서 세레나데, 또는 소야곡이 되었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로 유명한 프랑스의 카미유 생상스(1835-1921)는 로망스 스타일의 음악에 유난히 집착하여서인지 여러 로망스 작품들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로망스라는 단어가 들어간 작품들을 살펴보면 10여 곡에 이른다. 작품번호(Op) 순서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Op 16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이다. 다섯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악장이 로망스이다. 4악장의 로망스는 Op 67혼과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와 같은 멜로디이다. Op 16을 일반적으로 생상의 로망스라고 부르고 있다. Op 161919년에 다른 사람이 재작업한 것도 있다. 오리지널 3악장의 스케로쪼를 가보트로 다시 썼으며 5악장의 피날레를 타란텔레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이를 Op 16 bis라고 부른다. bis는 두 번째라는 뜻이다. Op 27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을 위한 로망스이다. Op 36(또는 첼로)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F 장조 로망스이다. Op 37플루트(또는 바이올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Db 장조 로망스이다. Op 48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C장조 로망스이다. Op 495악장의 모음곡이다. 네 번째 악장이 로망스이다. 1863년에 작곡했지만 1877년에야 출판되어서 작품번호가 늦다. Op 51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D장조 로망스이다. Op 67(또는 첼로)과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이다. Op 118합창을 위한 저녁의 로망스’(Romance du soir for Choir)이다. 이밖에도 1872년에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무언가 로망스’(Romance san paroles)도 있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스코틀랜드 환상곡’, 그리고 히브리의 옛 성가에서 멜로디를 가져온 콜 니드라이’(Kol Nidrei)로 유명한 독일의 막스 브루흐(1838-1920)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A단조’(Op 42)를 남겼다. 이 곡은 나중에 브루흐가 바이올린(또는 피아노)을 위한 로망스’(Op 85)로 편곡했다. 브루흐는 이 곡을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인 로베르트 헤크만에게 헌정했다. 헤크만은 브루흐의 작곡에 지대한 협조를 한 사람이다. 그런데 브루흐는 원래 이 곡을 앞으로 그가 작곡할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의 1악장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1악장은 마련되었는데 2악장부터는 도무지 작곡에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협주곡 작곡을 포기하고 이 곡을 단독작품으로 발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곡은 브루흐가 깊이 사랑했던 아말리 하이드봐일러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곡한 것이다. 그런 아말리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부유한 에밀 폰 베커라트라는 사람과 결혼하여 브루흐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주일 후에 브루흐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또 다시 깊은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말리가 불치의 병에 걸려서 6개월 밖에 살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기와의 결별이 그런 사정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A 단조이다. 배경이야 어떻든 이 곡은 우수에 넘친 아름다움으로 낭만주의 시기의 보석으로 알려져 있다.

 

보헤미아(현재의 체코공화국)의 안토닌 드보르작(1841-1904)은 단악장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로망스 F 장조’(Op 11)를 작곡했다. 프라하 프로비저널극장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요제프 마르쿠스의 요청으로 작곡했다. 그래서 1877년에 요제프 마르쿠스가 프라하에서 처음 연주했다. 그 후로 이 곡은 프라하 프로비저널극장 오케스트라의 스탠다드 레퍼토리가 되었다. 드보르작은 그의 현악4중주 5F단조에 바탕으로 두고 이 로망스를 작곡했다. 현악4중주 5번은 드보르작이 아직도 무명일 때에 작곡한 것이어서 잘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드보르작의 생전에는 연주되지 못했다. 그나저나 드보르작은 로망스 F 장조를 당대에 보헤미아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인 프란티세크 온드리체크에게 헌정했다.

 

노르웨이의 에드바르드 그리그(1843-1907)는 세편의 현악 4중주를 남겼다. 그 중에서 두 번째가 현악4중주 1G단조, Op 27인데 2악장이 로만체로 되어 있다. 노르웨이의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이 사랑스런 멜로디와 함께 녹아들어 있는 듯한 음악이다. 세편의 현악4중주 중에서 두 번째인데 어째서 현악4중주 1번이 되었느냐면, 처음 작곡한 현악4중주 D단조의 악보를 분실해서 도저히 찾지 못했기 때문에 두 번째를 1번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그는 현악4중주 1G단조를 그의 스승인 칼 라이네크의 요청으로 작곡했다. 그리고 세 번째 현악4중주곡은 그리그가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그는 현악4중주 1번을 이름난 바이올리니스트인 로베르트 헤크만에서 헌정하였다. 이 작품이 1878년에 독일 쾰른에서 초연될 때에 제1 바이올린을 맡아서 연주한 사람이다. 그리그보다 3년 먼저 태어났지만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오슬로 출신의 요한 스벤드센(Johan Svendsen: 1840-1911)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를 작곡했다. 지휘자이며 바이올리니스이기도 한 스벤드센은 주로 코펜하겐에서 활동했다

 

