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신동들 2
어린 시절부터 신동이란 소리를 들으며 작곡을 했던 사람들은 이미 대체로 소개하였거니와 이번에는 연주부분의 신동들을 소개코자 한다. 성악, 피아노, 현악기 분야로 나누어서 소개한다.
[노래의 신동들]
- 비벌리 실스(Beverly Sills: 1929-2007). 10세 때인 1939년에 '메저 보위의 아마추어 시간'(Major Bowes' Amateur Hour)에 출연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12살 때부터 연주회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16세 때부터는 길버트-설리반의 오페라에 출연하여 노래를 불렀다. 미국에서는 그를 '오페라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 줄리 앤드루스(Julie Andrews: 1935-). 12세 때에 런던의 히포드롬에서 노래를 불렀다.
- 아리아 테솔린(Aria Tesolin: 1993-). 8세 때에 연주회에서 비제의 '카르멘'에서 '하바네라'를 불렀고 이어 9세 때에는 토론토에서 캐나다의 스리 테너스와 함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축배의 노래'를 불렀다.
- 재키 이방코(Jackie Evancho: 2000-). 10세 때에 '어메리카 갓 탈랜트'(America's Got Talent)에서 2등을 했다. 그리고 10살 때에 솔로 CD를 만들었는데 백금판매 앨범이 되었다. 11살 때에는 영국 톱 챠트 5위 이내에 올라갔다. 그리고 PBS의 '위대한 연주가' 프로그램에 가장 어린 나이의 연주가로서 등장하였다. 또한 링컨 센터의 콘서트에 출연한 가장 나이 어린 성악가가 되었다.
- 스레야 자야뎁(Sreya Jayadeep: 2005-). 인도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 신동이다. 인도 케랄라주에서 태어난 그는 TV 리얼리티 쇼인 수르야 수퍼 싱거(Surya Super Singer)의 윈너이다. 스레야는 생후 8개월부터 말을 줄줄이 할줄 알았다고 한다. 세살부터 카르나틱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고 8세 때에 '위핑 보이'(Weeping Boy)라는 영화의 주제가를 불렀다. 10세가 되기 전에 이미 전국적인 인기가수가 되었고 인도 전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순회공연을 했다. 정말 놀라운 소녀이다.
'미국이 낳은 오페라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은 비벌리 실스.
[피아노의 신동들]
-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 1941-).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다. 네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여섯 살 때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 키트 암스트롱(Kit Armstrong: 1992-). 미국의 피아노 신동이다. 다섯살때에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했고 여덟살 때에 협주곡 연주를 해서 피아니스트로서 데뷔하였다. 5년 연속 모턴 굴드 청소년작곡가상(Morton Gould Young Composer Award)를 받았다.
- 클라우디오 아라우(Claudio Arrau: 1903-1991). 칠레 출신의 피아노 신동으로서 다섯살 때에 피아니스트로서 데뷔하였다. 글을 읽기 전부터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쳤다. 바로크로부터 20세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들을 뛰어나게 해석한 피아니스트였다.
-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아르헨티나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음악신동이다. 일곱살 때에 피아니스트로서 정식으로 데뷔했다. 오늘날 바렌보임은 지휘자로서도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올라와 있다. 영국의 첼리스트인 자클린 뒤 프레와 결혼했었다.
13세 때의 다니엘 바렌보임. 음악의 신동이었다.
-엔리크 바티스(Enrique Batiz: 1942-). 멕시코 출신의 피아니스트이다. 다섯살 때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였다. 성장하여서는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 에밀리 베어(Emily Bear: 2001-). 미국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서 다섯 살때에 자기의 피아노 앨범을 음반으로 처음 만들었다.
-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3대 거장 중의 하나인 벨리니는 음악활동을 피아노로 시작했다. 세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다섯살 때에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여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실상 벨리니는 두살 때부터 음악이론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뛰어나기는 뛰어났던 모양이다.
