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102.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말라 비타'

정준극 2019. 9. 12. 11:57

말라 비타(Mala vita) - The Wretched Life(비참한 삶)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3막 오페라

살바토레 디 자코모의 단편 '맹세' 바탕


움베르토 조르다노


움베르토 조르다노(Umberto Giordano: 1867-1948)라고 하면 푸치니, 마스카니, 레온카발로 등과 함께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프랑스 혁명시기의 이야기를 그린 '안드레아 셰니에'는 그의 대표적인 베리스모 작품이다. 조르다노는 생전에 14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첫번째 오페라는 그가 불과 21세 때에 내놓은 '마리나'(Marina)라는 것이었다. 당시 조르다노는 나폴리의 산 피에트로 아 마젤라(San Pietro a Majella) 음악원의 학생이었다. 그의 첫번재 오페라인 '마리나'는 실상 악보출판사인 카사 손초뇨(Casa Sonzogno)의 단막 오페라 경연에 응모한 작품이었다. 밀라노의 에도아르도 손초뇨는 1888년 7월에 이탈리아의 젊은 작곡가들로서 그들의 오페라가 한번도 무대에서 공연되지 못한 작곡가의 작품을 공모하여 우수작 3편을 로마에서 공연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조르다노는 '마리나'를 응모했다. 1890년 3월에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니콜라 스피넬리(Niccola Spinelli)의 '라빌리아'(Labilia), 빈첸조 페로니(Vincenzo Ferroni)의 '루델로'(Rudello), 그리고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1등상을 받았다. 가장 나이 어린 응모자인 조르다노의 '마리나'는 전체 73편의 응모작 중에서 6위를 차지했다. 주최측인 카사 손초뇨는 청년 작곡가인 조르다노의 음악적 재능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마리나'는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마리나의 뒤를 이어 나온 '말라 비타'는 '마리나'에 비하여 보다 성숙한 베리스모 오페라이다. '말라 비타'는 1892년 로마의 아르젠티나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조르다노가 23세 때였다.


'말라 비타'의 초연이 이루어진 로마의 아르젠티나 극장


청년학생 조르다노의 음악에 마음이 끌린 손쵸뇨의 음악 자문인 아민토레 갈리는 조르다노에게 일반적인 정상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민토레 갈리는 조르다노에게 1888년도에 연극 공연으로 대성공을 거둔 '말라 비타'를 제시했다. '말라 비타'는 살바토레 디 자코모의 단편으로 원래 제목은 '맹세'(Il vito)였다. 그것은 디 자코모와 고프레도 코녜티가 공동으로 극본을 완성하였다. '말라 비타'는 당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베리스모 연극이었다. 손쵸뇨 측은 '말라 비타'를 오페라로 만들면 역시 대인기를 끌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베리스모 오페라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대한 인기가 그야말로 선풍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조르다노가 '일 비토'를 오페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자 손쵸뇨는 대본가인 니콜라 다스푸로(Nicola Daspuro)를 대본가로 위촉하였다. 나폴리 출신의 다스푸로는 전에 마스카니를 위해 '친구 프리츠'(L'amico Fritz)의 대본을 쓴바 있다. 다스푸로는 조르다노와 협의하여서 새로운 오페라의 제목을 '말라 비타'로 정했다. 다스푸로는 오리지널 희곡에 나와 있는 나폴리 사투리 표현들을 일반 이탈리아어로 바꾸었다.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오리지날 대사에 충실하였다. 다만, 전체 스토리를 3막 오페라로 압축하지 않을수 없었기 때문에 오리지널 희곡의 1막은 삭제할수 밖에 없었다. 3막이지만 오페라의 공연시간은 74분밖에 되지 않았다. 마스카니의 단막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공연시간보다도 짧은 것이었다.


