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집중탐구 150편

106. 볼프강 림의 '멕시코 정복'(The Conquest of Mexico)

정준극 2019. 9. 20. 10:06

멕시코 정복(Die Eroberung von Mexico) - The Conquest of Mexico

볼프강 림의 4막 오페라. 몬테수마 이야기


볼프강 림


독일의 현대 작곡가인 볼프강 림(Wolfgang Rihm: 1952-)이 멕시코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프랑스의 시인이지 연출가로서 20세기 극장 및 유럽 아방 갸르드의 중요 인물인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의 1932년도 텍스트인 '멕시코 정복'(La cnquete du Mexique)을 바탕으로 4막의 오페라를 완성했다. 독일어 타이틀은 Die Eroberung von Mexico)이다. 독일어의 Eroberung은 '정복'이란 뜻의 단어이다. 볼프강 림은 아르토의 또 다른 작품인 '세라팽의 극장'(Le theatre de Seraphin)과 멕시코의 시인인 옥타비오 파스(Octabio Paz: 191-1998)의 1937년도 시작인 '인간의 뿌리'(The Root of Man)에서도 일부를 인용하여 대본에 포함하였다. 볼프강 림은 또한 나우아틀어로 써놓은 16세기의 아스텍 시에서도 구절들을 대본에 인용하였다. 나우아틀어는 중앙아메리카의 토착어로서 나우아인들이 사용한 언어를 말한다. 나우아인들은 현재의 멕시코 중부지방에 거주했었다. 볼프강 림은 오페라 '멕시코 정복'을 '뮤직 드라마'라고 블렀다. 오페라의 내용은 스페인 침략자인 코르테스와 아스텍 통치자인 몬테수마(Montezuma: 몬테주마)의 만남에 중점을 두었다. 볼프강 림은 이 만남을 '자아의 조우'(An encounter with the Self)라고 표현했다.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오페라의 구조에서 특이한 점은 몬테수마를 소프라노가 부르며 그의 말이 오프 스테이지에 있는 두명의 여성이 에코처럼 말을 받아 부른다는 것이다. 마친가지로 코르테스의 말도 두명의 스피킹 역할이 오프 스테이지에서 에코로서 노래를 받는다.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간단한 무대에서 두 세명의 출연자들이 설명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센스는 포함되어 있어서 대본의 행간을 읽게 한다. 이 오페라는 1992년 2월 9일 함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이어 쾰른, 마드리드, 프랑크푸르트에서 공연되었고 2015년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리바이발되었다. 볼프강 림은 현재 칼스루에 음악대학교 신음악 및 미디어 연구소장이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의 상주 작곡가로서 오래 봉사했다. 그는 현재까지 여섯 편의 오페라를 완성했다. '디오니소스'(Dionysos), '멕시코 정복'(Die Eroberung von Mexico), '함렛머신'(Die Hamletmaschine), '야콥 렌츠'(Jakob Lenz), '파우스트와 요리크'(Faust und Yoick), '외디푸스'(Oedipus)이다.


몬테수마는 여성이 맡는다. 함부르크


등장인물들은 간단하다. 


- 코르테스(Cortez: Bar). 에르난 코르테스는 스페인의 카스티야 군인으로서 아스텍 제국을 침공하여 정복했다.

- 몬테수마(Montezuma: S). 모테크소마 쇼코요친 또는 모크테수마 2세라고 하는데 1502년부터 1520년까지 약 18년 동안 아스테 제국을 통치하였다. 그가 통치하던 시기에 스페인이 본격적으로 아스텍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 라 말링셰(La Malinche: 마임 역할). 코스테스의 정부

- 비명 지르는 남자

- 대사를 말하는 사람(Speakers), 오프 스테이지의 음성들(하이 소프라노와 콘트랄톸), 스페인 군인들, 아스텍 사람들, 동물들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의 무대


[1막] 징조(Die Vorzeichen: The Omens).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에 도착한다. 그는 중앙아메리카의 아스텍 제국을 정복하기로 결심한다. 아스텍 제국의 몬테수마(모크테수마 2세)는 제국에 제앙이 닥쳐 올것을 예감한다.

