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셀다(Griselda)
안토니오 비발디,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 조반니 보논치니, 알레산드로 스칼라티, 쥘르 마스네의
'그리셀다' 총점검
괄티에로 왕의 지시를 받은 신하가 그리셀다의 딸 코스탄차를 죽이기 위해 강제로 데려가고 있는 장면.
유럽에는 '그리셀다'에 대한 전래민화가 있다. 가난하고 불쌍한 여인이지만 인내하고 순종하여서 나중에는 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 이야기 때문에 그리셀다라는 이름은 인내와 복종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 그리셀다라는 이름은 옛 독일어의 '그리스 힐드'(gris hild)라는 단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뜻은 '어두운 전투'라고 했다. 그것이 어찌어찌하다가 여자 아이의 이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얘기로 발전하더니 아예 그리셀다를 주인공으로 삼은 전래민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셀다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350년경에 이탈리아의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가 '데카메론'에 포함하여 쓴 '인내하는 그리셀다'이다. 보카치오의 '인내하는 그리셀다'의 줄거리는 대강 다음과 같다.
그리셀다는 살루쪼 후작인 괄티에리와 결혼한다. 괄티에리는 아내 그리셀다가 얼마나 순종하고 인내하는지를 테스트하고 싶었다. 어느날 괄티에리는 그리셀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아들과 딸)을 무슨 사연 때문에 죽이기로 했다고 말한다. 그리셀다는 남편이 결정한 일이므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두 아이들을 사형집행인에게 내어 준다. 물론 괄티에리는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리셀다가 모르게 두 아이를 저 멀리 볼로냐로 보내어 그곳에서 자라도록 한다. 괄티에리는 또 다시 그리셀다를 테스트한다. 이번에는 그리셀다와 이혼하겠다는 선언한다. 교황이 이혼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괄티에리는 그리셀다가 신분이 미천하므로 부인으로 삼을수 없어서 이혼하며 더 고귀한 여인과 결혼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혼 당한 그리셀다는 옛날 집으로 돌아가서 늙은 아버지와 함께 산다. 얼마후 괄티에리는 재혼한다고 발표하면서 그리셀다를 불러 신부가 될 여인의 하녀노릇을 하라고 시시한다. 신부는 12살 짜리 소녀이다. 실은 죽은 것으로 생각되었던 그리셀다의 딸이다. 괄티에리가 그리셀다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일부러 친딸을 결혼할 신부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셀다는 아무것도 모르고 두 사람의 행복을 빈다. 그제서야 괄티에리는 그리셀다에게 이제는 소년소녀가 된 아이들을 처음으로 보여주며 그동안 자기가 테스트했던 것이라고 말해 준다. 그리셀다는 사랑하는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후작의 부인으로서 행복한 생활을 한다.
유럽에서 그리셀다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여러 시인와 작가들이 작품에 남겼다. 14세기 이탈리아의 시인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크(Francesco Petrarch: - 1374)는 그의 '그리셀다 이야기'(Historia Grideldis)에 담았다. 이 저서는 페트라르크가 세상 떠난지 1백년 후에야 비로소 발간되었다. 영국의 조프리 초서(Georffrey Chaucer: c 1340-1400)는 1300년대 후반에 출판된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에 그리셀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신데렐라(센드리용)이야기를 처음으로 정리해서 동화집으로 펴낸 프랑스의 샤를르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는 1691년에 발간한 '살뤼스 후작부인'(La Marquise de Salusses) 또는 '그리셀리디의 인내'(La Patience de Griseldis)에 그리셀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인인 존 필립(John Phillip)은 그의 1565년도 희곡인 '인내하고 겸손한 그리실의 이야기'(The Commodye of Pacient and Meeke Grissil)에서 그리셀다의 이야기를 펼쳐보였다. 헨리 체틀, 토마스 데커, 윌렴 호튼 등이 합작한 극본인 '인내하는 그리셀'(Patient Grissel)도 있다. 1599년에 처음 공연되었다. 오페라로는 이제부터 소개할 비발디(1735 Griselda),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1718 Gridelda), 조반니 보논치니(1722 Griselda), 알레산드로 스칼라티(1721 La Griselda), 쥘르 마스네(1901 Griséldis) 등이 그리셀다를 주제로 삼아서 오페라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폴리 출신의 페데리코 리치(Federico Ricci: 1809-1877)가 작곡한 '그리셀다'도 있고 나폴리에서 활동했던 니콜로 좀멜리(Niccolo Jommelli: 1714-1774)의 '그리셀다'도 있다. 그런가하면 바로크 작곡가인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1751)도 오페라 '그리셀다'는 작곡했다. 이들 오페라의 대본은 주로 이탈리아의 아포스톨로 체노(Apostolo Zeno)가 만든 것이다.