- 조르즈 비제(Georges Bizet: 1838-1875). 아홉살 이전에 이미 피아노를 훌륭하게 연주했으며 작곡에 대한 재능도 보여주었다. 비제는 아홉살에 파리음악원에 들어갔다. 파리음악원의 최연소 입학자격은 열살이었지만 비제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교수가 나이자격이 되지 않았지만 비제를 받아들였다.
- 빅토르 보르예(Victor Borge: 1909-2000). 덴마크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피아니스트, 작곡가, 코미디언인 그는 여덟살 때에 왕립덴마크음악원의 전액 장학금을 받아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뛰어난 유머로서 사랑을 받았다.
- 에탄 보르트니크(Ethan Bortnick: 2000-). 미국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작사자인 그는 세살 때에 절대음감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이어 다섯 살때에 처음 작곡을 시작했고 여섯 살 때에는 콘서트에 출연했는데 티켓이 완전매진되는 놀라운 실정을 보여주었다. 여덟살 때에는 이탈리아에 가서 나폴리교향악단과 협연을 하였다. PBS가 주관하는 내셔널 콘서트의 가장 어린 출연자로서 각광을 받았고 이어 기네스 북에도 세계 최연소 예술가로서 등재되었다.
- 릴리 불랑제르(Lili Boulanger: 1893-1918). 프랑스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다. 그의 언니는 유명한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나디아 불랑제르였다. 릴리 불랑제르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10대의 소녀시절에 이미 바이올린, 첼로, 하프를 뛰어나게 연주할수 있어서 음악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오르간에도 재능이 있어서 여섯 살때에 파리의 루이 비에르느(Louis Vierne) 오르간 클래스에 참여했었다. 여섯살 짜리가 그런 클래스에 들어가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 카메론 카펜터(Cameron Carpenter: 1981-). 미국의 오르가니스트로 열한살 때에 바흐의 평균율 1, 2권을 모두 암기하여서 연주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 프레데릭 쇼팽(Frederick Chopin: 1810-1849).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쇼팽의 뛰어난 재능에 대하여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굳이 한마디 한다면 일곱살 때에 콘서트에서 연주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 윌리엄 크로치(William Crotsch: 1775-1847). 영국의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 세살 때부터 음악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오르간과 키보드를 연주했다. 나중에는 작곡가가 되었으며 왕립음악원의 초대 원장을 지냈다.
- 조르즈 치프라(Georges Cziffra: 1921-1994). 헝가리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서 다섯살 때부터 유랑서커스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아홉살에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 최연소 학생으로 입학하였다.
- 페르 엔플로(Per Enflo: 1944-). 피아니스트로서보다는 수학자로 더 유명한 스웨덴의 인물이다. 일곱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11살 때인 1956년에 전스웨덴 청소년피아니스트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이거 1961년에도 우승을 차지했다.
- 리챠드 화렐(Richard Farrell: 1926-1958). 뉴질랜드 출신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이다. 네살 때에 처음으로 방송에 출연해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일곱살 때에는 웰링턴교향악단의 협연으로 첫 작품인 '어떤 대주교의 죽음을 탄식하며'를 연주했다. 대단한 신동으로서 찬사를 받았다.
- 칼 필츄(Carl Filtsch: 1830-1845). 14세에 세상을 떠난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다. 여섯 살때에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열세살 때에 협주곡을 작곡했으나 뜻하지 아니한 질병으로 열 네상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 캐나다 토론토 출신의 피아니스트로서 네살 때에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열살 때에 토론토의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열두 살 때에 피아노과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음악원을 졸업했다. 아직까지 그러한 나이에 그만한 재능을 보인 학생은 없었다.
글렌 굴드. 어릴 때에 음악신동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 호라시오 구티에레스(Horacio Gutierrez: 1948-). 쿠바 출신의 미국 비르투오스 피아니스트이다. 네살 때에 피아노 리사이틀을 가져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11세 때였다. 하바나 교향악단과 협연했다.
- 요하나 해리스(Johana Harris: 1912-1995). 캐나다의 피아니스트였다. 여섯 살때부터 작곡을 했고 여덟 살때에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데뷔하였다. 놀라운 암기력을 가지고 있었다.
