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좀 더 알기/나사렛의 목수 요셉

나사렛 집중 탐구

정준극 2019. 5. 28. 22:55

나사렛 집중 탐구


나사렛(내저러스)은 예수님의 고향이며 마리아와 요셉의 고향이다. 하기야 요셉의 원래 고향은 베들레헴이라고 하지만 나사렛에서 살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근자에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이 마리아와 요셉의 집이 있는 나사렛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여 관심을 끌었다. 일단은 그건 그저 주장일 뿐이다. 나사렛은 갈리리 지방에 있다. 갈릴리 지방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나사렛은 갈릴리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그러나 전체 이스라엘에 있는 아랍인 중심의 도시로서는 가장 크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나사렛을 '이스라엘의 아랍 수도'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2018년 현재 나사렛 인구는 8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주민들 중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아랍 시민들이다. 약 70%가 무슬림이며 나머지 약 30%가 기독교인이다. 나사렛은 성서의 도시이다. 성서에는 나사렛이란 지명이 여러번 등장한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해서 나사렛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들이 많기 때문에 잊을수 없는 도시이다.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한 곳이며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은 곳이다. 그리고 헤롯을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온 예수께서 어린 시절을 노낸 곳이다. 기록으로는 열두살 때에도 나사렛에서 사신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수일을 했다. 가구를 만드는 목수일을 했겠지만 일설에는 로마의 요청으로 유태 죄인들을 처형하는 십자가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나사렛에는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예수님을 기념하는 이런 저런 건축물들이 있으며 그러한 사연으로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가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나사렛. 수태고지 교회가 우뚝서 있다.

             

나사렛이란 말은 히브리어의 네세르(neser)에서 나왔다고 한다. 네세르는 '가지'( branch)라는 뜻이다. 나뭇가지도 네세르이고 뿌리의 가지도 네세르이다. '가지'리고 하니까 이사야서 11장 1절의 말씀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기록된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한 것이요'이다. KJV에는 And there shall come forth a rod out of the stem of Jesse, and a Branch shall grow out of his roots이다.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에 의하면 A shoot will come up from the stump of Jesse; from his roots a Branch will bear fruit 이라고 되어 있다. 그 Branch 라는 단어가 원래 히브리어로는 neser 또는 netzer 이며 그것이 변해서 Nazareth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새(Jesse)는 다윗의 아버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이스라엘 왕의 자손이 나타나는 마을을 말한다는 것이다. 어떤 주장에 의하면 나사렛이란 말은 바빌론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대 땅으로 돌아와서 이 지역에 재정착하여 마을을 일구었는데 그 족속의 이름이 나사렛이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나사렛 마을

              

나사렛이란 단어는 히브리어의 나사르(nasar)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히브리어의 나사르는 '파수보다, 지키다'라는 뜻의 단어이다. 나사렛의 초창기 마을이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마치 파수대, 망루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런 단어가 발전하여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유태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의 장소를 나사렛으로 믿지 않고 있다. 나사렛의 아랍 명칭은 안 나시라(an-Nasira)이다. 나사렛에는 주민의 대다수가 아랍 사람들이므로 나사렛이란 영어 명칭보다 안 나시라라는 아랍어 표현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나사렛은 아랍어로 안 나시라라고 한다. 예수는 아랍어로 야수(Yasu)라고 하지만 안 나시리(an-Nasiri)라고도 한다. 아랍인이건 유태인이건 이름이 없으면 출신지방을 이름 대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우리식으로 보면 과천댁, 통진댁 등등 출신 마을을 이름 대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야수의 경우에도 나사렛 출신이기 때문에 안 나시리라고 불렀던 것이다. 코란에서는 기독교인들을 나사라(Nasara)라고 표현했다. 그 말은 안 나시리를 따르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말하자면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즉 기독교인들을 말한다.

                  

갈릴리 호수.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의 서편에 있다. 나사렛의 높은 곳에서는 저 멀리 갈릴리 호수가 보인다.