[2막] 선언(Bekenntnis: Declaration). 몬테수마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침공을 예견하고 아스텍 수도의 백성들을 모두 피난토록 한다. 코르테스가 군인들을 이끌고 도시로 들어오지만 도시는 텅 비었다. 코르테스는 자기 자신의 실체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는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저 먼 스페인(카스티야)으로부터 이곳까지 와서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제국을 멸망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다. 코르테스는 몬테수마를 만나서 불필요한 살상과 파괴와 약탈을 막을수 있는 방도를 의논할 생각이다. 하지만 코르테스의 시도는 그의 지나친 오만함으로 무위로 돌아간다. 코르테스는 몬테수마가 우상 숭배하는 것을 비웃고 조롱한다. 기독교가 이 세상의 유일한 종교이며 기독교가 아니면 구원받을수 없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대하여는 극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코르테스는 몬테수마에게 자기가 이곳에 온 것은 기독교의 진리를 선교하기 위해서리며 아스텍의 모든 백성들이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나 몬테수마는 스페인 사람들이 기독교 선교가 목적이 아니라 금을 차지하려고 온 것을 깨닫는다. 코르테스와 함께 멕시코에 온 라 말랭셰는 두 사람이 다시 대화를 하도록 노력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라 말랭셰는 댄서 역할이다. 춤으로서 대사를 전달한다.)


몬테수마와 코르테스의 만남


[3막] 격동(Die Umwälzungen: The Convulsions). 몬테수마의 정신상태는 점차 혼돈스러워진다. 장차 아스텍 제국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페인 침략자들의 총칼에 대항한 능력도 없다. 코르테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몬테수마의 정신을 혼란시켜서 무혈 점령할 생각이다. 코르테스는 비명지르는 사람을 하나 고용해서 몬테수마의 육신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몬테수마는 고통 속에서 백성들을 향해 기나긴 연설을 한다. 몬테수마의 연설에 두 명의 '대용' 음성과 여성 합창이 오프 스테이지에서 마치 메아리처럼 연설을 이어 받는다. [4막] 폐위(Die Abdankung: The Abdication). 몬테수마가 마침내 숨을 거둔다. 코르테스는 몬테수마의 기념상 앞에서 꿈을 꾸고 있다. 모텐수마는 자신의 개성이 와해 되는 것을 경험한다. 몬테수마의 장례식이 장엄하게 거행된다. 장례식은 아스텍과 스페인 군인들이 서로를 죽이는 대량학살을 일으킨다. 실상 이 장면은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남성합창과 여성합창이 옛 나우아틀 시에 의한 찬가를 소리 높이 부른다. 모두 죽는다. 코르테스의 음성과 몬테수마의 음성이 들린다. 처음으로 듀엣으로 부르는 것이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에서 마지막 구절을 듀엣으로 낭독하는 음성이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몬테수마는 어떤 사람인지 간략히 설명코자 한다. 몬테수마의 정식 호칭은  모크테수마 2세(Moctezuma II)이다. 1466년 경에 태어나서 1520년, 스페인에 의해 아스텍 제국이 멸망하던 시점에 세상을 떠났다. 몬테수마는 여러 스펠링으로 기록되고 있다. Moteuczoma, Motecuhzoma, Moteuczomah, ZMuteczuma 등이다. 초기의 나우아틀 텍스트에는 Motecuhzoma Xocoyotzin(모테쿠초마 요코쵸친)이라고 적혀 있다. '모크테추마 2세'(Moctezuma the Younger)라는 의미이다. 몬테수마는 테노치티틀란의 9대 통치자로서 1502년부터 그사 세상을 떠나는 1520년까지 아스텍 제국을 통치하였다. 테노치티틀란은 고대 아스텍 문명의 수도를 말한다. 1325년에 아스텍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현재의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이다. 테노치티틀란은 코르테스의 침략 때에 철저히 파괴되고 약탈 당했다. 그래서 옛 모습은 하나도 찾아 볼수 없다. 몬테수마의 치세 때에 아스텍이 처음으로 메소아메리카와 유럽의 문명과 접촉을 가졌다. 몬테수마는 스페인의 아스텍 제국 침공의 초기에 코르테스에 의해 살해 당했다.


