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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의 부제와 별명 총점검 7

정준극 2017. 10. 31. 10:00

명곡의 부제와 별명 총점검 7


- Queen(왕비): 영국의 톨가 카시프(Tolga Kashif: 1962-)의 The Queen Symphony를 간단히 Queen이라고 부른다. 톨가 코시프는 터키계 영국인이다. Queen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1970년대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런던의 라크 그룹인 Queen을 말한다. 현재는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 두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 하이든의 교향곡 85번의 별명은 '왕비'이다. 하지만 Queen 이라고 표기하는 대신에 La Reine라고 쓴다.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말한다. 마리 앙뚜아네트가 하이든의 교향곡 85번을 특별히 좋아했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La Reine 편에 좀 더 자세히 소개코자 한다.


- Raindrop(빗방울): 쇼팽의 전주곡 15번 D 플랫 장조, Op 28/15의 별명이다. 쇼팽은 솔로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을 24곡이나 작곡했다. 모두 Op 28로 분류되고 있다. 쇼팽은 넘버링이 없는 전주곡도 3곡이나 남겼다. 그러므로 쇼팽의 전주곡은 모두 27곡이 된다. 그 중에서 15번은 피아노 치는 소리가 마치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기 때문에 '빗방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별명은 자휘자로 유명한 독일의 한스 폰 뷜로브가 그렇게 말한 것으로부터 연유한다. 한스 폰 뷜로브는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와 결혼하여서 두 딸까지 두었던 사람이다. 한편, 스위스의 피아니스트이며 지휘자인 알프레드 코르토트(Alfred Cortot: 1877-1962)는 쇼팽의 전주곡 15번에 대하여 '죽음이 여기 그림자 안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Rákóczi March(라코치 행진곡): 라코치는 헝가리의 국가적 영웅인 프란시스 라코치 2세(Francis Rakoczi II: 1676-1735) 장군을 말한다. 라코치 장군은 원래 트란실바니아의 왕족이었다. 헝가리가 합스부르크의 억압을 받자 분연히 일어나서 합스부르크에 저항하는 봉기를 주도했다. 라코치 행진곡의 멜로디는 리스트가 작곡한 것도 아니며 베를리오즈가 작곡한 것도 아니다. 1730년 경에 헝가리의 익명의 작곡가가 만든 행진곡 풍의 멜로디이다. 여기에 역시 익명의 작사가가 가사를 붙였다. 가사는 불행한 마쟈르의 운명을 탄식하는 내용이며 라코치 장군에게 마쟈르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라코지 장군은 그 행진곡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노래를 라코치 노타(Rakoszi-nota: 라코치 노래)라고 불렀다. 라코치 노타를 조금 수정해서 편곡한 라코지 행진곡은 애국적인 노래로서 헝가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에르켈 페렌츠가 작곡을 하고 역시 헝가리의 시인인 쾨체이 페렌츠(Kolcsey Ferenc)가 가사를 붙인 힘누츠(Himnusz: 찬가)가 1844년에 헝가리 국가로 지정되기 전까지 라코치 노타가 비공식적인 헝가리 국가로 불려졌다. 그 라코치 행진곡을 바탕으로 해서 프란츠 리스트가 '헝가리 라프소디' 15번으로 만들었다. 리스트는 헝가리 민속 주제를 바탕으로 피아노 솔로를 위한 라프소디를 19곡이나 만들었다. 리스트는 나중에 피아노 솔로인 곡들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피아노 듀엣이나 트리오 버전으로 다시 만들었다. 리스트의 헝가리 라프소디는 연주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품들이다. 고난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편, 베를리오즈 버전의 '라코치 행진곡'은 국가적 기념식이나 군대의 행사 등에서 연주되고 있다.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인 페렌츠 라코치 백작