산타 페 오페라의 무대. 그리셀다
먼저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Le Quattro Stagioni)로 유명한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그리셀다'를 소개한다. 3막의 드라마 페르 무지카, 즉 음악을 위한 드라마이다. 대본은 아포스톨로 체노가 1701년에 수정버전으로 내놓은 것을 바탕으로 당대의 극작가인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가 수정한 대본을 사용했다. 아포소틀로 체노의 대본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나오는 '인내의 그리셀다'를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비발디라고 하면 실내악곡이나 협주곡 또는 종교음악만을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비발디는 오페라에 있어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비발디는 90여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주장했으나 현재로서는 약 50편의 오페라만이 완성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중에서 20여편만이 스코아가 보존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20여편의 오페라를 완성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닐수 없다. 비발디의 '그리셀다'는 1735년 5월 18일 베니스의 테아트로 산 사무엘레에서 초연되었다. 비발디가 57세의 원숙한 시기에 완성한 오페라이다. 비발디의 '그리셀다'는 커다란 환영을 받았다. 음악도 음악이려니와 대본을 골도니가 마련했다는 유명세 때문이었다. 비발디는 특별히 초연에서 그리셀다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안나 지로를 고려하여서 그의 음역에 맞게 작곡을 했다고 한다.
'그리셀다'가 초연되고 나서 몇년 후에 비발디는 비엔나에 갔다가 여러가지로 힘들어서 향년 63세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리셀다'는 당연하듯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최근인 1978년 5월에 잉글리쉬 바흐 페스티발에서 콘서트 형식으로 처음으로 리바이발되었다. 오페라로 리바이발된 것은 1983년 영국의 벅스턴 페스티발에서였다. 미국에서의 리바이발은 2000년에 가서야 겨우 성사될수 있었다. 오늘날 비발디의 '그리셀다'는 거의 공연되고 있지 않지만 2011년에 산타 페 오페라가 페스티발 시즌에 과감히 공연하여 관심을 끌었다. 2011년에는 또한 호주의 시드니에 있는 핀츠구트(Pinchgut)오페라단이 네차례의 공연을 가진 일이 있다. 핀츠구트 오페라단은 이듬해에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콘서트 형태로 연주하였다. '그리셀다' 중에서 두 곡의 아리아가 아직도 콘서트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올라가고 있다. Agitata da due venti(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와 Dopo un'orrida procella(두려운 폭풍이 지나간 후에)이다.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시몬 컴스(Simone Kermes)가 이들 아리아를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 등장인물들은 테살리의 왕 괄티에로(Gualtiero: T), 왕비인 그리셀다(Cont.), 이들의 딸인 코스탄차(Costanza: S), 코스탄차를 사랑하는 아테네의 왕자 로베르토(Roberto: Sop. castrato), 테살리의 귀족인 오토네(Ottone: Sop. castrato), 괄티에로의 친구이며 로베르토의 형인 코라도(Corrado: Sop. travesti), 그리고 괄티에로와 그리셀다의 아들인 에베라르도(Everardo: silent)이다.
