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강화-인천

인천 차이나타운 이모저모

정준극 2020. 1. 31. 08:42

인천 차이나타운 이모저모

2020. 1 탐방


인천 중구의 차이나 타운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의 다른 항목에서 이미 소개하였거니와 오랫만에 다시 가보니 풍물이 새로워서 몇 커트 사진을 추가하는 바입니다.


구정 준비 랜턴 거리

팔선과해도. 의선당 옆 벽화.


팔선도(八仙圖)는 종리권(鐘離權), 장과로(張果老), 한상자(韓湘子), 조국구(曺國舅), 여동빈(呂洞賓), 철괴이(鐵拐李), 남채화(藍采和), 하선고(河仙姑) 등 8인의 신선을 묘사한 그림이다. 팔(팔)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문학작품에서 여러 사람을 지칭할 경우 '등등'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팔선이란 곧 군선(群仙) 또는 모든 신선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8선은 가난, 부귀, 귀족, 평민, 늙음, 젊음, 남성, 여성 등 삶의 모습을 다향하게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각각의 팔선에 대한 개별적인 고사는 중국 당송 문인들의 기록에 나타나다가 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은 것은 원대의 일이다. 청대 조익(趙翼)의 해여총고(海余叢考)에는 이들 판선이 그려지기 시작한 유래는 분명치 않지만 원 이전에는 그려진 것이 없어서 원대에 비로소 팔선도가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진시황묘 의용병마상을 전시한 어느 식당


2020년도 설날 명절 준비

연경대반점

차이나 게이트 식당과 관운장 기마상

한중문. 웬 컵들을 잔뜩 세워 놓았는지...옆에는 보신탕 집

차이나 타운에 연결된 송월동 동화마을의 이상한 나라의 알리스

동화마을의 한 구석

동화마을 입구

동화마을의 어느 상점

차이나 타운 패루

차이나 타운의어느 식당

입춘을 기다리며 봄 춘자를 거꾸로 붙였다.

의선당 내부


의선당에는 다섯 신단이 마련되어 있다. 마조신단, 관우신단, 관음신단, 호선신단, 용왕신단이다. 이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간략히 살펴본다.


마조신단(媽祖神壇). 마조는 중국 연해지역에 널리 퍼진 민간신앙으로 '해신낭낭'(海神娘娘)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송대 임묵(임默)이라는 여인으로 해난을 구제하다가 죽자 어업 등 해상활동을 돌보는 해신으로 받들어졌다. 민간에서는 이 여인의 박애와 봉사정신을 받들어 해상활동 뿐 아니라 빈곤, 질병 구제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통은 해외 화교들로 이어여 '바닷물이 닿는 곳이면 중국인이 있고, 중국인이 가는 곳이면 마조가 있다'는 말이 생겨났다.


관우신단(關羽神壇). 한말 삼국시대 촉한의 명장 관우를 모셨다. 충의, 무용으로 이름을 떨쳐 사후 신격화되었다. 관공(關公), 관제(關帝)로 불리며 무성(武聖)으로 추앙되어 문성(文聖)인 공자와 비견된다. 그의 충의와 신의는 상업계의 신조로 받들여졌고 민간에서는 재물을 불러오는 상업의 수호신이 되었다. 또한 재난과 질병 구제를 기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습은 근대 화교의 이주와 함께 세계 각지로 퍼져 중국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관공신앙이 함께 전해졌다.


관음신단(觀音神壇). 관음신단은 성관음(聖觀音)을 모신 신단이다. 성관음은 정관음(正觀音)이라고도 한다. 관음은 자비로 중생들을 재난에서 지켜주고 고난에서 구제해 주는 신으로 민간에게 매우 친숙하다. 관음신앙은 인도에서 발생하였으며 중국에는 1세기 무렵에 전해졌다. 이후 민간에 널리 전파되었고 특히 상인들의 수호신으로 숭앙되어 해안 지역에서 묘우를 쉽게 찾아볼수 있다. 중국 장수, 저장, 푸켄, 광뚱을 비롯한 타이완, 베트남 등 동남아 화교 사이에서 관음신앙이 널리 퍼져 있다.


