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추가로 읽는 366편

364. 브리튼의 '컬류 리버'

정준극 2018. 8. 23. 16:30

컬류 리버(Curlew River)

벤자민 브리튼의 교회 공연을 위한 비유 드라마


'컬류 리버'가 처음 공연된 영국 서포크주 오르포드의 성바르톨로뮤 교회


영국의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은 오페라 부문에 있어서 16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장르별로 본다면 오페라 8편(빌리 버드, 베니스에서의 죽음, 한여름 밤의 꿈, 오웬 윈그레이브, 턴 오브 더 스크류, 피터 그라임스, 루크레티나의 능욕, 글로리아나), 오페레타 1편(폴 번얀), 발라드 오페라 1편(거지 오페라), 실내 오페라 1편(알버트 헤링), 종교 오페라 4편(노아의 홍수, 탕자, 컬류 리버, 불타는 용광로), 어린이 오페라 1편(꼬마 굴뚝 청소부)이다. 종교 오페라 중에서 탕자, 컬류 리버, 불타는 용광로는 이른바 '비유 오페라'(Parable Opera)라고 부른다. 비유로서 메시지를 전달코자 하는 오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 오페라는 '미스테리 오페라'(Mystery Opera)라고 부른다. 미스테리라고 하면 혹시 탐정 드라마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종교적이라는 뜻이다. 하기야 종교의 내용은 대부분이 신비스런 것이므로 종교 오페라를 미스테리 오페라고 부르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다. 세편의 비유 오페라 중에서 '탕자'(The Prodigal Son)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컬류 리버는 상상 속의 강이다. 극본에는 영국 중부의 앙글리아 지방에서도 동부 앙글리아(East Anglia)의 늪지대(Fenland)를 감돌고 있는 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컬류 리버는 상상속의 강이다. 그리고 사족이지만 컬류(Curlew)라는 단어는 도요새와 같은 새를 말한다. 마치 뱃사공의 노처럼 긴 다리에 긴부리를 가지고 얕은 물에서 먹이를 찾는 새이다.


아들을 잃어버려서 정신이상을 일으킨 여인이 아들을 찾으려고 길을 떠난다.


종교 오페라인 '컬류 리버'가 노(能: Noh)라고 하는 일본 전통 연극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하니 하필이면 일본의 연극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속은 상한다. 그렇다고 브리튼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므로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브리튼은 1956년에 일본을 비롯해서 극동지역을 여행한 일이 있다. 그때 우리나라에도 와서 춘향전도 보고 심청전도 보았으면 오페라로 만들수 있는 좋은 소재들을 발견할수 있었을 것인데 과문이지만 브리튼이 한국을 방문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하기야 우리나라는 김일성이 일으킨 3년간의 지독한 전쟁이 겨우 끝나고 정신이 없었을 때였으므로 우리나라에 와보았자 불편만 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브리튼은 토쿄에 있으면서 노를 두번이나 구경했다. 그중의 하나가 15세기 일본의 작가인 모토마사 주로(Motomasa Juro: 1395-1431)이 쓴 노 연극인 '수미다가와'(Sumidagawa)이다. 수미다가와(隅田川)는 토쿄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실존의 강이지만 연극에서는 상상 속의 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토쿄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수미다가와. 교량은 소부라인의 수미다가와 다리이다.


일본의 노(能) 연극인 '수미다가와'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브리튼이 감동을 받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장소는 수미다가와이며 주인공은 어떤 정신이상이 생긴 여인이다. 여인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을 희망으로 교토에서부터 토쿄 인근의 무사시까지 먼 길을 찾아온다. 무사시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무슨 중요한 일이 일어날것 같지 않은 마을이다. 연극은 나그네(와키)가 뱃사공에게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한 때에 어떤 여인이 나타난다. 옷 차림을 보니 귀족집 여인인듯 싶다. 그런데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정신이상인 것같다. 그 여인은 하나뿐인 아들이 노예 장사꾼에에 납치되어서 사라졌기 때문에 찾으러 길을 나선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인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 이곳까지 오게 했다고 덧붙여 얘기한다. 여인의 설명은 시를 읊는 것과 같다. 뱃사공은 강을 건너려는 미친 여인을 자기 나룻배에 태우는 것을 주저한다. 공연히 소란스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미친 여인에 대하여 동정하는 듯하자 마음을 바꾼다. 다만 한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그 여인이 자기를 위해 미친 여인의 춤을 춘다면 배를 태워 주겠다는 것이다. 그말에 여인은 모욕을 당한듯 정색을 하고 매우 점잖고 교양있는 교토 말로 '귀족 집안 사람으로서 그런 비천한 행동을 할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인은 '이세의 이야기'(이세 모노가타리: 伊勢物語)에 나오는 유명한 시구절을 낭송한다. '오 미야코의 새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름에 합당한 존재라면, 말해 주시오, 아직도 나의 사랑이 살아 있는지를'이다. 뱃사공과 배에 타려던 사람들은 여인의 시낭송에 감동하여서 비로소 여인을 배에 타도록 자리를 내준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인은 조건은 조건이므로 정말로 미친여자의 춤을 마친 신들린 것처럼 춘다. 모두들 감탄한다.


