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비엔나의 한달

레드 라인을 따라서 - 2

정준극 2018. 4. 22. 19:27

레드 라인을 따라서 - 2


오토 바그너 파빌리온(Otto Wagner Pavillion). 오토 바그너는 현대 비엔나를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건축가이다. 오토 바그너는 비엔나의 이곳 저곳에 여러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 대표적인 건물은 슈타인호프 교회와 포스트슈파르카싸(우편저축은행) 건물이다. 칼스플라츠에 있는 작은 건물인 전철역사도 오토 바그너의 작품이다. 오토 바그너의 건축 스타일이 집약된 건물이다. 작은 실내는 전시실이다. 4월부터 11월까지 문을 연다. 한겨울에는 난방이 되어 있지 않아서 문을 열지 못한다. 쌍둥이 건물의 한 쪽은 카페이다. 칼스플라츠에 있으므로 슈타츠오퍼에서 걸어가면 된다.


오토 바그너의 칼스플라츠 전철 역사. 오토 바그너 전시장이다.


음악의 집(Haus der Musik). '음악의 집'은 비엔나를 대표하는 두 개의 랜드마크, 즉 슈테판성당과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의 중간 쯤에 위치하고 있다. 비엔나의 풍부하고 화려한 음악 연혁을 살펴 볼수 있는 곳이다. 단순히 보고 듣는 전시를 떠나서 직접 경험할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일라이트는 유서깊은 빈필 전시장이다. 실제로 빈필을 가상지휘자로서 지휘해 볼수 있다. 왈츠 다이스 게임이란 프로그램은 실제로 왈츠를 작곡해 볼수 있는 경험을 갖게 해 준다. 이밖에도 여러 음악적 상황들을 경험할수 있게 해준다. 역시 슈타츠오퍼에서 내려서 잠시 걸어가면 된다. 음악의 집 건물에는 과거에 빈필을 처음 창설한 독일의 작곡가 오토 니콜라이가 살았었다.


음악의 집에서는 가상지휘자로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지휘해 볼수 있다.


모차르트 하우스(Mozart House Vienna). 주소는 돔가쎄(Domgasse) 5번지이다. 모차르트는 이 집에서 1784-87년의 3년 동안 살았다. 이 집에서 작곡한 작품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다. 그래서 전에는 이 집을 '피가로 하우스'라고 불렀다. 슈테판성당 바로 뒤편으로 가서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 나온다.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살았던 집으로 현재까지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이 곳밖에 없다. 슈테플 백화점의 뒤편,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집도 새로운 집이 들어선 것이다.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비엔나에서의 모차르트를 만나 볼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왼쪽에 있는 건물이 모차르트가 살았던 건물이다. 지금은 기념관이다.


자연사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 Museum of Natural History).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가운데 두고 미술사박물관과 대치되어 있는 건물이다. 미술사박물관과 같은 시기에 건립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쌍둥이 건물이다. 외양은 같지만 내부 시설은 서로 다르다. 자연사박물관의 구석구석에 있는 스투코 조각과 벽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다. 자연사박물관은 약 3천만점의 표본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실은 39개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선사시대로부터 공룡시대, 인류의 변천사 전시실, 우주 천체에 대한 전시실까지 있다. 우주 전시실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운석이 전시되어 있다. 보석실에서는 거대한 연수정(토파즈)를 볼수 있고 다이아몬드로 꽃다발을 만든 희귀한 예술품도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부군인 프란시스에게 선물한 것이다. 선사시대의 전시품으로서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눈길을 끈다. 크기는 11센티밖에 되지 않지만 약 3만년 전의 물건이다. 1908년에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봐하우에서 발견했다. 어떤 학자들은 비너스가 아니라 다산의 여신이라고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구석기시대에 만들어진 여인상이라는 것이다. 홉 언 홉 오프는 미술사박물관/헬덴플라츠에서 내리면 된다. 마리아 테레지아 기념상을 감상하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모차르트, 하이든, 글룩의 모습을 찾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의 공룡실