[1막] 이야기가 시작되는 때로부터 몇해 전에 테살리의 왕인 괄티에로는 어떤 가난한 양치기 소녀를 사랑하여서 결혼하였다. 그리셀다였다. 테살리는 오늘날의 그리스 중부에 있었던 고대왕국이다. 테살리의 신하들은 왕이 가난한 양치기인 그리셀다와 결혼한 것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후 그리셀다가 딸을 낳았다. 코스탄차이다. 괄티에로 왕은 신하들의 불평을 잠재우기 위해 딸을 죽였다고 발표했다. 실은 딸 코스탄차를 비밀리에 친구인 아테네 왕국의 코라도 왕자에게 보내어 기르도록 했다. 얼마후 그리셀다는 이번에는 왕자를 낳았다. 그러자 테살리의 백성들은 전보다 더 강력하게 그리셀다를 왕비로 받아들일수 없다면 폭동을 일으킬 기세였다. 괄티에로는 백성들에게 그리셀다를 왕비의 자리에서 추방할 것이며 새로 왕국에 맞는 왕비를 맞아들이겠다고 약속한다. 새로 왕비가 될 신부는 아테네 왕국의 코스탄차 공주라고했다. 코스탄차는 자기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고 자랐다. 마찬가지로 그리셀다도 코스탄차가 자기의 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코스탄차는 코라도 왕자의 동생인 로베르토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한데 나이많은 테살리의 왕과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절망에 빠진다.
[2막] 왕궁에서 추방당한 그리셀다는 양치기를 할 때에 지내던 옛날 집으로 돌아온다. 테살리의 귀족인 오토네는 전에 우연히 그리셀다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짝사랑을 하게 된다. 오토네는 실은 백성들을 부추켜서 그리셀다를 왕비의 자리에서 추방당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오토네는 그리셀다가 옛 집으로 돌오가자 계속 찾아와서 결혼하자고 추근댄다. 그리셀다가 완강히 거절하였음은 물론이다. 어느날 괄티에로 왕이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나왔다가 숲속에서 그리셀다와 마주친다. 괄티에로는 그리셀다를 다시 궁전으로 오게 하고 싶다. 그래서 오토네로 하여금 그리셀다를 납치하여 궁전으로 데려온다는 아이디어를 낸다. 다만, 왕비로서 다시 들어온다면 반대가 심할 것이므로 코스탄차의 하녀로 궁전에 데려온다는 계획이다. [3막]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네는 그리셀다에게 계속 집착한다. 괄티에로로서는 코스탄차와 결혼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그리셀다에 대하여 무어라고 조치를 취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토네에게 코스탄차와 결혼식을 치룬 후에 오토네와 그리셀다의 결혼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런 얘길를 들은 그리셀다는 크게 분노하면서 만일 오토테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괄티에로 왕은 그리셀다를 백성들 앞에서 포옹하며 '보시오 이 얼마나 정절스러운 여인이란 말인가'라고 말한다. 괄티에로 왕은 그리셀다를 다시 왕비로 삼는다. 이어 괄티에로와 코라도는 코스탄차의 진짜 신분을 밝힌다. 오토네는 괄티에로의 관용으로 용서를 받으며 코스탄차는 사랑하는 로베르토와 결혼한다.
다음으로 소개하는 오페라 '그리셀다'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Antonio Maria Bononcini: 1677-1726)의 작품이다.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는 모데나 출신으로 로마에서 활동한 작곡가이다. 3막으로 구성된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의 '그리셀다'는 아포스톨로 체노의 1701년도 대본을 조금 수정한 것을 사용하였다. 이 오페라는 오스트리아의 밀라노 총독인 막시밀리안 칼 폰 뢰벤슈타인(Maximilian Karl von Löwenstein)에게 헌정되었다. 폰 뢰벤슈타인 총독이 1718년 12월 26일 이 오페라가 밀라노의 테아트로 레지오 두칼에서 초연되는 날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이 오페라는 밀라노에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서 18세기에 이탈리아의 여러 곳에서 공연되어 환영을 받았다.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의 형인 조반니 보논치니도 1722년에 아포스톨로 체노의 대본으로 오페라 '그리셀다'를 작곡했다. 실은 동생의 것보다 더 인기를 끌었다. 등장인물들과 스토리는 비발디의 오페라와 거의 다름이 없다. 체노의 대본을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개하면, 테살리의 왕 괄티에로(원래는 카스트라토이지만 콘트랄토가 맡도록 함), 괄티에로의 부인인 그리셀다(소프라노), 풀리아의 왕자 코라도(테너), 코라도의 동생인 로베르토(소프라노 바지역할), 그리셀다의 잃어버린 딸인 코스탄차(콘트랄토), 시시리의 귀족인 오토네(베이스) 등이다.
