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위대한 발자취

비엔나와 글룩

정준극 2018. 2. 13. 18:08

비엔나와 글룩


바바리아의 베르힝이란 마을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bald Gluck: 1714-1787)은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글룩이 지내다가 세상을 떠난 집은 비엔나의 4구 뷔드너하우프트슈트라쎄(Wiednerhauptstrasse) 32번지이다. 당시에는 그 집을 '은사자의 집'(Zum silbernen Lowen)이라고 불렀다. 기록에 의하면 글룩의 부인인 마리아 안나가 그 집을 포글(Vogl)이라는 귀족으로부터 매입했다고 한다. 칼스플라츠의 한편에 있는 칼스키르헤(Karlskirche)의 오른쪽 옆에 글룩의 기념상이 있다. 인적이 드믄 곳이어서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클래식음악 애호가라면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경의를 표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글룩이 살았고 세상을 떠난 집의 옛모습. '은사자 집'(Zum silbernen Lowen)이라는 집이었다.

글룩이 세상을 떠난 집. 뷔드너하우프트슈트라쎄 32번지이다. 현관위 붉은 원으로 표시된 곳에 Gluck Wohnhaus라는 명판이 붙어 있다. 옛집은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글룩이 세상 떠난 집의 현관 위에 설치되어 있는 명판.

글룩하우스에 설치되어 있는 기념 표지. 비엔나시가 지정한 것이다.

오늘날의 뷔드너하우프트슈트라쎄. 왼편 가운데 집에 32번지로 글룩이 세상 떠난 집.


칼스키르헤 옆의 잔디밭에 한적하게 서 있는 글룩 기념상


글룩 기념상의 상부. 왼손 쪽의 조각은 연극을 상징.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기념상 디테일


미술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 사이에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기념상 하단의 한 면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위해 봉사했던 위대한 예술가 학자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주치의였던 게라르드 반 스비텐(Gerard van Sweiten)이며 위쪽은 왼쪽으로부터 예수회 신부로서 주화주조의 권위자인 요제프 힐라리우스 에켈(Joseph Hilarius Eckhel), 예수회 수도원장이며 부다의 도서관장인 게오르그 프라이(Georg Pray), 작곡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 그리고 어린이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이다. 모두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기념상 하단의 조각


글룩의 묘소는 비엔나 짐머링의 중앙공동묘지에 있다. 묘비에는 글룩의 모습과 간단한 비문이 적혀 있다. 비문은 다음과 같다. Hier ruht ein rechtschaffener deutscher Mann, ein eifriger Christ, ein treuer Gatte, Christoph Willibald Gluck, der erhabenen Tonkunst großer Meister. Er starb am 15. Nov. 1787. 번역하면 이곳에 올바른 삶을 살았던 독일인이 잠들어 있다.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성실한 남편이었고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는 1787년 11월 15일에 세상을 떠났다.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에 있는 글룩의 묘소

 

묘비 상단의 글룩 모습과 하단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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