'말라 비타'의 무대. 십자가 기도처에서 맹세하는 비토


조르다노의 음악은 나폴리 특유의 음악을 대폭 사용한 것이다. 그런 점은 특히 3막에서 볼수 있다. 비토의 세레나데인 '사랑의 노래'(Canzon d'amor), 여인들이 피에디그로타(Piedigrotta) 축제의 장소로 떠나면서 한바탕 추는 타란텔라(Tarntella), 그리고 아네티엘로가 축제를 위해 마련한 노래인 Ce sta, ce sta nu mutto ca dice accussi 에서 볼수 있다. 아네티엘로의 노래는 나폴리 방언으로 부르도록 되어 있다. 디 지코모가 이 오페라를 위해 특별히 쓴 가사이다. 거친 자갈모래와 같은 베리스모인 '말라 비타'는 어떤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19세기 초 나폴리 인근의 어떤 빈민가이다. 폐병에 걸려 고통받고 있는 머리 염색기술자인 비토와 창녀인 크리스티나, 그리고 비토의 정부인 아말리아의 삼각관계를 다룬 내용이다. 비토는 만일 하나님이 자기의 병을 낫게 해준다면 크리스티나와 결혼하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그 맹세가 과연 지켜지는지는 두고 보아야 할 문제이다.


나폴리 지방의 민속춤인 타란텔라. 베르나르델 그림. 1886년


1892년 2월 21일 로마의 아르젠티나 극장에서의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당대의 테너 로베르토 스타뇨(Roberto Stagno)가 비토의 이미지를 창조하였으며 소프라노 젬마 벨린치오니(Gemma Bellincioni)가 크리스티나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조르다노와 출연진은 24번의 커튼 콜을 받아 무대에 계속 나와야 했다. 다음 공연은 나폴리의 테아트로 산 카를로였다. 같은 출연진이었다. 그런데 1892년 4월 26일의 나폴리 공연은 난장판이었다. 관중들이 야유 소리를 지르고 조롱하였다. 다음날 신문의 평론들도 모두 공격적이었다. 이름난 저널리스트인 유제니오 사케르도티같은 사람은 도무지 음악을 들을수 없었다고 한탄하였는데 왜냐하면 시작부터 산 카를로의 무대는 마치 개들이 짖어대는 커다란 개집과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산 카를로에서 그런 비난의 나온 배경은 다른데에 있었다. 나폴리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극장인 산 카를로의 고귀한 무대에 불결하기가 이를데 없는 빈민가를 만들어 놓았으며 스토리 자체도 천박하여서 참을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 무대인데 당대의 스타뇨와 벨린치오니가 쓰레기 더미가 쌓인 곳이며 죄악으로 물든 감옥과 같은 장소, 즉 사창굴이 있는 장소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또 다른 평론가는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 출연하는 바로 그 장소가 나폴리의 마을이라는 것은 나폴리 시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면서 비난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대본을 쓴 다스푸로는 나폴리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대본의 무대를 1810년으로 되돌렸다. 당시로부터 80여년 전의 모습이기 때문에 관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공연에서는 출연자들이 예전의 의상이 아니라 1890년대 당시의 의상을 입고 나왔기 때문에 헛수고가 되었다.


초연에서 크리스티나의 이미지를 창조한 젬마 벨린치오니


나폴리에서 실패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비엔나에서는 상당히 따듯한 환영을 받았다. 당시에 나폴리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 아래에 있었다. 마침 비엔나에서는 국제음악-극장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회 기간 중에 '말라 비타'를 비롯해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친구 프리츠', '팔리아치'가 공연되었다. 이탈리아의 베리스모가 처음으로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에서 선보였던 것이다. 독일 출신의 평론가인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는 '무자비하면서도 진실에 넘쳐 있는 '말라 비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지만 동시에 거부반응을 주기도 했다. 마에스트로 조르다노의 음악은 상황에 적합한 음악을 거칠게 엮은 효과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부드러운 장면도 감동적이었다. 예를 들면 크리스티나가 처음 등장할 때의 음악이다. 조르다노의 드라마적인 센스는 음악적인 센스보다 더 강력하다. 그의 음악적 감수성은 그의 예술적 기교보다 더 강력하다'라고 말했다. '말라 비타'는 그 다음 해에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빈강변극장)에서 리바이발되었다. 1892년 12월에는 베를린의 크롤오퍼(Krolloper)에서 공연되었다. 이 때에는 Das Gelübde(맹세: 다스 겔뤼브데)라는 타이틀로 독얼어로 번역된 대본이었다. 프라하에서도 공연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테아트로 달 베르네), 볼로냐(테아트로 브루네티), 트리에스테(폴리테아마 로세티) 등지에서 공연되었다.