- Rasumovsky(라수모브스키): 베토벤이 1806년에 완성한 현악4중주곡 7번 F 장조, 8번 E 단조, 9번 C 장조를 말한다. Op 59번이다. 비엔나 주재 러시아 대사인 안드레아스 라수모브스키 백작이 의뢰한 작품이기 때문에 간단히 '라수모브스키'라는 별명이 붙었다. 베토벤의 중기에 작곡한 첫 세편의 현악4중주곡들이다. 베토벤은 이 기간에 두 편의 현악4중주곡을 더 작곡했다. Op 74와 Op 95이다. 이 다섯편의 현악4중주곡을 '미들 쿼텟'(Middle Quartets)라고 부른다. 그래서인지 음반으로 취입할 때에도 다섯편을 함께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 두 작품, 즉 7번(Op 59/1)과 8번(Op 59/2)에는 러시아 주제로 되어 있다. 작곡을 의뢰한 라수모브스키 백작을 생각해서였다. 특히 8번의 주제는 잘 알려진 러시아 민요로서 무소르그스키가 그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대관식 장면에서 사용한 것이다. 또한 라흐마니노프도 그의 피아노 듀엣을 위한 여섯개의 모르소(Morceaux)의 6악장 '영광'(Slava)에서 사용하였고 스트라빈스키는 발레 '불새'(L'Oiseau de feu: Zhar-ptitsa)에서 사용하였다. 베토벤의 라수모브스키 현악4중주곡에 대하여 이런 평이 있다. '개념은 심오하다. 구성은 뛰어나다. 하지만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 Rebirth(재생): 폴란드의 미에츠스와프 카르워비츠(Mieczyslaw Karlowicz: 1876-1909)의 교향곡 E 단조, Op 7의 별명이다. 카르워비츠는 베를린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폴란드로 돌아와서 이 교향곡을 작곡했다. 초연은 1903년 베를린에서였다. 쇼펜하우어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보다도 작곡가의 애국적인 감정과 자유 폴란드에 대한 꿈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해석이다. 카르워비츠의 유일한 교향곡이다.

- Reformation(종교개혁):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 D 장조/단조, Op 107의 별명이다. 멘델스존이 1830년에 마르틴 루터의 아우구부르크 고해 3백주년을 기념해서 작곡한 것이다. 아우구부르크 고해란 마르틴 루터와 그를 추종하는 독일의 여러 군주들이 1530년의 아우구부르크 공의회에서 구원은 믿음으로만 얻을수 있다는 신앙고백을 하였으며 로마 가톨릭이 면죄부를 팔아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반대하는 고해를 한것을 말한다. 이 교향곡에는 마르틴 루터가 작곡한 찬송가인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가 주제로 나온다. 

- La Reine(왕비): 하이든의 여섯 편 파리 교향곡 중에서 네번째이다. 하이든이 1785-86년에 완성한 교향곡 85번 B 플랫 장조이다. '왕비'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뚜아네트(1755-1793)가 이 교향곡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리 앙뚜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막내 딸이다. '왕비 교향곡'은 파리에서의 초연 이후에 미국으로 곧바로 전해져서 연주되었다. 예를 들면 키보드로 편곡된 것이 백악관에서 넬리 커스티스(Nelly Custis: 1779-1852)에 의해 연주된 것이다. 넬리 커스티스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영부인인 마사 워싱턴의 손녀로서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사교계 여성이었다.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 하이든의 교향곡 85번은 '왕비'라는 별명이다.


- Reliquie(유물):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5번 D를 말한다. 유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1861년에 이 소나타를 출판하면서 출판사가 이것을 슈베르트의 마지막 작품, 즉 유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별명을 붙인 것이다. 이 소나타는 실은 슈베르트가 1825년 4월에 완성한 것이다. 당시에 슈베르트는 피아노 소나타 15번 D장조/단조를 피아노 소나타 A 단조와 탄뎀(동시에라는 의미)으로 작곡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D 장조/단조에 대한 환멸을 느꼈던지, 또는 환각증세를 보였는지 작곡을 포기하였다. 다만, 첫 두 악장은 완성해 놓았고 3악장은 트리오 부분만 완성했으며 메뉴에트 부분은 미완성이었다. 또한 4악장은 첫 몇 소절만 스케치 해 놓았다. 소나타 15번이 미완성이지만 미완성 파트의 스케치는 되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너도나도 완성의 노력을 기울였다. 완성 버전을 만든 작곡가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들만 몇 명 소개하면, 독일의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루드비히 슈타르트(Ludwig Stark: 1831-1884)가 완성했고 역시 독일의 아르민 크납(Armin Knab: 1881-1951)도 완성했다. 이밖에 체코 출신의 오스트리아 작곡가였으나 미국으로 건너간 에른스크 크레네크(Ernst Krenek: 1900-1991), 스위스의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발터 레버그(Walter Rheberg: 1900-1957), 러시아의 음악학자이며 작곡가인 니콜라이 칠리야예프(Nikolai Zhilyayev: 1881-1938), 영국의 브라이언 뉴불드(Brian Newbould: 1936-), 역시 영국의 해롤드 트러스코트(Harold Truscott: 1914-1992) 등이다. 슈베르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사람들 중에서 완성한 사람은 없다. 슈베르트가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것 자체로서 충분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슈베르트와 친구들. 이렇게 바쁘다보니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작품들도 더러 있다.