옛 아스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 현재의 멕시코 시티에 있었다. 장대한 건축물과 도시는 코르테스의 초기 침공 때에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몬테수마의 치세 때에 아스텍 제국이 멸망하였지만 실은 그의 치세 때에 아스텐 제국은 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는 전쟁을 통해서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였다. 그는 사회계층의 구분에서 과거의 메리토크라틱 제도를 변경하였다. 메리토크라칙은 능역에 따라 신분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신분 계급을 확대하여서 피필틴(Pipiltin), 즉 귀족과 마체우알틴(Macehualtin), 즉 평민으로 구분하였다. 그리하여 평민이 왕국에서 일하는 것조차 철저하게 금지하였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몬테수마는 심약하고 우유부단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인물로 그렸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그가 스페인의 침략 때에도 어떤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여 결국 제국의 멸망을 가져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그가 위대한 용사로서 여러 부족들을 굴복시켜 아스텍 제국의 위세를 드높인 인물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스페인의 침공 때에는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여서 대화를 추진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몬테수마의 생각과는 달리 무자비하였다.


스페인 침략군의 코르테스를 맞이하는 몬테수마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스페인의 아스텍 제국 정복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잠시 소개코자 한다. 멕시코에도 우리 교민들이 다수 살고 있느니 멕시코의 역사에 대하여 일고하는 것도 불필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스텍 제국에 대한 스페인의 정복은 다른 말로 스페인-멕시코 전쟁이라고 한다. 1519년부터 1521년의  3년 동안에 벌이진 일이다. 스페인-멕시코 전쟁은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화에 있어사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스페인이 아스텍을 무너트릴 때에 가장 효과를 본 작전은 과거 아스텍에 대하여 원한이 많았던 주변의 소수 부족들과 손을 잡아서 최대로 이용한 것이다. 때문에 스페인 연합전선은 테노치티틀란의 멕시카를 단 2년만에 패배시킬수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탐험은 스페인이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세계에 정착하기 시작한지 25년 만의 일이다. 스페인은 멕시코 정복을 발판으로 카리비아와 기타 중남미 지역에 대한 식민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호시탐탐 노리기 시작한 한것은 코르테스에 의한 정복 전쟁으로부터 2년 전인 1517년이었다. 후안 데 그리할바라는 사람이 유카탄에 대한 탐험을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519년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이 쿠바에서 멕시코로 배를 타고 진격했다. 코르테스의 병력은 정예 6백명이었다. 아스텍에 대한 스페인의 최후 승리는 1521년 8월 13일이었다. 스페인 군대와 원주민인 틀락스칼란 전사들이 코르테스의 지휘 아래 쿠아추테모크와 트네치티틀란의 황제를 생포함으로서 전쟁의 막을 내린 것이다. 테네치티틀란은 아스텍 제국의 수도였다. 아스텍 제국의 몰락은 중앙 멕시코에서 스페인의 통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스페인은 테네치티틀의 폐허에서 멕시코 시티를 건설하여 스페인 식민 활동의 센터로 삼았다.


몬테수마는 강력한 멕시카(아스텍) 제국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1519년에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 침략군이 등장했을 때에 그는 이상하게도 이 미지의 침략군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지 조속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마 기독교 선교를 위한 친선사절 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한 오판은 결국 아스텍 제국의 멸망을 앞당기는 것이었다. 멕시코는 물론이고 중남미의 많은 나라들에서 아스텍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몬테수마라는 이름을 알고 있지 않는다면 그건 곤란한 일이다. 좋던 나쁘던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몬테수마인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항들이 있다. 몬테수마를 더 알기 위한 사항들을 10개로 정리해 보았다.


1. 몬테수마는 사실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몬테수마는 스페인어 스타일이며 실은 모테쿠소마(Motecuzoma), 모크테소마(Moctezoma), 또는 모크테수마(Moctezuma)에 가까운 이름이었다. 그의 실제 이름은 '모크테이쿠쇼마'라고 한다. 그의 이름 중에서 두번째 파트인 소코요친(Xocoyotzin)이란 것은 이름이 아니라 '2세'(The Younger)라는 뜻이다. 이름에 소코요친을 붙인 것은 그의 할아버지, 즉 모크테수마 일루이카미나(Moctezuma Ilhuicamina)와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일루아카미나라는 단어는 '하늘에 화살을 쏘는 사람'이란 뜻이다. 모크테수마 일루아카미나는 1440년부터 1469년까지 멕시카를 통치하였다.