코스탄차와 로베르토
앞에서도 말했듯이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의 형인 조반니 바티스타 보논치니도 오페라 '그리셀다'를 작곡했다. 대본은 아포스톨로 체노의 대본을 바탕으로 삼았지만 이탈리아의 시인인 파올로 안토니오 롤리(Paolo Antonio Rolli)가 일부를 수정한 것이다. 그래서 비발디나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의 '그리셀다'에 비하여 내용이 조금 다르다. 코라도는 대본에서 배제되었다. 다른 세명의 이름은 바뀌었다. 즉, 오토네는 람발도, 코스탄차는 알미레나, 로베르토는 에르네스토로 변경하였다. 조반니 바티스타 보논치니의 '그리셀다'는 1722년 2월 22일 런던의 킹스 테아터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은 성공적이어서 그후 4개월 동안 여러번 공연되었다. 런던 공연이 성공적이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타이틀 롤을 맡은 아나스타시아 로빈슨의 연기와 노래가 너무나 뛰어나서였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에르네스토의 아리아인 Per la glorioa d'adoravi(사랑하는 사람의 영광을 위해서)는 유명하여서 오늘날에도 콘서트의 레퍼터리로 사랑을 받는 것이다. 이밖에도 괄티에로의 아리아인 Dolce sogno, deh le porta와 Volgendo, a me lo sguardo도 유명하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테살리의 왕 괄티에로(원래는 카스트라토가 맡도록 되어 있으나 콘트랄토가 맡는다), 괄티에로의 부인인 그리셀다(콘트랄토), 알미레나를 사랑하는 에르네스토(원래는 카스트라토가 맡도록 되어 있으나 소프라노가 맡는다), 그리셀다와 괄티에로의 딸인 알미레나(소프라노), 시실리의 귀족인 람발도(베이스)이다.
무대는 시실리의 팔레르모 인근이다. 괄티에로는 마을에서 우연히 농부의 딸 그리셀다를 만나 사랑하게그리셀 되고 오랫동안 애인으로 삼아서 만나왔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결혼했다. 그러나 귀족들이 그리셀다를 왕비로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 태산같다. 귀족들은 이 일로 인하여 반란까지 일으킬 기세이다. 괄티에로 왕은 그리셀다가 왕비로서 손색이 없고 다음번 왕위 계승자의 어머니로서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키로 결심한다. 괄티에로 왕은 그리셀다에게 가혹할 정도의 시련을 주어서 그것을 견디어 내어 덕이 있고 정절이 높은 여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괄티에로 왕은 시련의 한 방법으로서 그리셀다에게 어릴 때 실종된 딸 알미레나가 실은 자기의 명령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거짓으로 말한다. 괄티에로는 그리셀다를 궁전에서 추방하고 다른 여인과 새로 결혼할 생각임을 밝힌다. 괄티에로 왕이 새로 결혼코자 하는 여인은 실은 그동안 숨겨 놓았던 딸 알미레나이다. 그런데 알미레나는 에르네스토를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괄티에로 왕이 자기와 결혼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자 크게 실망한다. 한편 궁전에서 추방당한 그리셀다는 예전에 살았던 작은 오두막집으로 돌아온다. 시실리의 귀족인 람발도가 그리셀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싶어한다. 그리셀다가 람발도의 청혼을 거절하자 앙심을 품은 람발도는 만일 자기와 결혼하지 않으면 그리셀다의 어린 아들인 레베라르도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그리셀다는 람발도의 협박이 두려워서 오두막집을 나와 발길 가는 대로 도망간다. 그리셀다가 무심코 향한 곳은 예전에 살았던 궁전이었다. 그리셀다는 궁전에서 새로 왕비가 될 알미레나의 하녀로 일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괄티에로는 그리셀다에 대한 마지막 테스트로서 그리셀다에게 람발도와 결혼하라고 말한다. 그리셀다가 람발도와의 결혼을 완강히 거절하자 그제서야 괄티에로 왕은 그리셀다야 말로 순수하며 정절이 높은 여인이라고 높이 찬양한다. 이제 그리셀다는 왕비의 자리에 다시 앉게 되며 죽었다고 믿었던 딸이 실은 괄티에로 왕과 가짜로 결혼하려 했던 알미레나인 것을 알게 된다. 한편, 그리셀디를 부인으로 맞아 들여서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자 했던 람발도는 괄티에로 왕의 자비로 용서함을 받는다. 해피엔딩이다.
