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돈 카를로스 에피소드

정준극 2018. 6. 17. 05:56

돈 카를로스 에피소드


돈 카를로와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

 

[2개의 버전]

'돈 카를로'는 여러 버전이 있다.1867년 3월 11일 파리초연의 버전은 이틀후의 두 번째 버전과도 차이가 있다. 그런가하면 1872년에 나폴리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첫 번째 이탈리아 버전도 있고 1884년의 4막짜리 밀라노 버전도 있다. 밀라노 버전은 서막처럼 생각되는 막과 발레를 삭제한 버전이다. 이것이 오늘날 가장 자주 사용하고 있는 버전이다. 1886년의 모데나 버전은 5막을 유지하되 발레만 삭제한 것이다. 1867년의 프랑스 버전과 1884년의 이탈리아 버전은 레코딩과 DVD 모두 나와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짜 초연의 버전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수가 있다.

 

[실제의 돈 카를로스]

베르디는 역사적 인물인 스페인의 왕자 돈 카를로스를 실제 기록과는 상당히 차이나게 표현했다. 쉴러의 원작에도 돈 카를로스가 기형적인 인물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실제의 기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평이다. 돈 카를로스는 기형으로 생겼다. 게다가 꼽추였다. 성격은 겁이 많고 약했다. 그리고 가학적인 성격이었다. 1568년에 필립 2세는 아들인 돈 카를로스를 반역죄로 체포하여 스페인 대법원의 재판에 회부했다. 돈 카를로스는 재판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감옥에서 죽었다. 그것이 역사에 기록된 돈 카를로스의 모습이다.


돈 카를로 초상화. 1560년 소포니스바 안귀솔라(Sofonisba Anguissola) 작. 화가가 의도적으로 잘 그렸다.

 

[사실과 전설]

베르디는 돈 카를로스의 최종 버전을 완성했을 때인 1883년에 출판가인 줄리오 리코르디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작품은 형태와 고귀한 센티멘트에 있어서 찬란한 작품이다. 그러나 실제의 돈 카를로스는 소심하고 화를 잘 내며 남에 대한 동정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물이었다. 또한 엘리사베스도 돈 카를로스와 사랑한 일이 결코 없었다. 포사(로드리고)는 상상적인 인물이다. 필립 2세의 치하에서는 그와 같은 인물이 존재할수 없었다. 필립은 종교재판소장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에게 그를 경계하라고 말했다. 필립은 온건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상 이 드라마에는 역사적인 사실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엘리사베스 드 발루아. 1565년. 후안 판토하 델 라 크루스(Juan Pantoja de la Cruz) 작.

 

[이단자에 대한 화형 장면]

돈 카를로스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은 종교재판에서 이단자로 낙인 찍힌 사람들에 대한 화형의 장면이다. 화형은 프랑스어로 Auto-da-fe라고 하는데 이는 라틴어의 actus fidei에서 비롯한 것이며 스페인어로는 auto de fe라고 한다. ‘신앙의 행위’(act of faith)라는 의미이다. 종교재판소에서 이단으로 판결 받은 사람들은 일반법에 따라 주로 화형에 처해졌다. 16세기와 17세기의 스페인에서는 화형이 스펙터클한 것을 좋아하는 군중들에게 인기였다. 그런데 오페라에 나오는 화형 장면은 대본의 바탕이 된 쉴러의 희곡에는 없는 내용이다.

 

파리 초연에서는 화형 장면에 수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다. 수백명의 합창단원과 엑스트라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대규모 장면이었다. 게다가 대규모 브라스 밴드가 무대 위에 올라와 팡파레를 연주하였다. 시각적으로나 음향적으로 그랜드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오페라에서 화형장면은 그 끔찍하도록 무서운 장면을 보기 위해 모인 수많은 군중들이 합창을 하고 고함치는 것으로 시작하고 역시 그들의 합창과 환호로서 마무리된다. 중세에는 사람들이 별로 구경꺼리가 없어서인지 죄인에 대한 처형이 있으면 만사를 제쳐 놓고 나와서 구경하였다. 오페라에서 노래와 찬양 중에 이단으로 몰린 사람들이 끌려 나올 때에는 무시무시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는 단조의 장송곡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장작더미에 불이 붙을 때 하늘로부터 신비한 소리가 들린다. 순례자에 대한 면류관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는 소리이다. 화형장면의 중간에 왕이 성당으로부터 나와 백성들에게 일장의 연설을 한다. 불신자와 이단자를 계속 처단하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천명하는 연설이다. 그러한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벌어진다. 첫 번째는 브라반트 공국의 사절단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등장하여 왕과 맞선다. 장대한 피날레는 사실상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필립 2세. 페루치오 푸르라네토

 

[네가지의 논란]

이 오페라에는 네가지의 중요한 사항이 제기되어 있다. 권력, 정치, 자유, 사랑에 대한 논란이다.