쿤스트포룸(Kunstforum). 비엔나의 미술관들은 거의 모두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이지만 1구 프라이융(Freyung) 8번지에 있는 쿤스트포룸 전시장은 오스트리아은행(Bank of Austria)이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시된 미술품들은 국가 소유가 아니라 모두 개인 소장의 것이다. 상당수가 오스트리아 은행의 재산이다. 전후의 고전적 현대 작품을 보려면 이곳에 와야 한다. 아방 갸르드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쿤스트포럼 소장품들의 가격은 천문학적 숫자이므로 오스트리아 은행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수 있다. 오스트리아 은행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9천 점이 넘는다. 하일라이트는 페르디난트 게오르그 발트뮐러, 구스타브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 마리아 라싱, 크리스티안 루드비히 아터제, 아르눌프 라이너, 프란츠 베스트, 허버트 브란들, 에르빈 부름(Erwin Wurm) 등의 작품이다. 반 고흐, 미로, 칸딘스키, 샤걀, 바르홀(Warhol), 리히텐슈타인의 작품들도 간혹 특별 전시되고 있다. 전시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몇가지 흥미있는 사실도 알수 있다. 에곤 쉴레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프로테제였다. 말하자면 피부양자였다. 두 사람 모두 비엔나의 분리주의(제체시온)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세잔느가 세상을 떠난 이유는 미술에 대한 지나친 열정 때문이었다. 세잔느는 폭풍이 이는 날 들판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폐염에 걸려서 그만 세상을 떠났다. 오스카 코코슈카는 2차 대전 중에 부인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하였고 1947년에 마침내 영국으로 귀화하였다. 홉 언 호 오프를 이용한다면 우니페어지태트(대학교)에서 내리면 된다.


프라이융의 쿤스트포럼 현관. 구스타브 파이흘의 작품이다.


무목(MUMOK: Museum der Moderne Kunst). 영어로는 Museum of Modern Art Ludwig Foundation 이라고 부른다. 중부유럽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현대미술관이다. 무제움크바르티에 1번지에 있다. 회화작품 뿐만 아니라 조소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20세기 이후 현재까지의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고전적 근대작품, 큐비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의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어서 1960년대와 70년대에 조류를 탔던 폽 아트, 플럭서스, 누보 레알리즘 작품들이 정리 되어 있다. 그야말로 대미술의 보고이다. 약 1만점 이상의 현대미술품 소장을 자랑하고 있다. 앤디 워홀, 파블로 피카소, 요제프 보이스, 백남준, 볼프 보스텔, 게르하르트 리히터, 자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이름만 들어도 드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유명한가를 알고 싶어하게 만드는 이다. 전시품 중에서 약 230점 이상은 1981년에 독일의 기업가이면 예술품 수집가인 페터 루드비히와 그의 부인 이레네가 기증한 것이다. 그래서 비엔나의 루드비히 재단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현재의 현무암 건물은 오스트리아 건축가인 오르트너 앤 오르트너가 설계한 것으로 2001년에 완공되었다. 대표적인 예술가로서는 칸딘스키, 폴 클레, 파블로 피카소,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을 찾아볼수 있으며 중요한 폽 아트 화가로서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등의 작품을 볼수 있다. 그야말로 근현대 미술의 보고이다.


박물관구역(무제움크바르티에)의 위용. 왼쪽의 흰 건물이 레오폴드 미술관이며 오른쪽 검은 건물이 무목(현대미술관)이다.

