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프랑스

프랑수아 조셉 고세크

정준극 2019. 4. 9. 19:37

프랑수아 조셉 고세크(François Joseph Gossec: 1734-1829))


프랑수아 조셉 고세크


고세크라고 하면 우리는 먼저 바이올린 소품인 '가보트'를 생각하게 되지만 그의 풀네임이 무엇인지,언제 활동했던 사람인지, 무슨 작품들을 남겼는지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고세크는 오페라, 현악4중주곡, 교향곡, 합창곡 등 여러 장르의 음악 작품을 남긴 뛰어난 작곡가이다. 고세크는 오스트리아에 속한 네덜란드의 프랑스 마을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에 둘러싸인 베르니스(Vergnies)라는 프랑스 마을이었다. 지금은 벨기에에 속한 지역이다. 고세크의 아버지는 소농이었다. 고세크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소질을 보여주었다. 소년시절에 앤트워프의 성가대원이 되어 노래를 불렀다. 고세크는 17세 때에 파리에 가서 당대의 작곡가인 장 필립 라모의 문하에 들어갔다. 고세크는 라모의 추천으로 어떤 부유한 사람의 개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일하였다. 그 사람은 말하자면 지방세무서장이나 마찬가지의 직분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무튼 그 사람은 음악 파트론이며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그러는 중에 그는 무엇인가 프랑스 음악의 발전을 위해서 기여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 기악이 발전되어야 한다고 소망했다. 그래서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였고 20세의 청년일 때에 첫 교향곡을 발표했다. 그후 그는 왕족인 꽁데 친왕(Prince de Condé)이 거느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몇 편의 오페라를 비롯한 몇 작품들을 작곡했다. 곧이어 고세크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760년에 초연된 '진혼곡' 때문이었다. 이 진혼곡의 연주가 있은후 고세크는 하루밤 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몇년 후인 1778년, 파리를 방문 중인 모차르트는 우정 고세크를 찾아가서 만난 일도 있다. 모차르트는 그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세크를 '참으로 좋은 사람이지만 아주 멋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라고 썼다. 어릴 때부터 고생해서 자란 고세크는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 이외에는 성공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베르니스에 있는 고세크 기념상


고세크는 1769년에 '아마추어 콘서트'(Concert des Amateurs)를 설립하였고 1773년에는 이 콘서트를 더욱 발전시켜서 '고귀한 콘서트'(Concert Spirtuel)로 재편성하였다. 고세크는 이 콘서트를 통해서 자기의 교향곡들을 직접 지휘아여 발표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파리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던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이나 현악 4중주곡들도 소개하였다. 고세크의 교향곡은 미안하지만 하이든의 교향곡 보다는 덜 사랑을 받았지만 그래도 대단한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가 고세크는 1780년대에 들어서서 교향곡 보다는 오페라에 더 치중하게 되었다. 그는 1784년에 에티엔느 메울과 함께 성악학교(Ecole de Chant)를 조직하였으며 아울러 프랑스 혁명군(Garde Nationale) 군악대의 지휘를 맡았다. 이어 1795년에는 메울 및 루이지 케루비니와 함께 새로 설립된 음악원(Conservatoire de Musique)의 감독관으로 임명을 받았다. 그는 이같은 공로로 레종 도뇌르의 명예를 받았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배한 후에 루이 18세는 음악원을 잠정 폐쇄하였다. 그리고 그때 81세의 고령이 된 고세크는 은퇴하지 않을수 없었다. 고세크는 그로부터 2년여 동안 그의 마지막 작품인 '테 데움'의 작곡에 전념하였고 그 후에는 노년의 생활을 보내며 지냈다. 테 데움은 과거의 고전 및 낭만시대의 음악과는 차원이 다른 발전적인 것이었다. 합창단만 하더라도 1천 2백명이 소요되는 것이며 목관악기 연주자는 3백명이 필요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의 다른 합창 작품은 여러 합창단이 동시에 연주하는 형식이며 한편으로는 합창단을 무대 뒤에 두어 보이지 않도록 하기도 했다. 고세크는 1829년, 향년 95세로서 파리 교외의 빠시(Passy)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는 케루비니 등 동료 작곡가들이 참석했다. 고세크는 파리의 페르 라셰스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지는 메울과 앙드레 그레트리의 묘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파리의 페르 라셰스 공동묘지의 고세크 묘지