- Requiem(진혼곡): 벤지만 브리튼의 Sinfonia da Requiem(레퀴렘 교향곡), 미국의 하워드 핸슨(Howard Hanson: 1896-1981)의 교향곡 4번, 러시아의 드미트리 카발레브스키(Dmitri Kabalevsky)의 교향곡 3번이 모두 '레퀴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브리튼의 '레퀴엠 교향곡'은 사연이 많았던 작품이다. 1940년에 완성했기 때문에 혹시 나치가 벌인 침략전쟁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진혼곡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일본국 개국 2천 6백 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하나로 브리튼에게 작곡을 의뢰했던 것이다. 일본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이 말하는 일본제국은 기원전 660년 2월 11일에 개국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일본은 중국본토에 대한 침략전쟁에는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나치 독일이나 파치스트 이탈리아와는 아직 동맹을 맺지 않고 있었다. 일본은 개국 2천 6백년을 축하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의 작곡가들에게 축하작품의 작곡을 의뢰했고 마찬가지로 일본 내에 있는 자국 작곡가들에게도 작품을 의뢰했었다. 이에 따라서 영국의 벤자민 브리튼, 독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프랑스의 자크 이베르가 일본 정부로부터 작곡 의뢰를 받았다. 여러 사정으로 최종 계약은 마감일을 몇달 안 남겨두고 이루어졌다. 사실 브리튼은 처음 작곡 의뢰를 받았을 때에 일본이 요청한 것인지를 몰랐다. 다만, 어떤 강대국이 의뢰한 것이라는 얘기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간의 이런저런 사연들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브리튼이 서둘러 '레퀴엠 교향곡'을 완성해서 전달하자 한참 후에 일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독교의 전례에 사용하는 라틴어 작품을 기독교를 분명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일본에게 제공한 것은 일본을 모욕하는 행위이므로 작품을 거절한다. 더구나 작품을 보니 전반적으로 멜로디의 패턴이나 리듬이 멜랑콜리한 톤이어서 작곡자가 무언가 일본의 목적을 크게 오해한듯 하다. 그러므로 레퀴엠 교향곡을 일본의 국경일에 연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브리튼인 친구인 오든의 도움을 받아서 회신을 썼다. '나는 기독교인이며 기독교 국가의 사람이므로 기독교적인 작품을 쓰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음악이 우울하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일본을 모욕할 의사는 추호도 없었다'라는 내용이었다. 얼마후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했다. 영국과 일본은 국교를 단절했다. 일본은 브리튼의 '레퀴엠 교향곡'을 거절했지만 작곡료에 대한 반환요청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은 '브리튼의 악보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축하 작품에 포함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브리튼의 '레퀴엠 교향곡'은 1941년 3월 29일 뉴욕 카네기 홀에서 초연되었다. 긍정적이었다. 보스턴 연주는 세르게 쿠세비츠키의 지휘였다. 호평이었다. 쿠세비츠키 음악재단은 브리튼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서 브리튼에게 새로운 오페라를 의뢰했다. '피터 그라임스'였다. '레퀴엠 교향곡'의 일본 초연은 1956년 2월 18일에 이루어졌다. 브리튼이 NHK교향악단을 직접 지휘했다. 브리튼은 그로부터 20년 후인 1976년에 세상을 떠났다. 추모음악회에서는 그의 '레퀴엠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지휘하는 벤자민 브리튼