현대적 연출의 '그리셀다'.
시실리의 팔레르모 출신이지만 나폴리에서 주로 활동했던 알레산드로 스칼라티(Alessandro Scarlatti: 1660-1725)도 '그리셀다'를 작곡했다. 대본은 아포스톨로 체노의 것을 바탕으로 삼았지만 무명씨가 수정한 것을 사용했다. 반복하는 설명이지만 체노의 대본은 이미 안토니오 마리아 보논치니가 오페라에 사용하였으며 훗날 토마소 알비노니, 조반니 바티스타 보논치니, 안토니오 비발디 등이 사용한 것이다. 스칼라티의 '그리셀다'는 1721년 1월에 로마의 테아트로 카프라니카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그런데 이 공연은 출연자가 모두 남자였다. 다섯명의 카스트라토와 한명의 테너가 출연한 것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체노의 대본을 사용한 다른 오페라들과 다를바가 없다. 다만, 괄티에로를 테살리의 왕이 아니라 시실리의 왕으로 설정한 것이 다를 뿐이다. 괄티에로는 카스트라토(후에는 콘트랄토)가 맡도록 했으며 그리셀다도 카스트라토(후에는 소프라노 트라베스티)가 맡도록 했다. 괄티에로와 그리셀다의 딸인 코스탄차 역시 카스트라토(후에는 소프라노 트라베스티)가 맡도록 했으며 오토네는 카스트라토(후에는 알토)가 맡도록 했다. 아풀리아의 왕자인 코라도는 테너가 맡도록 했고 코라도의 동생인 로베르토는 카스트라토(후에는 소프라노)가 맡도록 했다. 그리셀다의 아들인 에베라르도는 사일렌트 역할로 설정했다. 시놉시스는 체노의 대본을 사용한 다른 오페라들과 같기 때문에 생략한다.
아름다운 그리셀리디스
오페라 '마농' 또는 '타이스'로 유명한 프랑스의 쥘르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도 그리셀다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리셀리디스'(Grisélidis)라는 프롤로그와 3막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오페라이긴 하지만 마스네는 콩트 리리크(conte lyrique)로 분류하였다. 서정적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프랑스어 대본은 아르망 실베스트르(Armand Silvestre)와 외진 모랑(Eugéne Morand)이 공동으로 작성한 것으로 이미 코메디 프랑세에서 연극으로 공연된 대본이다. 그리고 대본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중세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화를 바탕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토리는 테살리 또는 시실리가 아니라 14세기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을 배경으로 삼았다. 타이틀 롤인 그리셀리디스는 양을 치는 처녀로서 그 지방을 통치하는 후작과 결혼하지만 악마가 그리셀리디스의 정절을 테스트한다는 내용이다. 악마가 아무리 그리셀리디스에 대하여 모함을 해도 남편인 후작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으며 결국 악마가 굴복한다는 스토리이다. 마스네는 '그리셀리디스'를 1894년에 완성했지만 그해에 무대에 올리지 않고 몇년을 지내다가 1901년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을 가지기 전에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그리하여 1901년 11월 20일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는데 타이틀 롤은 당대의 소프라노인 루시앙느 브레발(Lucienne Bréval)이 맡은 것이었다. '그리셀리디스'는 초연 이후 오페라 코미크에서 첫 6개월 동안 50회의 공연을 기록했다. '그리셀리디스'는 1902년에 니스, 알지에, 브뤼셀, 밀라노에서 공연되었고 1903년에는 마르세이유에서, 그리고 파리 오페라에서는 1922년에 공연되었다. 오늘날 '그리셀리디스'는 스탠다드 레퍼터리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공연되고 있는데 이는 음악이 감미롭고 서정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토리의 전개가 유려하기 때문이다. 근자에 공연된 경우는 1982년 웩스포드 페스티발, 1986년에 스트라스부르와 리에즈, 1992년에 상티엔느(콘서트 형식)에서였다.