- 마가렛 로우즈차리안 해리스(Margaret Rosezarian Harris: 1943-2000). 미국의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세살때부터 시작하여 여섯살 때까지 피아노 연주로 미국의 여러 곳에서의 순회연주회에 참가하였다. 어른이 되어서는 지휘자가 되었다. 특히 브로드웨이 뮤지컬 지휘자로서 활동했었다. 로스안젤레스 교향악단, 시카고 교향악단,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등을 지휘한 최초의 여성 지휘자였다.
- 펠릭스 헬(Felix Hell: 1985-). 독일의 오르가니스트이다. 여덟살 때에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아홉살 때에 여러 음악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후 10대 초반에 이미 여러 음반을 취입했다.
-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 1876-1957). 폴란드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였다. 10세 때에 이미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활동하였다. 모두들 피아노의 신동이라고 불렀다.
- 레슬리 하워드(Leslie Howard: 1948-). 호주 출신의 영국 피아니스트이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음이던지 한번 들은 것은 기억해 냈다. 다섯살 때에 이미 그의 재능이 멜본의 신문 등에서 소개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아홉살 때에는 호주 국영TV에서 연주했다. 피아니스트로서 정식으로 데뷔한 것은 13세 때였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해서 놀라게 했다.
- 헬렌 후앙(Helen Huang: 1982-). 태어나기는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태어났지만 대만 부보이다. 여덟살 때에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서 대단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 에프게니 키신(Evgeny Kissin: 1971-).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나 2002년에 영국 시민이 되었다. 여섯살에 음악학교에 입학하였다. 어떤 선생님이 자기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학교까지 데리고 온 줄 알았다.
- 엘리자베타 클류체레바(Elizaveta Klyuchereva: 1999-).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여섯살 때에 모스크바음악원에 입학하였다.
- 아이미 코바야시(Aimi Kobayashi: 1995-). 일본의 피아노 신동이었다. 세살 때에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고 일곱살 때에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가졌다. 미국의 카네기 홀 등에서 연주했다.
- 랑 랑(Lang Lang: 1982-). 두살 때에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서 세살때부터 정식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8세 때에 베이징음악원에 입학하였고 13세에 국제콩쿠르에 나가서 우승했다. 대단한 신동이라고 불렀다.
랑 랑. 어릴때부터 피아노의 신동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 잉그마르 라사르(Ingmar Lazar: 1993-). 프랑스에서 태어난 루마니아계 피아니스트이다. 여섯 살 때에 솔로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였다.
-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도 어릴 때에 음악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리스트는 아홉살 때에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열살 살 때에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주곡을 연주했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모차르트를 신동으로 불렀다는 것은 세살 먹은 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모차르트는 네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였고 여섯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번 들은 음악은 잊지 않고 그대로 연주할수 있었다.
- 레오 오른슈타인(Leo Ornstein: 1895-2002).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나중에 미국에서 활동했던 그는 10살 때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 입학하였다. 모두들 그를 음악의 신동이라고 불렀다.
-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Sergei Prokofiev: 1891-1953). 아홉살 때에 오페라를 작곡했다. '거인'(The Giant)라는 제목의 오페라였다.
-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ens: 1835-1921). 다섯살 때에 처음으로 피아노 리사이틀을 가졌다. 놀라운 재능이었다.
- 어네스트 셸링(Ernest Schelling: 1876-1939). 미국의 피아니스트로서 네살 때에 피아노 연주를 했고 일곱살 때에 유럽으로 음악공부하러 갔다.
- 필리파 셰일러(Philippa Schuyler: 1931-1967). 11세 때에 콘서트에서 협주곡을 연주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전미국에서 유명했던 피아니스트였다. 저서도 두어편이 있다. 베트남의 다낭에서 세상을 떠났다. 흑인 혼혈이었다.
- 클라라 이자벨라 지글레(Clara Isabella Seigle: 2000-). 독일의 피아니스트로 네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스파르타식 레슨을 받았다. 여섯 살 때인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뉘른베르크 음악경연대회에서 줄곧 우승을 차지해 왔다.