아말리아와 비토. 웩스포드 오페라 페스티발


그러다가 1893년 이후에 '말라 비타'는 오페라 무대에서 볼수 없게 되었다. 다른 베리스모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그들의 그늘에 가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조르다노는 '안드레아 셰니에'로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조르다노는 극장들이 찾이 않는 '말라 비타'를 되살려기로 결심했다.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1894년에 다스푸로의 도움을 받아 수정 버전을 완성했다. 이번에는 오리지널에 비하여 되도록이면 지저분하고 천박한 베리스모의 모습을 약화시키고자 했다. 이탈리아 관중들의 구미에 맞추려고 노력한 것이다. 무대배경도 나폴리의 빈민가가 아니라 나폴리 근교의 주택지인 아레나키아로 옮겼다. 사창굴은 사라졌다. 크리스티나는 창녀가 아니라 그저 과거에 비극적인 경험이 있는 변신한 여인 쯤으로 그렸다. 피날레도 변경했다. 크리스티나가 사창굴로 돌아와서 문을 쾅 닫는 장면 대신에 강으로 몸을 던지는 것으로 바꾸었다. 주색에 빠져 방탕의 생활을 하는 아네티엘로의 모습은 완전히 삭제하였다. 수정 버전은 '말라 비타'가 아니라 '일 보토'라는 제목이었다. 1897년 11월 밀라노의 테아트로 리리코에서 초연되었다. 엔리코 카루소가 비토의 역할을, 로시나 스토르키오(Rosina Storchio)가 크리스티나의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관중들이나 평론가들 모두를 감동시키지 못했다. 평로낙인 알프레도 콜롬바니는 시민에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흥미를 끌거나 감동을 주는 것도 없다'고 썼다. 그후 '일 보토'는 몇 차례의 공연만 있었고 오페라 극장의 레퍼토리에서 제외되었다. 그후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되었다. 오리지널 '말라 비타'가 2002년 12월에 포지아의 움베르토 조르다노 극장에서 제작되어 관심을 끌었다. 이 공연은 DVD로 만들어져 본조반니(Bongiovanni) 상표로서 2003년 발매되었다.


피에디그로타 축제 장면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초연에서 비토의 역할은 로베르토 스타뇨였으며 크리스티나는 젬마 벨린치오니, 아말리아는 엠마 레오나르디였다. 시기는 1810년이며 장소는 바소 포르토(Bassoi Porto) 구역의 빈민가이다. 피에디그로타 축제가 열리기 며칠 전이다. 피에디그로타 축제는 나폴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종교축제이다. 통상 매년 9월 7-8일 이틀간 열린다. 나폴리의 키아이아(Chiaia) 구역의 산타 마리아 디 피에디그로타 교회 광장이 본무대이다. 13세기 또는 14세기부터 이어져 온 이 축제는 옛날 로마시대의 지하묘지(카타콤)에서 성모의 조각상이 발견된 것을 기념하여 축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축제에서는 나폴리의 전통 민속 춤인 타란텔라가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이는 지금까지 나폴리와 폼페이를 통치하여온 군왕들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 비토(Vito: T). 폐병에 걸린 염색공