2. 몬테수마 2세는 왕위를 계승받지 않았다. 몬테수마는 유럽의 제왕들과는 달리 아스텍 제국의 통치자로서 자동적으로 계승되지 않았다. 몬테수마는 1502년에 아스텍 제국의 황제였던 삼촌이 세상을 떠나자 30인의 귀족으로 구성된 원로위원회에서 새로운 황제로서 선출되었다. 몇명의 새로운 황제 후보자 중에서 몬테수마가 가장 적당하다는 판단이었다. 몬테수마는 젊었고 왕족이었으며 여러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고 또한 정치와 종교에 대하여 이해가 깊었다. 하기야 그의 형제 및 사촌 등등 몇몇 후보가 있었지만 몬테수마에 필적한만한 인물이 없어서 무투표 당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원로 위원회는 몬테수마가 강한 지도자가 될 것으로 믿어서 선택했다고 한다.  


3. 몬테수마는 사실 황제 또는 왕이 아니었다. 그의 정식 호칭은 틀라토아니(Tlatoani)였다. 틀라토니아라는 단어는 나우아틀어로서 '대변인' 또는 '사령관'이란 뜻이다. 하기야 멕시카의 틀라토아니는 유럽의 국왕이나 황제와 비슷한 호칭이라고 볼수 있다. 하지만 유럽의 호칭과 아스텍의 호칭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선 틀라토니아라는 타이틀은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원로원에서 선출되는 것이다. 틀라토니아가 선촐된 사람은 대단히 장엄하고 긴 대관예식을 가져야 한다. 그중의 하나는 틀라토아니가 아스텍의 신인 테스카틀리포카와 신성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즉, 틀라토니아는 종교에 있어서도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모든 군대의 총사령관이며 모든 국가 정책의 최고 책임자이다. 그러므로 멕시카의 틀라토니아는 유럽의 제왕보다 훨씬 강력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4. 몬테수마는 위대한 전사이며 군사령관이었다. 몬체수마는 용감한 전사였으며 재능있는 지휘관이었다. 만일 그가 전쟁터에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용맹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멕시카의 가장 유력한 틀라토아니로서 고려되지 못했을 것이다. 몬테수마는 틀라토아니로 선출되고 나서 몇번에 걸친 가신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전투에 참가한 일이 있다. 지엄한 최고 군주가 전투의 앞장에 서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몬테수마는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1519년에 스페인 침략자들이 왔을때에는 전투에 나서지도 않았고 전투를 독려하지도 않았다.


5. 몬테수마는 신앙심이 강했다. 몬테수마가 클라토아니로 선출되기 전에 그는 장군이고 외교관이었지만 테토치티틀란의 고승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대세자상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대단히 종교적인 인물이었다. 영적인 명상에 몰입하였고 기도에 힘썼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밀어닥쳐 왔을 때 그는 많은 시간을 멕시카의 승려와 영적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보냈다. 몬테수마는 기도를 통해서 멕시카에 진주한 병사들이, 그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등에 대하여 신으로부터 해답을 듣고자 했다. 몬테수마는 처음보는 그들이 사람인지, 신인지, 또는 다른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몬테수마는 스페인 병사들의 진입이 현재의 아스텍 사이클, 즉 다섯번째 사이클의 종말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는 예감을 가졌다. 스페인 병사들이 아스텍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에 들어오자 이들은 몬테수마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압력을 행사하였다. 하지만 그는 스페인 병사들에게 예배처를 설치하도록 허락하였으나 그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하지는 않았다.


6. 몬테수마는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다. 몬테수마는 멕시카의 틀라토니아로서 유럽의 왕들이나 아랍의 술탄들이 부러워할 먼큼 호화스러운 생활을 영위하였다. 테노치티틀란에서는 화려한 궁전에서 살았고 수백명의 하인하녀들이 수종하였다. 그는 수많은 비빈들을 거느렸다. 그가 출타를 할 때에는 수행원이 거리를 길게 메꾸었다. 일반 백성들은 몬테수마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그는 식사할 때도 그만이 사용하는 식기로 식사를 하였으며 다른 누구도 그가 사용하는 식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무명으로 지은 옷을 즐겨 입었는데 매일 새옷으로 갈아 입었으며 한번 입었던 옷은 다시는 입지 않았다고 한다.