무목(현대미술관)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 레오폴드 미술관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이다. 레오폴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오스트리아의 미술품 수집가인 루돌프 레오폴드와 그의 부인 엘리자베트가 거의 반세기동안 수집한 예술품들을 기증받아 전시했기 때문이다. 즉 1944년에 오스트리아 정부와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의 협조로 레오폴드 부부의 소장품을 합병하여 영구전시키로 하였다. 새로운 미술관의 명칭을 레오폴드라고 붙여서 박물관구역에 오픈된 것은 2001년이었다. 현대화기인 에곤 쉴레, 구스타브 클림트, 오스카 코코슈카, 리하르트 게르스틀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운동이 비너 제체시온으로부터 아르누보와 유겐트슈틸로 서서히 변천하는 과정을 엿볼수 있는 전시품들이다. 에곤 쉴레의 작품은 세계 최대이다. 전체 전시작품은 5천점이 넘는다. 2012년에는 일제 하이더가 제작한 '벌거벗은 남자들'(Mackte Männer)의 포스터 현수막이 레오폴드 미술관 외벽에 설치된 일이 있었다. 미술관이 생긴 이래 가장 크기가 큰 현수막이었다. 현수막에는 프랑스의 유명 축구선수 3명의 완전 나체 사진이 들어 있었다. 이들의 성기가 완전히 들어나 보이는 현수막이었다. 첫번 째 남자는 흑인이었고 두번째 남자는 아랍 무슬림이었으며 세번째 남자는 백인이었다.  이 작품을 원래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피에르와 길르라는 현대화가였다. 작품은 제목은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였다. 그 작품을 바탕으로 하여 일제 하이더가 대형 현수막을 만든 것이다. 시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자 제작자들은 붉은 리본으로 축구선수들의 성기를 가려서 일단은 무마했던 일이 있었다.

레오폴드 미술관                                              

               

쿤스트할레(Kunsthalle Wien: 비엔나예술회관). 쿤스트할레는 현대작가들을 위한 일종의 만남의 장소이다. 현대작가들이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장소로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전시회장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맡게 되었다. 칼스플라츠의 한쪽에 1992년에 오픈되었다. 영구 건물을 지을수가 없어서 콘테이너 스타일의 건물을 짓고 화랑 겸 회의장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2001년에 무제움크바르티에(박물관구역)의 옛 황실마사 건물로 이전해 들어갔다. 그러므로 현재는 칼스플라츠의 쿤스트할레 가건물도 그대로 전시장 겸 회의실로 사용하며 무제움크바르티에의 건물도 사용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인근 국가들 출신의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수 있는 기회이다.

         

칼스플라츠의 쿤스트할레 가건물

무제움크바르티에의 쿤스트할레

응용미술관(MAK: Osterreichsches Museum für angewandte Kunst: Museum for Applied Arts). 1구 슈투벤링(Stubenring) 5번지 건물이다. 1863년에 '오스트리아제국 미술산업박물관'(Royal Imperial Austiran Museum of Art and Industry)로서 출범하였다. 거장 하인리히 폰 페르스텔이 설계한 건물이다. 현재는 응용미술 뿐만 아니라 디자인, 건축,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900년대 비엔나의 디자인, 아시아 콜렉션, 카펫에 대한 영구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MAK 디자인 연구실도 항시 오픈되어 있다. 지하철 U3의 슈투벤토르 또는 U4의 란트슈트라쎄에서 내리면 되고 전차는 2번을 타고 슈토벤토르에서 내리면 된다. 홉 언 홉 오프는 레드 라인의 MAK/쇼핑센터에서 내리면 된다.


슈트벤링의 응용미술관. 조금 더 올라가면 정부종합청사이며 그 앞에 유명한 라데츠키 기마상이 있다.


사진박물관(WestLicht Schauplatz für Fotografie: WestLicht Center for Photography). 비엔나의 7구는 창작 예술가들의 파라다이스이다. 비단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열렬한 예술 애호가들의 낙원이다.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베스트반호프슈트라쎄에는 카메라 상점들이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 분위기를 더욱 높여 준다. 최근에 문을 연 베스트리히트 사진 센터(사진 전시장)에는 7백여 종류의 역사적인 사진기들을 비롯해서 특수 카메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사진작가들이 전시회를 할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종전에 유리공장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박물관 스타일의 전시장을 만들었다. 사진 관련 서적을 판매하는 상점과 아늑한 카페도 있다. 지하철 U6의 부어가쎄-슈타트할레(Burggasse/Stadthalle)에서 내려서 베스트반호프슈트라쎄 40번지를 찾으면 된다. 큰길에서 안으로 들어가서 인너호프에 입구가 있다. 전차는 5번 베스트반호프슈트라쎄, 49번 카이저슈트라쎄, 6번 9번, 18번은 우르반 로리츠 플라츠(Urban-Loritz-Platz)에서 내리면 된다. 홉 언 홉 오프를 이용한다면 무제움크바르티에/나투르히스토리셰스 무제움에서 내려야 한다.