             

성경에 나사렛이란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누가복음 1장 26절이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이다. 나사렛을 갈릴리의 마을이라고 적었다. 역시 누가복음 2장 39절을 보면 '(마리아와 요셉과 예수가)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고 되어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신약성서에는 '나사렛 예수'라는 표현이 17번 등장한다. 그만큼 나사렛이란 마을이 성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반증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사렛은 마리아의 고향 마을이며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은 장소이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갔다가 나사렛으로 돌아와 정착했다고 되어 있다. 또한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최소한 12살 때까지 나사렛에서 살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께서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을 했다.


천사장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한 장소는 나사렛이다.


수태고지에 대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이 알고 있으면 좋을 네가지 사항이 있다. 하나는 메리마스(Marymas)라는 축일이 있다.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은 것을 축하하는 날이다. 로마 가톨릭은 메리마스를  3월 25일에 지킨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날인 크리스마스보다 정확히 9개월 전이다.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지만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10개월 동안 잉태되었다가 태어났다. 두번째는 수태고지 사건이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장 26-38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의 어린시절에 대한 사항은 마리아만이 설명하였다. 누가복음 2장 51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라고 되어 있다. 어린 예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마리아가 마음 속에 간직한다는 뜻이다. 세번째는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아주 특별한 문안인사를 했다는 사실이다. 누가복음 1장 28절을 보면,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영어성경에는 여러 번역이 있지만 두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국제버전에는 The angel went to her and said, 'Greetings, you who are highly favoured! The Lord is with you라고 되어 있고 킹 제임스 버전에는 As the angl came in into her, and said, Hail, thou that art highly favoured, tLord is with thee: Blessed art thou among women. 이라고 되어 있다. favoured one 이란 표현은 어떤 성경에는 full of grace 라고 되어 있고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요'라고 번역되어 있다. 성경에는 천사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수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천사가 Hail 이라고 인사부터 한 경우는 누가복음의 기록이 유일하다. 천사가 인간을 찬양한 것이다. 이것은 마리아가 구원의 역사에서 대단히 특별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인간을 지극히 총애하고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장 30절의 기록이 그것을 입증한다. 기록된바,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이다.


가브리엘의 수태고지. 그림에는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백합 꽃을 전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백합은 순결을 의미한다.


네번째는 가브리엘이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먼저 제시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장 31절을 보면,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한 것이다. '예수' 또는 히브리어의 '예수아'(Yeshua)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다'라는 뜻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남자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전하였다. 그리고 아기의 이름을 이미 지어주었던 것이다. 다섯번째는 마리아는 전생애를 통해서 동정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영원히 동정녀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성경에는 예수의 동생들이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무오잉태의 마리아


수태고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 길었음을 송구하게 생각하며 다시 나사렛의 중요한 이력만을 소개하자면, 아랍 무슬림이 638년에 나사렛을 침공한 것은 나사렛의 기독교인들과 교회에 즉각적인 파급영향을 끼쳐준 것이었다는 것을 먼저 얘기코자 한다. 당시에 나사렛에는 두 교회 있었다.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집, 즉 요셉의 집에 세운 교회와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다는 곳에 세운 교회였다. 그러나 유태인들의 회당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모스크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731년에 칼리프가 칙령으로 요셉 교회를 파괴하라고 했다. 그래서 수태고지 교회만 남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이 교회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우상을 섬기는 사라센(무슬림 아랍)에게 돈을 바쳤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11세기가 되었다. 사연이야 어떻든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은 1095년부터 1099년까지 4년 동안 이어졌다. 십자군의 탄크레드(Tancred)는 갈릴리 지역을 점령하고 나사렛을 이 지역의 수도로 삼았다. 로시니의 오페라로서도 유명한 탄크레드(탄트레디)는 예루살레 왕국의 봉신국가로서 갈릴리 공국(Principality)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1115년에는 나사렛이 갈릴리 공국 중에서도 영주가 다스리는 영지가 되었다. 나사렛은 로마 가톨릭의 오리지널 도읍이었다. 이를 라틴 패트리아크(Latin Patriach)라고 불렀다. 로마 가톨릭의 영지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1187년에는 나사렛이 다시 무슬림이 통치하는 마을이 되었다. 살라딘이 하틴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에 남아 있던 십자군과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은 유럽 본토로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성지 나사렛을 순례코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프레데릭 2세는 사라센, 즉 아랍 무슬림과 협상하여서 성지 순례자들의 안전 통행을 보장받았고 그후 1251년에는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왕비와 함께 나사렛까지 와서 수태고지 교회의 동굴에서 미사를 드리기까지 했다. 