영국의 에드워드 엘가(1857-1934)는 로망스라는 타이틀이 붙은 곡을 두 곡 남겼다. 하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 G장조’(Op 1)이며 다른 하나는 바순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D단조’(Op 62)이다. 일반적으로 엘가의 로망스라고 하면 Op 62를 말한다. 엘가는 이 곡을 친구로서 런던교향악단의 수석 바순연주자인 에드윈 제임스를 위해 작곡했다. 그래서 이 곡이 1911년에 엘가의 지휘로 초연될 때에 에드윈 제임스가 바순을 연주했다. 엘가는 어릴 때부터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 위대한 작곡가 중에서 엘가만한 독학생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엘가는 작곡도, 악기 연주도 모두 독학이었다. 그런데 엘가는 참으로 재주가 많아서 바이올린이며 바이올린, 피아노면 피아노, 그리고 목관악기와 금관악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악기들을 제대로 연주할 줄 알았다. 바이올린은 엘가가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이미 배워서 익혔다. 이어 비올라, 오르간, 피아노를 공부했고 바순은 10대의 소년일 때에 배웠다. 엘가는 그때 이미 목관5중주단을 구성해서 바순주자로서 활동했다. 몇 년후 20대의 청년일 때에 관현악 작곡을 시작했고 그때에는 트롬본을 공부했다. 아무튼 엘가는 바순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D단조를 작곡할 즈음에 악기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었다. 엘가는 특히 바순에 대단한 매력을 느꼈다. 엘가는 바순의 능력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바순(또는 파곳)이라고 하면 뽀꼬뽀꼬라는 소리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어릿광대라는 풍자를 받아 왔다. 엘가는 그런 관념을 배격하고 서정적이며 드라마틱한 음을 표현하는 데에 바순을 사용했다. ‘바순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를 보면 알수 있다. 로망스라고 하면 보통 짧은 소품인데 엘가는 로망스를 본격적인 협주곡 스타일로 발전시켰다. 엘가보다 훨씬 후배인 랄프 본 윌리엄스(1872-1958)베이스 튜바를 위한 F단조 협주곡2악장은 로만차이다. 베이스 튜바를 위한 협주곡이기에 특별하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서정적인 음악이다.

 

핀란드의 장 시벨리우스(1865-1957)피아노를 위한 10개의 소품’(10 Pieces for Piano: Op 24)은 타이틀에서 볼 수 있듯이 열 개의 작은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중에서 두 번째 곡과 아홉 번째 곡에 로망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두 번째 곡은 로망스 A장조이며 아홉 번째 곡은 로망스 D플랫장조이다. 모두 아름답고 서정적인 피아노곡이다. 사람들은 위대한 시벨리우스가 대규모 오케스트라 작품에 집중하지 않고 미니에이쳐와 같은 피아노 또는 바이올린 소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시벨리우스는 대규모의 것과 사소한 것을 배합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피아노 또는 바이올린 소품이라고 해서 소홀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어떤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버릇처럼 결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다른 작곡가, 그렇지 않으면 평론한다는 사람들이다. 시벨리우스의 소품에 대하여도 그러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들은 시벨리우스의 피아노 소품들이 독창성이 있고 피아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적합성이 있다면서 찬사를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만큼 로랑스를 애호했던 작곡가도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연가곡인 알렉산더 블로크의 시에 의한 일곱 개의 로망스’(Op 127)이다. 일곱 개의 노래로 구성된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가 러시아 10월 혁명 50주년을 기념해서 1967년에 작곡한 것이다. 원래의 제목은 소프라노,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로망스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소련 당국에 헌정하지 않고 실제로는 소프라노 갈리나 비쉬네브스카야에게 헌정했다. 그 때문에 공산당국은 아니, 당에 헌정하는 것이 아니었던가?’라면서 쇼스타코비치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19671025일 모스크바음악원에서의 초연에서 비쉬네브스카야가 소프라노 솔로를 맡았음은 물론이다. 바이올린은 모이세이 바인버그였고 첼로는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였다. 일곱 개의 노래는 오펠리아의 노래’(Song of Ophelia), ‘예언의 새 가마연’(Gamayun, the Bird of Prophecy), ‘우리는 함께였다’(We were together), ‘우울함이 잠자는 도시를 감싸다’(Gloom Enwraps the Sleeping City), ‘폭풍’(The Storm), ‘비밀 신호’(Secret signs), ‘음악’(Music)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영국 시인들의 시에 의한 여섯 개의 로망스’(Op 62/140)도 작곡했다. 월터 랄레이(1554-1618), 로버트 번스(1759-1796),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등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 쇼스타코비치는 또한 푸쉬킨의 시에 의한 네 개의 로망스’(Op 46a)도 작곡했다. 베이스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다. 네 개의 노래는 르네상스’, ‘질투’(Jealousy), ‘불길한 전조’(Foreboding), ‘스탠자’(Stnaza)이다.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소련 당국의 재앙과도 같은 핍박으로 잠시 은둔하다가 깨어나서 첫 번째로 작곡한 노래들이다. 우울했던 개인적인 사정을 매력적인 음악으로 발전시켜 반영한 것이다. 첫째 노래에서 시인(쇼스타코비치)은 자기를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설정하고 그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 그림에 아무렇게나 덧칠을 한다는 내용을 말했다. 두 번째 노래에서는 사모했던 사람의 배신은 과연 쓰디쓴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달콤한 것이지 모르겠다는 내용이다. 세 번째 노래는 시인이 처형을 앞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네 번째 노래는 웅장한 장송곡이다. 마치 보리스 고두노프를 연상케 하는 음악이다. 시인은 자기가 죽을 것을 생각하며 죽은 후에는 어디에 묻힐지 궁금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영화음악도 작곡했다. 대표적인 것이 1955년에 소련에서 만든 등에’(Gadfly: 러시아어로 오보드)라는 영화의 음악을 작곡한 것이다. 영화음악 중에서 로망스는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이어서 오늘날 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나중에 영화에 사용했던 음악들을 간추려서 모음곡을 만들기도 했다. 영화 등에의 원작은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인 에셀 릴리안 보이니치(1864-1960)의 소설이다. 에셀 릴리안 보이니치는 소설가이면서 음악가이고 또한 일부 나라에서의 혁명운동을 후원하는 역할도 했던 사람이다. ‘등에는 혁명이란 무엇인가, 왜 필요한가, 혁명주의자들은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다. 무대는 1840년대의 북부 이탈리아이다. 당시에 북부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탈리아의 애국적인 청년들이 지하운동을 조직해서 오스트리아에 항거하는 운동을 펼친다. 순수한 마음의 열정적인 청년인 아서 버튼이 거친 혁명전사가 된다. 당국은 아서를 체포하기 위해 수배하지만 아서는 당국의 눈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저항운동을 이끈다. 아서에게는 등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등에는 말이나 소를 귀찮게 하는 파리의 일종이다. 아무튼 아서는 전설적인 혁명전사가 된다. 저항세력은 탱크도 확보하고 있다. 탱크운전병은 여자인 젬마이다. 아서와 젬마는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젬마는 아서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혁명동지로만 생각한다.

