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레녹스 버클리의 '룻' - 214

정준극 2019. 7. 11. 11:45

룻(Ruth)

영국의 레녹스 버클리의 3장 오페라

 

레녹스 버클리

 

영국의 레녹스 버클리(Lennox Berkeley: 1908-1989)라고 하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20세기 중반의 유명 작곡가들조차 찬사를 보내고 존경한 작곡가였다. 벤자민 브리튼과 프랑시스 플랑크는 버클리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버클리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레녹스 버클리 협회'를 창설하여 그의 작품들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널리 알져지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의 겸손한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버클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그의 작품마다 그의 신앙심이 담겨 있을 정도이다. 버클리는 여러 장르의 음악들을 남겼다. 오페라는 네편이나 작곡했다. 1954년에 만든 오페라 '넬슨'(Nelson)은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은 것이다. 그의 세번째 오페라인 '룻'은 그의 두번째 오페라인 코미디 '만찬 약속'(A Dinner Engagement)이 성공을 거두자 브리튼의 잉글리쉬 오페라 그룹이 작곡을 의뢰한 것이다. '룻'의 대본은 브리튼과 콤비인 에릭 크로지어(Eric Crozier)가 작성했다. 그리고 초연에서 남자 주인공인 보아즈의 역할을 브리튼과 평생 동반자인 바리톤 피터 피어스(Peter Pears)가 맡았다. '룻'은 1956년 10월 런던에서 초연을 가졌다. 공연시간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78분) 존 블로우(John Blow)의 오페라 '비너스와 아도니스'(Venus and Adonis)와 동시 공연되었다. '룻'은 잉글리쉬 오페라 그룹이 공연한 다른 오페라들과 마찬가지로 소규모 오케스트라로 구성되어 있다. 두개의 플류트, 한개의 혼, 피아노, 팀파니, 그리고 현악기 연주자 11명으로 구성되었다.

 

레녹스 버클리는 영국인의 대부분이 성공회 신자인데 반하여 평생 가톨릭 신자였다. 원래는 성공회 신자였지만 26세 때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룻'은 그의 신앙고백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페라 '룻'은 제목이 '룻'이지만 실제적인 주인공은 이스라엘 여인인 나오미라고 할수 있다. 나오미는 이방인인 모압 사람과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다. 두 아들들은 장성하여 모압 여인들과 결혼을 하였다. 첫째 며느라고 오르파이고 둘째 며느리가 룻이다. 그런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더니 이어서 두 아들들도 세상을 떠났다. 나오미는 아무 의지할 사람도 없는 모압 땅에서 살수가 없어서 고향인 유대땅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래서 두 며느리에게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으나 둘째 며느리인 룻이 죽어도 나오미오 함께 지내겠다고 하여서 어쩔수 없이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베들레헴에서 룻은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그 사이에서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게 태어났으며 결국 나중에는 예수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순탄한듯한 이야기이지만 모압은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부족이기 때문에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오페라에서는 이스라엘에 온 모압여인 룻이 여러 괄시를 받으며 지내야했던 것을 표현하였다. 총 공연시간이 78분인 '룻'은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에서는 모압을 떠난 나오미, 첫째 며느리인 오르파(Orpah), 둘째 며느리인 룻이 베들레헴에 가까이 오는 장면이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의 사람들이 이방남자와 결혼했다가 돌아오는 자기를 어떻게 대접할지 걱정이다. 그래서 두 며느리에게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한다. 첫째 며느리인 오르파는 어쩔수 없이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말에 순종하여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인 룻은 나오미와 함께 머물겠으며 떠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룻의 아리아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제2장에서 룻은 모든 것이 낯설은 유대땅에서 이들의 관습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 관습 중의 하나는 가난한 여인들에게 추수가 끝난 밭에 남아 있는 보리 이삭들을 주워도 되는 것이다. 룻도 당장 먹고 살 것이 없어서 밭에 나가 추수한 후에 떨어진 보리 이삭들을 줍기로 한다. 그러나 버클리의 오페라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룻을 적대시하고 심지어는 마녀로 몰아서 잔혹하게 대하는 장면을 추가하였다. 그때 밭주인인 보아즈가 나타나서 룻을 냉대하는 다른 추수꾼들을 나무라고 룻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떨어진 보리 이삭들을 줍도록 한다. 이에 룻은 보아스의 은혜에 감사하고 다만 자기에게 불친절했던 사람들을 너무 나무라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미워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오미가 룻에게 보아즈의 아내가 되라고 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성경에서는 룻이 보아즈가 잠들어 있는 중에 그의 발치에 눕는다는 내용이 있지만 오페라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아무튼 보아즈는 룻이 아내가 되기를 원하자 놀라지만 룻을 어여삐 여겨서 이를 받아 들인다. 보아즈는 자기의 새로은 아내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예언하기를 '룻의 자궁이 앞으로 오실 왕을 잉태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룻'은 일반 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의 세속적인 사랑이야기와는 다르다. '토스카'와 '트리스탄'의 격정적인 사랑과도 다르다.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런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스트라빈스키와 브리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감각적인 오케스트라 음악은 아마도 라벨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실제로 버클리는 젊은 시절에 라벨을 찾아가서 지도를 청했던 일도 있다. '룻'은 전반적으로 자연적인 드라마틱한 면이 결여되어 있다. 그저 담담한 성서 이야기를 펼쳐 보였을 뿐이다. 그 런 중에도 드라마틱한 장면도 도출되어 있다. 첫째 장에서 나오미가 걱정하는 장면은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다. 그 다음에 보리밭에서 다른 이삭 줍는 사람들이 룻을 멸시하고 냉대하는 것은 아마도 현대적인 인종차별을 비유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후의 보아즈와 룻의 듀엣은 비록 사랑의 듀엣은 아니더라도 대단히 마음을 적시는 노래이다. 스토리가 진전될 수록 합창단의 역할이 커진다. 현대 영국의 합창곡 작곡가인 존 러터(John Rutter)의 작품을 듣는 듯하다. 아마 존 러터가 버클리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룻과 보아즈'.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