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이야기/이런저런 에피소드

막달라 마리아, 그 이후의 이야기

정준극 2019. 2. 9. 11:21

막달라 마리아, 그 이후의 이야기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마리아와 함께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새벽에 예수님을 장사 지낸 무덤을 보러 갔다. 그때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무덤을 막아 놓은 큰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천사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그가 입은 옷은 눈 같이 희었다고 한다. 무덤을 지키던 사람들이 천사들을 보고 무서워서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한다. 천사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를 보고 말하기를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알고 있느니라'라고 말하였고 계속해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신던 대로 살아나셨으니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리고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너희가 만나리라고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라고 말했다. 이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섭기도 하지만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급히 돌아가려고 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자들을 만나서 '평한하냐'라고 물으셨다. 여자들이 너무나 두렵기도 하지만 기뻐서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예수님이 여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고 가라고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하셨다. 이상은 마태복은 28장 1절부터 10절까지 기록된 말씀의 내용이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자 예수님은 '내 몸을 붙잡으려 하지 마라. 아직 하나님께로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 뿐만이 아니라 신약의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16장 1절부터 11절까지에도 예수님의 부활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바,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하였다. 그러다가 눈들 들어 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컸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니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오른 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자 청년이 말하기를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전하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그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했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한편, 예수께서는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여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지만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였다.' [일곱 귀신을 쫓아내신 얘기는 누가복음 8장 2절에도 나온다. 기록된바, '또한 악귀를 쫓아 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하는 마리아와..]이다.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주장이 있다.

 

누가복음 24장 1절부터 10절까지에는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러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림이 이르된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녔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의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던 일을 어떻게 기술하였는지 알아보자. 요한복음 20장 1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소개한다. 다른 복음서보다 비교적 소상하게 기술하여 놓았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가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이다.


광야의 막달라 마리아


이상의 기록에서 볼수 있듯이 서로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중심에 있음을 부인할수 없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와 함께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 동산에 있는 아직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무덤에 장사 지내는 일에 동참하였고 안식일 다음날 새벽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으며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명령을 유일하게 듣고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처음으로 부활의 복음을 전한 사람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기록은 하나도 없다. 다만,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그로부터 40일 후에 승천하신 후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라고 생각되는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루살렘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사도행전 1장에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감람원이라고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자기들이 머물고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락방에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약 1백 20명이나 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도 여자들의 하나로서 그곳에 있으면서 기도에 힘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도행전에 약 1백 20명이나 되는 사람들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족이지만, 약 1백 20명이 모여 기도에 힘썼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의 교회의 교인 수는 약 1백 20명이 가장 적합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이란 곳에 모여서 기도에 힘쓴 것이 교회의 시작이며 훗날 세계를 변화시킨 기독교의 발판이 되었음은 말한 나위도 없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기독교를 일으킨 사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한 4복음서의 부활 장면의 기록만 보더라도 예수님을 따르던 여러 여자들 중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항상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4세기의 신학자인 성오거스틴은 막달라 마리아를 '제장 중의 제자'라고 표현했다.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의 일곱 귀신을 쫓아 내심.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어떤 활동을 하였는가?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일반적인 얘기는 제자들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사방으로 흩어져서 전도할 때에 막달라 마리아도 이들과 함께 전도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여서 난관이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도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더구나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처음 목격한 사람이 아니던가? 부활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가슴에 담고 지냈을 것이므로 누구보다도 사실적인 전도를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설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는 유대땅을 벗어나서 저 멀리 이탈리아의 로마로 갔다고 한다. 당시에 로마는 우상을 숭배하는 곳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의 말씀들을 전하였고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간증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얘기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는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라면서 외쳤다고 한다. 아무튼 막달라 마리아는 이 메시지를 가지고 온 이탈리아를 두루 다녔다고 한다.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작은 십자가를 상징적으로 들고 있다.


