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위대한 발자취

비엔나와 도니체티

정준극 2018. 2. 14. 12:13

비엔나와 도니체티


비엔나에서 초연된 '샤무니의 린다'의 한 장면. 슈타츠오퍼. 린다 역에 에디타 그루베로바


게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는 비엔나에 두번 왔었다. 첫번째는 1842년 봄이었다. 로시니가 써 준 추천사 한장을 들고 도착했다. 그래서 그의 '샤무니의 린다'(Linda di Chamounix)가 캐른트너토르(Karntnertor) 극장에서 공연될수 있었다. 도니체티는 '사무니의 린다'의 리허설을 주관하였다. 5월초에 공연된 '샤무니의 린다'는 대성공이었다. 비엔나 황실은 도니체티를 궁정 카펠마이스터에 임명했다. 모차르트가 지녔던 타이틀과 같은 것이었다. 도니체티는 그해 7월에 비엔나를 떠났다. 그 몇 달 동안 숙소가 어디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몇군데 호텔에서 지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도니체티는 밀라노를 거쳐서 고향 베르가모로 갔다. 베르가모에 있는 스승 마이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때 마이르는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있었다. 잠시 베르가모를 들렸다가 8월에는 나폴리로 향하였다. 도니체티는 나폴리의 산 카를로를 위해 오페라를 작곡키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썩 좋지 않아서 계약을 파기해야할 입장이었다. 그러나 계약은 계약이었기 때문에 난처한 입장이었다. 도니체티는 비엔나에서 작곡을 시작하여 거의 반쯤 완성한 오페라를 완성하겠다고 말했으나 산 카를로는 원래 약속대로 '카테리나 코르나로'(Caterina Cornaro)를 1844년 1월까지 완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카테리나 코르나로'는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도니체티의 '샤무니의 린다'가 초연된 캐른트너토르극장


도니체티는 비엔나와 매년 비엔나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시즌에 캐른트너토르 극장을 위해 도와주기로 약속한 것이 있다. 5월부터 시작하는 이탈리아 시즌에 캐른트너토르 극장에서 공연할 이탈리아 오페라는 베르디의 '나부코'였다. 도니체티는 1842년 3월에 밀라노에서 '나부코'를 보고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그래서 캐른트너토르 극장에서의 '나부코' 공연에 자문을 줄수 있었다. 그래서 1843년에 비엔나에 와서 1년 동안 머물렀다. 그때 기숙했던 곳이 오늘날 1구 뷔플링거슈트라쎄(Wipplingerstrasse) 5번지이다. 이와 관련해서 현재에도 그 집의 벽면에 기념명판이 붙어 있다. 명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Gaetano Donizetti 1797-1848 Opernkomponist aus Bergamo und Hofkompositeur in Wien, wohnte und wirkte hier in den Jahren 1843-1845  Gewidmet vom Verein Freunde der Musik Gaetano Donizettis  Wien 2005 이다. 번역하면 '베르가모 출신의 오페라 작곡가이며 비엔나 궁정작곡가인 게타노 도니체티가 1843-1845년 이 집에 거주했고 작곡했다. 게타노 도니체티 악우회가 (이 명판을) 봉헌했다. 2005년 비엔나. 이다. 1844년 비엔나의 이탈리아 시즌에는 도니체티의 '샤무니의 린다'가 리바이벌 되어서 대 성공을 거두었고 이어서 '나부코' '돈  파스쿠알레'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공연되었으며 마지막으로 '로한의 마리아'는 6월 초에 공연되었다.


오늘날의 뷔플링거슈트라쎄

호에르 마르크트에서 본 뷔플링거슈트라쎄. 오른쪽 끝이 5번지, 도니체티가 살았던 집이다. 붉은 원이 표시된 곳에 명판이 있다.

뷔플링거슈트라쎄 5번지의 현관 위에 설치되어 있는 도니체티 기념 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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