- Resurrection(부활):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 2번 C 단조를 말한다. 내세의 아름다움과 부활에 대한 말러의 평소 생각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영국 BBC 음악잡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10편 중에 5번째로 선정된 작품이다. 1895년 초연되었다. 전 5악장 중에서 4악장과 5악장에는 합창이 나온다. 합창의 가사는 4악장의 경우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의 가사를 인용하였다.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가사는 독일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들인 루드비히 아힘 폰 아르님(Ludwig Achim von Arnim: 1781-1831)과 클레멘스 브렌타노(Clemens Brentano: 1788-1842)의 시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5악장의 가사는 대서사시 '메시아'(Der Messias)로 유명한 독일의 시인인 프리드리히 고틀리브 클롭슈토크(Friedrich Gottlieb Klopstock: 1724-1803)의 시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참고로 BBC음악잡지가 선정한 세계의 교향곡 톱 10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베토벤 교향곡 3번(1803년 작곡) 2. 베토벤 교향곡 9번(1824) 3. 모차르트 교향곡 41번(1788) 4. 말러 교향곡 9번(1909) 5. 말러 교향곡 2번(1894, 1903 수정) 6. 브람스 교향곡 4번(1885) 7. 베를리오즈 환상적 교향곡(1830) 8. 브람스 교향곡 1번(1876) 9. 차이코브스키 교향곡 6번(1893) 10. 말러 교향곡 3번(1896)


- Reverenza(레베렌사): 독일의 베르톨트 훔멜(Bertold Hummel: 1925-2002)의 교향곡 2번을 말한다. 레베렌사는 '존경'이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훔멜의 경우에는 오래된 전통에 대한 존경심을 의미한다. 훔멜은 교향곡을 3편만 남겼는데 1번은 현을 위한 작품이라는 부제이고 2번이 레베렌사이며 3번은 구약시대의 선지자인 예레미아가 부제이다. 훔멜이 레베렌사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아마도 고향인 휘핑겐(바덴)에 새로운 음악회장을 건설하고 헌당한 것을 기념해서라고 한다. 1966년에 초연되었다.

- Revolutionary(혁명): 쇼팽의 에뛰드 2번 C 단조, Op 10/12의 별명이다. 1830-31년에 제정러시아의 폴란드 침공에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한 솔로 피아노 작품이다. 조국 폴란드가 외세의 침공을 받아 온국민이 저항을 하자 이를 지지하여서 작곡한 것이다. Etude on the Bombardment of Warsaw(바르샤바 폭격에 대한 에뛰드)라고도 한다. 쇼팽의 에뛰드(연습곡)은 모두 27곡이다. 그중에서 넘버가 붙은 것은 24곡이다. 이 24곡을 두 세트로 나누어서 1잡집, 2집으로 출판하였다. '혁영적'은 제1집의 마지막 곡이다. 쇼팽은 이 연습곡을 친구 프란츠 리스트에게 헌정했다. 악보 표지에 á son ami Franz Liszt라고 썼다. 쇼팽은 러시아의 침공에 항거하는 폴란드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 모든 것이 나의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누가 예상이나 했었겠는가?'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혹자는 이 작품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했다. 우선 같은 C 단조이기 때문이었다. 쇼팽은 베토벤의 이 작품을 대단히 숭앙했다.


1830-31년 러시아의 바르샤바 침공에 항의하는 폴란드의 봉기. 쇼팽은 폴란드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크게 한탄하였다. 쇼팽의 연습곡 '혁명적'은 당시 폴란드의 봉기를 지지하는 의도에서 작곡되었다.


- Rhenish(레니쉬: 라인강): 슈만이 부인 클라라와 함께 라인란트를 마치 성지순례자처럼 여행하고 와서 여행에서의 감동을 바탕으로 작곡한 교향곡이다. 교향곡 3번 E 플랫 장조, Op 97로서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851년 2월 6일 뒤셀도르프에서 슈만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반응은 엇갈린 것이었다. 혹자들은 '찬양할 것이 없는데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대로 찬양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광폭함으로 마무리되었다'라는 것은 비판쪽이었다. 환영하는 쪽은 '두말할 것도 없다. 청중들이 너무 감동하고 기뻐서 매 악장이 끝날 때마다 떠나갈 듯한 박수를 보낸것만 보아도 알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초연에서는 연주가 끝나자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한 목소리로 슈만에게 '만세'라고 소리쳤는데 이를 따라서 청중들도 '만세'라고 소리쳤다.