7. 몬테수마는 스페인 군대가 침공하는 데에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에르만 코르테스가 이끄는 6백명의 스페인 침략군이 멕시코만에 상륙하였는데도 몬테수마는 나가서 몰아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코르테스에게 테노치티틀란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얘기를 전했을 뿐이다. 몬테수마는 코르테스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코르테스는 계속 진군하였다. 몬테수마는 코르테스에게 귀중한 황금을 선물로 보냈다. 스페인 군대가 침공을 거두고 돌아가기를 바래서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물 공세는 오히려 침략자들의 구미만 건드렸을 뿐이다. 침략자들은 멕시코에 수많은 황금이 있는 것으로 믿어서 오히려 침략의 발길을 재촉하였다. 스페인 침략군이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하려 하자 몬테수마는 이들을 도시 안으로 들어오도록 환영하였다. 하지만 몬테수마는 며칠 후에 이들에게 체포되는 운명을 겪는다. 이들에게 포로로 잡힌 몬테수마는 백성들에게 스페인인에게 복종하라고 말한다. 백성들은 몬테수마를 더 이상 존경하지 않았다.


8. 몬테수마는 그의 제국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는 했다. 몬테수마는 수페인 군대를 축출하기 위한 몇가지 조치들을 취하기는 했다. 코르테스가 이끄는 침략군이 테노치티틀란으로 진격하는 중에 촐룰라(Cholula)에 도착했을 때 몬테수마는 매복군을 배치토록 명령하였다. 코르테스는 매복을 미리 짐작하고 매복군을 대거 살육하였다. 이것이 저 유명한 촐룰라의 대학살이었다. 코르테스의 6맥명 병사들은 촐루라의 무고한 주민들 수천명을 광장에 모이도록 하고 무차별 살육하였다. 몬테수마는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라는 사람이 코르테스로부터 멕시카 정복의 임무를 위임받자 그와 비밀 통신을 하여 더 이상의 참상이 없기를 바랬다. 이를 위해 몬테수마는 해안을 지키는 봉신들에게 나르바에스의 이른바 탐험을 돕도록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톡스카티에서 스페인군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자행되었다. 몬테수마는 그의 동생인 쿠이틀라우아크가 코르테스에게 포로로 잡히자 코르테스에게 동생을 석방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하였다. 쿠이틀라우아크는 스페인군이 상륙했을 때부터 이들을 저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터였다. 어찌되었던 쿠이틀라우아크는 석방되었고 이어 저항세력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몬테수마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몬테수마의 뒤를 이어 틀라토아니가 되었다.


9. 몬테수마는 정복자인 코르테스와 친구가 되었다. 몬테수마는 스페인 침략군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중에 참으로 이상하게도 정복자인 코르테스와 친구가 되었다. 몬테수마는 코르테스에게 멕시카 전통 테이블 게임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두 사람이 게임을 할 때에는 작은 보석을 내기로 걸기도 했다. 그리고 몬테수마는 포로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병사들과 야외로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 더구나 몬테수마는 그의 딸을 코르테스와 결혼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몬테수마는 나중에 그의 딸을 페드로 데 알바라도에게 주어 부인으로 삼도록 했다. 몬테수마와 코르테스의 친분은 코르테스에게 대단히 유용한 것이었다. 몬테수마의 조카로서 호전적인 카카마가 스페인에 대한 반란을 기도했을 때 몬테수마는 그 사실을 코르테스에게 알려주어서 결국 카카마는 코르테스에 의해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10. 몬테수마는 자기 백성들에게 살해되었다. 1520년 6월에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에서 소요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돌아온다. 그의 부관인 페드로 데 알바라도가 비부장의 귀족들을 톡스카티 축제에서 공격하였고 그 바람에 수천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살륙을 당했다. 코르테스는 몬테수마를 한 건물의 옥상에 올라서서 백성들에게 더 이상의 소란을 떨지 말라고 설득하도록 했다. 그러나 몬테수마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에 백성들은 몬테수마에게 돌이나 창을 던졌고 또는 활을 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몬테수마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스페인 군대가 그를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날아오는 창과 화살에 당장 죽었을지도 모른다. 몬테수마는 그로부터 며칠 후에 부상으로부터 회복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1520년 6월 29일이ㅐ었다. 어떤 소문에 의하면 몬테수마가 회복되었는데 스페인 군인이 살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몬테수마는 테노치티틀란 시민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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