고세크는 프랑스 혁명을 존중하여서 여러 작품을 작곡했다. 오페라 '공화국의 승리'는 물론이고 솔로와 합창곡인 '자유에의 헌신'(LOffrande á la Liberté)도 그 중의 하나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고세크라고 하면 '가보트'를 연상하게 되는데 사실 이 곡이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미국의 영화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워너 브로스는 만화 영화를 제작하면서 주제음악으로서 고세크의 '가보트'를 사용했던 것이다. 미국의 작곡가인 칼 스탈링(Carl Stalling: 1891-1972)이 편곡을 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영화는 '루니 튠스'(Looney Tunes)와 '메리 멜로디스'(Merrie Melodies)이다. 이들 만화영화 시리즈는 1930년부터 시작하여 1960년대 말까지 무려 30년이 넘게 미국은 물론 많은 나라 어린이들에게 꿈을 실어다 준 작품이었다. 미국 만화의 황금시기였다. '루니 튠스'와 자매 시리즈인 '메리 멜로디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벅스 버니(Bugs Bunny), 대피 더크(Daffy Duck), 포키 픽(Porky Pig), 엘머 퍼드(Elmer Fudd), 트위티(Tweety), 실베스터(Sylvester), 그래니(Granny), 요세미테 샘(Yosemite Sam), 포그혼 레그혼(Foghorn Leghorn), 마빈 더 마리탄(Marvin the Maritan), 페페 르 푸(Pepé Le Pew), 스피디 곤잘레스(Speedy Gonzales), 타스마니안 데빌(Tasmanian Devil), 로드 런너(Road Runner), 와일리 코요테(Wile E. Coyoe) 등이다.

  

가보트 춤을 추는 시골사람들. 가보트는 농민들 뿐만 아니라 궁정에서도 유행하였다. 고세크의 가보트는 유명하다.


사실 프랑수아 조셉 가보트는 프랑스 이외의 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이다. 그는 수많은 일반음악과 종교음악을 남겼지만 당시의 다른 작곡가들의 그늘에 가려서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러 후배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으며 특히 기악곡의 리바이발을 위해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오페라를 16편이나 남겼다. 대부분 오늘날에는 공연되지 않고 있는 것이어서 아쉽다는 얘기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세크의 오페라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Le tonnelier(술장수 또는 술통장이). 오페라 코미크. 1765년 ○ La faux Lord(가짜 영주). 오페라 코미크. 1765년 ○ Les pecheurs(어부). 오페라 코미크. 1766년 ○ Toinon et Toinette(투아농과 투아네트). 오페라 코미크. 1767년 ○ Le double déguisement(이중 분장). 오페라 코미크. 1767년 ○ Les agréments d'Hylas et Sylvie(일라스와 실비의 약혼). 파스토랄. 1768년 ○ Sabinus(사비누스). 트라제디 리리크. 1773년 ○ Berthe(베르스). 오페라. 1775년 ○ Alexis et Daphné(알렉시스와 다프네). 파스토랄. 1775년 ○ Philémon et Baucis(필레몬과 보시스). 파스토랄. 1775년 ○ La fete de village(마을 축제). 인터메쪼. 1778년 ○ Thésée(테세). 트라제디 리리크. 1782년 ○ Nitocris(니토크리스). 오페라. 1783년 ○ Rosine(로진) 또는 L'epouse abandonnée(버림받은 신부). 오페라. 1786년 ○ Le triomphe de la République(공화국의 승리) 또는 Le camp de Grandpré(그랑프레 병영). 디베르티세망 리리크. 1794년. 유명한 탕부랭(Tambourin) 음악이 나온다. ○ Les sabots et le cerisier(나막신과 버찌). 오페라. 1803년


'공화국의 승리'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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