- Robusta(로버스타): 러시아의 보리스 티슈첸코(Boris Tishchenko: 1939-2010)의 Sinfonia Robusta를 말한다. 로버스타는 커피 콩을 말한다. 별것이 다 교향곡의 주제가 된다. 티슈첸코가 1970년에 완성한 단악장의 교향곡이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추비츠키(Vladimir Zubitzky: 1953-)도 Sinfonia robusta를 작곡했다.

- Roma(로마): 조르즈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로마 교향곡'을 말한다. C장조이다. 비제가 처음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17세 때였다. 첫 교향곡도 C 장조였다. 두번째 교향곡은 비제가 파리음악원으로부터 프리 드 롬(Prix de Rome)을 받아서 특전으로 로마에 3년이나 머무르고 있을 때에 작곡을 시작한 것이다. 프리 드 롬을 받으면 로마에 있는 프랑스아카데미에서 2년간 수업료를 내지 않고 공부할수 있으며 그후 1년을 더 독일에서 공부할수 있었다. 그러나 비제는 로마에서 2년을 보내고 독일로 가지 않는 대신에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순방하였다. 로마 교향곡은 완성까지 11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말이 완성이지 실은 미완성이었다. 비제는 처음의 로마 교향곡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수정하였다. 비제는 36세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더 이상 수정은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수정할수 있었는데'라면서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불렀다. 비제가 마지막으로 수정한 로마 교향곡은 비제의 사후인 1875년에 초연되었다.  


영원한 도시 로마


- Roman(집시): 프랑스의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인 샤를르 마리 위도르(Charles-Marie Widor: 1844-1937)의 오르간을 위한 교향곡 10번을 말한다.

- Romantic/Romantica(로맨틱/로만티카): 낭만적이라는 뜻의 작품들이다. 윌리엄 블로우스의 교향곡 7번,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 하워드 핸슨의 교향곡 2번, 멕시코 국민주의 작곡가인 카를로스 차베스(Carlos Chávez: 1899-1978)의 교향곡 4번의 별명이 모두 로마틱/로만티카이다.

- Roméo et Juliette(로미오와 줄리에트):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대규모 합창교향곡인 '로미오와 줄리에트 교향곡'을 말한다. 1839년에 초연되었다. 베를리오즈는 일찍이 1827년에 파리의 오데옹극장에서 공연되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연극 '로미오와 줄에트'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이 교향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그때 오펠리아역은 아일랜드 출신의 미모의 배우인 해리엣 스미드슨이었다. 베를리오즈는 해리엣 스미드슨의 연기에 크게 감동하여 해리엣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해리엣은 베를리오즈가 '환상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을 작곡하게 만든 주인공이기도 했다. 합창교향곡인 '로미오와 줄리에트'의 대본은 에밀 데샹(Emile Deschampt)이 작성했다. 이 교향곡은 프로그램 음악으로서 음악만 들어도 '로미오와 줄리에트'의 연극을 이해할수 있을 정도이다.


베를리오즈에게 '환상적 교향곡'과 '로미오와 줄리엣 교향곡'을 작곡하도록 영감을 준 연극배우 해리엣 스미드슨. 나중에 베를리오즈와 결혼하였다.


- Rosamunde(로자문데): '로자문데는'는 독일의 헬미나 폰 헤치(Helmina von Chezy: 1783-1856)의 희곡으로 원제는 '사이프러스의 공주 로자문데'(Rosamunde, Fürstin von Zypern)이다. 슈베르트가 이 연극의 극음악을 작곡해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슈베르트가 극음악을 작곡한 연극 '로자문데'는 1823년 12월 20일 비엔나의 빈강변극장(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슈베르트는 나중에 로자문데를 위한 극음악에서 일부를 발췌하여서 현악4중주곡과 즉흥곡(임프롬프투스)를 작곡했다. 현악4중주곡 13번 A 단조, D 804는 1824년에 완성했다. 타이틀은 '로자문데'였다. 슈베르트는 사실상 1824년부터 종래의 가곡 위주의 작곡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기악곡의 작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로자문데' 현악4중주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슈베르트는 이 현악4중주곡을 슈판치그(Schuppanzigh)에게 헌정했다. 슈판치그는 베토벤이 구성한 현악4중주단의 제1바이올리니스트였다. 슈판치히는 1824년 3월에 이 현악4중주곡의 초연에서 연주했다. '로자문데'의 음악을 바탕으로 삼은 슈베르트의 또하나 작품은 즉흥곡(임프롬프투스) Op 142의 3번 B 플랫 장조, Op 935/3이다. 슈베르트는 솔로 피아노를 위한 즉흥곡을 8곡이나 작곡했다. 주로 1827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완성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들은 네곡씩 묶어서 1집과 2집으로 출판되었다. 1집은 Op 90, D 899로서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출판되었으며 2집은 Op 142, D 935로서 슈베르트의 사후인 1839년에 출판되었다. '로자문데' 즉흥곡은 2집의 세번째 곡이다.