제1차 십자군이 갈릴리 지방을 탈환하고 유태인들로부터 치하를 받고 있는 장면.

 

1263년에 나사렛은 또 한번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 맘루크(Mamaluk) 술탄인 바이바르스가 나사렛의 기독교 건물들을 모두 파괴하였고 이어 이 지역에는 로마 가톨릭의 사제들이 발을 들여 놓지 못하도록 했다. 바이바르스가 그렇게 한 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군을 모두 몰아내야 겠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유태교인에서 기독교인이 된 유태인들은 거의 모두 나사렛을 떠났지만 아랍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은 별로 갈데도 없고 해서 계속 나사렛에 남아 살았지만 나사렛은 이스라엘 북부의 대도시에서 가난한 마을로 전락하지 않을수 없었다. 당시에 나사렛을 간신히 찾아왔던 순례자들의 말에 의하면, 나사렛에는 겨우 수태고지 동굴만이 몇몇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람들에 의해 보존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584년에는 그나마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람들도 나사렛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당시에 나사렛은 오토만 시리아에 속해 있었다. 1620년에 나사렛을 통치하는 에미르인  화크르 알 딘 2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수태고지의 동굴에 작은 기도처를 만드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나사렛 성지순례를 위한 순례단을 모집하여 머나먼 길을 찾아왔다. 그러나 이들 순례자들은 나사렛 인근에 거처하고 있는 베두인족들로부터 고통을 당하였다. 베두인족들은 유럽에서 온 순례자들을 납치하여 속전을 받고 풀어주는 일을 했다. 다음에 온 갈릴리 통치자인 자히르 알 우마르라는 사람은 상당히 관대한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나사렛을 작고 가난한 마을로부터 규모가 큰 도읍지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나사렛 구시가지의 골목길


나사렛은 1947년 유엔 분할계획에 따라 아랍국가에 속한 지역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48년에 이른바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일어났다. 나사렛은 티베리아스, 하이파, 바이산 등으로부터 피난 나온 아랍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나사렛 자체는 1948년 전쟁 중에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랍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군이 포격을 가해오자 방어할 능력이 없어서 백기를 들고 말았다. 나사렛은 아랍 팔레스타인 소속에서 이스라엘 소속이 되었다. 아무튼 전쟁 때문에 난민들이 나사렛으로 몰려들자 나사렛은 큰 도시로 변화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나사렛을 차지하고서 계엄령을 실시하는 등 많은 제약을 내세웠다. 잘 아는 대로 나사렛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랍 마을이었다. 주민들의 대부분인 아랍인들이었다. 이스라엘이 군대로 강하고 압박하자 나사렛은 점차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센터가 되었다. 1958년 메이데이에 팔레스타인 측은 대규모 집회를 열고 나사렛을 아랍인들에게 돌려 줄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요구 중에는 이스라엘이 강제로 몰수한 토지의 반환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랍인들은 나사렛을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으로 삼기를 원했다. 그 당시의 계엄령은 1966년에 가서야 종식되었다. 그리고 1964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성지 나사렛을 방문하였다.


