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칼 골드마크의 '시바의 여왕' - 221

정준극 2019. 7. 11. 11:59

시바의 여왕(Die Königin von Saba) - The Queen of Sheba

Karl Goldmark(칼 골드마크)의 3막 오페라

 

칼 골드마크

 

'시바의 여왕'은 헝가리의 칼 골드마크(Karl Goldmark: 1830-1915: Goldmark Károly)의 3막 오페라로서 구약성경 열왕기상 10장 쓴 작품ㅇ디다. 구약성경에는 시바(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이 지혜롭다는 명성을 듣고 그를 찾아와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지만 솔로몬이 막힘이 없이 대답하자 크게 감동하여 찬사를 보내고 가지고 온 보화를 모두 기증하고 갔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오페라 '시바의 여왕'은 시바의 여왕, 솔로몬의 사절인 아사드, 아사드와 결혼키로 한 술라미스 사이의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여서 성경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성경에는 열왕기상(First Kings) 10장에 시바의 여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거의 똑 같은 내용이 역대하(2 Chronicles) 9장 1-12절에도 나온다. 우리나라 개신교 성경에서는 시바를 스바라고 번역했다. 그러면 시바 또는 스바는 과연 오늘날 어디인가? 에티오피아에 속한 지역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예멘을 시바라고 보고 있다. 현대의 일부 역사학자들은 남부 아라비아에 있던 사바(Saba)라는 왕국이 성경에 나오는 시바라고 주장했다. 역시 예멘 일대에 해당한다. 시바의 여왕에 대한 이야기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솔로몬'에도 나온다. 1749년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처음 공연된 오라토리오이다. 오라토리오이지만 오늘날에는 오페라처럼 연기하며 공연하는 경우도 있어서 흥미를 끈다.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하는 장면

                     

'시바의 여왕'은 1875년 3월 10일 비엔나의 호프오퍼(궁정극장: 현 슈타츠오퍼)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골드마크의 대표작으로 비엔나 초연 이후 여러 나라에서 잇따라 공연되었다. 골드마크가 '시바의 여왕'을 주제로 하여 오페라를 작곡하게 된데에는 헝가리 출신으로 그의 제자인 메조소프라노 카롤리네 폰 곰페르츠 베텔하임(Caroline von Gomperz-Bettelheim)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다. 당시 베텔하임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생김새가 시바의 여왕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더구나 베텔하임은 놀랍도록 드라마틱한 음성과 폭 넓은 음역을 지니고 있어서 골드마크는 '시바의 여왕'을 오페라로 만들면 베텔하임의 재능을 크게 펼쳐 보일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텔하임은 '시바의 여왕'의 역할을 맡지 못했다. 왜냐하면 골드마크가 '시바의 여왕'을 12년 만에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텔하임으로서는 이미 나이가 들어서 '시바의 여왕'을 맡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시바의 여왕'의 작곡이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예를 들어서 골드마크는 해피엔딩을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서 마침내 골드마크 자신이 마지막 파트의 대본을 다시 써서 주인공인 아사드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웩스포드 오페라 페스티벌(1999)에서 시바의 여왕을 맡은 코르넬리아 헬프리히트

 

'시바의 여왕'은 골드마크가 1863년부터 작곡을 시작했으나 완성된 것은 1875년이었다. 원래 타이틀 롤은 메조소프라노를 위해 작곡하였으나 베텔하임이 맡기가 어렵게 되자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인 아말리에 마테르나(Amalie Materna: 1847-1918)가 맡았다. 마테르나는 비엔나에서 바그너 오페라의 주역을 여러번 맡았던 경험이 있었다. 비엔나 궁정극장에서의 초연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원래는 길지만 극장장이 드레스 리허설 이후 골드마크를 설득하여서 지루하다고 생각되는 상당부분을 삭제했기 때문이었다. '시바의 여왕'은 비엔나에서의 초연 이후 유럽의 여러 곳에서 인기리에 공연되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수십년 동안 꾸준히 공연되는 인기를 차지했다. 미국 초연은 1885년 12월 2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였다. 1885년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신학문의 요람인 배재학당이 처음 문을 연 해이다.

 

'시바의 여왕'의 비엔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드라마틱 메조소프라노 아말리에 마테르나

 

등장인물은 솔로몬 왕의 사절인 아사드(Assad: T), 솔로몬 왕(Bar), 시바의 여왕(MS), 아사드와 결혼키로 되어 있는 술라미스(Sulamith: S), 아스타로스(Astaroth: S), 발 하난(Baal-Hanan: Bar), 대제사장(B) 등이다. 장소는 예루살렘과 주변의 사막지대이며 시기는 기원전 10세기 경이다.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러 온다고 하자 왕은 아사드를 사절로 하여 여왕을 도중에서 만나 영접토록 한다. 여왕을 영접하러 나간 아사드는 레바논의 백향목이 우거진 어떤 숲에서 한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져 하룻밤을 지내고 온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아사드는 왕에게 시바의 여왕을 만나지 못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백향목 숲에서 어떤 아름다운 여인과 하룻밤을 지냈다는 얘기는 차마 하지 못한다. 아사드는 내친 김에 내일로 예정되어 있는 대제사장의 딸 술라미스와 결혼할수 없다고 말한다. 모두들 충격을 받는다. 그때 시바의 여왕이 왕궁으로 들어선다. 아사드는 자기와 그렇게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 여인이 바로 시바의 여왕이라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시바의 여왕은 아사드를 보고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솔로몬은 아사드에게 다른 여인에게 미혹되지 말고 술라미스와 어서 결혼하라고 자문한다.

 

1999년 웩스포드 오페라 페스티벌 공연

                        

시바의 여왕을 위한 연회가 벌어진다. 연회에서 몰래 빠져 나온 시바의 여왕은 아사드가 곧 결혼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사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만난다. 두 사람은 언쟁을 벌이지만 결국은 정열을 감추지 못하여 서로 포옹한다. 아침이 된다. 아사드와 술라미스의 결혼식이 성전의 성궤 앞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결혼식에 나타난 여왕은 또 다시 아사드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한다. 여왕에 대하여 뜨거운 정염을 주체하지 못한 아사드는 여왕을 자기의 신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백성들로서 신성모독에 해당한다. 아사드는 체포되어 재판을 기다린다. 신성모독에 대한 죄는 사형이다.

 

술라미스. 웩스포드 오페라 페스티벌

                               

시바의 여왕을 환영하는 연회가 계속 열리고 있다. 여왕은 아사드의 운명을 걱정하여 솔로몬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한다. 솔로몬이 거절하자 여왕은 인정이 없는 솔로몬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떠난다. 술라미스가 나타나 솔로몬에게 아사드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간청한다. 솔로몬은 율법에 따라 여호와를 저버린 자에 대한 처벌이므로 왕으로서도 어찌 할수 없다고 말한다. 술라미스는 광야로 나가서 자기의 운명을 애통해 한다. 그 모습을 본 솔로몬은 총애하던 아사드였기 때문에 그를 죽이지 않고 광야로 내친다. 시바의 여왕은 광야에서 아사드를 발견하고 자기의 왕궁에 가서 함께 살자고 유혹한다. 아사드는 여왕의 제안을 거절하며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므로 죽음으로서 용서를 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때 모래폭풍이 불어 아사다를 집어 삼킨다. 얼마후 술라미스는 사막에서 거의 죽어가는 아사드를 발견한다. 아사드는 술라미스에게 용서를 구한다. 술라미스가 용서하겠다고 하자 아사드는 술라미스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솔로몬이 아사드에게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