 

오페라에도 로망스라는 제목의 감동적인 아리아들이 있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1막에서 라다메스 장군이 부르는 아리아인 청아한 아이다’(Celeste Aida)에는 아예 로만차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래이다. 조르즈 비제의 오페라 진주 잡이’(Les pêcheurs de perles) 1막에서 나디르의 아리아 귀에 남은 그대 음성’(Je crois entendre encore)에도 로망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무대는 스리랑카의 어떤 어촌이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진주조개를 캐서 생활하고 있다. 나디르도 진주 잡이 어부 중의 한 사람이다. 추르가는 진주 잡이 어부들의 우두머리이다. 나디르와 추르가는 어릴 때부터의 친구이다. 어느 때 두 사람은 칸디로 갔다가 사원에서 아름다운 여사제인 레일라를 보고 둘 다 모두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여인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갈 것을 걱정하여서 레일라에게 말도 못 붙이고 바닷가 마을로 돌아온다. 얼마후 마을에서는 올해에도 진주 잡이가 잘 되라는 제사를 지내게 된다. 칸디에서 여사제가 제사를 위해 마을을 찾아온다. 여사제는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베일을 썼다. 나디르와 추르가가 함께 사랑하는 마음을 품었던 레일라이다. 레일라가 나디르를 알아본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원으로 올라간다. 나디르는 그 여사제가 칸디에서 본 그 여사제인 것 같아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면서 베일의 여인에 대한 사모하는 심정을 노래로 부른다. 그것이 귀에 남은 그대 음성이다. 하지만 나디르는 추르가와의 약속을 회상하면서 여사제를 사모하고 있는 자기의 마음을 꾸짖는다.

 

청아한 아이다를 부르는 라다메스. 불가리아 출신의 테너 카멘 샤네프(Kamen Chanev).  

 

오페라 아리아 또는 중창 중에는 로망스 스타일의 서정적인 곡들이 많이 있다. 예로 들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듀엣인 '파리로, 오 내사랑, 떠납시다'(Parigi, o cara, noi lasceremo),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에서 데 그류와 마농의 듀엣 '오 사랑스런 그대, 너, 너, 사랑'(Dunque questa lettiga...Tu, tu amore), 도니체티의 '돈 파스쿠알레'에서 에르네스토의 아리아 '사랑한다고 다시 말해 주오'(Tornami a dir che m'ami), 푸치니의 '라 보엠' 중에서 로돌포의 아리아 '그대의 찬손'(Che gelida mania)와 미미의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Si, mi chiamano Mimi), 로돌포의 아리아 '오 사랑스런 어가씨'(O soave fanciula),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에서 루치아와 에드가르도의 듀엣 '나의 한숨은 바람에 실려서'(Qui di sposa eterna...Verrano a te sull'aure), 푸치니의 '나비부인'에서 초초상과 핀커튼의 사랑의 듀엣 '저녁은 다가오고'(Vieni la sera...Vogliatemi bene)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