베스트리히트 사진박물관. 마침 세계보도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황실가구박물관(Hofmobiliendepot: Imperial Furniture Collection). 합스부르크 황실에서 사용하던 가구 일체가 보관되어 있는 창고 겸 전시장이다. 1747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황실의 가구 목록을 만들어서 당장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잘 보관하라고 지시한데서 시작된 것이다. 현재 이곳에 있는 가구들은 값을 따질수 없는 귀중한 것이 되었다. 황실 가구 이외에도 1700년대 중반, 비엔나에서 가구들과 실내장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수 있는 전시공간도 있어서 흥미를 더 해 준다. 합스부르크가 소장했던 가구 중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했던 것들도 있어서 눈길을 끌게 해 준다. 전시실은 마리아 테레지아 시절의 가구들을 보여주는 제국실, 황실 의자 콜렉션, 굽은 나무로 만든 가구들 전시실, 그리고 씨씨와 관련된 가구들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소장 가구 품목은 약 16만 5천점에 이른다. 한때는 각국 대사관이나 영화 제작자들이 황실 가구들을 빌려가기도 했으나 지금은 연방정부 부처나 오스트리아 대사관들만이 빌릴수 있다.


황실가구박물관의 씨씨 전시실


프란츠 2세 황제의 세번째 부인인 오스트리아 에스테의 마리아 루도비카 황비도 가구에 실내장식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많아서 호프부르크 레오폴드 동의 방 24개를 가구에 맞게 다시 설계토록 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것이다. 마리아 루도비카 황비가 사용하던 가구들도 전시되어 있다. 이집트 가구들은 대부분이 마리아 루도비카 황비가 사용하던 것이다. 당시에 고대 이집트의 가구들을 사용하는 것은 황실의 위엄을 보이는 것이었다. 터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오스트리아의 영웅이 된 오이겐 공자도 가구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오이겐 공자는 특히 동양의 가구에 관심이 많아서 상당량을 수집했다. 황실가구박물관은 오이겐 공자가 소장했던 인도와 중국, 일본의 가구들도 관장하고 있다. 미하엘 토네트의 혁신적인 가구들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토네트는 가구산업의 선구자였다. 지하철 U3 지글러가쎄(Zieglergasse)에서 내려서 가면 되고 버스는 13A를 타고 마리아힐르퍼 슈트라쎄/노이바우가쎄(Neubaugasse)에서 내리면 된다. 홉 언 홉 오프를 이용하면 마리아힐르퍼/뮤제움스크바르티에에서 내리면 된다. 주소는 7구 안드레아스가쎄(Andreasgasse) 7번지이다.

안드레아스가쎄 7번지의 황실가구박물관 입구. 마리아힐르퍼 슈트라쎄 쪽에서 들어가는 입구도 있다. 가구의 엘 도라도이다.