 1964년 1월 5일 교황 바오로 6세의 나사렛 방문


나사렛은 이스라엘에 있는 아랍 시민들의 정치적 센터가 되었다. 나사렛에서는 1975년 이래 매년 아랍인들이 주관하는 랜드 데이(Land Day)의 집회가 3월에 열린다. 그리고 5월에는 메이 데이 행사가 열린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지지하는 집회는 수시로 열린다. 1987년 12월에는 인티파다(Intifada)에 연대감을 보이는 대규모 파업이 있었다. 인티파다라는 것은 아랍어로 '흔들다' '몰아내다'라는 뜻인데 현대 아랍세계에서는 외세의 탄압에 저항하는 합법적인 봉기를 뜻한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는 88올림픽이 열리던 때에 나사렛에서는 대규모 항의 집회가 열렸다. 거의 5만명의 아랍인들이 데모에 참가했다. 인근의 아랍 마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그해 5월에는 나하리야에서 축구경기가 열렸는데 아랍 팬들과 유태 팬들 사이에 폭력사건이 일어났다. 유태인 청년 한명이 칼에 찔렸다. 이스라엘 경찰은 폭력행사에 가담한 아랍인들 54명을 체포하였다. 며칠후 나사렛에서 시위가 열렸다. 수천명의 아랍인들이 축구장에서의 아랍인 체포에 대하여 인종차별이라면서 항의하였다. 1997년에 나사렛 당국은 수천명 기독교 순례자들의 나사렛을 방문을 허락하였다. 수천명의 기독교 순례자들이 오기 때문에 이를 위해 수태고지 교회 앞의 광장을 포장하여 편의를 제공키로 했다. 그러자 일부 아랍 무슬림들이 광장을 점거하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 광장에는 십자군 전댕 당시 무슬림 영웅인 살라딘의 조카인 샤하브 알 딘이란 사람이 묻혀 있는 곳이기 때문에 파헤치면 안된다는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수태고지 교회의 앞 광장은 오토만이 학교를 세웠던 문화재적인 장소이며 또한 쉬하브 에딘의 영묘가 있었던 곳이다. 한편, 나사렛 당국이 광장의 한편에 커다란 모스크를 건설하는 것을 승인하자 이번에는 기독교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모스크 건설 계획은 2002년에 중단되었다. 아랍인과 유태인, 기독교인 사이의 분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1988년 나사렛에서의 아랍인에 의한 인티파다


나사렛에 있는 종교적 장소들을 소개한다. 우선 기독교 나사렛에는 10개 이상의 수도원과 교회가 있다. 대부분 구시가지에 집중되어 있다. 교회로서는,


- 수태고지교회(Church of Annunciation)는 아마 중동에서 가장 큰 로마 가톨릭 교회일 것이다. 로마 가톨릭에 의하면, 이 장소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한 곳이라고 한다. 누가복음 1장 26-31절을 참고하기 비란다.

- 성가브리엘교회(Church of St Gabriel)는 그리스 정교회가 주장하는 수태고지의 장소에 세워진 교회이다.

- 시나고그 교회(Synagogue Church)는 그리스 가톨릭교회가 세운 교회로서 그 장소에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신 시나고그가 있었다고 한다. 누가복음 4장을 참조하기 바란다.

- 성요셉교회(St Joseph's Church)는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이 목수일을 하던 장소에 세운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

- 멘사 크리스티 교회(Mensa Christi Church)는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운영하는 교회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는 장소에 세운 교회이다.

- 소년 예수교회(Basilica of Jesus Adolescent)는 살레지안 교단이 운영하는 교회로서 나사렛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 그리스도교회(Church of Christ)는 나사렛에 있는 앵글리칸 교회(영국 성공회)이다.

- 성모의 두려움 교회(Church of Our Lady of the Fright)는 회당에 있던 무리들이 예수를 미워하여서 낭떠러지로 데려가서 밀쳐 떨어뜨리려 했던 장소에 세운 작은 교회이다. 그런 장면을 보고 마리아가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었다.


'성모의 두려움' 교회


나사렛에는 아랍 무슬림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으므로 이들을 위한 무슬림 예배처 및 영묘 등이 없을수 없다. 마스지드 알 바이아드(Masjid al-Abiad) 또는 화이트 모스크라고 불리는 모스크는 나사렛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이다. 구시가지 시장 지역의 모스크 쿼터(Harat Alghama)에 있다. 마스지드 알 살람(Masjid al-Salam)은 평화 모스크라고 불린다. 이밖에도 나사렛에는 알 셰이크 아메르(al-Sheikh Amer)의 영묘, '예언자에게 나가는 곳'이라는 명칭의 영묘 겸 모스크인 '쉬하브 아드 딘(Shihab ad-Din)의 영묘' 등이 있다.


나사렛의 평화 모스크(마스지드 알 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