노 연극인 '수미다가와'의 한 장면


잠시후 미친 여인과 뱃사공과 나그네는 건너편 강변에서 무슨 이상한 노래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는다. 어떤 소년의 음성인듯 싶다. 뱃사공이 그제야 설명을 한다. 1년전 쯤해서 열두살 먹은 아이가 노예 장사꾼의 손에 이끌려 이곳까지 왔는데 그만 병에 걸려서 죽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 소년을 불쌍하게 여겨서 시신을 이곳 강건너에 묻었다고 한다. 미친여인을 죽은 아이가 틀림없이 자기 아들인 우메와카마루라고 믿는다. 여인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소리내어 운다. 뱃사공이 여인을 딱하게 여겨서 강 건너에 도착하자마자 여인을 소년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마을 사람들도 하나둘씩 모여든다. 마을 사람들은 만일 이 무덤이 아들의 무덤이라면 어서 제사를 지내라고 말한다. 여인은 처음에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기운을 차려서 겨우 몇마디 기원을 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이때 무덤 뒤에서 그렇게도 보고 싶던 소년이 나타난다. 실은 소년의 혼령이다. 여인이 손을 뻗어서 소년을 붙잡으려 하자 소년은 이내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느덧 아침이 온다. 여인은 절망 중에 홀로 무덤 곁을 지키고 있다. 이것이 수미다가와의 기둥 줄거리이다. 어떤 버전에는 소년의 혼령이 나타나지 않고 음성만 들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람들은 오늘날 수미다가와의 강변에 있는 모쿠보 절이 소년의 무덤이 있던 장소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모쿠보 절에는 우메와카를 기념하는 여러 상징들이 있어서 '수미다가와' 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미다가와의 강변에 있는 모쿠보 절(木母寺). 그림. 나무어머니절이라는 뜻이다.


브리튼이 '수미다가와'에 매력을 느낀 것은 스토리도 스토리이지만 무대에서의 액션이 유럽 드라마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신비하고 감동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배우들의 느린것 같으면서도 절제되어서 긴장감을 주는 연기, 대사와 독창과 합창의 복합적인 조화, 그리고 얼굴 표정이 아니라(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표정) 몸짓으로서 마음을 표현하는 신비스런 테크닉에 마음이 빼앗겼던 것이다. 브리튼은 15세기 교토와 에도(토쿄) 사이의 무대를 중세의 영국으로 옮겼다. 수미다가와의 대본을 영어로 옮긴 사람은 윌렴 플로머(William Plomer)였다. 오리지널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공연할수 있는 종교적 비유 오페라에 맞게 대본을 만들었다. '컬류 리버'는 1964년 6월 13일 영국 서포크의 오포드(Orford)에 있는 성바르톨로뮤교회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오리지널 캐스트는 미친여자를 브리튼의 평생 파트너인 테너 피터 피어스가 맡았고 나그네는 바리톤 브라이언 드레이크이 맡았다. 테너가 여자 역할을 맡은 특별한 경우였다. 뱃사공은 바리톤이며, 나그네도 바리톤이다. 소년의 영혼은 보이스 소프라노가 맡도록 했다. 그리고 수도원장은 베이스이다. 수도원장은 해설자 역할을 한다. 이밖에 세명의 복사(服事), 여덟명의 순례자로 구성된 합창단이 등장한다.


'수미다가와'의 주인공인 미친여자 시테.


'컬류 리버'는 종교적인 비유 오페라이기 때문에 일반 극장보다는 교회에서 공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교회에서 공연할 때에는 다른 비유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출연자들 모두가 행렬을 지어서 입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츨연자는 일단은 수도승들과 복사들, 그리고 일반인들로 구성된다. 일반인들은 오케스트라 멤버들이다. 이들은 행렬을 지어서 입장할 때에 모두 Te lucis ante terminum(이 날이 가기 전에 주님께)를 나즈막하게 부른다. 교회에서 종교 드라마를 공연할 때의 관례이다. 합창은 행렬을 지으면서 입장한 출연자들과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각기 자기들의 자기들의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 연후에 오르간으로 큐를 주면 수도원장이 해설자로서 등장하여 공연할 종교 드라마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소개한다. 이어서 수도승들과 복사들이 등장인물들의 의상을 입는 의식이 천천히 진행된다. 이를 Robing ceremony(의상식)라고 부른다. 의상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오케스트라가 매우 장엄한 음악을 연주한다. 수도승들과 복사들은 각기 미친여자의 역할도 맡으며 또한 나그네와 뱃사공의 역할도 맡는다. 이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순례자들과 함께 있는 매드우먼(미친여인). 알드버러 페스티발