○  극장박물관(Theater Museum).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나의 극장박물관은 노이어 마르크트의 로브코비츠 궁전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이 처음 건축된 것은 1690년 경이었다. 그러니까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다. 원래 전에는 그 자리에 돼지 시장이 있었다. 필립 지그문트 폰 디트리히슈타인 백작이 이곳에 슈타트 팔레를 짓기로 했다. 호프부르크에서 가깝기 때문이었다. 건축은 궁정건축가인 조반니 피에트로 텐칼라가 맡았다. 그후 거장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얼라흐가 건물의 중앙 부분, 특히 현관 부분을 개축하였다. 그집을 1745년에 로브코비츠 가족들이 입수했다. 그로부터 로브코비츠 궁전이라고 불렀다. 로브코비츠 궁전이 가장 영화를 본 시기는 프란츠 요제프 막시밀리안 폰 로브코비츠 공자(프린츠)의 시기였다. 로브코비츠 공자는 당시 비엔나의 음악과 연극계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론이었다. 베토벤은 이 궁전에서 자주 연주회를 가졌으며 로비코비츠 공자에게 여러 작품을 헌정했다. 베토벤이 1804년에 작곡한 교향곡 3번도 이 곳에서 초연되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에로이카)이 초연된 방을 '에로이카 홀'이라고 부른다. 그런 유래가 있는 이 건물이 극장박물관이 되었다. 로브코비츠 공자가 소원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극장박물관은 한 마디로 무대에서의 위대한 순간들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극장박물관. 로브코비츠플라츠 2번지. 마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극장박물관의 소장전시품은 숫자로 보면 약 2백만점이 된다. 그중에서 무대 장면은 손으로 그린 스케치가 10만점 이상이나 된다. 유명한 연극 장면의 장치를 모델로 만든 전시품도 1천점이 넘는다. 중요 공연이나 유명 배우들에 대한 사진은 1백만장이나 된다. 유명 배우들이나 극작가, 작곡가들의 유품들도 무려 2천 점이나 된다. 오스카 코코슈카, 또는 프리츠 보트루바 등이 직접 디자인한 무대 의상들도 다수가 전시되어 있다. 인형극에 사용하는 인형들과 그림자 연극에 사용하는 도구들도 있다. 구스타브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인 '누다 베리타스'(Nuda Veritas)의 오리지널도 이곳에서 볼수 있다. 아르 누보 예술가인 리하르트 테슈너(Richard Teschner: 1879-1948)에게 헌정된 특별전시실도 있다. 가히 혁명적인 인물표현 방식인 피구렌슈피겔(Figurenspiegel)에 대한 전시가 되어 있다. 미술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의 건물이 재단장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2017. 11-2020. 8) 아카데미의 회화전시실의 전시품들이 극장박물관에 잠시 이전되어 전시되고 있다. 루벤스,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작품들을 볼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최후의 심판'도 전시되어 있다. 극장박물관은 슈타츠오퍼 뒷편이기 때문에 찾는데 어려움이 없다. 버스 3A를 탄다면 알베르티나에서 내리는 것이 가장 가깝다.


무대세트 모델


아우가르텐 도자기 공장 및 전시장(Wiener Porzellanmanufaktur Augarten: Porcelain Manufactory at Augarten). 유럽에는 수많은 명문 도자기 공장들이 있지만 비엔나의 아우가르텐은 명문 중의 명문이다. 아우가르텐은 유럽의 도자기 공장으로서는 마이쎈에 이어 두번째이다. 일찍이 1718년에 합스부르크 화실이 클라우디스 인노센티우스 뒤 파퀴어에게 도자기 제조를 허락한 것이 아우가르텐의 시초이다. 아우가르텐은 황실에 계속적으로 도자기를 공급하였다. 그리하여 1744년부터는 아우가르텐의 도자기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문양을 사용할수 있게 되었다. 과거 황실의 궁전이었던 아우가르텐에서 공장과 함께 전시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23년이었다. 예술적인 여러 단계에 걸쳐서 약 150점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그저 입이 벌어질 일이다. 전시장에서는 도자기가 유래된 내용으로부터 유럽에서의 도자기 열풍으로 인한 도자기 사업의 활성화,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 비엔나 예술가들에 의한 도자기 미술의 면모를 살펴볼수 있다. 아우가르텐의 도자기들을 알트 빈(Alt Wien)이라고 부른다. 아우가르텐 새공장에서의 제품과 비교하기 위해서이다. 주소는 2구 오베레 아우가르텐슈트라쎄 1번지이다. 지하철 U2의 타보르슈트라쎄에서 내려서 좀 걸어가면 찾을수 있다. 전차 역시 2번의 타보르슈트라쎄에서 내리면 된다. 홉 언 홉 오프를 이용한다면 아우가르텐/포르첼란마누팍투르(Augarten/Porzellanmanufaktur)에서 내리면 된다.


아우가르텐 도자기와 이에 사용된 오스트리아 제국의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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