호선신단(胡仙神壇). 호선태야(胡仙太爺)를 모시는 신전으로 호삼태야(胡三太爺)라고도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호선은 당말 청조 산동성 출신 호역양(胡嶧陽)이라고 한다. 그는 평생 과거를 보지 않고 서당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빈한하게 살면서도 유유자적하여 자연을 벗삼아 살았다고 한다. 주역을 깊이 연구하여 민간에서는 길흉을 점치고 재액을 막아주었으며 아울러 의술을 행한 신선으로 알려져 있다.


용왕신단(龍王神壇). 중국에서 용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뿌리며 재앙을 없애주고 복을 내려준다하여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 특히 용왕은 치수에 능한 것으로 민간에 널리 알려져 있어서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뭄에 들거나 바기 너무 많이 내려 홍수가 나면 사람들은 용왕묘에 가서 향을 피우고 치성을 드렸다. 민간에서는 하천, 호수 등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용왕이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근에 묘우를 지어 용왕을 모셨다.


아느 식당 앞

월병 전문 상점들과 포청천 간판

차이나 타운의 중심지역. 공화춘은 공화춘이지만 옛 공화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식당이다.

차이나 타운 주거리.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또는 인천의 다른 지역으로 상권이 옮겨서인지 거리가 한산한 편이다. 식당들은 손님들이 없다고 울상이다. 실제로 문을 닫은 식당들도 여럿이나 있다.

경극 소개 전시

인천 선린동 공화춘(共和春).  공화춘의 전신은 산동회관(山東會館)으로 중국인 전용 주거지인 청국 조계지에서 음식점과 호텔의 혼합형 숙식업소로 시작된 업소이다. 산동회관이 있었던 자리는 지금 확실치 않다. 1911년 산동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이 산동회관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개업하였다가 이듬해에 업소의 명칭을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국의 봄'이라는 의미의 '공화춘'으로 개명하였다. 이후 공화춘은 일제강점기 이래에서도 인천과 서울의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경인지역 최고급 요리점으로 70여년간 그 명성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6.25 전쟁 이후에는 짜장면 등 대중 음식을 보급하는 식당으로 변천되었다. 공화춘은 화강암 석축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린 2층 벽돌조 건물로 화교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연안부두 신축으로 인하여 일대 상가가 쇠락하면서 1983년 영업을 중단하였다. 그러다가 2012년에 인천시의 협조로 '짜장면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차이나 타운의 메인 스트리트 상점들. 바람직하지 않지만 서양식 카페도 들어섰다.

화교학교 정문의 조각. 학생들이 점점 줄어 들어서 걱정이란다.

화교유치원 현관

일본인 거리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이 지역은 1883년 일본이 조계하여 집들을 짓고 사는 중에 이듬해인 1884년에는 청국 조계가 설정되어 그 경계를 위해 계단을 설치한 곳이다. 계단을 계속 올라가면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으로 연결된다. 가파른 길의 중앙에는 석조 계단이 마련되어 있고 양단에는 간혹 계단참을 두고 있다. 계단에 올라가면 인천항의 경관을 여유롭게 즐길수 있다. 아무튼 이 계단을 중심으로 서쪽은 청국의 차이나 타운이 발달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적산가옥들과 옛날 일본 은행들이 들어서 있어서 두 나라 스타일을 확연하게 살펴볼수 있다.

일본 조계지역에 있는 중국백화점. 중국상품들을 판다. 건물은 일본식이다.

일본 조계거리.

일본 조계 거리의 건물들

일본 조계 거리의 건물들

아기자기한 찻집과 양품점들도 들어서 있다.

일본 조계 거리의 찻집

중국 화교역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민족 여인의 모습

중국 이민족 소녀들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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