- 디미트리스 스구로스(Dimitris Sgouros: 1969-). 그리스의 피아니스트로 일곱살 때에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12살 때에는 미국 카네기 홀에서 데뷔하였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 루스 슬렌친스카(Ruth Slenczynska: 1925-). 미국의 피아니스트로 11세 때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작가로서의 재능도 있어서 '금지된 어린시절'(Forbidden Childhood)라는 책을 썼다.
- 클로데트 소렐(Claudette Sorel: 1932-1999).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활동했던 피아니스트이다. 10세 때에 뉴욕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가져서 데뷔했다. 11세 때에는 뉴욕 필과 협연하였다. 열살 때에 줄리아드의 장학생이 되어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가장 연소한 줄리아드 학생이었다.
- 콘라드 타오(Conrad Tao: 1994-). 미국 일리노이주 출신으로 네살 때에 대중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여덟살 때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 알리샤 위트(Alicia Witt: 1975-). 오늘날 배우로서 더 유명한 미국의 피아니스트, 작곡가, 작사자이다. 일곱살 때에 콘서트에서 연주하여 찬사를 받았다. 이후 열살도 안된 나이에 여러 피아노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어린이 신동이어서 두살 때부터 대학서적을 읽었다. 배우로서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 유자 왕(Yuja Wang: 1987-). 베이징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여러 피아노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열한살 때에 뜻한바 있어서 캐나다 마운트 로열 칼리지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 노아 그레이 캐비(Noah Grey-Cabey: 1995-). 미국에서 태어났다. 네살 때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피아노 독주를 했다. 모두들 놀랬다.
- 조이 알렉산더(Joey Alexander: 2003-). 인도네시아의 음악신동이다. 여섯살때에 한번 들은 음악을 그대로 피아노로 연주했다. 이후로 방송등에서 수많은 연주를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조이 알렉산더를 모른다면 간첩이다.
조이 알렉산더
[바이올린과 첼로의 신동들]
- 린다 브라바(Linda Brava: 1970-). 핀랜드의 바이올린 신동이다. 여덟살 때에 이미 세계 순회연주에 들어갔다. 13세 때에는 헬싱키 주니어스트링스의 리더로 활약했다.
- 조지 브릿지타워(George Bridgetower: 1778-1880). 폴란드에서 태어나서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아프로-유럽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베토벤이 그를 위해서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고 1803년 비엔나에서 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베토벤은 피아노 반주를 하여 초연되었다. 그러나 악보 출판과 관련해서 두 사람의 의견에 차이가 있어서 결별했다. 베토벤은 브릿지타워를 위해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로돌프 크로이처(Rodolphe Kreutzer)로 변경했다. 크로이처 소나타이다.
- 줄리아 부스타보(Giulia Bustabo: 1926-2002).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아홉살 때에 시카고교향악단과 협연했고 15세에 카네기 홀에서 데뷔했다.
- 아킴 카마라(Akim Kamara: 2000-). 독일의 바이올린 천재라는 말을 들었다. 두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두살 때에 이미 비록 학생오케스트라이지만 협연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세살 때에는 안드레 류의 공연에 특별 출연했고 그때부터 안드레 류의 후원을 받아 바이올린 공부를 계속하였다. 다섯살 때에는 미국 레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의 안드레 류 공연에 출연했고 일곱살 때에는 리챠드 클라이더만과 함께 공연했다.
- 사라 장(Sarah Chang: 1980-). 한국계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한국이름은 장영주이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다섯살 때부터 일반 콘서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여섯 살 때에 줄리아드에 들어갔고 여덟살 때에 고난도라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뉴욕필의 협연으로 연주했다. 그리고 아홉살 때에는 '데뷔'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만들어냈다. 이어 11살 때부터는 세계의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계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사라 장
- 자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1945-1987).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첼리스트였다. 어려서부터 첼로의 신동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여덟살 때에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여 전문 첼리스트로 데뷔하였다. 아르헨티나의 유태계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 미도리 고토(Midori Goto: 1971-). 일본 출신의 미국 바이올리니스트이다. 11세에 뉴욕필과의 협연으로 데뷔하였다. 동생인 류 고토(Ryu Goto: 1988-)도 뛰어난 재능의 바이올리니스이다. 일곱살 때에 사포로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데뷔하였다.