슈베르트의 '로자문데' 극음악 음반 커버. 로자문데는 사이프러스의 공주이다.


- Rotary(로타리): 독일의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2007)의 '로타리 목관 5중주곡'을 말한다. 슈토크하우젠이 넘버링을 하지 않은 세번째의 목관 5중주곡이다. 그러므로 목관5중주곡 3번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로타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이 작품을 쾰른의 로타리클럽 회장인 롤프 한슈타인(Rolf Hanstein)이 의뢰했기 때문이다. 한슈타인은  이와 관련하여 쾰른에 목관 5중주단이 1992년에 설립되었다. 목관5중주곡인 '로타리'는 1997년 10월 25일에 위헨(Jüchen)의 슐로스 디크(Schloss Dyck)에서 musikFabrik(무직화브리크)가 초연하였다. 로타리 목관 5중주곡의 주제는 오페라 '빛의 수요일'(Mittwoch aus Licht)의 한 파트에 사용되었다.

- La Roxelane(록셀라네: 록셀라나): 하이든의 교향곡 63번 C 장조의 별명이다. 록셀라네는 오토만 제국의 술레아만 대왕의 부인이다. 원래 이름은 후렘 술탄(Hurrem Sultan: 1502-1558)이다. 오토만 제국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이 많았던 여인으로 남편 술레이만을 등에 업고 국내외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교향곡 63번의 2악장의 부제가 La Roxelane인데 이것을 아예 전체 교향곡의 타이틀로 삼았다. 2악장의 음악은 원래 하이든이 챨스 사이몬 화바르트의 연극인 '술레이만 2세'(Soliman der zweite 또는 KLes Trois Sultanes: 세명의 술탄들)의 음악으로 사용했었다. 록살라네가 주역인 연극이었다.


록셀라나, 오토만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많았던 황비


- Russian(러시아): 하이든의 현악4중주곡 Op 33을 말한다. 하이든이 러시아의 파울 대공에게 헌정했기 때문이다. Op 33은 모두 여섯 편의 현악4중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 거의 모두가 178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비엔나에 있는 파울 대공의 부인인 마리아 페로도로브타 대공비의 아파트에서 초연되었다.

- Rustic/Rustica(시골의): 윌리엄 T 블루오스의 교향곡 6번의 타이틀이 '러스티'이다. 헝가리 출신의 비엔나 작곡가인 칼 골드마크(Karl Goldmark: 1830-1915)의 '시골 결혼식 교향곡'(Rustic Wedding Symphony)도 간단히 '러스틱'이라고 부른다. 독일어로는 Ländliche Hochzeit(랜들리헤 호흐차이트)이다. 덴마크의 바운 홀름보(Vagn Holmboe: 1909-1996)의 교향곡 3번은 '시골 교향곡'(Sinfonia Rustica)라고 불린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콘체르토 알라 루스티카나(Concerto alla rusticana: RV 151)는 시골의 목가풍으로, 전원풍으로 연주하는 협주곡이다. 비발디의 협주곡 중에서 '사계' 다음으로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2악장의 전원풍의 느긋한 템포도 그렇지만 3악장은 빠른 춤곡 스타일이어서 농부들의 기분좋은 잔치를 연상케 하며 마지막 악장은 리디안 모드, 즉 전형적인 목가적 분위기이다. 그래서 '시골풍의 협주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다. 오페라는 본란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패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도 그 의미는 '시골 청년'이란 것이다.


페터 브뤼겔(아버지)의 '시골 결혼식'(Peasant Wed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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