등장인물에 있어서도 체노의 대본에 의한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리셀리디스(S), 살루세 후작(Marquis de Saluces: Bar), 악마(B), 휘아미나(Fiamina: S), 하녀인 베르트라드(BertradeL: S), 그리셀리디스의 아들인 로이스(Loys: S), 공드보(Gondebaud: Bar), 수도원장(The Prior: B), 알랭(Alain: T) 등이다. 이밖에도 기사들, 정령들, 밤의 소리들, 하인들, 천상의 음성들이 등장한다. 살루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에는 이탈리아 영토이다. [프롤로그] 숲속의 저녁이다. 목동인 알랭이 그리셀리디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냥을 나온 후작이 그리셀리디스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서 급기야는 청혼을 한다. 그리셀리디스는 후작의 진심을 알고서 청혼을 받아 들인다. 알랭의 실망이 크다. [1막] 그로부터 4년이 지난다. 그리셀다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남편 후작은 십자군 전쟁을 위해 떠난다. 후작의 하인이 후작에게 전쟁에 나간 중에 그리셀다를 연금하겠다고 제안한다. 당시에는 십자군에 나가는 기사들이 부인의 정절을 믿지 못하여서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정조대라는 것을 부인에게 채워주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배경에서 하인은 후작에게 그리셀리디스를 감금하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후작은 그런 제안을 거부하여 그리셀리디스를 완전하게 믿는다고 말한다. 악마가 후작과 하인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악마는 후작의 귀에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후작이 집에 없는 사이에 그리셀리디스를 유혹하여 쾌락을 즐겨보겠으니 허락하겠느냐는 제안이다. 후작은 그리셀리디스를 믿으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해서 악마의 제안을 허락한다. 후작은 심지어 악마에게 반지를 빼어주며 약속의 징표로 삼도록 한다. 베르트라드가 그리셀리디스에게 율리시스(오딧세이)의 이야기를 해 주어 그리셀리디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2막] 그로부터 6개월 후, 어느 가을날 후작궁의 테라스이다. 홀로 있는 그리셀리디스는 멀리 떠난 남편에 대한 을 꾼다. 남편이 전쟁에서 죽는 슬픈 꿈이다. 교회의 종소리가 슬프게 들린다. 그때 노예상인으로 가장한 악마와 페르시아의 요염한 여인으로 가장한 악마의 부인이 그리셀리디스에게 후작이 맡긴 반지를 보여주며 후작이 그리셀리디스를 이미 버렸다고 전한다. 악마는 그리셀리디스의 마음을 흔들기 의해서 마법의 정원을 만들고 그곳에 아직도 그리셀리디스를 잊지 못하고 있는 알랭을 불러다 놓는다. 순간 그리셀리디스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럴 때에 아들 로이스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들의 모습을 본 그리셀리디스는 알랭에게 절대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셀리디스가 로이스를 붙잡으려고 하자 악마가 로이스를 재빨리 데리고 사라진다. [3막] 후작궁에서는 하인들이 로이스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그때 어떤 비굴스럽고 아첨끼가 흐르는 노인이 나타나서 그리셀리디스에게 해적이 로이스를 붙잡아 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리셀리디스가 자기에게 키스를 해 주면 아이가 풀려나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그리셀리디스가 갈등을 겪는다. 한편,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오던 후작은 도중에 어떤 노인을 만난다. 후작은 노인의 손에 자기의 반지가 끼어 있는 것을 보고 악마가 못된 장난을 하는 것을 눈치챈다. 노인(악마)은 후작에게 그리셀리디스가 옛 애인을 만나기 위해 해변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전한다. 그리셀리디스는 실은 해적에게 붙잡혀 있는 아들 로이스를 구하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음모를 알아차린 후작은 해변으로 가서 사랑하는 그리셀리디스를 반갑게 만나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그러자 아들 로이스가 풀려나서 아들 앞에 나타난다. 하늘에서 천사들의 노래가 들린다.
è é á ö ü 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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