- 아네티엘로(Annetielo: Bar). 마부

- 크리스티나(Cristna: S). 창녀

- 아말리아(Amalia: Ms). 아네티엘로의 부인으로 비토의 정부

- 마르코(Marco: Basso cantante). 이발사

- 눈치아(Nunzia: Ms). 헤어드레서


크리스티나와 아말리아. 웩스포드 오페라 페스티발


[1막] 비토의 염색 상점이 보이고 그 앞의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헤어드레서인 눈치아가 사람들에게 폐병에 걸린 비토가 조금전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다고 전한다. 이발사인 마르코를 비롯해서 몇몇 사람들은 비토가 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그가 아네티엘로의 부인인 아말리아와 불륜관계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떠들어 댄다. 그때 비토가 모습을 보인다. 기침을 할 때 나오는 피를 손수건으로 겨우 막고 있다. 비토의 친구들이 그를 둘러싸서 걱정해 주고 있다. 비토의 모습이 보이자 사람들이 순간 잠잠해 진다. 비토는 사람들에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눈치아가 그러지 말고 하나님께 고쳐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한다. 비토는 근처에 있는 십자가 기도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다. 비토는 기도를 드린후 대단히 감동적인 노래를 부른다. '오 나의 예수여...'(O Gesu mio...)이다. 그는 하나님께 용서해 줄것과 병을 고쳐 줄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만일 그렇게 해 준다면 가장 비천한 여인인 창녀와 결혼하여 그여인을 죄악생활로부터 구하겠다고 맹세한다.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와 성모에게 맹세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어서 만일 맹세를 지키지 않는다면 사람으로 취급 받지 못했다. 사람들이 흩어지자 아말리아가 나타난다. 아말리아는 기도하고 있는 비토 앞에 서서 그의 기도를 하면서 창녀와 결혼하겠다느니 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을 요하라고 구한다. 비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 가게로 들어간다.


아네티엘로가 나타난다. 아직도 술에 취해 있는 듯하다. 아네티엘로는 부인이 비토와 불륜관계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말이다. 아네티엘로는 이발사인 마르코에게 방금 전에 비토가 창녀와 결혼하겠다고 한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 마르코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네티엘로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듯 하더니 이내 앞으로 있을 피에디그로토 축제를 축하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광장에 있던 아이들과 다른 사람들도 아네티엘로의 노래에 합세한다. Tutto e gia pronto 라는 노래이다. 노래를 마친 그는 다시 술 생각이 났는지 주점 안으로 들어간다. 비토가 광장에 나타나서 마침 그곳에 있는 마르코와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창녀의 집 창문에서 누가 꽃 한송이를 던진다. 꽃은 비토의 발 아래에 떨어진다. 창녀의 집으로부터 크리스티나가 광장의 분수에서 물을 길러 나온다. 비토는 크리스티나에게 꽃을 던진 사람이냐고 묻고는 물 한 모금만 마시게 해 달라고 말한다. 크리스티나는 말 없이 비토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는 그대로 떠난다. 비토가 그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크리스티나가 자기의 이름을 얼른 말해주고 그대로 떠나려고 한다. 비토는 크리스티나의 손을 잡고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말하면서 생활이 어떠냐고 묻는다. 그제서야 크리스티나는 비토에게 자기는 어떤 남자가 나타나서 자기를 사랑해주고 자기를 이 비참한 생활로부터 구해주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비토가 크리스티나에게 자기가 바로 그 남자라면서 크리스티나를 구해주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크리스티나가 기뻐한다. 아네티엘로가 주점에서 나온다. 이젠 아주 술에 더 취해 있다. 그는 비토를 놀리면서 크리스티나에게는 전에 창녀의 집에서 만난 여자인 것을 알고는 다시 추근댄다. 비토가 그런 아네티엘로를 밀어버리고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서 있는 크리스티나에게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큰 소리로 다짐한다. 그 소리를 들은 마르코, 아네티엘로,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비토가 타락한 여인과 결혼하겠다니 참으로 성자와 같다고 말한다. 크리스티나는 비토에게 존경을 바친다면서 그의 노예가 되겠다고 말한다.


[2막]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아말리아는 눈치아가 아직 오지 않고 있자 답답한 듯 창문을 연상 내다보고 있다. 잠시후 눈치아가 나타나자 아말리아는 비토와 크리스티나가 곧 결혼한다는 소문이 정말인지 다그쳐 묻는다. 눈치아가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말리아는 눈치아에게 창녀의 집에 가서 크리스티나를 데려오라고 말한다. 아네티엘로가 친구들과 함께 나타난다. 아네티엘로는 눈치아를 보자 추근대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장난치지만 눈치아가 아네티엘로를 밀어제치고 나간다. 멀쑥해진 아네티엘로는 친구들의 잔에 술을 붓고는 '브린디시'(축배의 노래)를 부른다. Le mogli, in genere, son capricciose 이다. 그런 아네티엘로를 보고 아말리아가 잔소리를 퍼부어 댄다. 아네티엘로의 친구들이 아네티엘로를 끌다시피하여 밖으로 나간다.


