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위대한 발자취

비엔나와 크라이슬러

정준극 2018. 2. 16. 08:52

비엔나와 프리츠 크라이슬러


프리츠 크라이슬러는 금세기에 가장 위대한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뛰어난 작곡가였다. 그의 바이올린 작품들은 대체로 알트 빈(Alt Wien)의 왈츠 스타일이어서 지난 날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광에 대한 짙은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것들이다. 대표적으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인 '사랑의 기쁨'(Liebesfreud)과 '사랑의 슬픔'(Liebesleid)을 들수 있다. 크라이슬러의 음악은 감미로운 톤과 풍부한 감성의 프레이싱으로 유명하다. 1차 대전 이전의 비엔나를 풍미했던 특유의 게뮈틀리히(gemütlich)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작품들이다. (게뮈틀리히는 아늑하고 포근하다는 뜻이라고 풀이할수 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크라이슬러의 대표작인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기쁨'은 한동안 요제프 란너(Joseph Lanner)가 작곡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란너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함께 비엔나 왈츠의 시대를 연 인물이다. 크라이슬러는 다재다능해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지만 여러 장르의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였다. 그는 4편의 오페레타도 작곡했다. 그중에서 1932년에 완성한 징슈필 스타일의 오페레타인 '씨씨'(Sissy)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아름다운 황비인 엘리자베트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어서 오늘날까지도 비엔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비엔나 출신의 바이올린 비르투오소인 프리츠 크라이슬러


크라이슬러의 작품을 소개하자는 것이 아니라 비엔나에 남아 있는 크라이슬러의 발자취를 찾아보자는 것이 목적이다. 크라이슬러는 1875년 2월 2일에 지금의 비엔나 2구 레오폴드슈타트의 그로쎄 쉬프가쎄(Grosse Schiffgasse) 21번지의 집에서 태어났다. 비엔나의 2구는 유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크라이슬러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로쎄 쉬프라(Grosse Schiff)는 말은 '거대한 배', 즉 '노아의 방주'를 뜻하는 것이다. 오늘날 크라이슬러의 생가에는 오스트리아음악협회와 연방정부의 교육문화성이 공동으로 기념명판을 설치하였다. 명판에는 Der Violinvirtuose und Komponist Fritz Kreisler wurde am 2. Februar 1875 in diesem Hause geboren. 이라고 적혀 있다. 바이올린 거장이며 작곡가인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1875년 2월 2일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내용이다. 크라이슬러를 기억하게 하는 명판은 비엔나에서 이것 하나뿐이다.


프리츠 크라이슬러 생가 기념명판

프리츠 크라이슬러 생가. 그로쎄 쉬프가쎄 21번지로서 니켈가쎄(Nickelgasse)와 만나는 곳에 있다.


크라이슬러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래서 소년시절에 비엔나음악원에 들어가서 안톤 브루크너, 요제프 헬메스버거 등으로부터 바이올린과 음악이론을 배웠다. 한편, 당시의 많은 유태인들이 가톨릭 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았다. 크라이슬러도 12세 때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더 넓은 세계에서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그는 파리음악원에서 여러 위대한 작곡가들의 가르침을 받을수 있었다. 레오 들리브, 쥘르 마스네 등으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크라이슬러는 12세의 나이로 파리음악원의 프레미어 그랑 프리 드 롬을 수상하였다. 그때 약 40명의 학생들이 응모하였는데 모두들 20세가 넘는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1등상을 12세의 크라이슬러가 받았던 것이다. 크라이슬러는 1차 대전 때에 오스트리아군으로 출전하였다가 곧이어 부상을 당해서 명예제대했다. 그는 1914년 11월에 뉴욕으로 갔다가 전쟁이 끝날때까지 미국에 머물렀다. 이어 1924년 유럽으로 돌아가서 베를린에 거주하였으나 나치가 득세하고 유태인들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자 1938년에 프랑스로 갔다가 전쟁이 터지자 미국으로 갔고 1943년에는 미국시민이 되었다. 크라이슬러는 미국에서 1941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까지 갖게 되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했다. 크라이슬러는 1962년 1월에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묘는 브롱스의 우들런 공동묘지(Woodlawn Cemetery)에 있다.


브롱스의 우들런 공동묘지에 있는 크라이슬러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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