또한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Tiberius: 재위 14-37 AD)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유태의 귀족 집안 출신이므로 연줄연줄해서 그런 기회가 있었다는 얘기다. 막달라 마리아는 황제에게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상징으로서 계란 하나를 가지고 갔었다고 한다. 계란껍질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 마치 부활을 연상케 한다는 생각에서였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황제에게 갈릴리 사람 예수께서 유대 제사장들의 선동에 의해 죄인으로 몰려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레이트)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받아 죽임을 당했지만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었다고 말하면서 그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리그 이어서 우리 인간은 헛된 생활에서 속량되었지만 금이나 은에 의해서가 아니고 값진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해서라고 증거했다고 한다.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그러자 티베리우스 황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죽은 사람이 살아나다니 말도 안되는도다. 만일 그대가 가지고 있는 하얀 계란이 빨간색으로 변한다면 그럼 그대의 말을 믿으며 부활을 믿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순간 막달라 마리아가 가지고 있던 계란의 색깔이 아름다운 빨간 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모두들 놀랐으며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계란에 대한 이러한 에피소드로 인하여 그후 아름답게 색칠한 계란은 부활을 상징하게 되었고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부활주일에 계란을 나누어 가지는 아름다운 행사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계란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연계한 문서도 발견되었다. 옛날 그리스 시대에 양피지에 쓴 기도문이 테살로니카 인근의 성아타나시우스 수도원의 도서실에서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유월절, 즉 부활절에 수도원장이 수도승들에게 부활의 기쁨을 전하면서 계란과 치즈를 나누어 주었다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례는 사도와 같은 신분인 막달라 마리아가 처음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도 적혀 있었다.


계란을 가지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러시아정교회 성화


사족이지만 부활절 기간은 서구 기독교와 동구 정교회가 각각 다르다. 서구 기독교는 부활 주일로부터 7주 동안을 부활절 기간으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성령강림주일(Pentecost Sunday)이 되는 날까지의 50일간을 말한다. 그러나 정교회는 유월절로부터 시작하여 40일후 예수께서 승천하신 날까지를 부활절 기간으로 삼고 있다. 정교회에서는 부활절(Easter)라는 말 대신에 유월절(Pascha)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물론 일부 가돌릭과 개신교에서도 이스터란 말 대신에 파스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다. 유월절, 즉 파스커(Pascha) 또는 파스컬(Paschal)이란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유월절(Passover)를 뜻하는 페사크(Pesach)에서 비롯되었다.


예수님의 승천


그건 그렇고 아무튼 막달라 마리아는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에 가서도 복음을 전했다는 얘기가 사실처럼 전해내려 오고 있다. 훗날 사도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서한, 즉 로마서의 16장 6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마리아는 물론 막달라 마리아를 말한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막달라 마리아는 당시의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박해라는 위험에 처하여 있으면서도 교회를 위하여 충심으로 봉사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병들고 지친 사람들과 나이 많아 기력이 없는 사람들을 간호하였다고 한다. 그런 후에 사도 요한이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에베소로 가서 지내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곳에 장사지내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막달라 마리아의 무덤은 에베소에 있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사도 요한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에베소로 올 때에 성모 마리아도 함께 왔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에베소에서는 사도 요한,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함께 지냈다는 것이다. 지금도 에베소 근교의 숲에는 마리아의 집이라는 건물이 있다. 


터키의 에베소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납골당


막달라 마리아는 에베소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그의 유골은 9세기경에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로 옮겨져서 성라사로 수도원 교회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십자군 전쟁 때에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은 로마의 라테란 대성당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유골 중의 일부는 프랑스의 마르세이유 인근의 프로바즈(Provage)로 옮겨졌다고 한다. 프로바즈의 산기슭 아래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 중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아름답고 웅장한 교회를 지었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라테란 대성당 내부. 이곳에 콘스탄티노플로부터 가져온 막달라 마리아의 유골을 보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