미친여자와 나그네가 컬류 강변에 도착한다. 뱃사공이 한가롭게 앉아 있다. 미친여자, 나그네, 뱃사공은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다. 뱃사공의 역할은 순례자들을 나룻배에 태워 강건너로 데려다 주는 것이다. 미친여자가 이곳까지 오고 강건너로 가려는 목적을 설명한다. 1년 전쯤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미친여자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 못내 슬픔을 참지 못하는듯 소리쳐 운다. 그러더니 노래도 부른다. 강건너에서 미친여자의 외침과 노래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미친여자는 도요새(컬류)와 양들과 까마귀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순례자들은 미친여자의 외침이 너무나 절박하여서 놀란다. 미친여자는 자기의 아들이 어떤 수상한 사람의 손에 어떻게 잡혀 갔는지, 그리고 그후에 자기의 마음이 절망에 빠지게 되어 정신이 이상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뱃사공은 미친여자를 나룻배에 태우고 가는 것이 께림직해서 태워주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 여자를 측은하게 생각하여서 태워주자고 요청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기로 한다. 나룻배가 미친여자와 나그네를 태우고 강을 건너는 중에 뱃사공은 어떤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미친여자와 나그네.


한 일년전 쯤에 노예 장사꾼들이 어린 소년 하나를 납치해서 이곳까지 온 일이 있다고 한다. 그 소년은 저 멀리 블랙 마운틴 근처의 마을에서 살았었다고 한다. 블랙 마운틴 근처 마을은 미친여인이 살던 곳이다. 소년을 몹씨 아픈 몸이었다고 한다. 노예 장사꾼의 우두머리는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이가 소용이 없어서 강변에 그대로 둔채 떠났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불쌍한 소년을 돌보아 주었지만 얼마 못가서 결국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소년의 무덤을 강건너 양지바른 곳에 만들어 주었다. 뱃사공은 소년이 죽으면서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제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여기 이곳에 저를 묻어 주세요. 교회로 가는 이 길가에. 그러면 만일 우리 고향에서 온 나그네들이 이길을 지나갈 때에 그분들의 그림자가 저의 무덤을 스치고 가겠지요. 그리고 저를 기억해서 주목 한 그루를 심어주세요". 주목(朱木: Yew)은 일반적으로 묘지에 심는 상록수이다. 강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이의 무덤이 성스러운 곳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소년의 무덤에서 기도하고 나니까 몸의 병은 물론이고 마음의 병도 고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기적이었다. 뱃사공이 그런 얘기를 마치자 미친여자는 1년 전에 죽었다는 그 소년이 분명히 자기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뱃사공은 처음에 미친여자를 나룻배에 태워주지 않으려고 한다.


미친여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소년의 무덤을 찾아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기도가 끝나자 모두 함께 찬송을 부른다. 찬송이 한창 클라이막스에 오를 때에 이들의 찬미 소리에 마치 화답이나 하듯 어떤 소년의 음성이 들린다. 그러더니 소년의 혼령이 무덤 위에 나타난다. 마치 미친여자에게 자기가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해 나타난것 같다. 소년의 혼령은 미친여자에게 '어머니 평안히 가십시오. 죽은자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래서 복된 날에 우리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요'라고 말한다. 그러는 순간에 미친여자는 구원을 받으면 그의 정신은 온전하게 된다. 여인은 기쁨에 넘친 화려한 '아멘' 찬송을 소리 높이 부른다. 이어서 모두 함께 유니송으로 어머니와 아들의 만남과 하늘나라에서의 약속을 축하하는 찬양을 부른다. 이제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에 나왔던 의상식의 음악이 나오고 출연자들은 모두 자기들의 평상복으로 갈아 입는다. 해설자인 수도원장이 나와서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모든 회중에게 평안히 돌아가시라고 인사한다. 그런 후에 출연진 모두와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처음에 입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찬양을 부르며 퇴장한다. 컬류 강은 인생이면 누구나 한번은 건너야 하는 강이다. 컬류 강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무지에서 계몽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가는 강이다. 우리는 브리튼의 '컬류 리버'에서 미친여자가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정신이상이 회복되기 위해서 강을 건너야만 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미친여자의 역할은 남성이 맡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