 

권력에 대한 논란

필립 왕과 종교재판소장간의 듀엣은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대화는 필립이 주도한다. 아버지로서 반항적인 아들을 정의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인지, 또는 양심에 따라 처형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 구절에서 필립은 어느 정도 자유를 동정하는 듯한 태도이다. 이어서 종교재판소장이 듀엣의 주도권을 잡는다. 그는 왕권에 대한 반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앙을 통합해야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왕의 충성스런 신하인 포사 후작(로드리고)이야 말로 반란을 부추기는 이단적인 인물로서 기독교 신앙의 통합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포사후작은 누구보다도 먼저 파멸되어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강철과 같은 저음의 두 베이스 소리가 부딪치는 곡이다. 오케스트라 반주는 역동적이고 흥분되어 있다. 두 사람의 듀엣에서는 세속적인 권세와 종교적인 권세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지가 논란의 대상이다. 16세기에는 당연히 종교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쉴러의 시대, 그리고 1867년의 베르디 시대에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였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이었다. 국가가 교회로부터 해방되는 시점이었다. 이 장면은 18세기 또는 19세기의 상황을 반영한 것 같다.

 

돈 카를로가 필립에게 플란더스로 보내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무대

 

정치에 대한 논란

또 다른 듀엣은 저음의 베이스인 필립과 포사의 듀엣이다. 두 사람의 듀엣은 그후 필립이 포사에게 말을 할 기회를 넘겨준다. 포사는 스페인의 참담한 억압으로 플란더스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며 플란더스에 대한 정책이 변경되어야 한다고 간청한다. 필립은 포사를 필요로 한다. 포사는 진실한 사람으로서 마음을 열고 인간적인 얘기까지도 나눌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포사는 필립이 왕비와 왕자의 의심스러운 관계에 대하여 속을 털어놓고 얘기할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필립은 포사가 자기를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립은 포사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도 해보지만 플란더스 반란의 배경에 카를로스 왕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이 들고부터는 플란더스에 대한 정책을 변경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비엔나 슈타츠오퍼 무대

 

자유에 대한 논란

2(이탈리아 버전의 1)에서 카를로스와 포사의 듀엣이 나온다. 우정과 자유를 다짐하는 듀엣이다. 포사는 카를로스로부터 그가 엘리사베스 왕비를 비밀스럽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포사는 친구의 비밀을 지켜주기로 한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포사는 그 대신 카를로스가 플란더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해 주기를 바란다. 듀엣의 마지막 부분은 대단히 고무적인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멜로디이다.

 

필립과 포사

 

사랑에 대한 논란

베르디는 마지막 버전에서 이 오페라를 신비하고 기이하게 끝을 맺기로 결정했다. 카를로스를 늙은 수도승이 나타나서 구원해 주는 것이다. 수도승은 카를로스의 할아버지인 카를로 5세의 음성으로 얘기한다. 그 전에 베르디는 아마도 이 오페라의 피날레를 카를로스와 엘리사베스의 작별의 듀엣으로 마무리 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사베스와 카를로스의 훌륭한 듀엣은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곡이다. 베르디는 이를 Duetto d'addio(이별의 듀엣)라고 불렀다. 엘리사베스와 카를로스는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수도원에서 만난다. 두 사람은 슬픔으로 체념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자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두사람은 포사가 죽은 것을 상기하고 그가 자기들에게 남긴 사명을 생각한다. 듀엣이 행진곡 풍으로 진행되는 것은 플란더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표현한다. 그러다가 템포가 느려진다. 눈물이 흐른다. 마지막은 소스테누토, 피아노이다. 길게 끌며 여리게 부르라는 표시이다. 체념을 의미한다. 두 연인은 언젠가는 하늘에서 다시 만날 것을 바란다. 더 나은 세상에서...


돈 카를로와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