눈치아가 크리스티나를 데리고 아말리아에게 온다. 아말리아는 크리스티나에게 자기도 비토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으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면서 비토가 사랑해 준다고 하지만 크리스티나의 행복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말리아는 크리스티나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겠으니 비토와의 결혼을 없던 것으로 해 달라고 부탁한다. 크리스티나가 말을 듣지 않자 아말리아는 칼을 들어서 죽이겠다며 위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나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눈치아가 아말리아에게 제발 칼을 내려 놓고 침착하라고 간청한다. 눈치아가 크리스티나와 함께 나가자 비토가 아말리아를 만나러 찾아 온다. 비토는 아말리아에게 크리스티나를 그대로 놓아 두라고 말한다. 아말리아가 비토에게 지금까지의 관계를 생각해서 제발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지만 비토는 그렇게 할수 없다면서 거절한다.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진다. 아말리아는 비토의 품에 쓰러질듯 안긴다. 비토는 그런 아말리아를 더 이상 뿌리치지 못한다. 번개가 번쩍일 때에 아말리아의 집 밖에 비를 맞으며 서 있는 크리스티나의 모습이 보인다. 크리스티나는 창문을 통해서 비토와 아말리아가 서로 부등켜 안고 있는 모습을 본다. 크리스티나는 O Vito! Vito! 를 절규한다. 아말리아가 창문의 블라인드를 크리스티나의 얼굴 앞에서 닫아 내린다.


피에디그로토 페스티발의 광장. 예전에는 순수 종교 축제였으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일반 축제로 변모하였다.


[3막] 피에디그로타 축제의 날이다. 광장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비토가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Canzon d'amor - che l'ara d'or 이다. 여인들은 축제의 장소로 떠나기에 앞서 그들의 소망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 축제의 장소에서 사랑에 빠지게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이어 여인들은 열정적인 타란텔라 춤을 춘다. 아네티엘로가 축제의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과 함게 나타나서 먹고 마시자는 노래를 부른다. Ce sta, ce sta nu mutto ca dice accussi 이다. 아네티엘로는 사람들을 이끌고 축제의 장소로 떠난다. 광장에는 비토만 홀로 남아 있다. 비토는 하루를 쉬고자 상점 문을 닫는다. 그때 크리스티나가 다가와서 비토에게 아직도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비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사랑에 대하여는 알만 한 것은 다 안다고 대답하면서 창녀의 집을 가르킨다. 크리스타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서 눈물을 흘리며 상심한다. 비토는 크리스티나에게 미안한 감은 있지만 아말리아와 헤어질수는 없다고 말한다. 비토와 아말리아의 사랑의 끈이 너무나 강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축제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아말리아가 나타나서 비토에게 부탁한 마차가 곧 올 것이니 함께 축제의 장소로 가자고 말한다. 크리스티나는 비토에게 자기에게 한 맹세를 잊지 말것을 간청하고 마지막으로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비토는 크리스티나의 눈물을 보고 잠시 마음이 흐트러지지만 이제와서 마음을 변할수는 없다고 잘라 말하며 아말리아와 함께 마차를 타고 떠난다. 광장에 홀로 남은 크리스티나는 비토가 맹세를 했던 바로 그 십자가 기도처 앞에 서서 얼마나 비참한 생활에서 구해줄 사람을 기다렸는지에 대한 비탄의 노래를 부른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그의 소원을 거부하였다는 노래이다. Lascia quei cenci 이다. 무대 밖에서는 아네티엘로가 기타와 만돌린 반주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크리스티나는 무슨 결심을 한듯 갑자기 창녀의 집으로 뛰어간다. 크리스티나는 창녀의 집 현관 문을 쾅 닫고 그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막이 내린다.


영화 '일 보토'의 한장면. 아네티엘로와 아말리아와 비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