-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1-1987). 리투아니아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세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여섯 살 때에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아홉살에 줄리아드에 입학하였다.
- 코 가브리엘 카메다(Koh Gabriel Kameda: 1975-). 일본계의 독일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티다. 아홉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했고 13세 때에 앙리 뷰땅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바덴바덴교향악단과 협연하여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 아폴리네어 드 콘츠키(Apollinaire de Kontski: 1825-1879). 폴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네살때에 콘서트에서 피에르 로드의 협주곡을 연주했다. 폴란드 국민들은 피아노에 쇼팽이 있으면 바이올린에는 콘츠키가 있다며 찬사를 보냈다.
- 레이첼 리(Rachel Lee: 1988-). 서울에서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여덟 살 때에 줄리아드에 입학하여 바이올린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계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인 레이첼 리
- 토마스 린리 2세(Thomas Linley the Younger: 1756-1778). '영국의 모차르트'라고 불릴만큼 어려서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실상 그는 모차르트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10대 초반에 이탈리아에서 만나서 그로부터 친구로 지냈다.
- 요 요 마(Yo-Yo Ma: 1955-). 파리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이다. 다섯살 때부터 대중 앞에서 첼로를 연주했다. 7세 때에는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위해 연주했다. 음악사상 요요마만큼 어릴 때부터 첼로의 신동은 없었다.
- 예후디 메누힌(Yehudi Menuhin: 1916-1999). 벨라루스계로서 보스턴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네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일곱살 때에 샌프란시스코교향악단과 협연했다.
- 안네 아키코 마이어스(Anne Akiko Meyers: 1970-). 어머니가 일본인인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일곱살때에 데뷔하여서 모두들 신동이라고 불렀다.
1733년도 케벤휠러 공자 스트라디바리우스와 함께. 소년 예후디 메누힌
- 테레사 밀라놀로(Teresa Milanollo: 1827-1904).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바이올린의 신동이었다.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해에 태어났다. 테레사 밀라놀로의 이름이 기억되고 있는 것은 그가 1728년에 만든 스트라디바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니콜로 파가니니가 사용하던 바이올린이라고 한다. 그래서 테레사 밀라놀로를 '밀라놀로 스트라드'라고 불렀다. 그의 동생인 마리아 밀라놀로(1832-1848)도 바이올린의 신동이었으나 아깝게도 16세에 세상을 떠났다. 테레사는 네살 때부터 바이올린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홉 살 때에 콘서트에서 연주했고 이후 유럽의 여러 지역을 마치 모차르트처럼 순회하며 바이올린 신동으로서 연주했다. 베를리오즈, 쇼팽, 요한 슈트라우스, 리스트, 마이에르베르 등이 테레사의 연주를 듣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마리아의 별명은 '마드부아젤 아다지오'였다. 신중하게 연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생 테레사는 '마드무아젤 스타카토'라고 불렸다. 어찌나 활기있게 연주하는지 그런 별명이 붙었다.
- 스테판 밀렌코비츠(Stefan Milenkovic: 1977-). 세르비아-이탈리아계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세살때부터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일곱살 때에 국제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만하면 신동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알마 무디(Alma Moodie: 1898-1943). 호주 록햄프턴에서 태어났으며 1920년대와 30년대에 주로 독일에서 이름을 떨쳤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여섯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아홉살 때에 브뤼셀음악원에 입학하였다. 이후 학생시절에 쿠르트 아터버그, 한스 피츠너, 에른스트 크레네크 등의 작품을 초연했다.
