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유명 오페라극장 1

4. 드레스덴 슈타츠오퍼(Dresdener Staatsoper)

정준극 2007. 9. 3. 11:03
4. 드레스덴 슈타츠오퍼(Dresden Staatsoper)

    Sächsischen Staatsopera Dresden: Semper Opera: Saxon State Opera Dresden

 

 드레스덴 슈타츠오퍼 전경

 

드레스덴 슈타츠오퍼는 젬페르 오페라극장(Semperoper)이라고도 부른다. 위대한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페르(Gotfried Semper)를 기리기 위해서이다. 드레스덴 왕궁의 건너편, 극장광장(Theaterplatz) 한쪽에 있는 드레스덴 슈타츠오퍼는 음악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소이다. 무엇보다도 리하르트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활동했던 곳이며 이들의 많은 작품이 처음으로 선을 보였던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처음 이 오페라 극장이 개관된 1841년, 바그너가 이 극장의 합창단 지휘자로 활약하였다. 그런 연고로 그후 바그너의 리엔치(Rienzi), ‘방랑하는 화란인’, 탄호이저가 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849년, 바그너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드레스덴을 떠나게 되었다. 그 이후 약 40년동안 이 극장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세계적 음악가로 만들어 주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 중에서 살로메,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이집트의 헬렌, 다프네 등이 이곳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드레스덴 젬페르 오페라극장

 

엘베 강변에 드레스덴 슈타츠오퍼가 처음 문을 연것은 1841년이었다. 초기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었다. 정문 현관 상부에는 디오니서스(바커스)의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다. 현관에는 저명한 문학가들의 기념상이 줄지어 서있다. 괴테, 쉴러, 셰익스피어, 소포클레스, 몰리에르, 유리피데스 등이다. 화려하면서도 중후한 이 극장은 이른바 ‘드레스덴-바로크’ 양식의 대표작품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로부터 20여년후인 1869년 이 극장에 큰 불이 일어나 건물이 거의 전소되었다. 시민들은 젬페르가 재건을 주도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젬페르는 1849년의 ‘드레스덴 봉기’에 연루되어 추방당한 신세였다. 드레스덴 시민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젬페르는 드레스덴으로 돌아와 재건을 앞장섰다. 다만, 이 때에는 아들 만프레드 젬페르(Manfred Semper)가 내부 장식을 전담했다. 극장은 거의 1년만에 재건되었다. 그로부터 드레스덴의 작소니국립오페라극장은 독일 최고 오페라극장으로서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오페라 갈라 콘서트

                 

젬페르 오페라극장은 또 한번의 시련을 겪었다. 1945년 제2차 대전중의 드레스덴 대공습 때에 거의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완전 재건까지는 거의 40년이 걸렸다. 1985년 드레스덴 슈타츠오퍼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에도 베버의 ‘마탄의 사수’가 공연되었다. 19세기 말에 베버가 거의 10년동안 이 극장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여했던 것을 기억해서 였다. 2002년 엘베강의 범람으로 젬페르 오페라극장은 심하게 수해를 입었다. 이번에는 오페라를 사랑하는 세계 각국이 재건을 지원하여 1년도 넘기지 않고 복구되었다. 젬페르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으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 '불기근'(Feuersnot),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 '방랑하는 화란인', '리엔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살로메', '조용한 부인', '이집트의 헬렌' 등이 있다.

 

드레스덴 오페라 하우스