- 안네 조피 무터(Anne-Sophie Mutter: 1963-). 독일 바젤 인근의 라인펠트에서 태어났다. 다섯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할 정도였다. 이어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홉살 때에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주곡을 연주했다. 사람들은 그를 신동이라고 불렀다. 허버트 폰 카라얀이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안네 조피 무터를 위해 작품을 쓴 작곡가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세바스티안 쿠리어(Sebastian Currier), 앙리 뒤티유(Henri Dutilleux), 소피아 구바이둘리나(Sofia Gubaidulina), 비톨트 루토슬라브스키(Witold Lutoslawski), 노베르 모레(Nobert Moret), 크시츠토프 펜데레키(Krzysztof Penderecki), 앙드레 프레빈(Andre Previn), 볼프강 림(Wolfgang Rihm),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 등이다.
13세 때의 안네 조피 무터가 허버트 폰 카라얀의 지도를 받고 있다.
- 다비드 오이스트라크(David Oistrakh: 1908-1974). 어릴 때부터 음악의 신동으로 불려진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오데사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때에 콘서트에서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훗날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오이스트라크에게 바이올린 협주곡을 헌정했고 아람 카차투리안도 바이올린 협주곡을 헌정했다.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연주여행 중 암스테르담에서 세상을 떠났다.
-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Gregor Piatigorsky: 1903-1974). 러시아의 에카테리노슬라브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서 음악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러다가 첼로에 매력을 느껴서 방향을 바꾸었다. 일곱살 때에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다. 11살 때에는 모스크바음악원에 입학하였다. 15세 때에는 현악4중주단을 만들어서 연주하였다. 2차 대전중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의 핍박을 피하여 미국으로 이주했다.
- 마이클 레인빈(Michael Rabin: 1936-1972). '시대를 초월한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또한 '가장 비극적인 생애를 보낸 바이올리니스트'로서도 기억되고 있는 사람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루마니아의 유태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한살 때부터 음악의 박자를 터득할 정도로 음악적 감각이 빨랐다. 13세 때에 카네기 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1972년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는 중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신경계의 질환때문이라고 한다. 그후 조금 나아지는가 했는데 어느날 뉴욕의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세상을 떠났다.
마이클 레이빈. 바이올린의 신동이었다.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플로리첼 폰 로이터(Florizel von Reuter: 1890-1985).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스위스 제네바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주로 독일에서 활동했다.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음악 재능이 있어서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제네바음악원에는 11세 때인 1901년에 입학하였다.
- 루지에로 리치(Ruggiero Ricci: 1918-2012).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10세 때에 공식적인 연주를 시작하였고 14세 때에 세계순회연주 여행을 떠났다. 주로 파가니니의 협주곡과 솔로 곡을 연주하였다.
- 클라라 락모어(Clara Rockmore: 1911-1998).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출신으로 나중에 미국에 와서 활동했다. 리투아니아에 있을 때에는 뛰어난 재능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제국음악원에 다섯살 때에 입학하였다. 제국음악원의 역사상 가장 나이 어린 학생이었다.
- 오스카 셤스키(Oscar Shumsky: 1917-2000).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세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하여 네살 때에 콘서트에서 첫 연주를 했다. 일곱살 때부터는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였으니 음악의 신동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여덟살 때에는 크라이슬러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집에 와서 자기만의 카덴짜를 만들어서 연주하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었다. 여덟살 때부터는 당대의 바이올린 교수인 레오폴드 아우어의 문하에 들어갔다. 가장 나이 어린 문하생이었다. 그는 바이올린, 피아노, 비올라는 전문가 이상으로 연주할수 있었다.
- 에스페란사 스폴딩(Esperanza Spalding: 1984-).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재즈 베이스 연주자 겸 가수이다. 다섯살 때부터 오레곤 실내악단과 함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했다. 네살 때에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한번 듣고 거의 그대로 흉내내어 연주했다. 지금은 팝 가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전자기타 솜씨가 전문가 이상이다.
- 프랑크 페터 침머만(Frank Peter Zimmermann: 1965-). 독일 두이스부르크 출신이다. 다섯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하여 10세 때에는 협주곡을 연주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콘트라베이시스트, 작곡가, 작사가, 가수 등등의 재능을 지닌 에스페란사 스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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